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목사] "아버지"(아브)는 누구인가?
구약시대의 가정 "아버지의 집" 이해(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아버지의 집’(베이트 아브)에서 핵심적 인물은 ‘아버지’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아브’이다. ‘아브’는 ‘아버지’보다 ‘가장’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일반적으로 세 세대 내지 네 세대로 구성되는 ‘베이트 아브’에서 가장은 증조부나 조부가 맡게 된다. 그러나 가장이 죽게 되면 장남이 아버지의 가장권을 이어받으면서 나머지 아들들은 분가하여 각 가정의 가장권을 맡게 된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이 ‘아버지의 집’을 떠난 것은 가장권을 스스로 포기한 행동일 수도 있다.
‘아브’의 어원적 의미를 찾는 노력은 여러 형태로 시도가 되었지만, 만족할 만한 결론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 단어의 어원을 ‘결정하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동사 ‘아바’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아브’를 ‘결정을 내리는 자’로 해석한다. 한편으로 이 단어는 어린아이의 흥얼거림을 본 딴 의성어일 것이라는 주장이 있기도 하다.
성경에서 약 1,180번 사용된 ‘아브’는 대부분이 이스라엘 가정의 아버지 혹은 조상이라는 의미로 사용이 되었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하나님을 아버지와 연관시킨 경우는 15번 정도에 불과하다. 성경에서 아버지라는 기본적인 의미 이외에, 달리 사용된 ‘아브’의 의미와 용례를 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한 가정의 할아버지나 증조 할아버지를 의미한다(창 28:13; 49:29; 왕상 15:11).
(2) 가문이나 지파나 민족을 일으킨 조상을 의미한다(왕상 15:11; 왕하 14:3; 18:3; 창 10:21; 17:4).
(3) 특정 직업이나 삶의 방식을 창시한 인물을 가리킨다.(창 4:20; 렘 35:6, 8)
4) 제사장이나 선생들과 같이 존경받는 인물을 지칭한다. 특히 예언자 밑에서 수련을 받는 예언자의 생도들은 자신의 스승인 예언자를 ‘아브’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예언자의 아들이라고 자처하였다(삿 17:10; 왕하 2:12).
(5) 부모 없는 고아와 같은 불쌍한 자들을 돌보는 보호자를 지칭한다. 욥기에서는 이들을 ‘빈궁한 자의 아비’(욥 29:16)라고 하였으며, 이사야서에서는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집의 아비’(사 22:21)라고 불렀다.
(6) 왕과 같은 고위층의 상담역을 맡은 중요한 직책을 지칭하였다(창 45:8).
(7) 비와 같은 중요한 것을 만든 창조자를 지칭하였다(욥 38:28).
이상과 같이 ‘아브’의 사용 범위가 넓은 것은 그만큼 이스라엘 사회에서 부권이 차지하는 역할이 컸음을 반증한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버지’ 아브로 이해한 것과도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이스라엘의 가정은 가장의 권위에 의하여 유지되었다. 이것은 가장이 가족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하며, 가족들은 가장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함을 의미한다. 가장이 가지고 있는 권위는 가족 내에서 사법적 권한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장은 일종의 가정 법원의 재판자 역할을 하면서 가정 내의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결혼과 이혼, 종들과 관련된 문제, 그리고 자녀교육 등이 포함된다.
가장에게는 가정 내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권한과 함께 성문법정의 재판관이 되어 지역사회의 법적 문제를 다루는 장로로서 역할도 하였다. 구약시대 장로들이 누구인가에 관하여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구약시대의 장로단은 각 가정의 ‘아브’ 가운데에서 선택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가장으로서 ’아브‘는 가정의 안과 밖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