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4장(4) 주님 재림의 모습을 보라-마태복음 24장(5) 무화과나무 비유에서 배울 교훈

by wgma posted Oct 27, 2017 Views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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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4장(4) 주님 재림의 모습을 보라

주님 재림의 모습을 보라

(마태 24;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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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을 배울 수 있는 자연의 법칙에 대한 내용들이다. 주석가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견해로 종말에 있을 말씀들을 글자대로 자연의 변화를 현실적으로 보기에는 난해한 부분들이 많다고 한다. 성경에는 비유나 상징적인 것 혹은 은유적인 서술들이 많다. 그래서 필자는 여기 본문을 상징적인 견해를 가지고 해석을 하려고 한다. 서술 중에 혹시 무리하게 해석되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이해하고 읽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1.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29)

권능(power)이란 권력과 능력을 말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대해 주로 쓰였는데, 하나님께서는 하고자 결정하시는 것은 다 하실 수 있는 분이다(시 115:3; 마 19:26; 눅 1:37). 하나님은 권능으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다(출 13:16; 민 33:3). 권능은 원래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시 62:11),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했다(시 21:13). 에스겔은 주의 권능을 경험한 가운데 예루살렘의 심판을 예언했으며(겔 3:14; 3:22), 여러 선지자들 역시 하나님의 권능을 선포했다(사 33:13; 렘 10:6; 나 1:3).

그 날 환란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라는 말은 진리의 빛도 혹은 정의의 빛도, 질서나 지도자들의 지도력도 믿는 자들의 신앙심도 모두 다 빛이 없어져버린 세상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라는 말에 달은 때를 알리는 역할을 했었다. 월력을 다른 말로 달력이라고 하는데 때를 가르치는 것이고, 농부는 달을 보고 달을 따라 농사 일정을 정했었다. 그런데 달이 그 역할을 하지 않는 다는 뜻은 어둠으로 마비된 상태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또한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하는데 별은 방향을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하는 것, 특히 사막의 캬라반(대상)들이나 바다에 항해하는 배들은 밤하늘의 별을 보고 방향을 알고 길을 간다. 동방박사들도 별 따라 베들레헴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 별들이 떨어 졌다? 고 한 것은 지도할 사람들이 없어졌다는 뜻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결국 사람들은 우왕좌왕 방황을 하게 될 때를 말한다.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이것은 지금까지 온전한 신앙이라고 생각하고 믿어왔던 신앙의 법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던 말씀이, 성경을 이해하던 지식들이 흔들려 버렸다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말세에 나타난 현상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활동에 의해서 전통적으로 즉 기존의 신앙의 법도들이 흔들려버린다는 뜻으로 이해를 해도 무리 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2. 인자의 징조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30)

징조(Sign)란 어떤 일이 일어나려 하는 조짐을 뜻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삼상 10:7), 실제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행구를 지고 성벽을 뚫고 이사하여(겔 12:5)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될 징조를 보이라고(겔 12:6) 하셨다. 특히 신약에서는 종말의 징조를 설명하였는데 전쟁, 기근, 지진을 통하여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하였음을 강조하였다(마 24:3).

여기서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라는 말씀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는 구절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해석을 해 본다면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인다.'는 말씀은 주님이 재림할 때가 되어 재림 준비를 서두르는 징조가 하늘에서 보인다. 혹은 징조란 말을 '알린다.'란 말로 바꾸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구름(cloud)은 공기 중에 포함되어 있던 수증기가 식어 작은 물방울이나 얼음 알갱이로 변해 대기 중에 떠있는 것을 가리킨다. 성경에는 구름이 하늘에 있어 물을 간직하고 이슬과 비를 내리게 한다고 말한다(삿 5:4; 욥 26:8; 시 77:17; 잠 3:20; 전 11:3). 엘리야의 사환 게하시가 손(手)만 한 작은 구름이 바다에서 일어난다고 말하자 엘리야는 그 구름이 금방 비가 될 것을 알았다(왕상 18:44-45). 그러나 비를 내리지 않는 구름(유 1:12)이나 폭양을 가리는 구름(사 25:5)도 있다.

성경에 구름에 대한 여러 가지 의미들이 있는데,

(1)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고 하나님의 임재 장소로 표현되었다(출 19:9; 24:16; 33:10; 34:5; 시 97:2).

(2)광야 길의 이스라엘 백성은 구름이 성막에 떠오르면 진행하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으면 한 달이든 일 년이든 나아가지 않았다(민 9:15-23).

(3)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표현에 사용되었다(출 16:10; 40:34-35, 38; 민 10:34; 왕상 8:10 ).

(4)그리고 하나님이 타고 다니시는 수레라는 의미로 쓰였다(시 104:3; 사 19:1).

(5)또한 이스라엘 백성의 빠른 이동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사 60:8).

(6)뿐만 아니라 인생의 무상함을 나타내는 의미로 쓰였다(욥 7:9; 30:15; 호 6:4).

(7)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심이 빽빽한 구름이 사라짐같이 빠르게 하신다는 말에 쓰였다(사 44:22).

예수님은 구름 속으로 올라가셨고(행 1:9)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라고 하셨다(마 24:30; 26:64; 막 13:26; 14:62; 눅 21:27; 계 1:7). 재림 때 살아 있는 성도들은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영접할 것이다(살전 4:17).

3. 사방에서 모으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31)

'그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낸다?' 이 말씀은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먼저 천사들을 보내서 지구촌 사방에 흩어져 있는 주님이 택하신 백성들을 불러 모은다는 말씀인데 이 말씀이 성취되려면 주님이 지상 재림 전에 이 땅에서 먼저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이 되어야 한다. 즉 지금과 같은 교회당교회 구조로는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 모은다는 말을 어떤 '가시적 공간으로 모은 다'로 이해하려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마태복음 24장(5) 무화과나무 비유에서 배울 교훈

     무화과나무에서 배울 교훈

                  (마태 24;32-51)


1.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32-34)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32-34)

무화과(Fig)는 뽕나무과의 낙엽 관목인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말한다. 대부분의 지중해 국가에 자생하는 나무로 팔레스타인에는 일찍부터 이식되어 널리 재배되었다. 많이 자라면 12m까지 자라며 경관도 좋다(민 13:23; 마 7:16). 넓적한 잎들은 넓은 그늘을 만들어주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나무의 좋은 그늘 아래를 명상의 장소로 삼았다(요 1:48). 무화과나무 아래 산다는 것은 평화와 번영을 상징하는 것이었고(왕상 4:25; 미 4:4; 슥 3:10) 마른 무화과는 재난과 심판을 상징하였다(렘 5:17; 호 2:12; 욜 1:7; 암 4:9).

꽃은 암수가 있고 흔히 열매로 불리는 꽃 턱이 변화한 것 속에 작은 꽃이 있어 외부에서는 꽃이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꽃이 피지 않는 것처럼 보여 무화과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여름(Summer)의 계절은 한 해의 네 철 가운데 둘째 철 즉 봄과 가을 사이의 계절을 말한다. 여름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카이츠’(qayits)는 여름 이외에 여름과일을 의미하기도 한다(삼하 16:1-2; 암 8:1-2; 렘 40:10, 12).

이스라엘의 계절은 여름 건기와 겨울 우기로 나뉜다(창 8:22). 봄과 가을은 매우 짧고, 여름은 4월 하순부터 10월 중순까지로 길며, 비가 오지 않아 매우 건조하고 덥다(시 32:4). 여름은 더운 계절로, 많은 과일들이 열매를 맺는 시기이다(렘 40:12; 막 13:28).

이스라엘의 여름에는 비는 오지 않지만 밤이면 이슬이 내려 여름작물의 재배가 가능하며(창 27:28), 열매를 맺은 농작물을 수확하는 때이기도 하다(잠 10:5; 30:25). 때로 비유적으로 쓰여서 회개하지 않은 자의 영혼은 여름 가뭄에 비유되기도 했다(시 32:4). 아모스 선지자는 부유한 자들이 즐기는 여름궁과 겨울궁의 사치스러움을 책망했다(암 3:15).

'무화과 나무를 배우라' 이것은 자연현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주님의 재림의 날이 가까이 이른 줄 알라는 말씀이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지구환경의 변화를 지금 우리는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다. 지구가 더워져가고 그로인해 북극빙하가 녹아내리고, 바다의 수면이 상승하고, 생태계가 급속도로 변해가고, 처처에 지진, 폭우, 폭설, 태풍, 한파, 가뭄 등 잠시라도 마음 놓고 살수 없는 지구를 둘러싼 이변 현상은 인간들의 삶을 긴장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그 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이 구절은 두 가지로 해석하는 분들이 있다. 하나는 주님 재림 문제와 함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으로 보는 분들이 있고, 다른 하나는 유대인들이 남아 있는 때를 가리킨 것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세대'란 말을 지구수명의 때'로 보고 있다.

2.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35-39)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35-39)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35)는 말씀은 예수님이 약속하시고 예언했던 말씀들은 없어지지 않는다라는 의미이다.

인간들이 이 날을 모른다는 것처럼 행복한 것은 없다. 사람들의 죽음이란 것도 바로 이런 것이다. 만약에 사람들이 만일 이날을 안다면 세상은 어떻게 것인가? 상상해 보라. 하지만 그날이 임할 징조는 항상 보여 주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들이 보여주시는 주님의 징조를 보고, 준비하는 자들이 있고, 징조를 보고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자들로 나누어 질 것이다.

그 예를 들어 노아 시대를 생각해 볼수 있다. 노아(Noah)는 ‘쉼’, ‘위로’라는 뜻의 이름으로, 창세기 홍수 이전의 사악한 시대(창 6:5)를 살았던 한 의로운 사람이다. 아버지인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다(창 5:28-29; 눅 3:36, 70인역에는 188세). 노아의 아들들은 셈, 함, 야벳이다. 하나님은 노아가 480세 때 인간을 땅에서 멸망시키겠다고 알려주셨고, 노아는 그후 120년간 방주를 지었다(벧전 3:20; 창 6:3). 홍수 때에는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것(창 6:13-22)처럼 노아와 아내, 그의 세 아들, 그리고 며느리 외에는 모든 사람이 멸망당했다(창 7:7; 벧전 3:20). 하나님은 홍수 후 노아와 무지개로 언약을 세우셨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신학적 의미가 담겨져 있다(창 9:9-17; 사 54:9).

(1). 노아 때 있었던 홍수 사건은 하나님이 죄를 벌하실 수 있는 심판자이심을 보여 준다(벧후 3:3-7).

(2). 하나님은 노아와 다시는 이 세상을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는 언약을 맺으셨고, 그 증거는 무지개였다(창 9:8-17).

(3). 노아의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심판의 물에서 방주로 안전하게 옮기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계, 즉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될 세계에 도달하게 한다(벧전 3:17-4:6).

(4). 예수님은 현세의 종말이 ‘노아 시대’의 징조와 비슷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마 24:36-37).

노아의 삶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히브리서 11장에서 노아를 믿음의 사람들과 동등한 위치에 놓고 있다. 노아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에 대한 경고를 듣고 자신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거룩한 두려움으로 방주를 지었다(히 11:7). 노아는 이웃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의 일을 마쳤다. 평야를 마주보고 서 있는 방주의 모습은 노아 세대에게 다가올 심판에 대한 조용한 증인이었다.

히브리서는 “그의 믿음으로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으로서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히 11:7)라고 해석한다. 노아에게서 우리는 인내의 가치와 힘에 대해 배운다. 노아의 인내하는 믿음이 그의 가족을 홍수에서 구했을 뿐 아니라 그의 세대에 증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 세대를 향한 증거이며 성령께서 인류에게 말하는 통로이다(벧전 3:19-20).

방주(Ark)는 큰 홍수 때 노아와 그의 가족이 생존할 수 있도록 했던 배이다(창 6:14). 커다란 상자 모양의 이 배는 항해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고 단지 뜰 수 있게 만들었다. 모두 3층으로 된 방주의 크기는 길이 300규빗(1규빗을 46cm로 볼 때 138m), 너비가 50규빗(23m), 높이 30규빗(14m)이었다(창 6:15-16). 이를 근거로 산출해 본다면 배의 크기는 20,000톤 정도 되었을 것이다.

개역성경에 방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테바’(tebah)인데, ‘큰 상자’, ‘뜨는 배’라는 의미이다. 이는 노아가 만들었던 방주(창 7:1)와 나일 강에 띄워졌던 모세가 담겨있던 상자(출 2:3, 5)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헬라어로는 ‘키보토스’(kibotos)라 했는데, 이 단어는 방주(마 24:38; 히 11:7), 언약궤의 궤(히 9:4; 계 11:19) 등에 쓰였다.

방주의 재료는 잣나무였는데 이는 가볍고 신축성이 좋은 나무였다. 후에 이 나무는 베니게인들이 배를 만들 때 사용되었다. 배의 안과 밖에는 역청을 칠해서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으며, 위에는 빛이나 공기가 들어오게 하는 창을 만들었다. 이는 오늘날의 화물선과 비슷한 비율로 건조되어 있다.

이 방주에는 노아의 가족 8명과 함께 정결한 짐승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 새는 암수 일곱씩이 탔다. 이러한 방주는 세례의 상징(벧전 3:20-21)이자 구원의 예표이기도 하다. 홍수 속에서 방주에 탔던 사람과 동물들은 구원받았듯이(히 11:7),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구원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롬 8:1)

지금도 노아시대 때와 같이 믿음으로 신앙의 방주를 예비하는 자들과 불신으로 세상이라는 환경에 도취해서 내일에 대한 준비 없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우리들 주변에서 쉽게 볼수 있다. 넓은 가는 인생들의 모습을 부려워하지 말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십자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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