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목사] 구약시대의 가정 아버지의 집 이해(1)
집(바이트)이란 어떤 곳인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다. 여기에서 중요한 용어는 ‘아버지의 집’이다. 인간 삶의 기초가 되는 가정은 구약에서 “아버지의 집”이라고 지칭되었다.
성경 시대 이스라엘 사회는 가족-친족-지파라는 3중 구조로 형성되었다. 가장 기초적인 사회 단위는 ‘아버지의 집’(베이트 아브)으로 알려진 가족 공동체였다. 이러한 가족 공동체들이 모여서 더 큰 개념의 친족구조(미쉬파하)를 이루게 되고, 그것이 더 확장되어 가장 큰 사회 단위인 지파(세베트)를 형성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아버지의 집’은 사회적 최소단위 역할을 하였다.
‘아버지의 집’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는 ‘베이트 아브’이다. 이는 ‘집’을 의미하는 ‘바이트’와 ‘아버지’를 의미하는 ‘아브’의 합성어이다. ‘바이트’가 다른 단어와 합성되는 연계 형태가 되면, 한 음이 축소되어 ‘베이트’로 발음된다. ‘베이트 엘’(벧엘)이나 ‘베이트 레헴’(베들레헴) 등이 좋은 예이다.
구약성경에서 1,850번 이상 사용이 되고 있는 ‘바이트’의 기본적인 의미는 인간 거주지로서의 집이다. 여기에는 모든 형태의 거주지가 포함되는데, 천막과 같은 단순한 형태의 거주지(창 27:15)를 비롯하여 왕궁(왕상 7:1) 혹은 하나님의 성전(왕상 6:1)과 같이 정교하게 지어진 건축물도 ‘바이트’로 표현된다.
그러나 성경에서 ‘바이트’의 용례는 매우 다양하다. 집이나 궁전 혹은 성전과 같이 인간이 거주하는 구체적인 건물 뿐 아니라, 죽은 자나 동물들이 거주하는 장소를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죽은 자의 거주지인 무덤을 ‘바이트’로(욥 17:13, 30:23), 거미가 살고 있는 거미줄을 ‘바이트’로 지칭하기도 하였다(욥 8:14).
이스라엘의 가정제도와 관련하여 ‘바이트’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용례로 사용된다.
(1) 첫째는, 가족들이 거주하는 장소로서의 집(house)이다. 이스라엘에서 건물로서의 집은 주로 나무나 돌로 지어졌다. 그러나 선사시대 가나안의 거주 형태는 동굴이었다. 그것은 성경에서는 피신처로서의 동굴을 자주 언급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소돔을 탈출한 롯은 그의 두 딸들과 함께 동굴에서 지냈으며(창 19:30), 이세벨을 피한 엘리야도 동굴로 피신한 적이 있다(왕상 19:9). 건물로서의 집과 관련하여 성경이 강조하고 있는 점은, 하나님의 복 주심 없이 집을 건축하는 것은 헛되다는 것이다(시 127:1). 이러한 강조는 예언자들의 외침 속에서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암 5:11; 습 1:13).
(2) 둘째는, 그 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가족이나 권속으로서의 집(family)이다. 한 가족으로서의 ‘바이트’에는 우선적으로 동일한 혈연관계로 구성된 사람들이 포함된다. 노아의 가정에는 노아 자신과 그의 아들들과 아내와 자부들이 포함되어 있다(창 7:1-7). 그러나 ‘바이트’는 혈연관계의 가족들 외에도 종이나 이방인 객들과 같이 한 가장의 보호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을 포괄한다. 그런 점에서 ‘바이트’의 범위는 공동혈연관계를 넘어서 공동거주관계까지 확대된다.
(3) 셋째는, 동일 혈통을 지닌 여러 가정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보다 큰 개념의 가문(lineage)이다. 곧 강력한 지도력을 갖고 있는 한 가장의 영향력 아래에 여러 가족들이 예속되어 있는, 보다 큰 개념의 가문이나 족속 등이 포함된다. 때로는 가문보다 더 큰 개념의 지파나 이스라엘 전체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포괄적 성격의 용례들은 이스라엘 역사 후기에 더욱 두드러진다.
‘바이트’가 단일 가족보다는 큰 개념의 가문으로 사용이 될 때에는, 부계적 계보를 따라 가문의 시조가 되는 인물 이름을 ‘바이트’ 뒤에 붙이는 것이 통례이다. 이러한 명칭들에서 거명되고 있는 인물들은 현존하는 이들이 아니라 과거에 그 가문이나 지파의 시조가 되었던 이들로서, 각 가문이나 지파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결속력이 갖는다. 이런 포괄성을 지닌 ‘바이트’의 공동체적 특성을 공동인격(corporate personality)이라고 부른다. 즉, 누구나 공유하고 있는 조상을 상기함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간격을 뛰어넘어 전체 집단을 한 사람인 것처럼 인식하는 공동체 의식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구약시대 가정은 단순한 거주 장소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공동체 의식을 태동시킨, 민족혼의 산실과도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