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3장(3) 일곱가지 화에 대한 교훈- 23장(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이응주 목사

by wgma posted Aug 24, 2017 Views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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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3장(3)

일곱가지 화에 대한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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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일곱 번 화에 대한 내용
(1)"화 있을 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13-) 여기서 천국문은 예수님 자신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2)"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15) 이것은 신앙을 잘 못 가르치는 자들을 두고 하는 말씀이다.
(3)"화 있을찐저 소경된 인도자여"(16),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 도다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 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4)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17-24) 
요즈음에도 본문을 가지고 신자들에게 헌금을 강조하면서 예수님도 하라고 하면서 정당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분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본문을 잘 읽고 살펴서 그리고 바르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구별 없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고 신자들에게 적용시키려는 것은 양의 옷을 입고 노략질 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소경된 인도자'라고 하신 것이다. 사람이 죄 아래 있을 때는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없어 중간에 제사장을 두어 하나님과 사람이 간접 교감을 가져야 했을 때 만든 제도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할례제도도 신약교회에서는 폐지하기로 한 것인데, 이것은 신약교회에서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좀 더 깊이 연구해야 할 과제라고 본다. 만일  십일조제도를 지켜야 한다면 다른 모든 율법도 자켜야 의무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갈 5;3-4). 십일조 제도는 유대인들에게는 국민세금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나 신약벡성은 유대인이 아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바로 이 제사제도를 폐지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제도가 되살아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헛것이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히브리서에는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만약에 십일조 제도가 성서적이라고 정당하게 생각한다면 지금의 목사제도가 과거 제사장과 같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 죄 아래 백성으로 떨어지게 되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 지금까지 반복해서 지금의 교회 구조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해 온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말씀이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말씀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상은 서기관과 바리새 사람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래서 말씀 해석에는 배경과 대상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5)"화 있을 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25-26)
교회가 병들면 신자들의 가치개념이 바꾸어 진다. 만일 바꾸어지게 되면 내용보다고 외적조건에 가치를 두게 되고, 그렇게 되면 예수, 진리, 신령 이런 것들의 가치는 뒤로 밀려나 버리고 이때쯤에는 외적가치를 높이는 장식물로 이용이 된다. 즉 겉으로 드러난 일로 평가를 하고 내용에는 소경이 되어버린 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경'된 바리새인이 되는 것이다. 
(6)"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27-28)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이 마치 '회칠한 무덤'같다고 지적 하신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무덤은 동양인 우리나라 처럼 흙으로 봉분을 하고 그 위에 잔디를 심는 방식이 아니라 굴을 파서 산 사람도 필요에 따라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무덤들이다. 굴이 아닐 때는 밑으로 파고들어가 그 안에다가 가족 시신들을 넣어둔다. 밖에는 석축으로 쌓거나 혹은 오늘날에는 세멘트 같은 것으로 집을 짓고 문을 달아 사람이 들어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이스라엘 지역의 무덤 방식이다. 
유월절 절기와 같은 때는 미리 무덤에 페인트를 칠해서 외부적으로 아름답게 보이도록 단장을 한다. 그러나 무덤 안에는 시신이 썩고 뼈만 남아 있거나 온갖 더러운 곤충들이 우글거리고 악취가 가득한 것이 일반적인 무덤문화다.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 이와 같이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려고 꾸미지만 속은 더러운 죄가 가득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7)"화 있을 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29-30)
얼마나 가증스러운 말들인가? 불과 얼마 전에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요한이 회개하라고 외쳤을 때도 외면하고 뒤에서 배척했던 무리들이 모든 선지자보다 더 크신 메시야가 오셨는데도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는 자들이 저희들의 조상들이 비판하였다. 만일 그러한 때였다면 선지자들을 죽이는데 참여하지 안 했다는 것은 얼마나 가증스러운 태도인가?
이렇게 해서 소위 7대 화(禍)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그리고 31-36절까지는 지난날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인 사건들을 다시 지적하면서 화가 임할 것을 경고하고 마치고 있다.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 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31-36)  

마태복음 23장(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을 두고 한탄하시다(마 23:37-39)


1. 예루살렘아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37-38)

암탉(Hen)이 가진 날개로 병아리들을 보호하는 모습으로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마 23:37)라고 하셨다. 체온으로 날개 아래 있는 새끼를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암 닭의 모습은 강렬하고 순전한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표현한 것이다.

날개(wing)는 새나 곤충 따위의 몸에 붙어서 날 수 있게 하는 기관을 말한다. 하나님은 날개 있는 모든 새를 종류대로 창조하셨다(창 1:21). 하나님은 속죄소를 덮는 그룹에 날개를 만들었고 이 날개들을 높이 펴서 속죄소를 덮도록 했다(출 25:20). 그리고 에스겔은 환상 중에 네 날개가 있는 생물을 보았다(겔 1:6).

날개의 상징적 의미는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 영적인 힘 등을 상징하는 의미로 쓰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실 때 마치 독수리가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날개 위에 새끼를 업는 것같이 하셨고(신 32:11), 보아스는 룻이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보호를 받으러 왔다고 표현하며 룻을 축복하였다(룻 2:12).

시편 기자는 주님의 날개 그늘을 가장 친밀하고 은밀한 교제의 영역으로 표현했다(시 17:8). 이사야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은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고(사 40:31), 호세아는 하나님의 심판을 묘사하면서 바람이 그 날개로 이스라엘을 쌌다고 표현하였다(호 4:19).

여기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유대인)을 향하여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그들을 구원하고 보호하려고 하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말씀하셨다(마 23:37).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애정이 넘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2.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바 되리라'고 하였다. 기회를 놓쳐버린 자들의 운명을 예고하신 말씀이다. 이렇게 말씀하신대로 주후 70년 예루살렘은 로마에 의해서 황폐하게 되어버렸고, 그 후 2천년 동안 세계로 흩어져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야만 했던 것이다.

황폐(Desolate)란 버려두어서 거칠어지고 못 쓰게 된 것을 말한다. 애굽에 가뭄이 닥쳤을 때 요셉에게 와서 종자(鐘子)를 구하던 애굽인들은 요셉이 자신들에게 식물을 준다면 자신들의 전지가 황폐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창 47:19).

일반적으로 황폐하다는 말은 예루살렘(사 64:10)이나 유다 성읍(렘 9:11), 모압(렘 48:15), 보스라(렘 49:13), 아스글론(습 2:4), 대로(사 33:8), 제단(겔 6:6) 등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결과를 묘사하면서 참혹하고 버려진 모습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

3. '찬송하리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39)

이 말씀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앞에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고 여기서는 '이제부터는 너희는 찬송하리라' 그리고 계속해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는 중간에 끼여 있는 '너희는 찬송하리라'고 했는데 여기서 찬송이 무엇을 찬송한다는 말인가? 주석가들은 일반적인 해석으로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 하실 때 불렀던 찬송으로 주님 재림하실 때도 그렇게 찬송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렇게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문맥의 흐름으로 봐서 별로 공감이 안된다. 재림 때의 찬송으로 본다면 문맥의 흐름에 맞지 않고 하필이면 이곳에 끼워 넣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성서공회에서 발행한 표준 새 번역 성경에는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다 하고 말할 그 때까지 너희는 나를 다시는 못 볼 것이다'라고 해서 '찬송 할 자'란 말을 빼고 번역을 했다.

그러나 원어의 표현으로 율로게메노스 즉 '찬송하리로다' 가 들어 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찬송은 주님을 찬송한다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고 그의 비참한 죽음을 본 유대인들이 승리의 축배를 들면서 부른 찬송으로 보는 것이 문맥의 흐름에 적합하다고 생각이 된다.

마지막으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주님을 재림의 날에나 보게 될 미래적인 것을 언급하신 말씀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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