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출 14:10-14)
2017. 6. 25 아가페선교교회 주일설교
오늘은 북한의 남침으로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든 한국전쟁 67주년입니다. 기념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6.25 전쟁은 그 동안 잊혀진 전쟁이었습니다. 전후 세대들이 전쟁을 까마득히 잊고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유엔에서도 한국전쟁은 잊고 싶은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한국전쟁을 새롭게 평가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한국전쟁은 절반의 승리가 아니라, 세계사를 바꾼 승리의 전쟁이었습니다.
6.25 전쟁이 동족상잔의 비극이 아니라, 공산주의의 팽창을 막고 자유민주주의 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엄청난 승리의 전쟁이었습니다. 또한 6.25 전쟁을 통해 북에서 월남한 피난민들이 납북자가 월북자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월등히 많았습니다. 월남한 자들은 주로 지식인 층, 중산층 이상의 엘리트들이었습니다. 이 남쪽에 기반이 없는 고로 주로 도시에 정착하면서 교회를 세우고, 왕성한 상업 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경제를 일으켰습니다.
반면에 지식인 중상류층, 자본가들이 대거 떠난 북쪽은 지식공동화가 이루어져 지금 최악의 가난한 나라, 불량국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역사 속에서 지구상에 전쟁이 없었던 때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상은 온갖 종류의 전쟁가운데 있습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상당히 전투적입니다. 부부사이나,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전쟁입니다. 일상적인 문제에도 무슨 전쟁이란 말이 붙습니다.
전사이신 하나님
(시 24:7)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오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하나님은 전사이십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전쟁에 능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무렇게나 전쟁을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기준이 있습니다. 바로 십계명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에 근거해서 선악간에 심판을 하시고, 통치하십니다. 십계명에 근거해서 전쟁에 임하십니다. 십계명에 계율에 따라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십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전쟁에 임할 때에 앞세운 것은 하나님의 법궤였습니다. 이 법궤의 내용물은 바로 십계명 두 돌판입니다. 싸움꾼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 자녀들을 위해 싸우십니다. 원수 마귀와 언제나 이기는 싸움을 싸우십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전쟁은 언제나 승리케하십니다.
나의 행하는 구원을 보라!
(출 14:13)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본문의 상황은 절망적입니다. 이스라엘이 승리할 확률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 낮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모세를 원망하고 대적합니다. 이 때에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은 ‘너희는 잠잠히 나의 행하는 구원을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싸움은 대상과 목적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위해서 악과 싸우십니다. 우리를 구워하시기 위하여 싸우십니다. 존 번연은 “이상하다. 마귀와 더불어 대적해야 할 성도들이 자기끼리 싸우고 있다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의 교회들이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고, 싸움의 본질을 모르고 엉뚱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째서 전쟁을 주관하십니까? 하나님은 마귀와 더불어 대적하기 위하여 싸우십니다. 밥 얀디안은 ‘다윗, 섬김의 리더십’이란 자신의 책에서 교만한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상대로 싸우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싸움의 상대가 누구냐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왜 싸워야 합니까? 누구와 싸워야 합니까?
상대가 보이지 않는 전쟁
(엡 6:12)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하나님의 싸움은 언제나 상대가 명확했습니다. 싸움의 대상은 악의 세력인 마귀입니다.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흔히들 6.25를 동족상잔의 비극이라고 하지만, 이는 틀린 말입니다. 미국과 소련과의 전쟁도 아닙니다. 그 배후에는 공산주의가 있습니다. 공산주의의 배후에는 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10 가지 재앙을 애굽 사람들에게 내리십니다. 피, 개구리, 이, 파리, 생축병, 독종, 우박, 메뚜기, 암흑, 장자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열 가지 재앙은 갈수록 강해지는 재앙입니다. 하나님은 왜 무자비할 정도로 애굽에 재앙을 내립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죄악이 관영하도록 400년이나 기다리셨습니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다고 할 때까지 참아 기다리십니다. 애굽이 악이고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이 싸움은 이 창과 방패를 가지고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사단과의 영적인 전쟁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원수를 멸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원수 마귀를 무찌르는 것이 곧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 영적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지상최대의 전쟁이었습니다. 마귀와의 최후의 영적전쟁입니다. 영적전쟁은 곧 기도전쟁입니다. 예수님은 그 때문에 겟세마네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생명 걸고 기도하셨습니다.
세상은 지금도 전쟁 중입니다. 환율전쟁, 무역전쟁, 시간전쟁, 정보전쟁 등등 피 말리는 전쟁 중입니다. 특히 국제사회는 정글의 법칙 즉 강자의 논리가 지배합니다. 국내의 싸움은 말리는 사람도 있고, 재판도 있어서 약자를 보호합니다. 어디 하소연할 대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냉혹합니다.
동물의 세계는 정말 잔혹합니다. 약하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저는 100m 달리기가 정말 싫었습니다. 전속력으로 달려야 하는데, 얼마나 숨이 찬지 모릅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동리 별로 400 계주를 하는 선수들을 보면 굉장히 멋있어 보이고 부러웠습니다. 달려야 합니다. 동물들은 달리기 선수들입니다. 상대보다 빨라야 먹히지 않고, 상대보다 빨라야 먹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덩치가 크든지, 빠르든지, 강해야 합니다. 사단은 정말 악독하고 간교한 지해가 있습니다. 사단은 절대 온정을 베풀지 않습니다. 그 놈이 온정을 베푸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한 순간에 낚아채기 위한 술책입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감당 못할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까? 되는 일이 없고, 복잡하게 일이 꼬이고 있습니까? 길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문제의 본질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싸움의 목적과 대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입니다. 바로 마귀와의 전쟁입니다. 내 힘으로 마귀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해야 합니다. 영적전쟁은 기도전쟁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전쟁
(출 1: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다윗은 전쟁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려서 양을 칠 때에는 사자와 싸웠고, 블레셋의 골리앗과 용맹하게 싸웠습니다. 그는 용맹하게 전쟁터를 넘나들었고, 전쟁을 할 때마다 승리했습니다. 그 승리의 비별이 무엇입니까? 다윗은 전쟁에 능한 하나님께 늘 기도하고 전쟁의 전략을 구했습니다. 다윗은 싸울 때마다 하나님께 물어봅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이르되 블레셋을 치러 가리이까”(대상 14:10) 또 “어디로 가리이까? 언제 올라가리이까?”(대상 14:14)
다윗의 전쟁은 기도전쟁이었습니다.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전쟁은 다윗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쟁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문제, 어떤 전쟁도 내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우시게 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원수는 나보다 강하고 악독하고 간사해서 나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쟁에 임할 때에 다윗처럼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과 전략을 구해야 합니다. 이 때부터 이 전쟁은 나의 전쟁이 아니라, 전쟁에 능한 하나님의 전쟁이 됩니다.
알라를 위한 전쟁 vs 여호와의 전쟁
지금 전 세계를 경악케 하고 극성을 부리는 이슬람의 전쟁을 보십시오. 저들의 전쟁은 자하드라는 ‘알라의 싸움’에 그들이 나와서 싸우다가 도시가 불타고 그들이 비참하게 죽어갑니다. 이슬람교도들은 ‘알라를 위한 전쟁’을 합니다. 그들은 알라의 이름으로 주저함도 없이 폭탄테러도 하고 자살테러도 합니다. 그들의 코란에는 알라를 위해 죽으면 알라가 자비를 베풀고 알라가 있는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알라의 이름으로 죽어서 부인을 과부로 만들고 자녀들을 고아로 만듭니다. 또한 이슬람에서는 이들을 순교자로 칭송하고 유족들을 돌보아줍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전쟁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위한 전쟁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대신 싸우시는 전쟁입니다. 당신의 자녀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친히 앞장서서 싸우십니다. 하나님은 전쟁에 능한 여호와이시기 때문에 언제나 그 싸움은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싸움에서 너희들은 힘쓰지 말고, 방해하지 말고 잠잠히 구경만하라고 하십니다.
6.25는 여호와의 전쟁이었다.
6.25는 하나님의 전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하나님의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동방의 작은 나라,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위해 미국과 유엔이 참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나라를 움직인 결과입니다.
공산주의는 종교는 아편이라고 합니다. 저들은 그 중에서도 유독 기독교를 가장 미워합니다. 그러나 교회와 목회자들이 저들의 정체와 의도를 모르고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그들 역시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오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것이 사실 교회의 책임이요, 목회자들의 책임입니다. 일본의 신사참배 때문에 6.25가 일어났습니다. 6.25의 참화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교회와 목회자들이 타락하고 힘을 잃었습니다. 목회자들이 공산주의 악의 정체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제2의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한국은 마지막 때에 쓰시고자 하나님이 선택하신 나라입니다. 6.25 때에는 이승만이라는 강력한 반공지도자가 있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강력한 반공지도자가 없습니다. 더구나 교회가 타락하고 힘을 잃었습니다. 또 다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통해서 하실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교회가 기도하고 회개할 때입니다.
싸움의 기술
‘싸움의 기술’이란 영화가 있습디다. 복수의 일념에 불타는 학생이 폭력배에게 싸움을 가르쳐 달라고 졸라대는 그런 영화입니다. 어린 학생이 얼마나 조폭에게 시달렸으면, 싸움 기술을 배우겠다고 조폭을 사부로 삼았겠습니까?
싸움의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다윗에게서 그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그 기술을 우리 자녀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합니다. 다윗의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우리 자녀들이 시시한 놈팽이들에게 당하거나, 저들에게 종노릇하거나, 빌어먹지 않습니다.
싸움을 가장 잘 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당한 싸움이 영적인 문제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싸움이 하나님의 전쟁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싸움터입니다. 우리는 매일 살벌한 전쟁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싸여 이길 수 있습니까? 싸워야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싸우고 이길까요?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성경의 원리에 따라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전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웃집 아이들을 대하는 기준과 내 자녀를 대하는 기준이 다르듯이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다루는 방식과 당신의 백성들을 다루는 방식과 기준이 다릅니다. 이방인의 경우에는 악을 행할 때에 그 악이 계속해서 쌓이도록 방치하시만, 당신의 백성들은 때로 회초리를 쳐서라도 바른 길로 가도록 간섭하십니다. 지금의 우리 조국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제 남북통일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교회들이 회개하고 조국과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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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페선교교회(담임: 강진구 목사)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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