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목사] 성서와 땅(2) 땅과 인간의 임무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창 2:7-8)
땅을 ‘에레츠’와 ‘아다마’로 구분하는 것은 창세기 시작 부분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천지)을 창조하셨다는 내용에서 땅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에레츠’이다. 반면에 아담을 위하여 창설하신 에덴동산은 물이 풍부하여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곳으로 히브리어 ‘아다마’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한 땅의 구분은 곧바로 인간에게 주어진 임무가 무엇인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그것은 땅의 성격이 무엇인가에 따라 인간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이 다르게 규정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창세기 1장에서 강조하고 있는 천지창조는 우주적이고 물리적 관점의 창조이다. 그래서 창조의 대상이 하늘과 땅이며, 그 안에서 살아갈 인간도 성적으로 구분되는 남자와 여자이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가 되었음을 강조한다(창 1:26-27). 이는 사람에게 주어진 임무가 다른 피조물을 보살피며 다스리는 것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여기에서 ‘형상’은 히브리어로 ‘첼렘’인데, 조각하거나 그려서 만든 이미지를 의미한다. 그런 형상은 고대 사회의 통치 관습과 관련이 있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은 멀리 떨어진 변방 통치자를 임명하면서 자신의 형상을 만들어 가져가도록 하였다. 왕의 형상은 곧 왕의 통치권이 위임되었음을 상징하였기 때문에, 왕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통치자는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라도 왕의 권위를 대행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들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위임받은 지상 대리자들이다. ‘다스리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라다’는 지배력의 완전한 장악을 뜻한다. 같은 어원의 아카디아어 ‘라두’는 양떼를 이끌며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이상적인 지도자의 전형으로서 목자를 강조한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이상적인 왕이었던 다윗 역시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로 표현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삼하 5:2; 대상 11:2).
창세기 2장에서의 땅은 에덴동산이다. 에덴동산은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네 강의 근원을 이룰 만큼 풍부한 수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온갖 과실수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에덴동산이 사람에게 풍요로운 삶을 제공하는 ‘아다마’로서의 땅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창 2:9)에서 ‘그 땅’은 히브리어로 ‘아다마’이다. 사람이 지음을 받은 흙도 ‘아다마’이므로 에덴동산은 겉사람 인간의 본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창 3:19).
사람에게 주어진 실제적인 임무도 에덴동산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자신이 직접 창설하신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키라고 하셨다(창 2:15). ‘경작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 ‘아바드’는 땅을 기경하며 가꾸는 노동을 뜻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주인에 대한 종으로서 섬김을 의미한다. 그런 뜻에서 ‘예배’라는 전문용어가 ‘아바드’에서 파생되기도 하였다.
‘지키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동사 ‘샤마르’는 ‘파수하다’ ‘보존하다’를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모습 그대로를 지키며 보존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는 뜻이다. 땅을 경작하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형을 훼손시키거나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아담이 에덴동산을 가꾸는 목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의도대로 그 땅의 본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키라는 임무는 아담이 에덴동산의 관리 책임자라는 의미이다. 땅을 경작하며 가꾸는 행위는 인간에게 주어진 우선적 임무이다. 에덴동산은 각종 과일나무들로 가득 찬 일종의 과수원이었다. 낙원을 의미하는 영어 ‘paradise’의 어원은 ’파르데스‘인데, 이는 과수원을 의미하는 히브리어이다. 아담은 에덴이라는 과수원을 가꾸며 지키는 하나님의 청지기였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을 수 있다‘(창 2:16)고 하신 것도 실상은 에덴 과수원을 경작한 수고의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