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목사의 사도신경읽기 15
예수님의 지옥강화 2
[기독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천주교]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영 어]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라틴어] crucifixus, mortuus, et sepultus, descendit ad inferos
예수님이 죽으시고 장사되었다(묻히셨다). 묻히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죽으심은 확실하다는 의미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확인되자 빌라도는 아리마데 요셉이 자신의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하고 싶다는 부탁을 들어주었다. 예수님은 분명히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래서 무덤에 묻히셨다. 그리고 확실히 죽었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 부활하셨다. 그런데 사도신경은 예수님이 묻히시고 부활하신 그 사이에 지옥에 가셨다고 고백하고 있다. 도대체 이것은 무슨 말인가? 정말 그러한가? 이러한 고백의 근거로 제시되는 구절이 베드로전서 3:18-20에 나온다. 그러나 이 구절이 정말 예수님의 지옥강화를 설명하고 있는가?
[베드로전서 3:18-20]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예수님의 죽으심의 이유
베드로전서 3:18은 예수님의 죽으심의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한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그리하신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자 함이다. 죄인으로서 지옥에 가도록 이미 판결이 난 인간 우리들의 죄가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사라졌다. 하나님께 용서받을 기회가 생긴 것이다. 타락한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다시 만나 교제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육신적으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분명히 죽으셨다. 그러나 이 죽음으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곧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은 것이다. 이에 대해 베드로전서 4:7에서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고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히브리서 9:27에서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을 믿든지 믿지 않던지 누구나 모두 육신적으로는 죽는다. 이를 성경은 음부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육신의 죽음은 천국과 지옥으로의 길을 확정짓는 순간이 된다. 믿는 자는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는다. 곧 하나님을 만나 영원히 함께 사는 천국의 삶이 주어진다. 당연히 믿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없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
옥에 있는 자들에게 선포하시다
예수님이 영으로 옥에 가셔서 선포하셨다? 무슨 말인가? 베드로전서 3장의 순서에 의하면 예수님의 죽으심 -> 부활 -> 옥에 가심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사도신경은 예수님의 죽으심 -> 옥에 가심 -> 부활의 순서다. 따라서 베드로전서 3:19은 예수님의 지옥강화를 고백하도록 하는 사도신경을 지지하는 성구가 결단코 아니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구절이 없다. 그렇다면 베드로전서 3:19에서 예수님이 영으로 옥에 가셨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인가?
여기에서 ‘옥’이란 지옥이 아니다. 죄인들이 가는 감옥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베드로는 노아시대에 일어난 홍수 사건을 비유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창세기 6:5-7에 보면 하나님은 당시 노아시대의 사람들을 죄인으로 판결하시고 물로 심판할 것을 선언하신다. 노아시대의 사람들을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는 죄인들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 노아시대의 모습이 바로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2:1을 보자. 타락한 인간들에 대하여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선언한다. 앞으로 죽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죽었고 지금도 죽은 상태이다. 사형수가 아직 살아있으나 죽은 자와 마찬가지인 것과 같다. 이렇게 베드로는 노아시대를 빗대어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을 옥에 있는 영들이라고 한 것이다.
예수님은 종말에 대하여 이야기 할 적에 노아시대를 빗대어 말씀하셨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태복음 24:37) 베드로는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가까이서 들었고 그 말씀을 베드로는 똑같은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셨다는 것은 이미 죄인으로 선포되어 지옥으로 가도록 되어 있는 모든 인간에게 선포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선포된 내용
죄인으로 이미 판결을 받아 지옥에 가도록 되어 있는 인간들에게 선포하신 말씀은 무엇인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과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을 만나는 구원이 이루어졌음을 알리는 것이다. 복음이다. 좋은 소식이다. 예수님을 믿었으나 예수님의 재림 전에 죽은 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초대 교회에 있었다. 이에 대해 베드로전서 4:6에서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라고 분명한 어조로 선언한다. 왜냐면 베드로 당시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생전에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고 믿었었다. 그런데 죽어버린 것이다. 그럼 죽은 자는 구원받은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 이에 베드로는 육신적으로는 죽었더라도 영적으로는 살아서 하나님과 함께 있다 곧 천국에 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죽었던 육신조차도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다시 부활하게 된다고 선언한다.
노아시대에도 복음은 선포되고 있었다. 물로 하나님이 심판하시게 될 것인데 방주 안에 들어오면 산다는 복음이다. 그게 선포된 복음의 전부다. 그런데 그 복음을 거부한 불순종한 자들이 다 죽었다. 그러나 산 자들이 있었다. 옥에 있는 상태에 있었으나 옥에서 해방되어 살게 된 자들이 있음을 베드로는 선포한다. 그들은 방주 안에 있는 8명이다고 이야기 한다. 그 8명 외에는 모두 복음을 외면함으로 불순종 가운데 죽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노아시대와 같다고 베드로는 설명하고 있다. 모든 인간이 죄인으로 선포되었으나 살 수 있는 길이 복음으로 제시된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육신으로는 죽었으나 영으로는 살아남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방주 안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아무 조건이 없다. 단지 노아시대에 방주에 들어가기만 하면 살았던 것처럼 아무 조건없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방주 안으로 들어오라는 복음이다. 그리하면 죄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가 될 것이라는 복음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이미 죄인으로 선고함을 받아 감옥에 갇힌 자들에게 복음이 된 것이다.
베드로 3장의 내용은 예수님이 지옥으로 내려가셨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성경에 있지도 않은 선조림보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죽은 후에 구원받을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를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감옥에는 죄인이 가는 곳인 것처럼 죄인으로 선언된 인간에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복음이 된다는 사실을 노아시대의 상황에 빗대어 베드로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