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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목사의 사도신경 읽기 21

 

성령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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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령을 믿사오며

[천주교] 성령을 믿으며

[영 어] I believe in the Holy Spirit

[라틴어] Credo in Spiritum Sanctum

 

중세시대 교회는 로만가톨릭(천주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당시에 로만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교회와 콘스탄티노플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동방교회가 있었다. 이 두 교회는 서로 협력하여 교리의 일치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두 교회의 결속은 내부적으로 분열의 조짐을 보이다가 1054년 완전히 결별하게 된다. 동방교회는 서방교회를 비정통교회라고 부르고 자신들은 정통교회(Orthodox Church)라고 부른다. 이 두 교회가 나누어진 배경에는 성령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 사도신경이 만들어지던 초대 그리고 중세시대에 성령 하나님에 대한 논의는 그렇게 중요한 논쟁은 아니었다. 그래서 사도신경의 고백은 성령에 대하여 단순하게 고백한다.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 성령 역시 하나님이고 성부 하나님과 같이 예배되어야 하고 영광을 돌려야 한다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 하나님은 누구인가, 성령 하나님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종교개혁이래 18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성령 하나님은 구원의 문제에 결부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성령 하나님의 문제만큼 복잡한 것이 없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그런대로 이해하겠는데 성령 하나님은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지 이야기가 분분하다. 물론 여기에서 다 다룰 수는 없다. 가장 기본적인 것만 다루어야 할 것 같다.

 

성령은 인격체로서의 하나님이시다

 

기독교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이다. 삼위일체란 ‘3 인격으로 존재하지만 하나의 하나님이다. 아버지(성부)로서의 하나님, 성자(아들)로서의 하나님, 그리고 거룩한 영(성령)으로서의 하나님, 3 인격체로서의 하나님은 같은 본질, 같은 지위, 같은 능력, 같은 속성을 지닌다. 마태복음 28:19에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라고 했고, 요한일서 5:7에서는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시라.”(킹제임스 성경)고 밝히고 있다. 예수님은 성령을 다른 보혜사”(요한복음 14:16)로 칭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른이란 종류와 성질이 똑같은 다른 것을 뜻한다. 즉 예수님께서 성령을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과 동일한 인격과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위치에서 일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오심은 곧 예수의 오심이요, 성령의 임재는 예수의 임재요, 성령의 충만함은 곧 예수의 충만함이다. 이렇게 예수님도 성령을 자신과 동일하게 말씀하시고 있다.

그런데 성령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하나의 인격체로서가 아니라 어떤 power’로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성령의 불 받아라라고 한다면 이는 정말이지 하나님을 망령되게 하는 것이다. 왜냐면 사람이 하나님을 주었다고 뺏었다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기도하면서 기다리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한 약 200여명이 기도하면서 성령 하나님을 기다렸다. 오순절이 되자 성령 하나님이 임하셨다. 그렇게 신약의 교회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사도행전 1:8의 말씀대로 그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 하나님의 일

 

성령 하나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으로 시작해야 한다. 예수님은 성령을 자신과 동일한 보혜사로 칭하고 있다. ‘보혜사곁에(파라)’부르다(클레토스)’의 합성어로 '도움을 베풀도록 곁에 부름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법정 용어로 오늘날로 말하면 변호인에 해당한다. 물론 전문적인 변호사와 같은 의미가 아니라 피고인이 자신을 위하여 친한 친구를 불러서 자신을 위하여 변호해주면서 함께 하는 협력자, 조력자, 위로자의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이 단어가 요한일서 2:1에서는 대언자로 번역되어 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불러 세상에 보내실 때 주신 위로의 말씀이 이것이다.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태복음 10:18-20)

그렇다면 보혜사 성령이 하시는 구체적인 일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는 예수님은 성령을 진리의 성령으로 칭하신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한복음 16:13-14) 예수님은 성령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일이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할 수가 없다. 요한복음 14:26을 보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그렇게 말씀하셨어도 그들은 왜 예수님이 죽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두려워했고 그래서 자신들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숨겼고 마침내 자신들의 본업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오순절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자 그들은 달라졌다. 왜 예수님이 죽으셔야 했는지를 알았다. 왜 예수님이 3일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했는지 바르게 이해했다. 그러자 자신들의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세상에 외치기 시작했다. 성령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 하자 예수님의 말씀은 더 이상 자신들의 머리에 또 하나의 지식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자신들의 가슴을 요동치게 했다.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도행전은 가슴으로 전하는 사도들의 교회행전이요 성령행전을 기록하고 있다. 말씀을 깨달아 알게 하는 성령 하나님의 일을 성령의 조명이라고 한다. 말씀과 성령은 언제나 함께 한다. 말씀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지식을 점령해야 한다. 우리는 그 성령이 우리의 모든 것을 주장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때 성경의 모든 말씀이 우리의 가슴을 흔들어 놓을 것이다.

 

하나님의 가슴을 가지라

 

그래도 여전히 성령 하나님이 나를 주장한다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에 대한 질문은 남는다. 고린도전서 2:10이 답한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성령 하나님이 오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가슴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지식과 경험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과 소원, 하나님의 분노와 질투,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슴으로 성경 말씀을 보게 된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린도후서 10:4-5) 성령 하나님이 나의 가슴을 휘젓고 다니게 되면 나의 이론이 무너지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케 된다. 하나님의 가슴을 가지고 말씀을 읽고 들으라. 그리하면 우리는 말씀에 의한 변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

김성철목사의 사도신경 읽기 22

 

거룩한 공회 1

 

[기독교]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천주교]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영 어] the holy Catholic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

[라틴어]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sanctorum communionem

 

사도신경에서 기독교와 천주교가 달리 해석하는 문구들이 등장한다. (1)동정녀 마리아이다. 한글로는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영어로는 문제가 있다. ‘the Virgin Maria 그 동정녀 마리아로 처녀라는 영어 첫 글자가 대문자로 쓰고 있다. 천주교는 마리아를 평생 동정녀로 요셉을 남편으로 두었지만 결코 관계를 가지지 않은 순수한 처녀(동정녀)로 지냈다는 것이다. 오직 성령으로 인해 예수님만 낳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a virgin Maria 한 처녀였던 마리아로 해석한다. 평생 동정녀의 의미가 아닌 예수님을 남자를 알지 못한 처녀의 몸으로 낳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낳은 후 요셉과 관계를 맺고 여러 자녀들을 낳았다고 성경에서 기록한대로 해석한다.

(2)‘음부에 내려가사는 문구는 750년경 원래의 로마신조에 삽입되었다. 이 문구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연옥을 정당화 시키는 문구로 이해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말한다면 선조림보에 대한 문구로 천주교에서 이해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연옥이나 선조림보는 성경에는 없다. 기독교 내에서도 이 문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를 가진다.

(3)‘거룩한 공회를 제대로 번역하면 거룩한 가톨릭교회이다. 이 문구는 650년경 삽입되었고 (4)‘성도과 서로 교통하는 것에 대한 바른 번역은 성인들의 통공이다. 이 문구 역시 650년경에 삽입되었다. 이렇게 서로 해석을 달리하는 4개의 문구에 대해서는 기독교식으로 해석하기 이전에 천주교가 이 문구들을 삽입하였을 때 어떤 의도를 가지고 삽입하였는지는 알고 해석하여야 한다. 사도신경은 기독교가 만든 신앙고백서가 아니라 천주교가 만든 신앙고백서로 세례문답에 사용된 것이다. 이러한 문구는 천주교 시대가 열리는 그레고리 1(Gregory I)가 교황으로 즉위한 때(590) 이후에 삽입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천주교의 교리를 분명하게 확인시키고 고백하도록 만들어진 문구들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3)번과 (4)번을 보면 사도신경은 확실히 천주교의 신앙고백임을 확실히 보여준다. 물론 기독교는 이 문구들 역시 기독교식으로 천주교와 달리 해석하고 있긴 하다.

 

거룩한 가톨릭교회

 

천주교의 영어명은 가톨릭(Catholic) 교회이다. 정교회(Orthodox Church)와 구별해서 로만 가톨릭교회(Roman Catholic Church). 간혹 Church of Our Lady를 보는데 한국말로 번역한다면 성모 마리아 교회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교회 역시 Roman Catholic Church 곧 천주교다. 가톨릭이란 말은 보편적이란 의미로 모든 것에 따르면또는 모든 것을 통하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이 일반적인 의미로 쓰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공동선신을 영어로 쓰면 가톨릭 서신(Catholic Epistles)이라고 한다. 가톨릭이란 말을 교회에 처음으로 사용한 자는 안디옥의 이그나시우스로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이들이 어디에 있든지 바로 그곳이 Catholica Ecclesia입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폴리갑은 모든 믿는 신자는 The Holy Catholic Church”라고 했다. 그런데 키프리안은 교회의 감독은 사도들의 후계자로 예수님에게서 직접 선택함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교회의 통일은 이러한 감독들의 통일에 있다고 보고 감독이 다스리는 교회는 다 같지만 로마의 교회만은 베드로에 의하여 세움을 입었음으로 가톨릭교회의 모교회이다라고 로마교회를 우선시 하였다. 그리고 키프리안은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고 보았다. 게르만민족의 대 이동은 로마교회가 모든 교회의 머리에 있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590년 그리고리 1세가 로마의 감독이 되면서 로마교회는 서서히 중세의 문을 여는 교황의 시대를 맞게 된다. 그러면서 카톨릭교회란 로마교회로 통일되는 교회로 여기게 된다. 동방교회가 자신들을 정통교회(Orthodox Church)라고 부르면서 로마교회는 단독으로 자신들을 가톨릭교회로 칭하게 된다. 그래서 사도신경에서 거룩한 가톨릭교회를 믿는다고 했을 때는 로만 가톨릭교회 곧 천주교를 의미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톨릭교회를 필요한 것으로 세우신 사실을 알면서도 이 교회에 들어오기를 거부하거나 끝까지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구원될 수 없을 것이다”(교회헌장 14)라고 가르치고 믿는다. 천주교는 천주교회 안에만 구원이 있다고 고백한다.

 

기독교의 번역

 

한국 천주교는 거룩한 가톨릭교회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로 풀이해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기독교는 가톨릭교회의 인상을 지우기 위해 이를 거룩한 공회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공회라는 번역이 상당히 거슬러 보인다. 왜냐면 성경에서 공회라는 용어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게 때문이다. 마태복음 26:59에 보면 유대인의 공회가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 council)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그래서 새로 번역된 사도신경에서는 공교회로 바꾸었다. 영어로는 이를 ‘The Holy Universal Church 거룩한 우주적인 교회로 번역했다. 이는 눈에 보이는 지역적인 교회 곧 건물교회가 아닌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지칭해서 칭해지는 교회다. 기독교는 키프리안이 아닌 폴리갑이 말한 의미를 따라서 모든 믿는 자가 가톨릭교회라는 의미로 universal chuch로의 번역은 무난한 번역이라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한글번역도 거룩한 우주적인 교회로 번역하는 것이 어떨까? 왜냐면 공교회라 번역해도 이를 설명해 주기 전에는 지역적인 건물교회가 먼저 개념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루터교회는 이를 “the holy Christian Church”로 번역했다.

 

성경은 교회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을 말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고백하는 자들의 모임을 말한다. 그래서 성경 어디에도 교회 안에 구원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구절이 없다. 구원에 대해서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는 로마서 10:9을 보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아무리 보아도 가톨릭교회를 믿어야 구원이 주어진다는 말이 없다. 사도행전 4:12에도 분명히 이렇게 선포하고 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예수님 외에는 어떤 다른 이름이나 어떤 단체나 교파가 구원을 주지 않는다. 아무리 가르치는 교리가 옳아 보인다 하여도 자신들이 모이는 모임만이 구원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 자체로 이단이 된다. 왜냐면 구원의 가장 큰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구원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과 관계없이도 구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기독교가 아니다. 사도 요한은 분명한 어조로 성경이 기록된 목적을 밝힌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20:31) 여기에서 힘입어의 위미는 안에이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지 교회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도는 우주적인 교회의 한 일원이 되며 각 지역 교회에 매 주일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며 예배한다.

 

김성철목사의 사도신경읽기 23

 

거룩한 공회 2

 

[기독교]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천주교]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영 어] the holy Catholic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

[라틴어]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sanctorum communionem

 

기독교와 천주교의 교회관은 마태복음 16:18-19에서 갈린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이 구절에서 (1)교회는 어디 위에 세워지는가이고 (2)천국 열쇠가 어떤 의미인가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6장의 구조  

마태복음 16장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뒤 문맥을 살펴서 보아야 한다. 문맥의 구조를 보면 이렇다.  

이러한 구조를 이해하면 마태복음 16:18-19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이 구절은 16:5-12와 연관이 있음을 본다. 이제 이러한 구조를 통해 바로 성경을 이해해 보자.

 

이 반석 위에 내(예수 그리스도) 교회를 세우리라

   

1. 마태복음 16:16은 유명한 신앙고백이 나온다. 이 고백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에 베드로가 고백한 말이다. “(you 예수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이다.” 베드로의 고백 후에 예수님은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신다. 천주교는 이 반석이란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리라고 이해한다. 베드로라는 이름은 반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천주교는 오직 천주교만이 참 교회이고 천주교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기독교는 이 반석이란 베드로가 한 신앙고백 위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진다고 이해한다.

2.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은 아람어를 쓰고 있었다. 당연히 예수님도 아람어를 사용하셨는데, 아람어로 반석은 케파인데 똑같은 단어가 헬라어로 번역되면서 베드로는 남성이니까 당연히 남성형으로, 반석(페트라)이란 단어는 여성형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두 단어가 같은 아람어 단어에서 나왔으니까 베드로(페트로스)가 곧 반석(페트라)이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성경의 기록자는 이를 헬라어로 번역하여 기록할 때 전혀 다른 의미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어성경은 반석(페트라)rock으로 번역해 놓고 있지만 베드로가 보통명사로 쓰일 때는 보다는 큰 돌로 반석(rock)이라면, 반석으로 쓰인 헬라어 페트라는 영어로는 절벽을 뜻하는 "cliff"로 땅에 깊이 박혀있는 움직일 수 없는 반석을 뜻한다. “페트라라는 단어는 마태복음 7:24-25에서 이렇게 사용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페트라)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페트라) 위에 놓은 까닭이요.”

3. “교회에클레시아라는 헬라어에서 왔는데 이 단어는 “--로 부터불러내다는 합성어로 하나님이 불러내신 사람들을 의미한다. 결코 건물이나 제도를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주님이 세우신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 위에 세워진 교회가 아니라, 베드로가 고백했던 그 신앙고백의 반석 위에 세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오직 베드로가 세웠다고 주장하는 로마교회만이 주님이 세우신 교회라면 베드로가 아닌 다른 제자들이 세운 교회들 특히 바울이 세운 여러 교회는 주님이 세우신 교회가 아닌가? 안디옥 교회는 더군다나 사도들이 아닌 자들이 세운 교회다. 예수님을 주님과 구주로 고백한 자들이 스스로 세운 교회이다. 이 교회가 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선교로 파송한 최초의 교회이기도 하다.

 

천국 열쇠

 

1. 천주교가 베드로 위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졌다는 강력한 주장은 오직 베드로에게만이 천국 열쇠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베드로의 후계자들에게만이 천국 열쇠를 가지고 풀고 맺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구조를 보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요나의 표적 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신다. 요나의 표적이란 요나가 큰 물고기에 삼킨바 되었다가 3일만에 살아난 사건이다. 그리고 그 요나의 표적이란 예수님이 죽으시고 3일만에 다시 살아난 사건과 연관시킨다. 이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신다. 곧 그들의 교훈 가르침을 삼가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여기에 상응하여 천국 열쇠를 말씀하신다. “음부의 권세라는 정확한 번역은 음부의 문들이다. 문들을 열고 닫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하다. 이 열쇠라는 단어는 누가복음 11:52에서 지식의 열쇠로 등장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결론적으로 베드로에게 주어진 천국 열쇠란 베드로가 가르칠 복음이다. 잘못된 가르침이 사람들을 지옥의 문을 열게 하고 바른 가르침이 사람들을 천국의 문을 열게 한다.

2. 이러한 의미에서 천국의 열쇠는 베드로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다른 제자들에게도 주어졌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태복음 18:18) 요한복음 20:23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 말씀하신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한글은 단수와 복수 개념이 약해서 천국 열쇠라고 번역했지만 정확한 의미는 천국 열쇠들로 복수로 되어있다. 베드로 개인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한 모든 자에게 주어진 열쇠들인 것이다. 마태복음 16:16의 신앙고백을 바로 믿는 자는 이 놀라운 복음을 들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바로 전함으로 이들을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게 된다. 천국의 열쇠를 가진 자가 되는 것이다. 복음을 듣고 믿는 자에게 분명한 어조로 선언할 수 있다. 당신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곧 구원받은 자로 선언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게는 이미 정해진대로 지옥에 간 상태 그대로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베드로와 같이 신앙고백을 한 자들 곧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지옥의 군세가 어찌 하지 못한다.

3.결론적으로 주님의 교회는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 위가 아닌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한 그 고백의 반석 위에 예수님이 직접 교회를 세우신다. 베드로와 같이 신앙고백을 당신이 주님이 세우신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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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철목사 논단-세워진 권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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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철목사의 사도신경읽기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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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18 by wgma

    기회란 언제나 오는 것은 아닙니다-신광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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