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9장(4) 무엇을 얻으리이까?

by wgma posted Dec 31, 2016 Views 14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마태복음 19장(4) 무엇을 얻으리이까?

 

 KakaoTalk_20161231_232515059.jpg

 


 

                                                    [제자들의 질문]
                               (마 19;27-30)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27-29)
보좌(寶座, Seat)는 ‘왕권’을 상징하는 용어(사 22:23)로 ‘왕이 앉는 자리’를 말한다(왕상 10:18-20; 22:10). 보좌 앞에는 왕의 발을 올려 놓는 발등상이 있었으며 왕은 보좌에 앉아서 재판을 하거나 왕의 업무를 수행하였다(왕상 7:7).
보좌는 권위와 권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메시아에 관련해서도 사용되었는데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셔서(시 9:4; 사 6:1)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시다(시 103:19; 113:5-6). 또한 하나님의 보좌는 하늘에 있거나 하늘이라고 묘사되었고(시 11:4; 사 66:1; 마 5:34), ‘예루살렘’(렘 3:17)이나 ‘성전’(겔 43:7), ‘열방’(렘 14:21)이 하나님의 보좌로 불리웠다. 예수님은 영광의 보좌에 앉아 세상을 심판하실 분이시며(마 25:31), 제자들도 보좌에 앉아 열두 지파를 다스릴 것이라고 하셨다(눅 22:30). 보좌로 번역된 히브리어 ‘키쎄’(kisse?는 총독(느 3:7), 제사장(삼상 4;13), 귀빈(왕하 4:10) 등이 앉는 ‘의자’로도 번역되었다.

에스겔, 다니엘, 사도 요한이 본 하나님의 보좌: 에스겔은 하나님의 보좌가 남보석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묘사하였다(겔 1:26). 다니엘은 하나님의 보좌는 불꽃같고 그 옆에 수종하는 자가 천천이요, 시위하는 자가 만만이 있으며 그 앞에 심판을 베푸는 책이 놓여 있는 것을 환상 중에 보았다(단 7:9-10).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의 보좌에 무지개가 둘렸으며 그 모양은 녹보석 같고 그 주위에 24장로들이 앉아 있고 거기로부터 번개와 음성, 뇌성이 나오는 것으로 묘사되었다(계 4:2-5). 또한 그 보좌 앞에는 수정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주위와 가운데에 앞뒤에 눈이 가득한 네 생물이 있다고 하였다(계 4:6).

솔로몬의 보좌는 상아로 만들고 정금으로 입혔다(왕상 10:18; 대하 9:17). 등받이가 높았으며 양편에는 팔걸이가 있었고 보좌는 여섯 층계의 단 위에 세워졌으며 각 층계마다 좌우 두 마리의 사자 입상을 조각해 놓았다(왕상 10:19-20). 솔로몬의 보좌는 팔레스타인에서 구하기 힘든 상아와 값비싼 금으로 만든 것으로 솔로몬의 영화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왕상 10:21).
‘보좌에 앉는 다’는 의미로 보좌는 왕권과 관련되어 상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다. ‘보좌에 앉는다’(왕하 11:19) 는 것은 왕위의 계승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보좌에서 일어난다.’(욘 3:6)는 것은 자기보다 더 높은 권세에 대해 굴복하는 뜻으로 쓰였다.

그리고 보상의 때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이때가 언제인가?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부활 승천 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때(히 12;2)부터라고 보는 설이 있고. 다른 하나는 세상 끝날 즈음에 심판 주로 재림하실 때(계 20;9,15)를 가르키는 것이라고 보는 설도 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처럼 목숨까지도 희생의 제물들이 되었었다. 그렇지만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나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이렇게 히브리서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말씀한 것처럼 제자들도 같은 영광을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갈릴리바다 어부들 혹은 세리출신인 이들이 그 자리에서 기를 쓰고 돈을 벌고 혹은 로마정부에 발을 붙여서 한 자리를 했다고 생각보자. 그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영광과 감히 비교라도 할수 있겠는가? 12사도들 중에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가난했던 그들이 지금의 영광을 상상이라도 했을까? 그들이 너무나 큰 보상을 받은 사람들이 된 것이다.

예수님은 3가지 보상을 약속하셨다.
1) 첫째가 명예에 대한 보상
2) 둘째는 재물에 대한 보상
3) 셋째는 영생에 대한 보상이다.
제자들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세 가지 보상을 모두 받은 자들이다.
이들은 지금의 영광 뿐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의 세계에서도 영원히 영광을 누릴 자들이다.
여기서 "세상이 새롭게 되어"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지금 지구촌을 새롭게 재창조나 개선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지구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다 열거 할 수는 없지만 기후이변과, 환경오염, 자원고갈, 생태계의 이변, 시간이 갈수록 지구촌의 미래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마침내 지구는 폐기처분을 해야 할 때가 가까워 오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예수님이 말씀한 [새로운 세상]은 이미 주께서 예비해 놓으신 것이다(요 14;1-3). 그곳이 어디인가? 그곳은 "새 하늘과 새 땅"이다(계 21;1-7) 우주공간에는 지금 지구와 똑같은 환경을 가진 슈퍼지구라는 것이 수백 개도 더 있다고 과학자들이 밝힌바 있다. 그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안에 거하는 삶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이다.
은하공간에 있는 새 하늘과 새 땅, 그곳을 어떻게 갈수 있을까? 로켓이나 위성을 타고 갈 것인가? 아니다. 주님이 승천하신 것처럼 예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그분을 따라 변화된 몸으로 홀연히 변화되어 휴거를 하게 되는데 그 날과 그 시와 절차는 계시록 19;5절부터 20장 마지막 절까지에서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영생을 상속하리라]고 약속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Israel)은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여 이긴 후에 새로 불려진 야곱의 이름이다(창 32:28).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으로 야곱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민족을 일컫는 이름이 되었다(출 12:37; 민 1:45). 또 이것은 솔로몬 사후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한 열 지파의 반란으로 이루어진 북 왕국을 이르는 이름이었다(왕상 5:13; 12:16; 14:19, 29; 호 1:1; 4:15; 암 1:1; 3:14). 북 왕국이 멸망한 후에는 남유다와 동의어로 쓰이기도 하였고(사 5:7; 렘 10:1; 겔 13:2; 미 3:1)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회복된 공동체를 이르는 말로도 쓰였다(스 2:2).
신약에서는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을 이르는 상징적인 의미로 쓰였다(마 8:10; 갈 6:15-16).
상속(Inheritance)이란 신분, 재산, 지위 등을 이어받는 것을 말한다. 구약에서 상속(잠 19:14)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할라’(nachalah)는 기업(신 4:20), 유업(잠 17:2), 산업(잠 20:21)으로도 번역되었다.
구약에서 상속은 토지를 분배받는 일이나 재산을 물려 받는 일을 의미하는 뜻으로 주로 쓰였다(잠 19:14). 신약에서는 구약에서 말하는 의미로도 쓰였지만 성도가 들어가는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의미로 주로 쓰였다(마 25:34).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30)

나중(the last)이란 시간적인 개념으로 ‘보다 후에’, ‘보다 미래에’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성경에서는 종말론적인 의미로도 사용되었는데 하나님은 자신을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사 41:4)고 하셨는데, 이는 창조는 물론 종말에도 하나님께서 전 인류를 심판하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을 뜻하는 말이다. ‘처음과 나중’은 하나님의 속성으로 이사야와 요한계시록에 언급되었다(사 41:4; 44:6; 48:12; 계 1:17; 2:8; 22:13).
여기서 나중 된다는 의미는 낙오를 의미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방의 열강 가운데서 국가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창건된 것이 유대교였다. 그러한 그들이 역사가 진행되면서 어느덧 전통이 생기고, 기득권세력이 등장하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영역 밖으로 밀려나버린 집단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인 신약시대가 등장 되면서 나중 된자가 먼저 되는 운명이 바뀌는 결과들이 되어버렸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전통의 유전에 메이지 말라"는 말씀이다. 왜 그런가? 전통을 신앙인들의 눈을 영적소경으로 만들어 버리고 새로 임하는 계시의 빛을 볼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현대 교회 이대로 간다면 유대교의 운명처럼 될수도 있다. 그래서 시간을 놓치면 문밖에서 아무리 부르짖어도 그때는 문이 열리지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은 [깨어 있으라. 그 때는 도적같이 임한다](마태 24;42-43)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작은 무리는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운명을 뒤 바꾸는 신약시대의 역사를 쓰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서 진군하는 길이다. 이와 같은 일은 지구 종말이 있기 전인 21세기에서도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새로운 역사가 쓰여 질지도 예측할 수 없다.
아무리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부르짖어도 우이독경 즉 소귀에 경 읽기 식이 되고 어떤 이들은 안색이 변해서 조롱하고 비웃는 태도를 취하고 어떤 사람들은 미친 소리한다고 외면하고 바보 사람으로 취급을 한다. 새 역사가 쓰여질때 유대인들처럼 뒤로 밀려나 버린 운명들이 될 것이다. 그래서 먼저 되었던 자들이 나중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지구 종말과 함께 구속사가 완성이 되기 때문이다.    
f94bb7fbcb70c00cc9edd7f7c3a2dd52.jpg



Articles

1 2 3 4 5 6 7 8 9
T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