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Holy Sprit?(행 19:1-7)
돈을 벌려면 회사에서 인정받도록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비즈니스를 배우고 사람들을 잘 만나고,경영을 잘하고 소비를 줄요야 합니다. 공부를 잘 하려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남들이 놀 때, 잠 잘잘 때에 시간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건강관리를 잘 하려면, 당연히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음식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병이 나면 약국이나 병원을 찾아야 하고, 병원에서는 의사의 지시를 잘 따라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는 뭐하는 곳입니까? 교회는 공부기술을 배우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가 공부의 신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교회가 취직이나 창업을 도와주거나 가르쳐주지 못합니다. 이러 부분은 여러분들이 아마도 저보다 훨씬 잘 할 것입니다. 교회가 돈 버는 기술을 가르치지 않습니다.목사가 여러분들의 비즈니스를 도와주지 못합니다. 이런 일에 관해서는 여러분들이 저보다 훨씬 전문가이고, 잘 할 것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기관입니다. 목사는 영적인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성경도 역시 영적인 책입니다.오순절 날에 성령이 임해서 세워진 기관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성령이 운행하시고 지배하는 기관입니다. 따라서 이 시대의 교회는 순복음 교회뿐만 아니라, 장로교 감리고 성결교 등 모든 교회가 오순절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고서는 성경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믿을 수 없습니다. 성경의 저자가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목사의 설교는 당연히 영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목사가 영적인 사람이 되었을 때에, 영적인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영적인 체험이 없는 사람이 목회를 한다고 하니,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성도들을 부자 만들지 못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를 만들지 못하지만, 교회는 성도들의 영적인 문제를 도와주고 가르칩니다. 먼저 영혼이 잘되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고 형통하기 때문입니다(요삼 1:2).
(행 19:1)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을 때에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은 ‘성령이 있음도 모른다’ 고 대답합니다. 에베소는 항구도시로서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로서‘아시아의 寶庫(보고)’라고 할 만큼 번창한 도시입니다. 그러나 에베소의 명성이 점점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에베소 사람들은 이전부터 섬겨오던 Ademy 여신을 더 열심히 섬겼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숭배했던 아데미 여신은 가슴에 유방이 24개가 달린 풍요의 여신입니다. 아데미 여신의 머리에는 바벨론을 상징하는 성이 있고, 몸에는 특이한 사냥꾼 니므롯을 상징하는 사자, 호랑이, 사슴 등의 다양한 짐승들의 부조로 새겨져 있습니다. 매년 5월 아데미 여신의 축제날이 되면 유방과 같은 수의 24명의 흰 옷을 입은 여자 사제들이 앞에 서고, 뒤에는 자신의 고환을 아데미 여신에게 바친 남자 사제들이 여신의 호위병처럼 뒤따릅니다.축제의 행렬은 아데미 신전에서부터 시작해서 시청으로 향합니다. 에베소 시청 앞에는 또 하나의 아데미 여신상이 밖을 향하여 서 있는데, 두 개의 여신상이 만나게 되면 군중들의 열광은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 에베소의 총독은 관저에서 나와서 아데미 여신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총독의 인사를 받은 아데미 여신상은 에베소 광장을 거쳐 부둣가에 이릅니다. 여기서 소들을 바치는 희생 제사가 드려지는데, 남자 사제들이 24마리의 황소 고환을 잘라 아데미 여신의 목에 걸어 주면, 군중들이 함성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무용수들은 음악에 따라 춤을 추고, 도살된 소들이 제단에 올려지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아데미 축제가 무르익게 된다.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편하고 행복해야 하는데, 반대로 사람들은 점점 어려움을 겪고 외로움을 느낍니다. 되는 일이 없고 길이 보이지 않으면, 에베소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찾지 않고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우상과 간음은 언제나 같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한 마디로 돈과 쾌락입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행19:2) “너희가 믿을 때(believed)에 성령을 받았느냐(received)”
바울 사도의 질문을 “너희가 믿은 이후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해석하지 말아야합니다. 얼마 전 구원 파들이 이 구절을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케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구원받았느냐? 언제 성령 받았느냐?’ 는 구원파들의 질문에 사람들은 당황하게 됩니다. 믿었을 때(believed)와 받았느냐?(received)는 시제가 동일하게 과거형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동시에 성령을 받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파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이단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행 19:2)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는 지의 여부에 대해서도 듣지 못했다.”
이들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요한의 세례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은“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실 이는 불로 세례를 베풀리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 제자들은 요한의 말대로 이미 메시야가 오셨고, 그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셔서 마침내 오순절 날에 성령이 임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행19:3)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그들은 성령이 주어졌음에 대해서 듣지도 못하였습니다. 이들은 성령체험도 없었고,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습니다. 이들은 성령 없이 예수를 믿었고, 성령 없이 예수를 전했습니다. 사실 이들의 믿음은 올바른 믿음이 아니고, 올바른 복음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의 제자들에게서 대답을 들은 후에 그들을 가르쳤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베푸는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세례였습니다. 이 요한의 세례를 물세례라고 합니다.
요한의 세례와 성령세례
세례의 역사적인 배경은 노아 홍수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넌 사건, 그리고 할례의식에 있습니다.
1) 노아의 방주 : 아무리 수영을 잘 해도 홍수에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노아의 8 식구들 외에 세상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2) 홍해 사건 : 이스라엘은 홍해를 마른땅같이 건넜으나, 바로의 말을 탄 정예 부대는 완벽히 수장되었습니다.
3) 할례 의식 : 할례는 곧 육신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세례의 역사적인 배경 세 가지(노아의 방주, 홍해사건, 할례)의 공통점은 죽음입니다. 마찬가지로 세례의 의미는 죽음을 통한 죄의 씻음과 그리스도와의 연합(unity)을 의미합니다.
EX) 세례식을 하는데, 한 청년이 한사코 오른 손을 물속에 집어넣지 않기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소매치기로 먹고 사는데, 이 손까지 세례를 받으면 무엇으로 먹고 삽니까?’ 하더랍니다. 소매치기도 도둑놈도 세례 받으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요한의 물세례와 달리 성령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연합이 이루이지는 세례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운명 공동체가 되는 실질적인 세례를 말합니다. 성령세례는 곧 생명의 세례입니다.
(행19:6) “바울이 안수하매 성령이--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바울이 안수하자 그들은 즉시로 성령을 받았고, 방언(찬양)도 하고, 예언도 하게 되었습니다. 불붙은 그들의 감정은 찬양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방언이 주어짐은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항상 찬양을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일반적인 기도와 방언기도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오래 기도를 하지 못하지만, 방언기도는 오래할 수 있습니다. 방언기도를 하다보면,기도가 감사로 바뀌고 찬송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기도가 소총 정도의 위력이라면,방언기도는 원자폭탄 위력, 방언찬양은 수소폭탄 이상의 위력이 있습니다. 마귀를 물리쳐 이길 수 있는 최상의 권능무기가 바로 방언기도 곧 방언찬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Why Holy Spirit?
중요한 사실은 우리에게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재(살아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우리가 절대로 주를 믿고 이 자리에 올 수 없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있으므로 우리는 망할 수도 실패할 수도 없고, 그로부터 도망할 수도 피할 수도 없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점이 정리가 되지 않으면 신앙의 진보가 없습니다. 자꾸만 의심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오래 참지 못합니다. 이 시대가 바로 그렇습니다. 성령의 임재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무시하고 성령의 일에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EX) 집을 지을 때 기초가 잘못 되어 있고, 벽돌 첫 장을 잘못 놓으면 계속해서 벽돌을 올려놓을 수 없습니다. 한 손으로 벽돌을 잡고, 또 한 장을 올리다 보면 다시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 맙니다.그러나 현대인의 조급함은 기초공사를 하지 않고 반석위에 집을 짓지 않고 모래위에 집을 짓습니다.
왜 성령입니까? 성령충만은 신앙생활의 기초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오심은 바로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나를 부르시고, 나를 인정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찾아오신 사건입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구약의 모든 역사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결국 나를 찾아오시기 위한 사건입니다. 나를 위해 모세가 광야에서 40년간 기도했으며, 나를 위해 다윗이 고난을 당하고, 나를 위해 주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나를 위해 바울이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파했으며, 이 땅에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흘려졌습니다. 오직 아가페 교회를 위함이요, 나 한사람을 위해서입니다. 아가페 교회와 나를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참고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절대로 조급하지 말아야 합니다.교회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순간에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은 영적인 교만입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여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Mega Meta church가 생겨났습니다.
오래 참고 기다림
오래 참고 기다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손쉽게 모래 위에 집을 짓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조급해서 기초공사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똑 같이 행복하게 잘 살겠다고 똑 같은 마음을 가지고 집을 건축합니다. 그러나 비바람이 치고 홍수가 날 때에 그 결과는 판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석위에 집을 짓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은 말씀에 기초해서 집을 짓는 것입니다. 성도는 성경이 삶의 Canon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면, 지금도 기적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다와 반석을 가를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절대로 한 눈 팔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영적인 간음입니다. 우상숭배와 간음은 언제나 함께 합니다. 에베소 사람들처럼 이상한 짓을 하게 됩니다. 지금은 되는 일이 없습니다. 교회가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에베소 사람들처럼 아데미를 섬겨야 합니까? 왜 사람들이 성경을 믿지 못하고, 성령의 음성을 무시합니까? 한 마디로 돈과 쾌락 때문입니다.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돈 때문에 우상에 빠지고, 성령을 근심시킵니다. 왜Gay들이 생기고, 게이 목사가 나옵니까?
(레위기 18:22)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롬 1:27-32)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성경에는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지금은 동성애 목사가 나오고, 마침내 死神神學(사신신학)이 나왔습니다. 돈이 되고 표가 되면 사람들은 무슨 짓이든 합니다. 어렵고 캄캄한 때일수록 우리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와 아가페선교교회를 향한 뜻이 있어서 여러분들을 부르셨습니다. 아직까지 이를 알지 못하는 백성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미 구약의 모든 예언이 이루어지고 성령께서 여기 계시고, 내 안에 계시는데, 이를 알지 못하고 흔들리는 신앙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이 문제가 정리 될 때에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고, 방언을 말하며, 온갖 은사를 받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오순절의 감격과 찬송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왜 성령입니까? 성령의 임재와 조명이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전하지도 못하고, 가르치지도 못합니다. 나도 고생하고 가족과 이웃과 나라까지 힘들게 합니다. 내가 먼저 자라야 하고, 고상한 지식에 이르러야 하며, 성령의 각양 은사를 체험해 가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으면 말씀에 기초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언제나 성령의 조명을 받아야합니다. 방언기도와 찬송의 능력을 통해 하늘이 열리는 체험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조급하지 않습니다. 어느 경우에도 느긋하고 용감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하면 오래 참고 기다리는 중에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가페선교교회(담임: 강진구 목사)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치료하고 회복하는 교회!
예배의 감격이 있는 교회!
주일예배: 오전 11시, 수요예배: 오후 8시, 금요예배: 오후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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