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목사의 사도신경읽기 24
성도의 교통
[기독교]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천주교]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영 어] the holy Catholic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
[라틴어]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sanctorum communionem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 교회는 오직 가톨릭교회(천주교)라는 그들의 주장은 가견적(눈에 보이는) 제도적 그리고 계급적인 조직체를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한 사람들의 모임 곧 성도가 교회라고 말하며 보이지 않는 우주적인교회(무형교회)가 교회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전에는 교회예배당이라고 했다. 교회 곧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장소라는 의미다.
천주교와 기독교에 대한 차이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에서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해준다. 천주교는 이를 “모든 성인의 통공”이라고 했다. 어떻게 다른가?
천주교 : 성인의 통공
(1)천주교는 세 종류의 교회를 말한다. 세상에 있는 순례 또는 투쟁하는 교회로서의 지상교회, 연옥을 말하는 정화 교회, 천국인 승리 교회가 있다. 그래서 성인의 통공인란 교회 구성원들 즉 살아있는 신자들과 죽은 신자들 간의 영적 결합으로, 위 세 교회에 있는 모든 성도의 공로와 기도가 서로 통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통공(通功)이란, 공(功)이 서로 통(通)한다는 뜻이다. 즉 공로와 선행이 서로 통한다는 의미이다. 세상에 살고 있는 신자들과 천국에 있는 영혼들 그리고 연옥에서 단련을 받고 있는 영혼들 모두 교회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기도와 희생과 선행 등으로 서로 도울 수 있게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지상교회의 천주교인은 천상의 성인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할 수 있다. 또한 연옥에 있는 영혼을 위한 가 하느님을 통해 전달된다. 이처럼 기도나 선행의 대가(功勞)가 당사자에게만이 아니라, 천국이나 연옥의 다른 이에게도 통하기에 모든 성인의 통공이라고 한다.
(2)천주교는 하늘에 있는 님이라고 해서 하느님이라고 하고 기독교는 하나인 님이라고 해서 하나님이라고 칭한다. 천주교에서 성인(聖人)이란 살아있을 때 하느님께 대한 영웅적인 덕행을 실천한 결과 천국에서 '하느님을 직접 뵈옵고 영원한 행복' 누리는 사람으로서 죽은 후에 천주교회가 모든 신자들의 귀감과 존경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 공식적으로 선포한 사람이다. 연옥(燃獄, Purgatorium)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어서 영원한 구원을 보장받았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늘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기 위해 일시적인 정화를 거치는 장소이다.
(3)기독교는 천주교가 말하는 성인의 통공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당연히 연옥이란 존재 역시 전혀 성경에 없는 거짓으로 믿는다. 오직 천국과 지옥만 있을 뿐이다. 또한 기독교에서는 성인 또는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한 모든 자라고 믿는다. 성인은 하나님이 칭해주는 것이지 지상 교회에서 점검해서 공인해 주는 자가 아니다.
기독교 : 성도의 교통
(1)성도(聖徒)란 거룩한 무리란 의미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다. 이 단어는 영어의 saints에 대한 한자어인데 잘 번역된 것 같다. 천주교에서는 단순히 개인인 성인(聖人)을 쓰지만 기독교는 성인들의 무리를 써서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된 자들임을 나타내 보인다. “교통”이란 단어는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다. 그래서 성도의 교통을 성도의 교제로 이해하고자 하곤 한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성도가 서로 연합함”이다.
(2)교통이라고 번역된 영어는 communion(라틴어 communionem)는 성만찬을 말한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성만찬)를 하시면서 인류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라고 말씀하셨다.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누가복음 22:19-20) 이것이 성만찬의 유래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예수님의 죽음에 연합한 자가 된 자이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에 연합한 자이기도 하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성도도 함께 죽은 자가 되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성도도 함께 부활하여 산자가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예수님과 함께하며 예수님과의 교제를 가진 성도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합된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영광에 함께 동참한 자가 된 것이다. 이들이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교회가 된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에베소서 4:16)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중보기도를 하시는 중에 믿는 성도가 서로 하나되기를 기도하신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한복음 17:21-23)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여 하나된 성도에게 성경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베드로전서 4:13)고 말씀한다.
(3)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합된 자들 성도는 서로 나눔의 교제를 가지게 된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사도행전 2:44-46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여기에서 ‘떡을 떼며’는 성만찬 예식을 의미한다. 성도와의 교제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히브리서 10:24)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되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예수님)에게 자랄지라.”(에베소서 4:15)고 성경은 말씀한다.
교회와 성도의 교통
사도신경의 출발은 천주교의 세례문답으로서의 신앙고백이다. 그래서 성도의 교통이 가지는 천주교의 의미는 죽은 성인들과의 통공이다. 이는 교회에 대한 신앙고백과는 별도의 신앙고백이다. 그런데 기독교식으로 이해하고 고백한다면 굳이 성도와의 교통을 따로 구별하여 고백할 필요가 없다. 왜냐면 성도의 교제는 교회에 대한 고백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찌했든 성경은 연옥이나 특별한 자만 성인이 된다는 내용은 없다. 모든 자는 천국과 지옥 중 하나에 속하게 된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나 성도라고 부르고 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