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목사의 성경지식 13
예배에 대한 바른 이해 2
예배란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자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의 자세는 무릎을 꿇는 자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무릎 꿇는 자세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자세다.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하는 자의 자세이다. 실제로 예배의 어원은 무릎을 꿇다에서 나왔다. 흥미로운 것은 창세기 1장에서부터 등장하는 복이란 단어의 의미이기도 하다. 아래 사람이 윗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받을 때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받는 자세이다. 어찌했든 만남은 행복한 만남이어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인간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팔복에서 이야기 해보자. 행복이란 바른 관계에서 온다. 마태복음 5장에 등장하는 ‘복’이란 ‘행복’을 의미한다. 8가지 행복한 사람 중에서 1-4의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하나하나 들어다 보자.
가난한 자로 나아가라(마태 5:3)
여기에서 가난함은 문자 그대로의 가난함이다. 세상을 초월한 자처럼 마음을 비운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서 하나님이 아니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비굴하게 여겨지더라도 하나님을 만나야 살 수 있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자세이다. 이러한 자가 하나님과의 행복한 만남을 가지게 된다. 왜 행복한가? 왜 예배하는 것이 기쁜가? 그것은 천국 곧 하나님나라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시작된다. 하나님이 나의 삶에 들어오신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간절한 사람 곧 영이 가난한 자이다. 이런 자는 자신의 문제에 있어서 선포되어지는 말씀을 통해 답을 가지게 될 것이다.
애통하는 자로 나아가라(마태 5:4)
애통함이란 슬퍼함이다. 슬퍼함의 바탕에는 죄의식이 들어있다. 나같은 자가 감히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다니! 누가복음 18:9-14에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나온다. 바리새인은 자신의 의로움을 믿고 자신의 자랑거리를 하나님께 늘어놓는다. 만일 바리새인이 잘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의로움이다. 그러나 “세리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누가 18:13)하며 기도한다. 이에 바리새인이 아닌 세리가 의롭다하심을 받고 내려갔다(누가 18:14). 여기에서 의롭다하심을 받았다 함은 하나님이 만나주셨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예배하러 가서 정말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졌는가? 애통하는 자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행복한 이유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 때문이다. 위로의 내용은 ‘너는 내 자녀다’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온유한 자로 나아가라(마태 5:5)
온유함이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와서 배우라”(마태 11:28-29)고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겸손이란 가난한 자세를 말하고 온유란 맡기는 자세를 말한다. 그럼 맡긴다함은 실제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의 순종이다. 예배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다.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맡긴다고 기도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판단하며 경홀히 듣는다면 그것은 온전히 맡기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예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듣는 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내가 가진 모든 문제의 답이 됨을 믿는 자는 삶의 쉼을 얻게 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나아가라(마태 5:6)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만남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예배자는 하나님과 관계가 목적이 된다. 하나님과 더 긴밀한 관계를 맺기 위한 삶의 자세가 하나님께 참된 예배자의 자세이다. 모든 것의 우선순위자가 하나님이 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마태 6:33).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려 가는 설레임이 있는가? 배고프고 목마름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갈구하는가? 이러한 자는 예배함 그 자체가 행복이 된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관계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에녹이나 홍수에서 구원받은 노아의 삶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었다. 왜 우리는 예배하러 가는가?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목마름으로 소원하기 때문이다. 예배함이 행복한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 행복한가? 그리고 그 예배하는 시간이 기다려지는가? 당신은 행복한 하나님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