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7장(2) 귀신 들린 아이 |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시다 마태 17:14-20
14. 저희가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가로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 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으니라 19. 이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 간질(Seizure) 중추 신경계의 이상으로 인해 생기며 갑자기 몸을 뒤틀거나 까무러치는 등의 증상을 보이는 병으로 이 질병에 대한 헬라어의 본래 의미는 ‘졸도 증세’란 뜻이다. 헬라인들은 이 병이 달의 형세에 영향 받아 생긴다고 믿었는데, 성경에서는 이 병의 원인 중의 하나로 귀신을 들고 있다(마 17:15, 18). 예수님은 이런 간질병 환자들을 고쳐 주셨다(마 4:24; 17:14-20; 막 9:14-29; 눅 9:37- 43). 바울은 자신의 몸에 육체의 가시를 지녔다고 했다(고후 12:7). 그리고 육체의 약한 부분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성경 여러 곳을 통해 알 수 있다(고전 2:3; 고후 12:7; 갈 4:13). 바울이 지녔던 ‘육체의 가시’에 대해 학자들은 간질, 두통, 안질, 말라리아 등 여러 가지로 추측한다. 간질이었다는 것은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갈 4:14),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고후 10:10)에 의거한 견해이다. 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21. (없음) * 겨자(씨) 팔레스타인 지방의 들에서 자생하거나 재배하는 1년생 식물이다. 4-6월 즈음에 노란 꽃을 피우며 다 자라면 3m 정도 된다. 열매는 양념으로 쓰이고 기름을 짜는 데도 쓰인다. 성경에서 겨자씨는 예수님의 비유에 언급된 씨앗으로 모든 씨보다 작은 씨로 소개되고 있다(마 13:32). 이것은 그 당시 유대인들의 격언 가운데 작은 것을 묘사할 때 쓰이는 ‘겨자씨처럼 작은 것’이란 표현을 인용하신 것이며 아주 미미한 작은 씨가 자라서 큰 나무를 이루듯 하나님 나라가 그렇게 도래함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시기 위함이었다(마 13:31-32). 또한 예수님은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리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 하; 참고, 눅 17:6)고 하셨다. 이것은 작은 믿음이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질 때 능력있는 일을 행할 수 있음을 가르치신 것이다. 14절에서 한 사람이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했다. 그는 예수님의 신성(神性)과 신적 능력을 인정하였고 예수께서 자기 아들의 불치의 병을 고쳐주실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아들의 병은 간질병이었다. 그는 그 병으로 심히 고생하고 있었다. 그는 자주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졌다. 몸이 상했고 여러 번 죽을 위험도 당했을 것이다. 그 아버지는 그의 아들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지만, 그들이 그를 고칠 수 없었다. 열두 제자들은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받았지만(마 10:1), 무슨 까닭인지 그 아들을 고치지 못하였다. 제자들이 간질에 걸린 아들을 고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작은 까닭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작다’라는 엇은 무게로 계산하야 하느냐? 아니면 양으로 계산하느냐? 아니면 질로 계산하느냐? 혹은 감정의 느낌으로 판단해야 하느냐?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믿음이 작다, 크다 해야 하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각자의 대답은 다를 것이다. 이것을 바르게 할려고 하면 ‘믿음이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 알 수 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한 ‘미듬이 작다’라고 한 것은 무슨 말인가? 산 아래 있는 제자들은 예수님과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었다. 예수님과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이때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일이고 오순절 성령이 임하시기 전 일이다. 마가복음 3장에서 12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셔서 전도자로 파송했다. 누가복음 10장에서는 70인 전도자를 파송했을 때도 그들이 돌아와 ‘귀신들이 항복했다’고 기뻐했을 때도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너희가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눅 10:19)라고 말씀하신 것을 생각해보면, 예수님이 몸을 가지고 지상에 계실 때는 필요하실 그 때마다 ’권능을 주셔서 보내셨다는‘는 것이다.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증인이 되리라‘(행 1:4,8)하신 것이다.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해서 권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권능을 부여받은 자가 권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 아래 있는 제자들에게는 아직 권능을 부여하신바가 없었다. 권능을 부여 받지 않았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유는 제자들에게는 아직 귀신을 쫓아낼 권능이 부여된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순절 이후의 제자들과 지금 변화 산 밑에 있던 제자들은 전혀 다른 입장에 있는 것이다. 오순절 이후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과 그리고 각 사람에게 성령강림으로 체험한 사람들이 된 것이다. 그래서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한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17:20). 여기서 잘못생각하면 제자들의 주관적 믿음으로도 권능 행사가 가능하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대로 믿음의 본질을 먼저 이해를 해야 미 말씀을 이해 될 수가 있다. 그리고 주목해야 할 내용가운데 하나는 오순절 이후라 할지라도 자기 정욕으로 구하는 일이라면 성령께서는 전혀 활동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령의 활동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확장운동인 복음증거에서만 활동하신 분이란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 외에 권능이 나타난 일이라면 그것은 귀신의 짓이라고 단정해도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