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목사] 영적 무감각의 병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고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눅 21:34-36)
시대에 따라 질병의 종류도 변하고 다양해진다. 성서시대에 가장 무서운 질병은 문둥병이었다. 당시 상황으로서는 치료가 불가능하면서도 전염성이 높아 급속하게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이 병의 특징은 감각기능을 마비시켜 자각증세를 잃는 것이다. 감각을 상실하면, 살아 있으나 실상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감각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감각은 범주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인간에게는 다섯 가지 기본 감각이 있다. 후기 산업사회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감각은 정보일 것이다. 군대의 감각으로는 적의 동태를 살피는 레이다 통신망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감각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모든 존재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영적 감각이 마비되면, 개인과 사회 모두가 방향과 의미를 상실하여 곧바로 파멸에 이르게 된다. 이사야도 이스라엘의 멸망 원인이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하는 영적 무감감에 있다고 역설하였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사 6:9) 무디어진 영적 감각기능을 되찾는 일이 우리 모두가 우선해야 할 과제이다.
본문은 영적 무감각의 원인을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방탕함이다. 방탕함에 해당되는 헬라어 ‘크라이팔레’는 현기증과 같은 어지러움을 의미한다. 중심을 잃음으로 생기는 불균형과 무절제가 방탕함이다. 지나친 사치와 낭비, 과시적 소비 등은 생활의 건전함을 해치는 어지러움 증상이다. 이런 무절제가 타락한 사회 흐름과 겹치면, 헤어나기 어려운 방탕으로 쓸려내려간다.
둘째는, 술 취함이다. 술을 즐기는 이유는 정상적인 감각을 마비시켜 일시적인 즐거움을 얻기 위함이다. 그 결과 쾌락과 행복을 혼동하는 가치관의 혼란이 생긴다. 그런 술 취함은 도덕 불감증으로 이어지면서 전체 공동체를 망가뜨리는 무서운 병폐가 된다.
셋째는, 생활의 염려이다. 살다보면 근심과 걱정이 없을 수 없다. 문제는 염려가 하나님보다 앞서는 것이다. 생활에 대한 염려는 불신앙의 표시이다(마 6:32).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염려를 책임져 주신다(마 6:33). 염려는 가시떨기와 같아서 뿌려진 말씀이 결실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영적 장애물이다. 염려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부족에서 비롯되는데, 그것은 영적 피곤감과 무력감을 가져온다(사 40:27-31). 영적 무감각의 주범 중 하나는 마음을 짓누르는 염려이다.
영적 무감각에 빠지지 않으려면 적절한 대처가 있어야 한다. 본문은 다음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 무감각의 질병은 바이러스와 같아서 일정기간 잠복하였다가 덫처럼 갑자기 찾아온다. 그래서 평상시 자신을 살피는 내적 성찰이 필요하다. 하나님 자녀로서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도록 자신의 영적 상태를 늘 점검하는 세심한 관심과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기도로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내적 성찰과 함께 외부에서 몰려오는 도전과 위협도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것이 늘 깨어 있는 것이다. 영적으로 깨어있다는 것은 기도의 창문을 열어 놓는 것을 의미한다. 기도는 영적 호흡이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쉬지 말아야 한다. 사무엘이 기도 쉬는 것을 무서운 죄로 여긴 것이 그 때문이다(삼상 12:23). 기도는 특별난 것이 아니다. 쉼 없이 지속해야 할 하나님과의 교제이며 영적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