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8장(3) 용서하라 -이응주목사

by wgma posted Oct 30, 2016 Views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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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3) 용서하라
                                                     용서하라 
                          마태 18:15-20KakaoTalk_20161030_230739277.jpg


용서라는 단어가 
신약성경에 19절 가운데 25번 기록되어 있고.
구약성경에 18번 기록되어 있다.

1.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15).  

* 권고(care for) 
‘관심을 가지고 돌보다’라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보여 주시는 은혜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사라(창 21:1), 한나(삼상 2:21) 등 잉태하지 못했던 여인들을 돌아보시고 자녀를 주셨으며 또한 자기 백성을 권고하셨다(출 3:16; 시 8:4).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날까지 바벨론의 포로 상태로 있을 것을 전했으며(렘 29:10; 32:5), 요셉은 하나님이 그의 형제들과 이스라엘을 권고하셔서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시며 그의 해골을 메고 갈 것을 유언했다(창 50:24-25). 한편 베드로는 ‘하나님이 권고하시는 날’(벧전 2:12)에 대해 말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성도들을 위로하시고 죄인들을 심판하시는 날을 의미한다. 

교회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의 교제이다. 그런데 우리 형제가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죄를 범할 때가 있다. 그 죄가 말로 우리를 잘못되게 비난하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우리의 돈을 떼어먹는 일일 수도 있다. 교회 생활에서 이런 일들이 종종 있다. 사람의 인격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실수할 때가 없지 않다. 형제가 우리에게 죄를 범할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주께서는 그 대처 방안을 말씀해 주신다. 

첫째로,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개인적 책망 혹은 충고가 첫 번째 단계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런 문제를 남에게 먼저 알리지 말아야 함을 내포한다. 이것은 또 우리가 ‘저런 자와는 만날 것도 없어!’ 하고 그를 정죄하고 그와의 교제를 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도 내포한다. 우리는 먼저 그를 찾아가서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책망하고 충고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시간이 들고 수고가 든다. 또 잘못하면 마음 상하는 말을 한 마디 더 듣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서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책망하고 충고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그 형제를 사랑하고 그를 아끼는 성도의 바른 태도이다. 만일 그가 들으면 우리는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참된 성도의 교제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것이 “서로 사랑하라”는 주의 명령이 내포하는 바이다. 이것이 교회의 일체성(一體性)을 보존하려는 노력이다. 

여기에 두 가지 초점을 두고 언급하신 말씀이다. 첫째는 한 생명의 가치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한다. 비록 그가 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처음부터 외면하고 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고 그리해도 돌아서지 않을 때는 그를 멀리하라는 것이다,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성의 보존을 위한 것이다. 형제가 죄를 범했는데도 묵인 해 버리면 앞에서 언급해온 가루 서 말 속에 넣은 누룩이 되어 공동체의 거룩 성이 보존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2. 듣지 않거든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16). 

이것이 두 번째 단계이다. ‘증참 한다’고 번역한 말은 ‘확실케 한다,’ ‘확증케 한다’는 뜻이다. 만일 그 형제가 개인적 책망을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말을 확증케 하도록 해야 한다. 신명기 19:15는,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3.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17).  

이것이 세 번째 단계이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이나 회중 앞에서 판단 받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적 판단도 듣지 않으면 그를 이방인과 세리같이 여겨 교회적 교제를 단절해야 한다. 즉 그는 교회의 회원으로 간주하여 사랑의 교제를 나눌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교회 밖에 속한 외인(外人)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는 성도의 교제에서 제외될 것이다. 

* 증인(Witness) 
어떤 사실에 대하여 직접 알고 있어서 증거하는 사람을 말한다. 하나님은 친히 여러 사건과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증인이 되신다(삿 11:10; 욥 16:19; 렘 42:5). 모세법은 거짓 증거할 수 없으며(출 23:1; 레 5:1) 범죄 사실을 확정하려면 둘 이상의 증인을 세워야 한다고 정하고 있고(민 35:30; 신 17:7; 19:15, 18), 상업의 중요한 거래에 있어서도 증인을 세워 공개적으로 하도록 했다(룻 4:9-11). 신약에 와서 증인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관하여 예수께로부터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눅 24:48; 행 1:8; 2:32; 3:15; 5:32; 10:41). 

* 교회(church) 
교회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부르셔서 이전과는 달리 구별된 삶을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며, 하나님의 약속에 그 근거를 둔 구원의 공동체를 말한다. 

개역성경에 교회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에클레시아’(ekklesia)로 ‘부름받아 나온’, ‘부르심’, ‘택함 받은’ 등의 뜻이다. 이 말은 공적인 목적으로 모이는 모임을 가리키기도 했기 때문에 ‘모임’이라고 번역되기도 했다(행 19:32, 41). 70인역에서는 히브리어 ‘카할’(qahal)이라는 단어를 에클레시아로 번역했는데 이것은 주로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회중을 의미했다. 때로 ‘쉬나고그’(synagoge)라고도 불렀지만 ‘쉬나고그’는 유대인의 모임이나 건물을 가리키는 회당이라는 의미 때문에 사용되지는 않았다. 

* 신약에서의 교회: 
에클레시아라는 말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 예수님께서 교회가 세워질 것을 말씀하실 때 처음 사용되었다(마 16:18). 실제로 공동체로서의 새 교회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후에 예수님의 보혈에 근거하여(고전 3:11; 엡 2:20-23)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에 대해 믿음으로 반응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세워졌던 것이다(행 2장). 여기서 교회는 건물이나 기관이 아닌 사람들의 모임인 회중이었다. 이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행 2:42). 

신약에서 교회는 여러 가지로 표현되어 있다. 하나님의 피로 사신 것(행 20:28), 보이지 않는 교회(롬 6:3-5; 고전 12:12-13), 그리스도 지체로서의 교회(롬 12:4; 엡 4:3), 하나님의 가족(엡 2:19), 하나님의 교회(딤전 3:15), 예수 그리스도를 토대로 한 건물(고전 3:10-11),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고후 11:2),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로 하는 양떼(요 10:11-16), 촛대(계 1:20) 등이다. 

* 바울이 이해한 교회: 
바울은 교회를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고전 1:2),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갈 1:2) 등으로 지역이나 구성원에 따라서 부르거나 ‘아굴라와 브리스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고전 16:19) 등으로 불렀다. 때로 ‘하나님의 교회’(고전 1:2), ‘그리스도의 교회’(갈 1:22)라고도 불렀다. 

그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백성들을 불러내시고 모으셔서(롬 8:3, 29-30) 그 안에 거하시고 다스리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고 이해했다(고후 6:16-18). 또한 성도들을 향해서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임을 지적하며 성전이 거룩하듯 거룩할 것을 권면했다(고전 3:16-17). 특별히 그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와 그리스도의 모퉁이 돌로 세워진 교회(엡 2:20)를 이루어가기 위해 성도들이 받은 은사를 잘 활용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엡 2:21-22). 

그래서 다음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형제의 죄를 먼저 우리 자신들이 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결국 하늘에서도 풀지 않는 결과가 된다. 

4.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8) 

이것은 교회적 권징의 효력을 말씀하신 것이다. 매는 것은 권징의 시행이요 푸는 것은 해벌(解罰)을 가리킨다. 이 권징은 비록 땅에서, 즉 지상교회 안에서 시행되는 것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인정되는 것이며 효력을 가진다.  

* 합심(Agreement)
두 사람 이상이 각자의 마음을 하나로 합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레위인의 첩을 욕보였던 베냐민 지파 사람들을 치기로 결정한 일에 대해 마치 한 사람같이 합심하였다(삿 20:11). 예수님께서는 합심하여 하는 기도는 사탄의 포박을 풀고 형제를 죄악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씀하셨다(마 18:15-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 중의 두 사람이 합십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여기서 ‘합십해서 구한다’ 혹은 나도 그들 중에 있다‘ 이런 말씀은 마음이 하나 되고,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 된 무리가 되어야 주께서 들으시고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 담긴 말씀이다.(빌 2:1-4 참고)

여기서 참고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가시적 형태의 교회가 있었는가? 라는 문제다. 사실 신약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로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들이가. 그렇다면 이때는 가시적 교회공동체가 성립되었을 때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이렇게 처리 하라는 예언적 교훈으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고, 두 번째는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엡 1:22-23)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말씀하신 교회는 곧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한 개인을 가르치는 말씀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교회란 곧 그리스도가 주초가 된다는 점에서 이렇게 생각했다. 특히 사죄권은 주님의 고유한 주권이란 점에서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듯 한 것이다.

5.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19-20) 

이 말씀은 교회적 권징에 관련하여 주신 말씀이라고 보인다. 그것은 두세 사람이라도 바른 판단과 합심된 소원은 효력이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또한 합심기도의 일반적 교훈이기도 하다고 본다. 성도들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을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그것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 주 예수께서는 두세 사람이 그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그들 중에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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