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보수원형찾기 2회] - 김영언 목사
역사적보수를 절대적 보수원형으로 착각
보수원형과 상대적보수를 혼동
성경만이 지니고 있는 절대유일의 원형과 상이할 가능성
대다수의 역사적 보수는 그 존재 기반을 잃을 수도 있다
역사적 보수는 결코 절대적인 보수가 아니며 그렇게 될 수가 없다. 역사적인 보수가 절대적인 것으로 신봉하는 것은 절대적 보수원형과 상대적 보수의 입장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데서 비롯되었다.
역사적 보수와 성경만이 지니고 있는 보수원형이라는 양자의 보수는 당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양자의 보수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아직도 확인된 바가 없는데, 한국교회에서는 물론 그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서구 기독교에서도 이에 대한 상관관계에 대하여 어떤 관계에 있는지 밝혀진 바가 없다.
대개 역사적 보수를 성경이 말하는 보수로 간주하고 있으나 여기에 대해서 어느 보고서도 역사적 보수가 성경이 말하는 보수원형이라고 것은 검증된 바가 없다. 사람들은 역사적 보수가 성경이 말하는 보수원형이라고 믿고 따라왔을 뿐이지 그 역사적 보수가 어디에 근거한 보수인지 실제적이고 사실적으로 역사속에서 논의된 바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양 보수가 동일할 수도 있고 상이할 수도 있다. 양자의 보수논리가 동일한 하나일 수도 있고, 서로 다른 보수일 수도 있다. 그런데 상이한 논리들을 가지고 있는 역사적 보수는 성경이 말하는 절대 유일의 보수원형과 일치한다고 장담하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역사적 보수 논리 안에서 조차 일치하지 않는 것이 다수 존재하기에 성경만이 지니고 있는 절대 유일의 보수원형에 상이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적 보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보수원형은 오직 하나인데 역사적 보수는 여럿이다. 이 자체가 먼저 문제이며 모순이지요. 왜 성경이 말하는 보수원형은 하나인데 역사적 보수 논리가 여럿이어야만 하나요.
이것이 암시하는 바는 성경이 말하는 절대보수원형이 나타난다면 대다수의 역사적 보수는 그 존재 기반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 기독교계의 큰 문제는 상대적 보수 즉 역사적 보수를 절대적 보수원형으로 착각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성경이 말하는 절대 유일의 보수원형에 의해 검증받아야만 하는 역사적 보수는 무엇인가?
얼마 전 어느 부모가 17년 동안 자신이 키워오던 자식이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안타까운 일이지만 유전자 조사를 하였더니 그동안 키워온 자식이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자신이 태어날 때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철저하게 믿었던 자신의 자식이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만큼 가슴아픈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세상이 갈라져도 그렇게 사랑을 주고 믿었던 자식이라도 해야할 것은 해야 하는 일이다,
상대성을 가지고 있는 역사적 보수에 대한 검증을 성경이 말하는 보수원형에 의거해서 냉정하게 판단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적 보수를 검증해 보아야 하고 동시에 이를 위하여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보수원형이 어떤 것인가를 반드시 확인해 보아야만 한다. / 샬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