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성을 드러내는 거울 십계명은 그리스도인 생활 지침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0]
제92문: 하나님의 법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제95문: 우상숭배란 무엇입니까?
답: 우상숭배란 말씀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유일하신 하나님 외의 다른 대상을 두거나 신뢰하는 것, 혹은 하나님을 겸하여 그 대상을 신뢰하는 것을 말합니다.
제100문: 잘못된 저주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 큰 죄입니까? 또 그것을 막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거나 침묵하는 것 역시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죄입니까?
답: 그렇습니다. 그분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죄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죄를 지은 자들에 대해 죽음의 형벌을 선언하셨습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92∼102문은 십계명을 다룬다. 십계명을 꼭 지켜야 하는가? 십계명을 어기면 어떻게 될까? 한 세대 전에는 구원의 방편이기에 꼭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다. 예수께서 구원을 이루셨으니 더 이상 십계명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최근엔 십계명을 우리의 죄성(罪性)을 드러내는 거울로, 우리를 예수께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 부르기도 한다.
신학적 관점에서는 십계명에 대한 견해가 다양하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십계명을 그리스도인의 생활 지침서로 조명하고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면, 믿음의 합당한 행위를 안내하는 것이 십계명이다. 그러나 평범한 삶 속에서 살인, 간음, 도적질, 안식일 등의 계명은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을 주기도 한다. 시대적 의미를 통해 ‘본질’을 이해한다면 문자적 의미를 넘어 우리 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적용 가능한 구체적 지침을 발견할 수 있다. 십계명 가운데 앞의 세 계명을 통해 오늘날 인간이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며 저지르는 과오와 죄에 대해 생각해보자.
하나님의 이름과 우상
십계명의 제1계명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제2계명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 제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보면 이를 위반하는 사람은 이교도들이다. 고로 역사 속에서 십계명은 기독교인과 이교도 간 갈등의 씨앗이 되곤 했다.
타 종교의 신상(神像)을 파괴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십자군들은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이교도를 살육하며, 그들의 종교를 짓밟았다. 종교개혁 시대에는 신교도들이 구교의 예배당에서 성상(聖像)을 파괴하며 그것을 개혁이라 믿었다.
오늘날 개신교 젊은이들이 사찰에 들어가 기도회를 벌이거나 선교 현장에서 ‘땅밟기’를 하는 행위는 다른 신을 두지 말고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을 문자적으로 이해해서 생기는 일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명하는 ‘우상’은 가시적인 신상(神像)이 아니라 하나님 대신 섬기는 탐심(貪心)(골3:5)이라 할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기기보다 우상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놨다. 생존과 번영, 탐욕을 가져다주는 주체자로서 하나님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우상을 만든 ‘동기’ 속에 믿음의 본질이 담겨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것 역시 그들이 하나님을 ‘숭배의 대상’으로 생각했다면 이집트의 태양신인 ‘호루스(Horus)’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풍요와 번영을 주는 신으로 인식했기에 ‘아피스(Apis)’, 즉 성우(聖牛)로 만들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했다(출32:4).
성경에서는 우상이란 신상(神像) 자체가 아니라 탐심을 실현하기 위한 ‘동기’를 우상으로 정의한다. 제1∼3계명을 지키기 위해 제거해야 할 대상은 인근사찰의 불상(佛像)이나 이슬람 회당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탐욕이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외쳐지는 위선적 행위들이야말로 우상숭배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잘못된 신앙은 윤리적 범죄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살인이나 거짓은 양심의 가책이 뒤따른다. 그래서 거짓말 탐지기도 있다. 반면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범죄는 양심의 가책이 없다. 신의 뜻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십자군이 휘두른 칼날도, ‘마녀’들을 불태웠던 횃불도, 심지어 아우슈비츠 독가스실로 유대인을 밀어 넣은 독일 병사에게선 양심의 가책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한 거룩한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후 330년 로마제국은 당시 수도를 로마에서 오늘날 터키 이스탄불 지역인 콘스탄티노플로 옮겼다. 천도 직후부터 1453년 오스만튀르크의 침공으로 막을 내릴 때까지 동서교회는 로마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첨예한 대립을 펼쳤다. 동방교회는 ‘정통교회(Orthodox)’를 자처했고, 서방교회는 ‘보편교회(Catholic)’라고 응수했다. 서로마가 멸망하고 프랑크 왕국이 건설되었지만, 샤를마뉴(Charlemagne·742∼814) 대제는 대관식을 거행하며 ‘신성로마제국’의 시작을 알렸다. 이미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하는 로마제국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신성로마제국의 후예들은 로마제국을 가리켜 ‘하찮은’, ‘구태의연한’이라는 의미의 ‘비잔틴’ 제국이라고 불렀다. 이교도들을 짓밟듯이 역사 속에 등장한 신성로마제국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중세를 ‘암흑의 시대’로 만들었다. 그런 까닭에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는 신성로마제국을 가리켜 ‘신성’하지도, ‘로마’도, ‘제국’도 아니라고 비꼬았다.
[박양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