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목사] 날마다 말씀 따라 새롭게
특별한 형태의 중보기도, 제사장의 축도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 6:24-26)
특별한 형태의 또 다른 중보기도는 제사장의 축도다. 오늘날 교회의 공적 예배에서 행해지는 목회자의 축도는 그 형식이나 내용이 신약 서신서와 관련되어 있지만(고후 13:13), 신학적 배경은 구약의 제사장 축도(민 6:22-26)에서 찾을 수 있다. 개신교 예배에서 신약의 사도적 축도를 공식적 제도로 도입한 것으로 알려진 루터와 칼빈이 오히려 구약의 제사장 축도를 사용한 것도 제사장 축도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독일교회에서는 지금까지도 초기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민수기의 제사장 축도를 예배 축도로 사용하고 있다.
민수기의 제사장 축도(민 6:24-26)는 세 가지로 되어 있다. 그 내용을 히브리어 본문으로 분석하면 다음 특징들이 발견된다.
(1) 점진적으로 내용이 강화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각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단어 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 절은 세 단어로, 두 번째 절은 다섯 단어로, 마지막 절은 일곱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구조는 각각 축복 내용이 점층적으로 강화되어 마지막 ‘평강’(샬롬)의 복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2) 각 축복 내용은 두 구절로 이루어져 있다. 앞의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행동하심에 초점이 있다면(복을 주심, 얼굴을 비추심, 얼굴을 드심), 뒤의 것은 그런 하나님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결과를 강조하고 있다(지키심, 은혜 베푸심, 평강주심).
(3) 각 축복 내용을 보여주는 동사의 주어는 여호와로 명시되어 있다. 이는 복을 주시는 주체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비록 제사장들이 축도를 하고 있지만, 복의 근본적 출처는 하나님이시다.
민수기의 제사장 축도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첫 번째 축도 내용은 여호와의 축복하심과 지켜주심이다. 하나님의 축복하심은 인간의 삶을 유지시킬 뿐 아니라 풍성케 하는 일체의 것, 곧 자손 번성, 풍요의 땅, 건강, 장수, 하나님의 임재 등을 망라한다(신 28:2-14). 하나님의 축복하심은 그 복을 지켜주시는 결과로 이어진다. 지켜지지 않는 복은 일시적인 것으로서 참된 복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지속적인 관심과 보호 속에서 우리들이 받은 복을 더욱 복되게 지켜주시는 분이시다.
(2) 두 번째 축도 내용은 여호와의 얼굴을 ‘빛’이라는 은유로 사용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표현하고 있다. 빛은 밝음, 따뜻함, 즐거움, 깨끗함, 밝히 드러남 등을 함의한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이스라엘에게 비추실 때에 이스라엘은 빛에서 얻어지는 결과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이 두 번째 구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은혜(하난)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베푸는 호의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런 대가가 없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은혜를 의미하는 ‘하난’에서 파생된 히브리어 ‘힌남’은 ‘은혜로’라는 부사인데, 실제로는 ‘아무 대가 없이’ 혹은 ‘까닭 없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은혜는 위의 분이 아래 사람에게 아무 대가없이 베푸는 배려를 의미한다. 은혜는 보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의 행동에 따라 무효화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결단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서, 우리들의 반응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히브리어로 ‘헤세드’(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사랑)라고도 부른다. ‘헤세드’는 우리말로 ‘인자’라고 번역된다.
(3) 세 번째 축도 내용은 백성들을 향하여 얼굴을 드시는 여호와의 적극적인 행동이다. 얼굴빛을 비추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속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수동적 차원이라면 얼굴을 드는 것(나사 파님)은 하나님의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성경에서 얼굴을 든다는 것은 자격이 없을지라도 넓은 아량으로 용납해 주거나 기쁘게 받아주는 것을 의미한다(창 32:20; 욥 42:8-9). 하나님의 용납해 주심은 최상의 복인 ‘평강’을 누리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평강’은 히브리어로는 ‘샬롬’이다. 이 단어는 그 사용 범위가 광범위할 뿐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우리말 성경에서도 다양하게 번역하고 있다. ‘샬롬’의 번역으로 대표적인 것은 평안(창 15:15), 화평(삿 4:17), 안심(창 43:23), 화친(수 9:15), 형통(시 35:27) 등이다. 샬롬의 어원적 의미는 ‘온전하다'(whole)이다. 샬롬의 본래적 의미를 잘 드러내주는 것으로 동사 ’실람‘이 있는데, 그 의미는 ’빚을 갚다‘ ’값을 지불하다‘이다(출 21:34; 레 24:18; 렘 16:18). 남에게 갚아야 할 것을 지불함으로서 거래 관계가 온전해지는 것이 샬롬의 기본적 의미이다. 그런 점에서 샬롬은 상호간의 관계성이 부각되면서 부분보다는 전체성(totality)을 강조하는 통전적 성격을 갖고 있다. 그렇듯이 제사장 축도의 마지막 결론은 온전한 삶이다. 그 안에는 영육간의 온전함이라는 개인적 차원과 함께 공동체 전체의 온전함이라는 보다 큰 개념이 담겨져 있다. 예언자들이 고아나 과부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것을 사회정의의 우선순위로 삼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구약시대 제사장의 중요한 역할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해주는 것이다. 그런 역할이 오늘날에는 공적예배에서 목회자의 축도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제도적 관점으로만 구약의 제사장 축도를 이해한다면, 그 안에 담긴 전체적 의미를 놓칠 수 있다. 구약은 제도에 의한 직책으로서의 제사장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제사장임을 강조한다(출 19:6). 신약에서도 하나님 백성은 ‘왕 같은 제사장들’(벧전 2:9)이라고 지칭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세상을 위하여 하나님의 복을 전할 제사장적 사명이 위임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도자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풍성한 삶을 살도록 돕고 돌보는 거룩한 제사장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