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8장 (4) 제자들은 들어라! 제자들은 들어라! (28:16-20) 복음서의 결론 부분에 이르렀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 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16-20, 막16:14-16, 눅24:36-49, 요20:19-23, 행1:6-8) *이제 마지막 결론의 말씀이다. 이 본문에는 제자들에 관한 기사와,(16-1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분부(부탁)하신 말씀과(18-20상) 끝으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으로(20하-) 대 단원의 막을 내린다. 우선 갈릴리 회동했던 산이 어딘가에 대해서 분명한 기록은 없지만 주석가들은 대게 세 곳 중의 하나 일거라 한다. * 팔복을 가르치셨던 산(마5:1) * 예수께서 자주 오르던 산(기도하러?)(마14:23) * 변화 산(마17:1) 이 결론의 말씀에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중 하나를 풀어야 할 말씀들이 있다. 풀어야 한다는 말은 ‘이해’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경배에 관안 문제다 ①제자들이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17상) 제자들이 예수님께 경배를 했다는 기록이 처음 나온다.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를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다. 여기 경배란 말은 헬라말의 프로세퀴네오(προσεκυνεω)라 하는데, 절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왜 이 말에 대한 이해가 되어야 하느냐에 대한 것은 예수님의 신분과, 우리와 예수님과의 관계와, 복음 전체에 영향을 주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중요한 문제로 강해 한 내용은 ‘예수님이 경배의 대상이 되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간간히 설명해 왔다. 재론을 하면 경배의 대상이 되면 예수님은 왕의 신분은 박탈되고 신(神)의 신분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해 왔다. 이 말들이 엄청 중요한 것인데, 오랜 세월 예수님(하나님)을 신으로만 섬겨왔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인고로 깊이 생각해야 한다. 또 어려운 주제를 꺼냈네!, 이런 이야기를 해 받자, 미친놈 소리 들을게 뻔한데, 하지만 예수님의 신분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덮어 둘 수도 없고, 솔직이 고민이 된 건 사실이다. 길게는 2천년, 짧게는 5백년의 전통을 감히 어떻게 뒤 엎는단 말인가! 미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지, 그래서 연구 주제로 제시 한 거니까,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지 안 했으면 좋겠다. 여기서 예수님을 전통적으로 내려왔던 것처럼 예수님을 신으로 섬겨야 옳다는 분들은 그렇게 하고, 아니야, 예수님은 우리의 왕으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필자의 의견을 묻는 다면 이미 앞글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알고 있듯, 나는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싶은 사람이다. 이것을 이론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의 신분이 신의 신분이 되었기 때문에 기독교란 종교구조가 되어 왔던 건 사실이다. 앞에서 거듭 언급해 온 말씀들이 예수를 신으로 섬겨 왔기 때문에 기독교란 종교가 되어온 것이고, 종교가 된 교회이기 때문에 예수와 우리가 한 몸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한 몸이란 것은 교리로만 그렇게 말하는 것뿐이지 실제의 삶에 있어서는 몸이 될 수 없이 살아온 것이다. 여기서 성경 전체를 놓고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3년 반 동안 동거 동락했을 때 단 한 번이라도 예배를 드리자, 혹은 내게 예배를 드려라 한 적이 있었던가? 4복음서에서 예배란 말이 수가 성 여인과의 대화 외에 다른 곳에서 단 한번이라도 언급된 곳이 있던가?(지금 28:17절 말고) 그리고 수가 성 여인과의 대화에서 ‘예배를 드리지 말라’ 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신 예배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라 하셨는데. 신령과 진정의 예배에 대한 설명을 로마서 12장 1절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을 참고했으면 좋겠다. 앞에서 여러 번 언급해온 바와 같이 예배가 될 때는 종교형태를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이고, 예수는 종교형태를 원한 것이 아니라 ‘그 나라’에 있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주여. 주여 찾는 것이 중요 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이른 다는 말씀을 주목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제자들이 경배했다는 말씀을 정례화(定例化) 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은 경배가 정례화 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앞에서 말한 기독교가 종교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경배했다는 말을 일반적 인사법의 하나로 봐야 하고, 다른 의미를 부여 한다면 왕의 취임식에 의전(儀典)의 하나로 단회적(單回的) 행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죽었을 때 무덤을 찾아가 경배한 것이 아니고 살아서 만난 선생님께 경배하는 것은 제자 된 자들의 마땅한 도리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이해가 되어야 복음의 원리와 우리와 예수님의 몸이 하나로의 실체가 되며, 종교의 신이 아니라 그리스도는 인류의 왕으로서의 신분효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이해도 없이 무조건 전통만 따라 살아온 크리스천들이 과연 이해가 될까? 어쩌면 이해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제라도 알지 못했던 개념을 알게 해 주신 것은, 하나님의 계시 활동으로 봐야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해온 바와 같이 하나님의 계시활동을 인정하지 않게 되면 교회는 우상종교(죽은 신)의 하나로 머물게 된다.(계시활동의 부정의 결과로) ②그리고 갈릴리 산에 모여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경배했다는 의미는 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이 회동은 정식으로 왕으로서 대관식(취임식)과 같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18절부터 20절까지는 왕으로서 취임사와 같은 것이다. 취임사의 첫 마디가 무엇인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전권을 위임 받으셨다는 말씀으로 당당히 통치자의 선언이란 것이다. 그리고 왕의 대관식에 참석한 모든 백성은 왕에게 경배를 하는 것은 대관식의 당연한 의전순서의 하나로 봐야 한다. 여기서의 경배는 ‘우리가 당신을 왕으로 인정 합니다’란 의미와 함께 이제부터는 당신의 통치를 받겠다는 서약의 의미가 포함 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살아 실존하신 분이고 그 약속을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한 약속을 따라 오순절 성령 강림(영으로의 취임)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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