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목사의 사도신경읽기 16
예수님의 부활 1
[기독교]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천주교]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영 어]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rom the dead
[라틴어] tertia die resurrexit a mortuis,
기독교의 최대 기적사건은 죽은 자의 부활이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죽은 것처럼 보였는데 숨이 붙어 있었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분명한 사실임을 증거하기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고 그리고 무덤에 묻히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고 사도신경도 죽으시고 장사되었다(묻히셨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분명히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나인이라는 성에 한 과부의 아들이 죽었는데 예수님이 일어나라고 말씀하시자 다시 살아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때 과부의 아들은 무덤에 묻기 위하여 관을 매고 가는 중이었다. 분명히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것을 장엄하게 기록된 사건이 나사로 이야기다(요한복음 11장).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자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기 전에 와서 나사로를 살려달라고 요청을 받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내려가지 않고 나사로가 죽었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예수님은 나사로에게 간다. 나사로는 죽은 지 이미 4일째 되어 무덤에 있었다. 분명히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 무덤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게 분명히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이야기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으로 예수님의 부활의 확실함과 그에 따른 부활신앙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고린도전서 15:17-18)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는 생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에 대한 믿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는 성경은 진리라는 말로 대치될 수 있다. 진리는 사실에서 나온다. 그런데 사실이 다 보여지고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집안에 모두가 잠들어있는 동안 필라델피아 미술박물관을 갔다 와서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그 사실을 망해도 어느 누구도 믿어주는 자가 없었다. 한번 잠들면 정신없이 잠이 들고 결코 잠자다가 일어나 본적이 없음을 아는 집안 식구들은 도저히 그 말을 믿을 수가 없다. 식구들은 아마도 꿈속에서 갔다 온 모양이라고 핀잔을 준다. 분명히 사실인데도 믿어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성경은 보여줄 수 없는 사실들이 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신다. 그런데 보여줄 수 없다. 오직 믿음으로만 사실이 증명된다. 예수님이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셨다는 사실 또한 그렇다. 거기에다가 예수님 자신이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유대인들은 경악했다. 예수님의 부활 역시 그러하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15:3-8을 보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 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 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예수님의 부활은 사실이다. 믿음이 아니고는 증명할 수 없는 진리이다. 물론 사실이기 때문에 진리라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면 진리란 사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빌라도의 질문(요한복음 18:38)에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써 답하셨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육체의 부활
고린도전서 15장은 예수님의 육체 부활을 이야기 하고 있다. 누가복음 17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육체적으로 다시 살아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누가복음 17:36-43) 생선을 구어 먹음으로 예수님은 자신이 육체적으로 분명히 다시 살아났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20에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과 같이 우리 역시 육체적으로도 부활할 것을 복음으로 선포하고 있다. 예수님은 영과 육이 결합된 온전한 몸으로 하늘로 승천하셨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 역시 그리 될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은 예수님의 재림 때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임에 대한 소망을 가지라고 선언한다. 이해 여부를 떠나서 성경은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을 사실로 전하고 있고, 이것이 바로 복음 곧 좋은 소식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성경은 단지 영만이 천국에 거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몸 곧 영과 육이 결합된 온전한 몸이 영원히 천국에서 산다고 선포한다. 그 강력한 모델이 예수님의 부활이다. 실제로 구약에서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승천한 경우를 보여준다. 에녹과 엘리야다. 그러나 오직 한 분 예수님만이 죽음을 경험하고 다시 살아 영육이 함께한 몸으로 승천하였다. 그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 역시 따라가게 될 것이다.
죽음 이후 부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예수님이 살아 있는 동안에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베드로가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을 때(마태복음 16:16)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왜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신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죽고 부활하시는가? 처음부터 죽지 않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시면 되지 않았겠는가?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한복음 2:19)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비웃었다. 왜냐면 이 성전은 46년 동안 지어져 왔는데 어떻게 3일만에 다시 짓을 수 있는가고 비웃었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은 예수님이 왜 죽으시고 부활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왜 죽음이후에 부활하셔야 했는지 가슴으로 알게 되었다. 그러자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복음이 되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지도 이야기해야하지 않을까? 예수님의 부활 2에서 다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