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5장(3) 가나안 여자의 믿음
가나안 여자의 믿음(21-28)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21-28).
예수님이 다니시던 지역들
1) 두로(Tyre)라는 지역은 베니게의 중요한 해안 도시로 시돈에서 남쪽으로 40km, 악고에서 북쪽으로 45km 지점에 위치한 곳이다. 두로는 고대에 세워진 도시로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BC 2800년경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베니게는 항해, 조선술이 발달해 해상무역을 장악했던 해양국으로, 베니게의 주요한 항구 도시인 두로는 국제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사 23:8 참고).
두로의 주산물로는 자색 염료, 금속 세공, 유리 기구 등의 제조로 유명하였는데 두로의 배들은 애굽, 구브로, 로도스, 시실리, 북아프리카의 식민지들과 다시스를 항해하며 자색 물들인 옷감과 재목, 밀, 기름, 포도주, 금속, 노예, 말 등을 수출하여 두로에 엄청난 부를 가져왔다(대상 22:4; 겔 27:3; 사 23:18).
정치적, 지리적 면에서 두로는 지리적, 산업적 여건 때문에 힘있는 나라들의 침입을 자주 받았다.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1세에게 공격 받았으며(BC 1094) 살만에셀 3세 때는 조공을 바쳐야 했다(BC 853). 계속해서 디글랏 빌레셀 3세와 살만에셀 5세에 의해 공격을 받았으나 완전히 정복당하지 않고 결국 BC 722년 앗수르와 평화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앗수르 왕 산헤립에 의해 베니게가 정복당하고 에살핫돈에 의해 시돈이 정복당하자 두로의 바알 왕은 에살핫돈과 협정을 맺고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그 후 신바벨론 제국에 의해 계속 공격을 받았으며 느부갓네살이 13년 동안이나 두로를 포위하며 공격하자 두로는 이때 힘을 상실하였다. BC 539년 바사의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했을 때 두로도 그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두로는 여전히 백향목과 다른 생산품들을 수출하며 무역과 해운업을 계속하였다. 알렉산더에 의해 완전히 정복당했지만 알렉산더를 이은 셀류쿠스 왕조 때에는 이전과 같이 무역과 산업이 활발한 도시가 되었다. BC 126년 두로는 다시 독립하였으며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해 정복당했을 때(BC 64)도 계속 독립된 상태를 유지하였다.
예수님과 두로 땅에 대해서, 두로는 유대인들이 기피하는 이방 땅이었지만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완악함을 지적하시며 두로와 시돈을 언급하셨다(마 11:21-22; 눅 10:13-14). 예수님은 두로가 이방 땅이었지만 가셔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귀신 들린 딸을 고쳐주셨으며(마 15:21; 막 7:24) 그곳에서 가르치셨다(막 3:8; 눅 6:17).
두로와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대해서, 두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무렵 견고한 성읍이었다(수 19:29). 그래서 이곳은 아셀 지파에게 분배되었지만 이스라엘에 의해 정복당하지 않은 곳이었다(삿 1:31-32). 두로 왕 히람은 다윗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며 백향목과 목수, 석수들을 보내 다윗 왕의 궁전을 짓게 하였다(삼하 5:11).
솔로몬 때는 백향목과 잣나무를 보내 성전을 짓는데 도움을 주었고(왕상 5:1-10) 두로 사람 히람은 성전의 놋기둥과 바다, 제사용 기물과 성전 기구들을 만들었다(왕상 7:13-47). 이에 대한 보답으로 솔로몬은 갈릴리 20개 성읍을 히람 왕에게 주었으나 그는 흡족해 하지 않았다(왕상 9:11-14). 히람은 솔로몬 왕이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자 바다에 익숙한 사공을 보내어 오빌의 금을 실어 솔로몬 왕에게 가져가도록 하였다(왕상 9:26-28). 두로 왕 엣바알은 그의 딸 이세벨을 아합과 정략 결혼하게 했으며(왕상 16:31) 이세벨은 두로의 우상을 들여와 이스라엘이 바알과 아세라 숭배에 빠지게 하였다(왕상 16:31-33).
요엘과 아모스에 의해 두로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맺은 형제의 계약(삼하 5:11; 왕상 5:1-12; 9:10-14)을 파기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에돔에게 노예로 팔아버린 죄를 지적받았다(암 1:9-10; 욜 3:5-6). 이사야와 예레미야, 에스겔에 의해서도 이들의 부와 교만 때문에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다(사 23:1-18; 렘 25:22; 27:3; 겔 26:1-6; 29:18). 그리고 이들의 예언대로 두로는 BC 332년 마게도냐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함락되었으며 약 3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노예로 팔려갔고 수천 명의 지도자들이 처형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때 섬이었던 두로를 공격하기 위해 길이 800m, 폭 60m의 제방을 쌓아 본토와 연결시켜 반도로 만들어버렸다. 초대교회 때 이곳에는 이미 그리스도인들이 살았는데 바울은 전도여행 중 두로에 들러 7일 간 머물면서 제자들과 교제하였다(행 21:3-4).
두로는 신약 시대에도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였으며 동서 문화의 교차로 역할을 하였다. 636년 아랍에 의해 정복되었고 지금은 ‘수르’라는 작은 도시로 남아 있다.
2) 시돈(Sidon)은 두로와 함께 지중해 연안의 최대 항구 도시이자 고대 베니게(페니키아)의 상업 도시였다. 베니게의 도시 국가들 중에서 가장 강력하였으므로 때로 베니게를 시돈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두로에서 북쪽으로 36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곳은 지정학적인 이유로 앗수르, 바벨론, 바사(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제국 등에 의하여 차례로 지배를 받았다. 시돈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 때 스불론과 아셀 지파의 북쪽 경계를 이룬 땅이었으나(창 49:13; 수 19:28) 아셀 지파가 이들을 점령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사사 시대 때 시돈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압제하기도 하였다(삿 10:12).
시돈 사람들은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던 민족으로 시돈과 두로의 우두머리 신인 바알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섬기도록 영향을 미쳤다(삿 10:6). 솔로몬은 이곳 출신의 여인과 정략 결혼을 하여 이들의 우상 종교를 받아들이게 되었고(왕상 11:1, 5; 왕하 23:13) 아합이 시돈 왕의 딸 이세벨과 결혼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알 신 숭배는 극에 달했다(왕상 16:31-33, 18:17-40). 이로 인해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요엘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우상숭배로 물들게 한 시돈의 멸망을 예언하였다(사 23:12; 렘 27:3, 6; 겔 28:21-22; 욜 3:4-6).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할 때에 시돈 사람들은 백향목을 벌목하여 욥바로 보냈으며(왕상 5:6) 포로 귀환 후 성전 재건을 할 때에도 시돈에서 백향목을 가져왔다(스 3:7).
신약 시대에는 시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사람들이 왔으며(막 3:8) 예수님도 시돈에 가셔서 병자를 낫게 하셨다(마 15:21). 사도 바울은 로마로 가는 길에 이곳 시돈 땅에 들러 친구들에게 대접받았다(행 27:3).
3) 가나안(Canaan)에 대해서 먼저 (1)인명으로 가나안은 노아의 손자이자 함의 아들이다(창 9:18). 그는 가나안 족속의 조상이 되었다(창 10:15-19; 대상 1:13-16). 노아로부터 형제들의 종이 될 것이라는 저주를 받았는데(창 9:25) 이 저주는 역사 속에서 그대로 성취되어 여호수아 시대에는 나무패고 물 긷는 종이 되었으며(수 9:23) 솔로몬 때 남아있는 자손들을 모두 노예로 역군을 삼았다(왕상 9:20-21).
그리고 (2)지명으로 팔레스타인의 다른 이름이며 원래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던 땅(민 13:29; 수 11:3)을 말한다. 성경에서 가나안을 말할 때는 요단 서편 지역을 일컫는 것(창 10:19)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한 땅을 가리킨다(창 12:7; 출 6:4; 레 25:38). 이 약속은 여호수아 때 부분적으로 이루어졌고 솔로몬 때 완전히 성취되었다(왕상 4:25).
부스러기(Crumb)는 먹다 남은 빵 조각이나 음식 찌꺼기 등 잘게 부스러진 것을 말한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며 그들로 하여금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사 41:15).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나사로는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부스러기’- 표준새번역)으로 허기를 채우고자 했다(눅 16:21).
‘부스러기’ 같은 믿음
수로보니게 여인은 귀신 들린 자기 딸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께 나아와 간청했다(마 15:21-28; 막 7:24-30). 그러나 그녀가 예수님께로부터 들은 말씀은 너무 가혹했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지만 이 여인은 여기에 좌절하지 않고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오해하거나 불평하고 분노할 수 있었는데도 여인은 겸손하게 대답했다. 즉 자신에 대해 ‘개’라는 말을 받아들이고, 부스러기 은혜만으로도 자기 딸의 병이 나을 것이라는 겸손한 믿음을 가졌던 것이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녀에게 합당한 칭찬이었던 것이다.
소원(Desire)이란 마음에 바라는 바를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소원을 성취하는 분이시며(시 37:4; 145:19) 하나님을 기뻐할 때 소원을 이루어주신다고 약속하신다(시 37:4).
가나안 여인은 마가복음에서는 수로보니게 여인이라 명시되었다(막 7:26) 베니게 출신 시리아 여인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런데 이 여인은 이방 여인이었지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하여 ‘다윗의 자손’이라는 소문까지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것은 예수님의 대한 소문이 넓게 여러 지역까지 퍼져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여인은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면서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쳤지만 예수님은 들은 척도 아는척도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옆에서 듣고 지켜보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선생님 저 여자를 보내소서’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말씀하셨다. 이때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여인은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간청을 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라고 했을 때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비로소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신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고 했다.
여기서 예수님과 가나안 여인과의 모습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이 여인 앞에서의 예수님의 태도는 예수님답지 않은 모습은 무엇인가? 그리고 인격적 모독 감을 감수하면서까지도 뜻을 이루어낸 여인의 모습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인가?
고향 갈릴리 사람들에게서는 배척을 받으셔야 했고(13장), 5병2어로 기적사건 이후 이스라엘 군중들과의 대화 가운데서는 깊은 애정을 담은 설득에도 결국은 허탈한 쓴 맛을 껶어야 했고(14장),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파송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방문에서는 위협적 압박을 받으셔야 했고, 이방인 지역인 두로와 시돈 지경을 찾으신 예수님, 이곳에서 가나안 여인을 만났던 것이다.
이 여인에게는 그렇게도 냉정하게 쌀쌀맞게, 그리고 모독적인 언사를 썼던 예수님이셨다. 그 앞의 여인은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도 예수님을 인정했던 여인,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의 내용이 아닌가? 예수님이 가나안 여인에게 그렇게도 냉정하게 대하셨던 것은 어쩌면 이방인들의 가능성을 타진 하기위한 방법의 하나로 그렇게 하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보는 장면이다.
전통적 지식에 배부른 사람들에게는 천국의 복음이 보잘것없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의 긍휼에 목마른 사람에게는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먹게 되는 것이다. 기적의 떡을 먹이면서까지 설명을 해도 뻐기는 자기백성들이지만 인격을 모독하는 언사를 써도 엎드린 이방 여인, 복음은 배부른 유대인에게서 가련한 이방인에게로 넘어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러한 사건은 상징성이 있는 사건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