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말씀 따라 새롭게 [권혁승 목사]
"광야의 위험과 날마다 새롭게 하심"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3)
광야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위험이 먹을 것과 마실 것의 부족이라면, 세 번째와 네 번째는 고온 건조한 기후와 길이 없는 위험이다. 전자가 생명 유지의 기본인 일용할 양식의 문제라면, 후자는 날마다 새롭게 성장해야 하는 생명의 본질과 관련된 문제이다.
일용할 양식 해결이 삶의 전부는 아니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먹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바른 목적과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용할 양식의 공급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바른 삶을 지향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기 위하여 존재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양들이 바른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시는 목자이시다.
광야는 고온 건조한 기후가 연일 계속되는 곳이다. 한낮에는 40도 이상의 높은 온도가 계속되어 숨 쉬기조차도 어렵다. 극도로 건조한 광야 기후는 자신도 모르게 몸 안의 수분이 증발하게 하여 심한 갈증을 느끼게 만든다. 그런 환경 속에서 광야의 양들은 쉽게 지칠 수밖에 없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숨 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지치고 피곤하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양들인 우리들의 영혼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시다. '영혼'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네페쉬'는 '목숨'을 의미한다. '네페쉬'의 어원적 의미는 '숨' 혹은 '호흡'인데, 여기에서 ‘숨을 쉬는, 살아 있는 존재(living being)’라는 뜻이 생겼다. '네페쉬'의 그와 같은 기본적인 의미에서, '생명' '자아' '욕망' 등 살아 있는 생명이 지니고 있는 여러 의미들이 파생되었다. 그만큼 '네페쉬'는 매우 다양한 의미를 포괄하고 있는 단어이다.
인간의 목숨은 '숨'을 쉬는 것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으신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비로소 살아 있는 생명체 '네페쉬'가 되었다. 그래서 '네페쉬'의 동사형인 '나파쉬'는 '숨을 쉬다'와 함께 '새롭게 하다'(refresh)를 의미한다.
사람은 새로워지도록 창조되었다. 인간의 몸은 숨을 쉼으로 각 부분들이 새로운 신진대사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혼 역시 하나님의 숨 곧 성령을 통하여 새로워져야 한다. 성경이 우리들의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고후 4:16; 엡 4:23; 골 3:10).
'소생시키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돌아오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동사 '슈브'의 사역형이다. 이것은 사람을 새롭게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 하나님 자신임을 강조한다. 영혼이 소생되는 것은 단순히 오락이나 휴가를 즐기는 피상적인 활동을 통하여 얻는 일시적 상쾌함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인간 본연의 위치로 돌아감으로 얻는 새로운 회복의 신선함이다.
죄의 근원적인 의미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하나님의 다스림에 대한 거부(페샤아)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목표와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하타아)이다. 그에 비하여 영혼의 소생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본래 자리인 하나님의 목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영혼의 소생이 기본적으로 회개임을 보여 준다.
광야의 위험은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정상적인 거주가 불가능한 광야에는 제대로 된 길이 있을 수 없다. 설혹 양 떼가 지나가면서 길의 흔적을 남길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모래바람이 한 번 불고 지나가면 흔적마저도 사라지고 만다.
시편 23편이 강조하는 길은 의의 길이다. 그 길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바른 삶을 의미한다. '길'로 번역된 히브리어 '마아갈'은 마차가 다니는 대로를 의미한다. 그것은 개인이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공적인 길을 말한다.
광야에는 길이 없는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그런 광야에서 양들이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은 목자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 뿐이다. 목자만이 어느 길이 올바른가를 잘 알고 있다. 양들이 목자의 인도를 따르는 것은 선택적 사항이 아니라, 올바른 삶을 향한 절대 명령이다. 그것을 놓치면 길을 잃게 되고, 그것은 곧 죽음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양들을 의의 길로 인도하는 방법은,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말씀(딤후 3:16)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 되신다(시 119:105).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지시하심은 위대한 민족의 역사와 함께 인류 구원 역사의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
길이 없는 광야 속에서 하나님 말씀은 우리들이 가야 할 의의 길을 밝혀 주는 거룩한 조명이다.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곧 날마다 새로워지는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