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장(2) 성전을 정결케 하신 예수님

by wgma posted Mar 04, 2017 Views 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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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장(2) 성전을 정결케 하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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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성전을 정결케 하신 예수님
                                                        (마태 21;12-17)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 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 도다 하시니라"(12-13)
비둘기(Dove)는 비둘기 목(目)에 딸린 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비둘기의 특성 중 하나는 어미 새가 가져온 먹이를 새끼에게 직접 먹이지 않고 어미 새가 먹이를 섭취하여 소낭에서 분비되는 것을 새끼 입에 넣어 주어 키운다는 것이다. 비둘기는 팔레스타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새로 먹을 수 있는 새(鳥)였으며(레 11:13-19) 사람들에게 사육되기도 한다. 또한 노아 홍수가 끝났을 때 물이 줄었는지 여부를 알고자 방주에서 내보내진 새였다(창 8:8). 또한 비둘기는 평화와 순결을 상징하며(마 10:16) 성령을 상징하는 새로도 나타난다(막 1:10; 눅 3:22; 요 1:32).

제물로 비둘기가 사용될 때 제사에 쓰여 지는데 가난한 사람들의 제물로 사용되었다(레 5:7; 12:8; 눅 2:24).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도 산모의 정결예식을 행할 때 비둘기를 제물로 드렸다(눅 2:24). 아브라함이 번제를 드릴 때도 사용된 새이다(창 15:9).
여기 성전은 헤롯 성전(Temple)이다. 유대인의 인심을 얻으려고 헤롯이 지었던 성전으로 엄청난 예산과 기간이 소요되었으며 AD 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불타버렸다. 이곳에서 장사하고 돈 바꾸어주고 비둘기파는 자들에게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시면서 강도의 굴혈을 만든다고 책망하시면서 상을 뒤엎고 채찍질하면서 밖으로 쫓아내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하셨는가?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요 2;16) 고 하는 이유를 말씀하시면서 장사하는 자들을 밖으로 쫓아 내셨던 것이다.

여기서 굴혈(Den)은 소굴, 짐승이 사는 굴, 범죄 집단의 본거지를 말한다.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셔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인데 너희가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마 21:13; 참고, 사 56:7; 렘 7:11)라고 책망하셨다. 여기서 굴혈은 범죄 집단의 본거지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구약의 여러 곳에는 동물들이 사는 굴을 의미하는 뜻으로 쓰였다(시 10:9; 104:22; 사 14:23; 32:14).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성전청소를 하시면서 성전을 헐어버리라(요 2;13-19)고 하셨다. 얼핏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처럼 행동하셨다. 실제로 예루살렘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성전은 예수님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전의 실체가 되신 예수님이 오셨기에 그림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기도하는 집이요 혹은 아버지의 집”이요 하면서 강도의 굴혈을 만들지 말라 하시면서 장사꾼들을 쫓아 내셨는가? 그 이유는 아버지 곧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몸으로 완성이 될 때까지는 그 이름이 훼손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일 수있다. 그래서 당시 성전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이권거래가 백성들의 피를 짜는 행위로 만연 되어 있었던 것을 몰아낸 것이 이유였던 것이다.
역사적인 배경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최소한 남자들은 1년에 세 번 이상은 예루살렘 성전에 나와 제물을 바쳐야 했다. 제물의 내용은 소나 양, 그리고 가난한 자는 비둘기를 제물로 드려야 했다. 여기서 문제는 제물들은 반드시 제사장들의 검사를 받아야 했다. 백성들은 자기 집에서 정성을 다해 흠 없이 기른 소나 양을 가지고 와도 검사 과정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럴 때는 불합격 판정을 받는 짐승은 팔고 성전 뜰에서 파는 합격증이 있는 짐승을 사서 제물로 받쳐야 했다. 그런데 제사장들과 짜고 뒤에서는 불합격품을 싼 값에 사서 합격증을 붙여 다른 사람에게 되팔아 그 차액을 제사장들과 나누는 짓을 해 왔다. 물론 성전 뜰에서 제물 장사하는 사람들 역시 아무나 할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사장들은 소위 빽 줄이 있는 사람들이라야 장사할 수 있는 허가권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허가권을 제사장들에게 많은 돈을 주고 사는 경우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외국에서부터 제물을 가지고 올 수 없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와서 사야만 했던 것이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 지역에서 먼 거리를 제물을 가지고 오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환전 상인들도 있었고 성전 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서 환전상을 했으며 환전의 차액을 제사장들과 나누는 것이 통례가 되어 있었다.
이것이 예수님 당시의 성전을 둘러싼 비리들이었다. 이러한 것은 백성들이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순응하면서 살아야 했던 백성들이었다. 이러한 사정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수일 후에는 십자가를 지실 일을 앞에 두고 그냥 모른 채 넘어 가실 수는 없으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순진한 양 같은 백성들을 상대로 합법을 가장한 강도짓을 하는 현장을 그저 두고 가실 수가 없으셨다.
예수님 당시 모순을 통해서 현대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워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대로 다른 형태이기는 하지만 앞에서 말한 예루살렘 성전에서 벌어지는 모순이 재현되는 곳은 없을까? 중세교회가 부패해서 벌려온 일들이 무엇인가? 그 유산이 남겨온 것이 무엇인가? 백성들의 고혈을 짜고 면죄부란 허무맹랑한 것을 만들어서 돈을 거둬들이고 그래서 만든 것이 무엇인가? 지금은 관광거리를 만든 사원들이 유럽지역에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건물들이 모두 예수님(하나님)의 이름으로 만들어 온 것들이 아닌가?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어 좋을지는 몰라도 당시 백성들은 그 사원들을 짓느라 얼마나 힘들어 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슬퍼진다.
교회당 건물은 유행과 같은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대형건물을 유지하다가 교인들의 생활에도 타격을 입히고 사회적으로 웃음거리가 되는 일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경매로 나가는 일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중세시대에는 지금 처럼 성경책이 없어서 보급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집집마다 몇 권식 있는 성경책도 이제는 한물 간 상황, 스마트폰 하나면 각종 번역 성경, 원문성경, 성경 강해 설교 주석 신학이론 무엇이든지 손안에서 볼 수 있고 자료로 쓸수 있다. 이러한 세상인데 어떻게 교회만 2천년전의 식으로 혹은 5백년전의 수단과 방법들을 모방해서 동일한 생각에 빠져 있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이란 본질과 형태를 구별하지 못한 제한된 지식과 전통에 묶여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제한된 지식이라는 말은 미숙한 지식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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