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1998년도에 2에이커에 150석 규모에 멋진 교회당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미국교회였는데 연로한 성도들만 남아있어 매년 5,6명씩 천국가다 보니 남은 인원이 얼마 안 되어 좋은 가격으로 매입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당 입구 드라이브 웨이(Drive Way)에는 멋지게 자라난 퀸 팜츄리(Queen Palm Tree)가 여러 그루 심겨져 있어 보기가 좋았습니다. 새로 교회간판을 세우는 날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L.A.폭동이후 1993년 이곳 사역지로 발령을 받고 출발하기까지 눈물의 이별을 해야 하는 아픔이 동반되었습니다. 세 아들들이 정든 친구들과 헤어져야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새로운 목회사역지인 이곳 학교에는 한국인 학생이 처음으로 편입했기 때문에 10학년(고등학교1학년)에 다니던 큰아이는 런치 시간이 제일로 힘들었던 같았습니다. 입을 열지 않았던 아이의 사정을 나중에 알게 된 필자 부부는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함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원숭이 쳐다보듯 하는 아이들 때문에 런치시간이 되면 도서관에 앉아 책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렇게 3개월이 지난 후, 수학 경시대회에 학교대표로 나갈 즈음에야 아이들과의 교통이 자유스러워 졌다고 합니다. 조그만 목회를 한답시고 항상 집을 비우고 심방을 다녀야 했던 그 시절, 넉넉지도 못한 재정 상태에 냉동실에 변변치 못한 냉동식품들을 넣어두고 학교 돌아오면 자신들이 해결하도록 방치한 셈이었습니다. 다행이도 세 아들이 아파트에서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하는 학교에 다녔습니다. 교회당을 마련하기 전에는 50년 된 옛날 집을 교회로 사용하였는데 비가 오는 날이면 성전에 떨어지는 빗물을 받는 그릇들을 여러 개를 받쳐 놓아야만 했습니다.
필자는 기도하는 가운데 5년 계획으로 새 성전을 마련하기로 하고 성전 입구에 5갤론 짜리 빈 물통을 놓아두고 교회 나올 때 감동되면 동전이라도 집어넣으라고 안내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당신들이 사는 집보다 못한 곳이라면 어떻게 그 입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할 수 있겠냐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교회가 이름만 남았지 실상은 문 닫을 교회였던 상황에 목회자가 수없이 다녀간 실정이라 새로 목사가 왔다고 해도 몇 개월을 버틸 수 있는가를 관망하는 처지였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3개월이 지나고나니 교회재정이 어려워서 사례비도 줄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크레딧으로 식품을 사서 생활을 하면서도 교회의 사명중 하나로 적은 선교비라도 매월 보내자고 제안했습니다. 집사님들이 “아니 목사님 사례비도 주지 못하는 형편에 선교비라니요..?”
매월 선교비를 조금씩 보내고 남는 재정으로 사례비를 받겠다고 하고 시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매월400불 내지 500불을 선교비로 보내고 사례비 1,500불을 계산해 받을 수 있도록 연말 결산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축헌금을 모으고 새 교회당을 준비하자고 하니 어이가 없다는 표정들이었지만, 매 주보에 지난 주 건축헌금 $ 35.00 (합계$785.00)을 게재한지 만4년 만에 150석 규모의 아름다운 성전을 매입하기에 이르렀던 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눈물겨운 시간들이었습니까? 간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때 지난 4년 동안의 눈물의 기도를 드려왔던 생각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 권사님 한분이 여러 그루의 팜츄리를 준다고 해서 30분이나 달려가서 교회 밴에 실어다 교회 주변에 심었습니다. 모래땅이다 보니 옮겨 심은 후에 자리를 잡기까지 관리를 잘해야만 했습니다. 농장하는 집사님이 영양제로 소똥이 좋다고 해서 농장에 가서 소똥을 잔뜩 가져와서 팜츄리 뿌리부근에 놓기도 했습니다. 얼마 후에 보니 소똥 주었던 곳에 수박나무가 싹이 나고 잎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수박이 두 개가 달렸는데 점점 커져 길죽한 모양으로 무척 크게 자랐습니다. 어느 토요일 여자 집사님의 미국인 남편이 교회 잔디를 깎는 봉사를 했습니다. 너무 잘 큰 수박을 보고 한 개는 자신들의 집으로 가져가고 한 개는 교회에 놓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고 수박을 잘라 후식으로 먹었는데 그렇게 달고 맛있는 수박을 처음으로 먹어보았습니다.
한편 주차장(Parking Lot)뒤로 빈 터가 많이 있어 무얼 심을까 했더니 농장하는 집사님이 호박씨를 드릴 테니 호박을 한 번 키워보라고 했습니다. 사실 필자는 지금까지 꽃나무 하나 심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농사에는 전혀 경험이 없었고 어릴 적 기억으로는 호박 심은 옆에 큰 구덩이를 파고 배설물을 채우는 것을 본 적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둥근형 호박씨를 모래땅에 심어 놓고 물을 열심히 주기 시작했습니다. 성전건물 밖에 설치된 지하수도(Well System)꼭지에 호수를 연결해서 호박밭까지 물을 주려면 호수를 100피트짜리 3개를 연결해야만 했습니다. 그 호수를 끌고 팜츄리에 물을 주랴 호박 밭에 물을 주랴 이리 저리로 끌고 다니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래도 매일 새벽예배 마치면 물을 주는 일이 큰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새싹이 나오고 호박잎이 나오고 크게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날 새벽예배를 마치고 나와서 둘러보다 노란 꽃이 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호박꽃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던지 그 때의 그 감정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꽃은 꽃 뒤에 조그만 호박이 달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달려있던 호박이 똑 떨어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호박꽃은 암꽃과 수꽃이 함께 피는데 벌이 수정을 하지 않으면 호박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호박꽃들은 아침시간만 지나면 꽃들이 닫치고 맙니다. 아침시간에 수꽃도 피고 암꽃도 피면 붓으로 수술을 묻혀 암수에 인공수정을 해 주면 호박이 씩씩하게 자라납니다. 이렇게 농사법을 하나 배워서 열심히 키우다보니 아침 시간에 노오란 호박꽃이 방긋 핀 것을 보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자기새끼 귀엽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내 손으로 심은 호박이 꽃을 피고 열매를 맺고 자랄 때 그 기쁨이 바로 농부의 기쁨이란 것을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들을 지으시고 당신의 자녀를 삼아주셨으니 자녀들이 아버지 뜻대로 아름다운 신앙의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고 살아가면 얼마나 예쁘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아버지 보시기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미 하나님의 성회 한국총회 은퇴 목회자
플로리다 인터넷 선교교회 김순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