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전능을 인정치 않는 ‘우울증’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만한 말이다. 필자 역시 그렇다. 어떤 사건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압박감이 덮쳐올 때 긴장감과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때 곰곰이 생각해본다.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의 꼬리를 물고, 파헤쳐 들어가 본다. 두려움은 결국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여겨질지 걱정하며 자신에 대한 인정과 평판을 염려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나에 대한 신뢰, 나라고 하는 사람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인식. 그것이 송두리째 무너지지 않을까라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더욱이 그동안 내가 강조하고 말해왔던 내용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나의 실체가 드러났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 땅에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죄도 흠도 없으신 분이지만 우리 같은 죄인을 위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임을 당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그 죽음은 우울증뿐 아니라 사망 권세를 이기는 사건이 되었다. 출처=frankbeckerde
정직한 사람, 성실한 사람, 거룩한 사람, 좋은 사람, 믿음직한 사람. 우리 모두는 그런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어한다. 안타깝게도 성경은 이렇게 선포한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마서 3:10)
가면무도회 같은 인생의 끝이 마침내 다가왔다. 하지만 누구도 그 상태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때 몰려오는 두려움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두려움의 요인은 이 밖에도 많다.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고 감당할 수 없는 상황. 불가항력의 상황에서 강제적으로 마음과 육체에 가해진 공격을 경험한 사람들은 불안감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철학자와 심리학자, 의학자들은 그런 사람들의 상태와 증상, 현상 등을 분석해 다양하게 이름을 짓는다.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광장공포증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크리스토퍼 레인이란 미국 학자는 2008년 ‘만들어진 우울증’(shyness)이라는 범상치 않은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사람의 평범한 특징이 전문가들에 의해 정신장애로 변모했다는 의료계의 어두운 뒷면을 담아냈다. 수줍음이나 불안 등 감정의 양상이 현대사회에서 갑작스럽게 질환이나 장애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제약회사와 언론의 멋들어진 합작품이라는 주장이다.
두려움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역설적이게도 그 길은 두려움을 인정하는 것이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인생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할 때 그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바로 그 죄인을 위해 창세 전부터 주님이 예비하신 대서사시의 완성, 곧 복음의 결론이다.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 땅에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죄도 흠도 없으신 그 분이 침 뱉음을 당하고 모욕을 당하고, 창에 찔리고, 마침내 죄인을 위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임을 당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비겁하고 불법적인 재판을 거쳐 가장 참혹한 처형을 당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그 죽음은 우울증뿐 아니라 사망 권세를 이기는 사건이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그날 주님은 우리의 모든 눈물을 씻겨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최종 결론이 났다. 우울증은 위로받을 일이 아니라 주님의 전능을 인정치 않는 죄다.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케 한다.
김강호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