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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정의 현장에서] 케이로스는 분석했고, 슈틸리케는 탓을 했다

2016.10.12 오전 06:08

국내축구 서호정 前스포탈코리아, 일간스포츠, 풋볼리스트 기자. 다양한 매체에서 축구를 전하는 스토리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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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디 스타디움의 실제 모습은 익히 알려진 그대로였다. 경기장 관중석에서는 관중들이 피는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경기 3시간 전부터 관중석은 검은 물결로 차고 있었다. 11일은 이슬람 시아파의 구심점인 이란의 최대 종교 추모기간 중 하나인 ‘타슈아’였다. 이란은 이 기간 동안 공휴일을 갖고 국민 대다수가 추모 행상 집중한다. 세계 최고의 교통 체증으로 유명한 테헤란도 이날만큼은 교통 정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차분한 시내 분위기와 180도 다른 아자디 스타디움의 분위기는 경기 한참 전부터 시끌벅적했다. 경기장에서는 검은 티셔츠를 입은 이들이 경기장 트랙까지 내려와 종교 행사를 실시했다.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이들의 종교 구호를 관중들이 따라하기 시작했다. 종교 색채가 강한 노래도 쩌렁쩌렁 흘러나왔다. FIFA는 축구에 정치, 종교가 개입되는 것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지만 이란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의 의식을 전개했다. 경기장 주변은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4천여명의 군인과 경찰이 집결했다.


경기장에 출입하기 전에는 한국 기자들에게 추모를 의미하는 검은색 띠를 오른팔에 차게 했다. 이란 국영방송의 아미리 기자는 취재 중인 내게 “검은띠를 찬 기분과 이 추모 행사를 보는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나는 “이질적이다. 외국인 기자에게까지 강요하는 건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답하자 그는 “그럴 수도 있다. 의견 고맙다”며 옅은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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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1시간 30분을 앞두고 “후세인”을 외치던 관중석의 함성은 “이란”과 “케이로스”로 변하기 시작했다. 엄숙했던 종교 행사는 끝나고 그들의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어느새 아자디 스타디움 전체가 검게 변했다. 본부석 관중석과 맞은편 관중석은 서로 번갈아가며 응원가를 불렀다. 어깨동무를 하고 그라운드를 등진 채 춤을 추는 물결이 일었다. 아미리 기자는 “노래와 춤이 이렇게 대규모로 허락되는 곳은 축구장이 유일하다”라고 말했다. 이란 사람들의 억눌린 감정이 폭발하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왜 아자디 스타디움이 원정팀의 지옥이 될 수 밖에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검은색의 아자디 스타디움과 정반대로 이란은 하얀색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 그들은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한국을 맹렬히 공격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 슈틸리케 감독의 낯빛은 이란 관중들이 입은 옷과 같은 색이 됐다. 한국은 이렇다 할 대응도 한번 못한 채 0-1로 무릎 꿇었다. 스코어가 0-1이라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경기 내용은 그 이상의 골을 허용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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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려했던 결과, 풀백의 차이가 승부를 갈랐다
이란은 4-2-3-1 포메이션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했다. 특히 양 측면 수비수가 정확한 타이밍에 펼치는 오버래핑이 한국 수비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최전방의 사르다르 아즈문은 탄력 넘치는 플레이로 곽태휘, 김기희의 뒷공간을 파고 들었다. 한국은 느린 템포의 플레이를 하다가 이란의 강한 압박에 걸리면 여지 없이 역습을 허용했다. 특히 이란은 오른쪽 측면으로 나란히 선 자한바크시와 레자에이안의 콤비 플레이가 빛났다. 지난 경기에 선발 출전하지 않았던 자한바크시는 적극적인 공격으로 이란의 선봉에 섰다. 전반 11분 저돌적인 슈팅을 날렸고, 5분 뒤에는 프리킥을 슈팅으로 연결하며 한국 골문을 잇달아 위협했다.


반면 한국은 왼족의 오재석, 오른쪽 장현수가 상대 윙어의 압박과 속도를 견디지 못했다. 손흥민과 이청용도 뒤에서 올라오는 풀백들의 오버래핑을 보고만 있었다. 최종예선 들어 내내 지적을 받고 있는 슈틸리케 감독의 풀백 운영은 이날도 대표팀의 플레이를 지지부진하게 만들었다. 반면 케이로스 감독은 현대 축구 전술의 핵으로 꼽히는 풀백 운영을 얼마나 공격적이고 영리하게 해야 하는지를 슈틸리케 감독에게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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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란은 오른쪽 측면에서 성과를 냈다. 자한바크시와의 2대1 패스를 통해 풀백 레자에이안이 오버래핑해서 들어갔다. 이 깔끔한 플레이에 측면을 지키려던 한국 선수 둘이 한번에 벗겨졌다. 레자에이안이 45도 각도에서 낮게 깔아 올린 크로스를 아즈문이 쇄도하며 원터치 슈팅으로 연결했고 공은 한국 골망을 흔들었다. 아자디 스타디움은 고막이 찢어질 듯한 함성으로 가득 찼다.


이른 실점이 자극제가 됐는지 한국은 이후 점유율을 되찾고 공격을 주도해 갔다. 하지만 공만 오랜 시간 소유할 뿐 정작 중요한 슈팅은 이란 골문을 위협하지 못했다. 전반은 0-1으로 종료됐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영을 빼고 왼쪽 풀백 홍철을 투입했다. 오재석이 오른쪽 풀백으로 이동했고 장현수가 전진하며 수비형 미드필더로 변신했다. 전반의 풀백 운영이 실패를 불렀음을 인정하는 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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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없는 축구, 우리가 늪에 빠졌다
선수 교체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건 없었다. 자한바크시와 아즈문으로 이어지는 빠르고 정확한 공격에 여전히 정신을 찾지 못하는 한국이었다. 후반 18분 또 한번의 위기가 왔다. 코너킥 상황에서 뒤로 흐른 공이 레자에이안의 강력한 중거리 슈팅으로 연결됐다. 김승규의 선방 덕분에 실점을 피할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한국은 이란의 강한 압박을 피하기 위해 공을 돌릴 뿐 활로를 찾지 못했다.


후반 21분 이청용이 빠지고 김신욱이 투입됐다. 슈틸리케 감독으로선 카타르전처럼 김신욱의 신장을 이용한 공격이 분위기를 바꿔 주길 원했다. 하지만 김신욱의 높이를 살리려면 속도와 정확한 롱패스가 필요했다. 김신욱이 이란 수비진과의 경합에서 이기면 그 세컨드볼을 손흥민, 기성용, 지동원 등이 잡아서 공격해야 했다. 그러나 한국은 이란의 좁은 간격을 이용한 강한 압박에 밀려 김신욱을 활용할 틈도 잡지 못했다. 그렇게 10분 이상을 허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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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토트넘에서 절정의 기량을 발휘하고 있는 손흥민은 전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선수 교체와 포지션 변경만 하다가 우왕좌왕하는 대표팀이었다. 구자철이 투입되고 막판 10분 동안에 김신욱을 최전방에 세운 것에 걸맞은 공격 전개가 펼쳐졌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결국 단 1개의 유효슈팅도 기록하지 못한 채 한국은 내용 상에서 완패를 당했다. 김승규의 선방과 곽태휘의 몸을 던진 수비가 없었다면 추가 실점이 확실했을 만큼 수비 조직력은 카타르전에서 하나도 개선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카타르전이 끝난 뒤 내용에 대한 아쉬움과 비판을 보낸 언론, 팬들에게 노골적인 불만을 보였다. 그는 2승 1무를 거뒀다는 결과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춰 내용의 문제를 덮으려 했다. “이 상태면 테헤란에 가지 않는 게 낫겠다”는 과도한 언사로 여론을 겁박했다. 사실 모든 비판은 이란전에서 결과를 내면 잠잠해질 문제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카타르전의 실수를 돌아보고 이란전을 준비하겠다고 했지만 선수를 바꾼 것 외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언론에서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우려했던 풀백 운용은 이란전에서 터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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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보다 더 실망스러운 슈틸리케 감독의 인터뷰

하지만 경기 후에도 슈틸리케 감독의 인터뷰는 실망스러웠다. 그는 “이 곳에는 한국이 어떤 선수 구성이든, 어떤 감독이 와서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은 근본적인 원인이 있지 않나 싶다”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완패의 책임을 피해가려 했다. 이란의 피지컬에 밀렸다는 거시적인 문제가 언급할 뿐 패배의 원인을 상세히 설명해 달라는 한국 취재진의 질문에 애매한 답만 반복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는 카타르의 소리아 같은 공격수가 없었다”라며 공격수들의 부진에 책임을 전가했다.


슈틸리케 감독에게는 손흥민, 석현준, 김신욱, 지동원 등의 공격 옵션이 있다. 손흥민은 현재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평가받고 있다. 석현준, 지동원은 유럽에서 뛰고 있고 김신욱은 소리아가 일찌감치 접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맹활약 중이다. 자신이 직접 선발하고 데려 온 공격수들을 평가절하한 것은 자칫 대표팀 전체의 신뢰를 흔들 위험한 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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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손흥민은 “다른 선수를 언급하면서까지 선수 사기를 (꺾는 것은) 아쉽다. 선수들, 공격수들은 역사를 쓰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고 최선을 다했다. 각자 팀에서 잘 하고 있는 선수들인데 선수가 부족하다는 건, 나는 좋은 선수가 많다고 생각하는데 감독님 말씀은 좀...”이라며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주장 기성용은 “외국인 감독님이다 보니 우리와는 생각이 좀 다르시다. 그 얘기를 보고 상처 받는 선수도 있겠지만 감독님도 책임감을 느껴서 그런 얘기를 하신 게 아닌가 싶다. 책임을 모두가 다 가져야 한다”라며 수습하기 위해 애 쓰는 모습이었다.


한국 취재진이 듣고 싶었던 내용과 방향의 답은 오히려 이란의 케이로스 감독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이란이 한국을 무너트릴 수 있었던 확실한 전술적 준비에 대해 상세하게 답변했다. 오른쪽 측면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공격을 시도했고 선제골을 넣은 것이 한국의 약점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 우리는 한국 수비진 특히 측면에 문제가 있다고 분석했다. 4-3-3을 쓰다가 4-2-3-1 포메이션을 쓸 거라 봤고 중원에서 정면 싸움을 하면 쉽지 않다고 봤다. 측면을 공략하는 게 오늘의 키 포인트라고 봤다. 공을 소유하고, 측면을 계속 흔드는 것이 우리가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선수들이 잘 해줬다. 우리는 한국의 모든 부분을 공부하고 알고 있었다”라고 논리적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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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리케 감독에게 기대했던 것도 변명과 핑계가 아닌 분석이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때 믿음은 유지될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중요한 경기에서 패할 때마다 “한국 축구의 유스 시스템 같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안타깝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기술위원장도, 유소년 총괄 디렉터도 아니다. 결과로서 납득을 시켜야 하는 대표팀 감독이다. 결과로 납득시키지 못할 때마다 책임을 한국 축구에 전가하는 것은 대표팀 감독이 보여 줄 모습이 아니다. 유소년 시스템이 지금보다도 못할 때에 한국은 월드컵 16강에 나간 적이 있고, 월드컵 최종예선을 여유롭게 통과했던 팀이다.


이날 경기장에 있었던 모든 한국 취재진, 현지 교민들은 굴욕을 맛봐야 했다. 이란에게 일방적으로 치우친 흐름이 바뀔 기미가 없어 보이자 승리를 확신한 이란 팬들은 후반 40분부터 경기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취재진을 향해 한 손으로 손가락 네개를 펼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손가락 네개는 이란전 4연패, 동그라미는 무득점이라는 의미였다. 슈틸리케 감독이 약속했던 아자디 스타디움에서의 무승 징크스는 깨지지 못했다. 한국은 아시아팀을 상대로 4연패라는 부진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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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서호정
사진=FAphotos

기사제공 서호정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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