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목사의 성경읽기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누가복음 2:10-14]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어김없이 찾아온 성탄절이다. 예수님의 탄생보다는 산타의 선물에 관심이 더 많아져 버린 성탄절. 2015년의 성탄절은 아예 눈조차 기대할 수 없는 기온이 높아져 버린 성탄절이다. 그렇다고 성탄절의 의미를 축소할 수 없다. 오히려 그래서 예수님의 나심이란 무엇인가를 더욱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아야 한다. 성탄절에 가장 크게 울러 퍼지는 말씀은 바로 누가복음 2:14이다. 이 말씀에는 복음의 의미의 모든 것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복음이란 영어로는 good news라고 하는데 신약성경 기록에 사용된 언어인 헬라어는 한 단어이다. 이 단어는 ‘좋다’와 ‘소식’의 합성어이다. 소식이란 단어는 소식을 전하는 천사에게서 유래되었다. 천사는 하늘의 소식 곧 하나님이 전하라고 하는 소식을 전하는 자이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이 천사를 통하여 들려준 좋은 소식이다. 이 좋은 소식의 질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큰) 그리고 기쁨을 주는 소식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이 좋은 소식인 것은 어떤 특정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소식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탄생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다.
예수님의 탄생이 좋은 소식인 이유는 예수님이 구주라는 것이다.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는 마태복음 1:21에서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밝히고 있다.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는 ‘여호수아’이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한 자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호세아, 예수아등으로 바뀌어 사용되기도 한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예수아라고 부른다.
구원이란 ‘무엇으로부터(from)'과 '무엇으로(to)'의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로부터(from) 해방시켜서 하나님에게로(to) 인도하셨다. 베드로전서 3:18은 이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탄생은 이래서 인류사에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이다. 여기에서 “좋다”는 “선하다”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성경에서 선이란 살리는 것이고 악은 죽이는 것이다.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를 살리고자 함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은 좋은 것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셨다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때 곧 기뻐하실 때는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졌을 때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의 광경을 떠올리면 이해가 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셨다.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빛이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이다. 영광을 받으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시며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 당연히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서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빌립보서 2:8에서는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원하셨던 바가 그대로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요한복음 3:16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뜻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는 영광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헬라어 원문에는 “하나님이”라는 말은 없다. 개정한글판에는 그냥 “기뻐하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했는데 한글개정판에서는 해석하는 번역을 택해서 기뻐하는 주체 곧 하나님을 첨가해서 뜻을 분명히 했다.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good will toward men"이라고 번역했다. 현대인의 성경과 우리말 성경은 아예 해석적인 번역을 했는데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기뻐하다”의 원어의 의미는 “좋다”와 “생각하다”의 합성어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좋다”는 위에서 밝힌 좋은 소식의 좋다와 같은 의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선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곧 하나님이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을 하나님은 살리고자 하시는가? 예수님을 주님과 구원자로 고백하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을 하나님은 죄에서 구원하신다. 마태복음 1:21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신다고 선포하시고 있다. 그래서 성탄은 오직 예수님을 구원자와 주님으로 받아들인 자들에게만이 의미가 있다. 바꾸어 말하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오심은 심판의 시작과 같다. 이들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구원이냐 지옥이냐의 기준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땅에서는 평화
그것은 평화다. 전쟁이 없다는 것이다. 평강이라고도 한다. 풀어서 설명하면 화해가 이루어졌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해가 일어났다. 어떻게?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들의 죄를 걷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주어진 참된 평화는 팍스 로마나 곧 로마의 평화와 비교된다. 누가복음 2장은 가이사 아구스도(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수)의 때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이때는 로마시대의 최고 평화의 시대였다. 그러나 로마의 평화는 힘으로 얻어진 평화였다. 언제든지 분출할 전쟁의 불길을 담고 있는 평화였다. 그래서 로마의 평화는 상대방을 억압함으로 끌려가는 평화였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심으로 주어진 평화는 남을 위해 자신이 죽음으로 주어진 평화였다. 하나님과 나의 화해위에 주어진 평화이다. 이는 영원한 평화다. 진정한 이 평화는 안식(쉼)을 포함하고 있다. 전쟁이 없기에 마음껏 잠자리에 들 수 있다. 그야말로 샬롬이고 안녕이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진 평화는 하나님이 스스로 좋게 생각해서, 기뻐하셔서 하나님이 주신 평화이다. 힘을 가지신 하나님이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하신 평화다.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영원한 삶 영생이다. 그래서 믿는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탄생이 정말 행복한 성탄절이다. 정말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복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