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사무엘 목사] 그리스도 예수님을 본받아(5) 마 5:17-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 5:18)
고난 주간에 말씀이 온전히 성취됨을 감사드리며 주님을 본받자!
교독문: 129(종려주일), 예배의 부름: 시 118:22-25
찬송: 찬송 141장(통 132장), 140장(통 130장), 예전색: 보라색
일자: 2017년 4월 9일 중려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대전 감람원교회) www.samuelyun.com
오늘은 종려주일(Palm Lord’s Day)인 동시에 고난주일(Passion Lord’s Day)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러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오실 때 감람산 벳바게에서부터 출발하여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실 때 나귀새끼를 타심은 스가랴 9:9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시온의 딸에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고 하셨습니다. 만왕의 왕께서 이런 초라한 모습으로 입성하시는 메시야를 아이들은 감람산에 있는 종려나무의 가지를 꺾어서 이를 들고 열심히 환영을 한 것입니다. 과거에 왕이 취임할 때도 그러했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장군을 맞이할 때도 그렇게 환영을 했으나, 예수님의 입성 행렬에는 팡파레도, 화려한 장식도, 대대적인 환영식도 없고 너무도 초라했던 것입니다.
당시 제자들이나 사람들이 기대했던 메시야 입성은 하늘의 천군천사의 찬양이 우렁차게 울리면서 화려한 금면류관을 쓰고 하나님의 아들이 좋은 병거를 타고 천군의 호위를 받으며 입성하셔서 당시 로마의 앞잡이를 다 몰아내고 왕으로 취임하셔서 이스라엘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로 발전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예수님께서는 평소의 복장 그대로 하며, 제자들은 너무나 허전했든지 자기들의 겉옷을 도로에 깔고 주님을 태운 나귀새끼가 그 위로 입성하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의 영광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사실은 십자가를 지러 입성하신 것을 제자들조차 깨닫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오늘은 우리 마음속에 주님을 메시야로 환영하는 주일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교회들에게 종려주일을 크게 지킵니다. 예배시간에도 종려나무를 흔들며 주님을 메시야 왕으로 환영하며, 고난당하신 주님을 기억하며 성례식을 가집니다. 또한 예배 후 교회와 동네 주변을 행진하며 “호산나, 호산나[뜻은 ”우리를 구원하소서 Save us!“ 시 118:25]”하며 온 세상을 향해 외칩니다.
2차 세계대전 종료 얼마를 앞두고 종려주일 아침(1945년 4월 5일)에 독일에서 나찌 권력에 항거한 본 훼퍼 목사는 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동료 죄수들은 평소 그의 설교와 인격에 많은 감화를 받았는데 모두들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본 훼퍼는 그들에게 “나를 위해 울지 마십시오. 저는 오늘 천국으로 가는 날입니다. 저의 영혼의 생일입니다. 이제 예수님 안에서 영생이 시작되는 날이니 슬퍼하지 마십시오”하며 찬송 부르며 형장으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기쁨과 평화를 회복해야 겠습니다. 예수님을 회복하면 말씀이 회복되고 이런 기쁨이 회복됩니다.
본훼퍼목사(오른쪽 2번째)
올해 사순절 기간 중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본받아”라는 주제를 가지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주님을 닮기를 원하며 오늘까지 지냈습니다. 산상수훈을 묵상하며 주님의 품성을 배우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구약의 성취자로 오셨고, 구약을 완성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마 5:17) 여기서 율법과 선지자란 구약성경말씀 전체를 가르키는 말입니다. 구약의 말씀은 메시야가 오심을 전하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 7:12을 황금률이라고 합니다. 구약을 요약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Therefore all things whatsoever ye would that men should do to you, do ye even so to them: for this is the law and the prophets.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대접하는 것이 예배의 정신입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남’이란 처음 대상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바라는 대로 내가 먼저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주님께 사랑을 요구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그만큼 사랑합시다. 하나님께 받기 전에 먼저 드립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이웃에게도 먼저 베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즉 구약 전체의 메시지라는 말입니다.
또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질문하기를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6-40)하셨습니다.
또 사도바울은 로마교회에 쓴 서신에서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 13;8-10)고 하셨습니다. 율법보다는 믿음을 강조한 사도바울조차도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고 말씀합니다. 율법이 있기에 우리가 죄를 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죄의 생활을 버리고 의의 생활로 인도하는 것이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롬 7:14)고 말합니다. 이유는 선을 행하기 원하는 바울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롬 7:21).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추구하면서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따르고 있는 모순된 자신을 발견합니다(롬 7:25). 여기서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있기에 예수님을 진정 만날 때 죄의 권능은 죽고 은혜와 사랑이 나를 지배하게 되어 새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육신을 좇지 않고 성령을 좇아 행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십니다(롬 8:2). 이런 자를 예수님의 보혈로 의롭다 함을 얻기에 용서받은 죄인, 즉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십니다(롬 8:4).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나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며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롬 8:6-7).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일점일획(히브리어 요드나 헬라어 이오타)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않고 다 이뤄집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섭리하시며, 말씀 가운데 인도하십니다. 그 말씀은 태초에나 종말에나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여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납니다.(히 4:12-13) 그래서 구약과 신약의 말씀은 짝을 이루고 있고 둘이 함께 보충될 때 온전케 됩니다. 성경을 흔히 베스트셀러라고 표현합니다. 저는 이런 말을 들을 때 별로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성경은 일반 책처럼 여기면 안됩니다. ‘성경’이란 일반 책과 구별되었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생명의 말씀이 기록된 구별된 책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베스트셀러와 비교가 되지 않는 천국의 책입니다.
히브리어 원어로 기록된 성경말씀
그러므로 우리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고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을 것입니다(18절). 계명 중 크든 작든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치 예배 순서가 모두 중요하듯이 말입니다. 이사야가 중요하다면 하박국도 동일하게 중요합니다. 모세가 중요하듯이 여호수아도 중요하며 모르드개도 중요합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5:20절) 하십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인간 중심으로 살아갔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골방이 아니라 거리에 나와 기도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이마에 차는 경문을 좀더 큰 것을 달고 다니며, 옷술(기도할 때 입을 맞추는 율법의 상징)을 큰 것으로 합니다.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에 앉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여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했습니다.(마 23:5-7). 또 자신이 구제하는 것을 선전하였습니다. 오른 손이 구제하고 착한 일을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를 만큼 은밀히 하지 않고 떠들면서 자랑했습니다. 세리와 죄인과 창녀들을 업신여기면서 자신들의 종교 활동에 대해 자만했습니다. 이들은 자기도취에 살았고, 문자적으로 율법을 지켰지 율법의 정신인 의, 인, 신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이었습니다. 욕심이 많습니다. 밥티스마 [세례자/침례자]요한이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한 대상이 누구였습니까? 초신자들입니까? 불신자들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바로 당시 제일 잘 믿는다고 자부하던 서기관, 바리새인, 제사장, 율법학사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은 23장에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자들이여’라고 책망을 들었던 자들이 바로 이들 부류들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목사, 장로, 집사, 권사, <
기독교 지도자들이 ‘독사의 자식들아’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자들아’라는 지적에 진심으로 회개를 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현대인은 세 가지를 상실했습니다.
첫째는 이웃과 친구를 잃어버렸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조용히 친구와 만나 마음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한지 오래 지났습니다. 옛 친구를 만나도 너무나 많이 변한 모습에 서로들 놀랍니다. 또한 이웃에 대한 관심이 점점 적어집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과 한 번도 인사를 나눈 적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기 부인만 반상회에 참석하여 통성명정도 하지, 한번도 옆에 사시는 이웃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눈 적이 없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같은 층에 살아도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가도 눈도 맞추지 않고 지냅니다. 이웃과의 단절이라고 할까요?
둘째로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인생관도 인생의 목표도 잊어버리고 세파에 휩싸여 이리저리 밀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울증, 히스테리적 반응, 정신질환 증세로 제정신이 아닙니다. 정체성 위기(identity crisis)란 말이 비단 청소년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조용히 앉아 몇 시간이고 명상을 하며 잃어버린 자화상을 회복해야 합니다. 수양회나 기도원에 가서 집회를 인도할 때 가끔씩 자화상을 그리도록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쓰게 하거나, 자신을 친한 친구처럼 생각하고 자신과 대화를 하거나, 아니면 고호처럼 자화상을 다섯장 그려보도록 합니다. 화가 고호는 자신 속에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지를 찾기 위해 자화상을 여러 장 남겼습니다. 우리의 얼굴 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는지요? 연변 용정에 있는 시인 윤동주의 생가 입구에 있는 비석에 ‘자화상’의 시가 적혀 있습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이 시에서 윤동주는 당시 일제에 항거하고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얼굴에 나타난 자학, 강박 관념, 순교 정신이 우물, 달, 구름, 하늘, 파아란 바람, 가을, 추억의 소재로 자신에게 나타난 모습을 보고자 하는 노력이 담긴 시가 많은 사람에게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사람 나이 40이 되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현대인이 상실한 세 번째 것은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영혼이 이 세상을 떠날 때 돌아갈 고향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없이 살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할수록 무신론이 성행합니다. 그러나 미국의 청소년들이 연속적인 총기사건에 시달리니 미국의 어느 주에서는 학교교과 과정에서 진화론을 집어 치우고 창조설을 가르치며 학교에 십계명을 부착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오늘날 예수 믿는 성도는 세 가지 상실을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잃었습니다. 성전에서 예수님이 남으셔서 성경공부하고 계시던 것도 모르고 마리아와 요셉은 하룻길을 가다가 그제야 소년 예수가 없어진 것을 알고 찾으러 갑니다. 이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상실해도 마냥 내 속에 계시는 것같이 착각하며 살아갔던 때가 한두번 아닙니다.
두 번째는 말씀을 잃었습니다. 홍수가 나서 온세상이 물바다가 되어도 정작 당장 마실 물이 없어 갈증을 느끼듯이, 수많은 설교와 성경공부, 인터넷으로 오르는 말씀 속에서 영적인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참된 기쁨과 평화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해도 기쁨이 없습니다. 교회에 오래 다녀도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 말씀, 그리고 기쁨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종려주일에 바로 이런 기쁨을 회복합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맞아들이고, 메시야로 모시면 우리 마음에 기쁨이 충만합니다. 잃었던 신앙을 회복하며, 진리를 회복하며, 천국의 의를 회복합시다.
예수님께서는 예언서에 말씀하신대로 행하심으로 성경을 성취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모든 사역은 성경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대로 이 세상에 오셨고,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습니다.(고전 15:4-6). 예수님의 모든 사역은 구약의 말씀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막 15:28은 성경 기록이 성취된 내용인데 우리나라 개역이나 개역개정에서 현대영어역 성경처럼 이를 “없음”이라고 해버렸습니다. 우리나라 본래 성경인 “구역”에는 있습니다. 킹제임스역에도 있습니다. “이로써 그가 범법자들과 함께 계수 되었도다 하시는 성경 기록이 성취되었더라 And the Scripture was fulfilled, which saith, And he was numbered with the transgressors.” 이 말씀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성경에다 이 말씀을 손으로 쓰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 5:18) 하시면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5:20)고 하십니다. 우리 성경에 “없음”이라고 처리한 모든 말씀이 다시 원상태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1) 마태 17: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을 통하지 않고는 나가지
아니하느니라 Howbeit this kind goeth not out but by prayer and
fasting.” [사탄은 금식을 두려워 함]
2) 마태 18:11,
“인자는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려고 왔느니라
For the Son of man is come to save that which was lost.”
[주님의 오신 목적이 구원인데 영지주의 성경에서 이를 삭제함]
3) 마태 23:14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과부들의 집을 삼키고 겉치레로 길게 기도하나니 그런즉 너희가 더
큰 정죄를 받으리라
Woe un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 for ye devour
widows' houses, and for a pretence make long prayer: therefore
ye shall receive the greater damnation.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이 이를 성경에서 삭제해 버림]
4) 마가 9:44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아니하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Where their worm dieth not, and the fire is not quenched.
5) 마가 9:46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아니하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Where their worm dieth not, and the fire is not quenched.
[막 9:48 한 구절만 남기고 막 9:44과 막 9:46을 삭제해 버림으로 지옥을 약화시킴. 여호와의 증인 성경에는 48절도 삭제함]
6) 마가 11:26
그러나 너희가 만일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범법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하시니라
But if ye do not forgive, neither will your Father which is
in heaven forgive your trespasses. [용서에 대한 교리 삭제]
7) 마가 15:28
이로써 그가 범법자들과 함께 계수되었도다 하시는 성경 기록이
성취되었더라
And the scripture was fulfilled, which saith, And he
was numbered with the transgressors. [사탄은 성경말씀 성취를 싫어한다]
8) 누가 17:36
두 남자가 들에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지리라 하시니라
Two men shall be in the field; the one shall be taken, and
the other left.
9) 누가 23:17
(이는 그 명절이 되면 그가 필연적으로 반드시 한 사람을 그들에게
놓아주어야 하기 때문이더라)
(For of necessity he must release one unto them at the feast.)
10) 사도행전 8:37
빌립이 이르되, 만일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받을 수 있느니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노라” 하니라
And Philip said, If thou believest with all thine heart,
thou mayest. And he answered and said, I believe that Jesus
Christ is the Son of God.
11) 사도행전 15:34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라는 거기에 그대로 머무는 것을 기뻐하더라
Notwithstanding it pleased Silas to abide there still.
12) 사도행전 28:29
그가 이 말들을 하매 유대인들이 떠나서 자기들끼리 큰 논쟁을 벌이더라
And when he had said these words, the Jews departed, and had
great reasoning among themselves.
13) 로마서 1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두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be with you all. Amen.
내일부터 시작되는 고난 주간에 진심으로 성경말씀을 회복하며, 예수님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철저한 회개가 있기를 바랍니다. 더욱 주님 앞에 경건하게, 진실하게, 성실하게, 겸손하게 살아서 주님을 기쁘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7년도 고난주간 매일 묵상/가정예배 자료]
4월10일(월) 찬송 147장(통136), 144장(통 144장) 성경: 막 11:15-26 (성전 정화, 무화과)
11일(화) 찬송 143장(통141), 145장(통 145장) 성경: 마 24:1-28 (종말에 일어나는 일)
12일(수) 찬송 146장(통146), 147장(통 147장) 성경: 마 25:31-46 (심판주로 오심)
13일(목) 찬송 148장(통142), 149장(통 147장) 성경: 마 26:1-75 (최후만찬,감람원에서)
14일(금) 찬송 150장(통135), 151장(통 138장) 성경: 마 27:1-50 (성금요일에)
15일(토) 찬송 154장(통139), 156장(통 없음) 성경: 마 27:51-66 (성도들의 부활)
윤사무엘 목사 (Samuel Yun 尹三悅)
연세대 신과대 졸 (신학사),연세대 대학원 신학과 졸 (신학석사, 구약학 전공)
총신 (예장 합동) 졸 M.Div (Equiv)]
University of Dubuque Thological Seminary 졸 (M.A.R. 종교학)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 in Chicago 졸 (M. Div.)
Harvard University Divinity School 졸 (Th.M. 고대근동학전공)
Boston University, School of Theology (Th.D. 과정이수, 구약학)
Cohen University & Theological Seminary (Th.D., 구약학)
Latin University (Ph.D. in Religion 종교학)
Faith Theological Seminary & Christian College 졸 (Ph.D. in Theology 구약학박사)
Universidad Cristiana del Bolivia (UCEBOL)
Honorary Doctor of Education (명예교육학 박사)
현 감람원교회(담임목사),감람원 세계선교회 및 성경연구소 대표
현 NYSKC (예배회복운동) 학회 (Learned Society) 학회장
김한나 기자 churchus2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