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5)
시편 23편의 후반부(5-6절)는 내용상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한 손님으로 영접하시는 모습(23:5)과,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확신(23:6)이 그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흔한 손님이 아니라 가장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신다. 광야의 목축 문화에서는 손님을 대접하는 일이 어느 것보다 우선적으로 소중한 덕목이다. 그것은 광야와 같은 곳에서 나그네를 보살피지 않으면, 그의 생명이 곧바로 위협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성경도 손님 접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시내산 언약과 관련된 율법은 이방 나그네에 대한 압제를 철저히 금하고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그네로 지냈었기 때문이다(출 22:21). 그런 점에서 나그네를 접대하는 덕목은 단순히 목축 문화의 유산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그런 문화적 배경과 더불어 출애굽의 역사적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손님 접대에서 예의범절과 절차도 중요시한다. 오늘의 본문은 손님을 맞이하는 절차를 다음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1) 첫 번째 절차는 집안에 들어서는 손님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기름은 감람유에 향료를 섞어 만든 것인데, 집주인이 자기 집을 방문한 손님을 맞아하면서 환영의 표시로 한다. 이것은 구약시대 제사장이나 왕을 세우기 위하여 기름을 붓는 의식과는 구별된다. 그런 차이는 각 경우에 사용되는 동사가 다르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제사장이나 왕을 위한 기름부음에 사용되는 동사는 '마사흐'인데, 손님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에 사용되는 동사는 '다센'이다.
"다센'의 기본적인 의미는 '살이 찌다'로서, '번성하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집주인이 손님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에는, 자신을 찾아 온 손님에게 번성의 복을 기원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또 다른 면에서 향료를 넣어 만든 기름은 일종의 향수 역할을 한다. 먼 길을 걸어 온 손님의 몸에서는 땀과 먼지 등으로 냄새가 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집주인이 손님에게 기름을 발라 줌으로써 그런 냄새를 제거해 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름 바름은 손님에 대한 일종의 배려라 할 수 있다.
(2) 두 번째 절차는 포도주가 담긴 잔을 건네 주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의 포도주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의 상징이며(창 27:28), 사람에게 주어진 기쁨과 즐거움을 표현한다(사 16:10; 렘 48:33). 그러므로 손님에게 포도주 잔을 건네 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속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있기를 바라는 주인의 호의를 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포도주 잔을 건네 주는 것에는 또 다른 실제적인 면이 있다. 먼 길을 걸어 온 손님은 광야의 무더위 속에서 심한 갈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손님에게 포도주 잔을 건네 주는 것은 갈증과 더위를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손님은 포도주 잔을 마시면서 그 동안의 피곤과 갈증을 해소할 뿐 아니라 안도의 한숨을 돌릴 수가 있다.
(3) 세 번째 절차는 손님에게 푸짐한 밥상을 차려 주는 것이다. 손님을 향한 환영의 마지막 단계는 정성껏 음식상을 차려 주는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 문화에서 음식상에는 단순히 음식을 나눈다는 것보다 더 깊은 차원의 의미가 있다. 음식 나눔은 언약 체결 의식에 동반된다는 점이다. 그런 점은 시내산 언약 체결 과정에 잘 나타나 있다(출 24:11). 그것은 화목제의 제물 나눔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레 7:15). 언약으로서의 음식 나눔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신 유월절 마지막 만찬에서도 잘 표현되어 있다(마 26:26).
집주인은 그동안 손님의 뒤를 쫓아 왔던 원수가 보는 앞에서 밥상을 차려 주었다. 여기에서 밥상과 원수 대적과의 관계는 목축 문화의 관습을 통하여 조명해야 할 요소이다. 유목민이 일단 나그네를 자기 집 천막의 손님으로 받아들이면, 그때부터 손님과 관련된 모든 문제들은 전적으로 그 집주인의 책임이 된다. 이 책임에는 의식주의 문제 뿐만 아니라 신변 보호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 나그네가 집주인의 손님으로 영접되면, 그의 대적은 그때부터 집주인의 대적이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풍성하게 차려진 밥상은 곧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힌 대적들에게서의 해방을 의미하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거친 광야에서의 고된 삶이 전부이겠지만,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영원한 집으로의 영접이 기다리고 있다. 광야에서의 삶도 목자이신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속에서 부족함이 없는 풍성함을 누리는 것이지만, 마지막 하나님 집으로의 영접은 고난의 모든 근본 원인들이 제거된 참 안식의 보장으로서 '부족함이 없음'의 마침표다.
이 땅은 우리의 전부가 아니다. 이 땅은 하나님나라에서의 상급을 준비하는 거룩한 기회다. 이 땅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것이라면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할 이유가 그 때문이다(미 5:11-12). 보다 적극적인 삶의 자세는 하나님을 위하여 힘든 일을 스스로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받게 될 상급을 미리 준비하는 지름길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외식하는 자가 되면 그것으로 이미 상을 받은 것이어서 하나님께 받을 상급을 놓치게 된다. 은밀한 중에 행하는 것이어야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기 때문이다(마 6:1-4).
[권혁승 교수]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
(현)서울신학대 (구약학),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