마태복음 14장(1) 세례 요한의 죽음(마 14:1-12)

by wgma posted Dec 04, 2015 Views 202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마태복음 14장(1) 세례 요한의 죽음(마 14:1-12)

 

 

untitled.png

 


이곳에서 두 가지 큰 기사를 읽게 된다. 하나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요한의 순교사건이며, 그리고 예수님께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축사하신 후 5천명에게 배불리 먹이신 후에 땅이 아니고 물위로 걸어가신 신기한 사건이다. 이러한 기적의 현장을 목격하고도 잘못된 생각으로 만왕의 왕 되신 예수에 대한 종교지도자들과 수많은 사람들의 엉뚱한 생각으로 빠져버린 내용으로 진행되고 있는 내용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만왕의 왕 되신 예수를 세속적 메시야로 인식을 하려고 했다. 그중에 예수만 따르기로 했던 12제자들 외에 많은 사람들이 세상적인 왕으로 세우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들은 적대감을 가지고 자기들의 싸움의 대상으로 착각하고 배척하기로 방향을 바꾸어가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순교의 제물이 되었던 요한의 슬픔을 깊이 동정하면서 오늘날도 같은 현상으로 진행되는 종교제판으로 희생되는 일들이 교회당문화 안에서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속적 가치에 의해서 복음의 본질이 평가되고, 성경의 내용을 전통적 유전에 의해서 해석되어지고, 개개인 인물들의 판단의 기준을 물량적으로 저울질하고, 자리싸움으로 기득권 보존을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 아닌가?

 

만일 위의 내용과 같이 평가되고 판단의 기준이 된다면 젊은 시절에 철없고 하잘 것 없는 계집아이의 춤 값으로 한번 밖에 없는 목이 잘려진 세례요한이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세상적인 속된 말로 개죽음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죽은 자들을 마지막 선지자요 믿는 자들의 구세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위선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망하고, 위탁받은 말씀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버림받으면서도 복음의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 없고 외롭게 초라하게 사명자의 길을 가야하는 사람들은 억울하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인간적으로 윤리도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는 마음의 아픔과 슬픔은 얼마나 더 심할까?

 

1. 예수의 소문을 듣고 (1-8)

그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 도다.” 사람의 양심의 가책을 무엇으로 숨길 수 있을까? 앞뒤 생각 없이 한마디 던진 실수로 본인도 원치 않는 의인(선지자 요한)의 목을 작은 계집아이의 요구를 들어 주고 목을 베어야만 했던 그 사건은 헤롯에게는 괴로웠을 것이고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헤롯이 요한에 대한 태도를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막 6:20)

 

* 분봉왕(Tetrarch)이란 한 나라의 왕이 다스리는 영토 일부를 나누어 다스리도록 통치권을 위임받은 왕을 말한다. 원래 의미는 ‘4분의 1을 통치하는 사람’을 말했으나 점점 ‘소규모의 땅을 통치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쓰였다. 영주라고도 한다.

 

성경에 나오는 분봉 왕으로는 갈릴리의 분봉 왕 헤롯(마 14:1; 눅 3:1), 이두래와 드라고닛의 분봉 왕 헤롯 빌립 2세(눅 3:1), 아빌레네의 분봉 왕 루사니아(눅 3:1)가 있다.

 

* 헤롯(Herod)

헤롯 안디바(안티파스)는 세례 요한을 처형한 왕, 헤롯 대왕의 둘째 아들로 헤롯이 죽자 갈릴리와 베뢰아의 분봉 왕이 되어 BC 4-AD 39년까지 다스렸다(눅 3:1). 성경에는 분봉 왕 헤롯, 헤롯 왕으로 나온다(마 14:1; 막 6:14; 눅 3:19).

 

그는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하고 자신의 이복형제인 빌립(헤롯 2세)의 아내이자 자신의 조카인 헤로디아와 다시 결혼하였다. 이것 때문에 세례 요한의 책망을 받게 되자(막 6:18) 그는 세례 요한을 옥에 가두었다(막 6:17). 헤롯은 세례 요한을 두려워하여 죽이지 못하다가 생일잔치 자리에서 헤로디아의 딸의 요청을 듣고 세례 요한의 목을 베고 말았다(막 6:20-29).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여우라는 말을 들었는데(눅 13:32) 이는 협박과 속임수에 능한 헤롯의 간사함과 교활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 권능(power)이란, 권력과 능력을 말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대해 주로 쓰였는데, 하나님께서는 하고자 결정하시는 것은 다 하실 수 있는 분이다(시 115:3; 마 19:26; 눅 1:37).

 

하나님은 권능으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다(출 13:16; 민 33:3). 권능은 원래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시 62:11),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했다(시 21:13). 에스겔은 주의 권능을 경험한 가운데 예루살렘의 심판을 예언했으며(겔 3:14; 3:22), 여러 선지자들 역시 하나님의 권능을 선포했다(사 33:13; 렘 10:6; 나 1:3).

 

전에 헤롯 안디바는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다.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였기 때문이었다. 헤롯 안디바의 처음 아내는 아라비아의 아레타스 왕의 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헤롯은 처음 아내를 버리고 동생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나님의 사람 요한은 헤롯의 이 잘못을 용감하게 바로 지적하였고 그 지적 때문에 그는 옥에 갇히게 된 것이었다.

 

* 빌립(Philip)은 헤롯 빌립 1세로 그는 헤롯 대왕이 대제사장 시몬의 딸인 마리암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그는 조카인 헤로디아와 결혼하여 딸 살로메를 낳았다. 하지만 헤로디아는 그를 버리고 이복형제인 헤롯 안디바와 부정한 결합을 했고, 이 일로 인해 세례 요한의 책망을 들었다(마 14:3; 막 6:17-18; 눅 3:19).

 

* 헤로디아(Herodias)는 헤롯 대왕의 손녀이고 헤롯 대왕의 아들 아리스토불로스의 딸이다. 그녀는 삼촌인 헤롯 빌립과 결혼했다가 다시 그 동생 헤롯 안디바와 재혼했다. 이 결혼에 대해서 옳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세례 요한에게 분노한 그녀는 헤롯 안디바를 설득해서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고(마 14:3-4; 막 6:17; 눅 3:19-20), 딸 살로메를 통해 어떤 소원도 들어 주겠다는 헤롯의 약속을 받아내었다(마 14:7). 결국 헤로디아는 살로메의 소원을 빙자하여 세례 요한의 목을 잘랐고, 그의 제자들은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지냈다(마 14:10-12).

 

헤로디아와 그녀의 가문에 대해서 살펴보면 헤로디아는 성경에 나오는 악한 여자들 중 한 사람이다. 헤롯가의 사람들은 헤롯 대왕의 아버지 때인 BC 48년부터 AD100년까지 예수님이 살았던 땅의 통치자들이었다. 헤롯가의 많은 사람들이 신약성경의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고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헤로디아는 헤롯가의 많은 사람들과 연관된 악한 가문의 출신이었다.

 

* 헤로디아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할아버지 (헤롯 대왕)

아기 예수님을 죽일 목적으로 베들레헴의 유아들을 살해했다(마 2:1-18).

아버지 (헤롯 이리스토불로스)

아그립바 1세의 아버지이자 헤롯

아그립바 2세(아그립바 왕, 행 25:13-26:32)의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삼촌이면서 첫 남편

헤롯 빌립 1세는 세례 요한의 죽음의 계기가 된 춤을 춘 살로메의 아버지다(막 6:14-29).

→삼촌이면서 법적 아들

헤롯 빌립 2세 : 살로메의 종조부

(친할아버지의 형제)이며 살로메와 결혼했다.

→삼촌이면서 두 번째남편

헤롯 안디바 :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

지방을 다스렸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예수님을 재판했다(눅 23:7-12).

헤로디아

→남자형제 (헤롯 칼시스)

조카딸인 버니게와 결혼했다.

→형제(헤롯 아그립바 1세)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드루실라의 아버지이다.

사도 야고보를 죽였으며(행 12:1-2), 베드로를 투옥시켰다(행 12:3-11)

딸 (살로메)이

헤롯 안디바 앞에서 춤을 추었고 할아버지의 형제인 헤롯 빌립 2세와 결혼했다.

→조카딸들(버니게와 드루실라)

버니게는 삼촌인 헤롯 칼시스와 결혼했고 오빠인 헤롯 아그립바 2세와 함께 바울 앞에 나타났다(행 25:13). 드루실라는 벨릭스와 결혼했다(행 24:24).

→조카 (헤롯 아그립바 2세)

 

바울이 그 앞에서 복음을 변증했던 아그립바 왕이다.(행 25:13-26:32)

헤롯은 요한을 죽이려 하였으나 무리들이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였다. 마가복음 6:19-20에 보면, 실상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고 헤롯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였다. 악인들은 자기 양심에 비추어 옳은 일을 하기보다는 사람들의 눈을 더 의식하고 그들의 말과 여론을 더 두려워하였다. 일반 대중들이 하나님의 선지자로 인정하는 자를 그 나라의 왕과 왕후가 죽이려 했다는 것은 모순된 일이었다.(6-8)

 

마침 헤롯은 생일을 맞아 잔치를 하였다. 사람들은 자기 생일을 축하하며 잔치를 연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에게 감사함이 없는 생일 축하는 무의미하다. 불경건한 자의 생일은 복이 아니고 지옥을 향한 첫걸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육신의 생일이 영원한 천국의 삶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생일 축하는 의미와 가치가 없다.

 

헤롯의 생일잔치에서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에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였다. 헤롯은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로 허락했다. 헤로디아의 딸은 자기 어머니의 말을 듣고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서 내게 주소서”(8)라고 요청하였다. 왕은 가치 없는 허세(虛勢)로 한마디 한 자기의 맹세에 자기가 걸려 넘어졌다.

 

헤로디아는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선지자 요한을 미워하여 옥에 가두게 하였을 뿐 아니라, 이제 그를 죽이려는 기회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헤롯의 모습을 보면서, ‘죄는 죄를 낳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그 죄는 더 큰 죄로 키워 간다는 말이 실감이 된다.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는 말씀을 기억하게 한다.

 

* 연석(宴席)이란, 연회를 베푸는 자리(Banquet Hall)를 뜻한다. 헤롯의 생일에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에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했다는 내용에 나와 있다(마 14:6). 표준 새번역은 ‘손님들’로, 공동번역은 ‘잔치 손님들’로 옮겼다.

 

* 맹세(Oath)란 고대 근동 사회에서 맹세는 약속을 보증하는 방법이었다. 맹세, 서약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쉐부아’(shebu?h)는 ‘일곱’이란 뜻을 가진 ‘세바’(sheba?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7이란 숫자를 천지창조를 나타내는 거룩한 수요 완전수로 여겼다는 사실로 보아 세바에서 파생된 맹세란 말의 엄중성과 신성성을 짐작케 한다.

 

고대 근동에서 맹세하는 당사자들은 그들이 섬기는 신을 증인으로 하거나 특별한 상벌 조항, 특히 맹세를 어기는 경우 저주를 받아도 좋다는 조항을 규정하여 맹세를 지키도록 하였다(삼상 14:44; 삼하 3:35).

 

이스라엘 사람들은 맹세가 하나님 앞(신 6:13; 삼상 14:45; 19:6; 사 48:1; 렘 12:16)에서 약속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맹세의 엄중함과 신성함을 강조하였다(창 21:23; 31:53; 갈 1:20; 히 6:16). 그러므로 맹세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되었으며(출 20:16; 신 5:11) 지키지 않거나 위반하는 경우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레 19:12)으로 마땅히 벌을 받아야 했다(겔 17:13, 16, 18-19). 이 때문에 맹세를 한 경우 그것이 비록 손해가 되더라도 지켜야 했다(레 5:1-4). 그래서 어떤 맹세는 그 후손에게도 구속력을 가지는 경우도 있었다(창 50:25-26; 수 9장).

 

맹세의 형식은 다양했다. 일반적으로 맹세자들은 오른손을 하늘로 들어 올렸는데(창 14:22; 신 32:40; 단 12:7; 계 10:5-6) 손을 드는 것은 서약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행위로 하나님도 오른팔로 맹세하신다고 성경은 표현하고 있다(사 62:8). 또 맹세자는 맹세를 제출한 사람의 생식기(환도뼈)에 손을 넣어 맹세하거나(창 24:2; 47:29) 제물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쪼갠 사이를 지나가는 복잡한 의식도 거행하였다(창 15:10, 17; 렘 34:18). 때로는 ‘아멘’으로 답하여 맹세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신 27:15).

 

후대로 오면서 맹세는 하나님 대신 예배에 관련된 물체, 즉 하늘, 예루살렘, 태양, 대지, 성전, 제단, 예물 등을 가리켜 맹세가 이루어지곤 하였다(마 23:16-22). 그리고 맹세가 종종 다른 사람을 속이는데 악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맹세의 오용을 막기 위해 맹세를 함부로 하는 것을 반대하셨다(마 5:34-37). 그러나 예수님이 진실한 맹세 자체를 거부하신 것은 아니었다(마 26:63). 바울도 맹세의 성격을 띤 말을 하곤 하였다(고후 1:23 갈 1:20; 빌 1:8).

 

잘못 맹세했던 사람들을 살펴보면,

(1)입다 : 하나님이 암몬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이기게 하시면 자기를 제일 먼저 환영하는 사람을 번제로 드리겠다고 약속하였다(삿 11:31). 그리고 그는 자신이 맹세한 대로 그의 딸을 하나님께 바쳤다(삿 11:39).

(2)사울 : 블레셋과 전쟁 시 그들을 이기기까지는 아무 음식도 먹을 수 없음을 백성들에게 맹세시켰다(삼상 14:24). 그러나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이 사실을 모르고 꿀을 먹어 힘을 얻었다. 이 때문에 사울은 아들 요나단을 죽여야 하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으나 백성들의 만류로 요나단은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삼상 14:25-45).

(3)헤롯 안디바 : 자기 동생의 부인과 결혼한 헤롯은 이 일을 비난하는 요한을 옥에 가두었으나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인 것 때문에 두려워하여 죽이지는 못하였다(막 6:17-20). 그러나 자기의 생일날 춤을 춘 헤로디아의 딸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맹세 때문에 요한을 어쩔 수 없이 처형하였다(막 6:21-29).

(4)베드로 : 대제사장 가야바의 법정까지 따라간 베드로는 하속들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였다(마 26:57-75). 그때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을 모른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두 번이나 맹세하여 부인하였다. 첫 번째는 거짓말로 얼버무리고 두 번째는 맹세하며 부인하였고 세 번째는 저주하며 맹세로 부인하였다.

 

요한은 순교의 제물이 되었지만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자였고 구약시대를 종결하였고, 신약시대의 문을 연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선구자란 위대한 업적을 남겼고, 죽음까지도 예수님의 선구자가 되었다는 점에서 여인이 낳은 자중에 이 보다 더 큰 이가 없다는 말씀과 같이 과연 더 큰 인물이 있을까? 생각되어진다.

 

2. 왕이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9-11)

헤로디아 왕은 근심하게 되었다. 그것은 군중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을 인하여 주라고 명하고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옥에서 목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그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헤롯은 공의의 판단과 처리보다 자기의 명예와 체면을 더 중요시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 권력을 남용하여 하나님의 사람 요한을 죽이도록 명령했던 것이다. 요한의 목은 잘리 웠고 그의 머리는 소반에 담아 왔다. 사람의 독한 미움과 복수심은 기어코 이런 끔찍한 일을 만들고 말았다. “사람은 만물보다 더 악하고 부패한 존재이다(렘 17:9). 세례 요한은 이렇게 옥중에서 목 베임으로 그 생을 마쳤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요한을 위해 작정하신 생애의 끝이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에게 결코 수치가 아니고 영광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을 것이며, 의로운 순교자의 죽음 후에는 영광과 큰 상급이 있다.

 

3. 요한의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12-)

요한의 제자들이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님께 고하였다. 세례 요한이 죽기까지 그를 따른 제자들이 있었다. 메시아가 오셨으나 그들은 아직 메시아에게 속하지 않은 자들이었다. 요한의 시대와 예수님의 시대는 얼마 동안 중첩되었다. 요한 자신이나 그의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요한이 죽은 후부터 그들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을 것 같다. 이제 한 시대(구약)는 갔고 한 시대(신약)가 왔다. 세례 요한의 시대가 끝났고 메시아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결코 헤롯의 악행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 음행하거나 간음하는 자, 하나님의 종들을 핍박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또 우리는 인간의 생애가 하나님의 작정대로 이루어짐을 알아야 한다. 모두가 다 순교자는 아니지만, 세례 요한처럼 순교로 생을 마치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작정하셨든지 간에, 우리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며 오직 믿음과 계명 순종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T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