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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색칠놀이책 큰 인기… 성인 남성도 갈수록 많이 찾아
종일 스트레스와 씨름하다 비어버린 마음 메우고 위안을 얻기 바라는 심리 드러내
올해도 여러 색으로 일상 채워가길

김학중 목사 사진
김학중 목사
가끔 서울에 있는 대형 서점에 나간다. 정기적으로 가보진 못하지만 서울에 일정이 있으면 방문 코스에 꼭 넣는다. 책을 살 목적이 아니어도 들렀다가 온다. 책만 살 거면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는 게 더 편리하다. 그런데도 대형 서점에 가는 것은 어떤 책이 요즘 트렌드인지 한눈에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점의 북마스터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둔 책들을 관찰하다 보면 요즘 사람들이 어느 분야에 가장 관심이 많은지 손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서점을 둘러보면 흐름의 변화에 관계없이 꾸준하게 인기를 끄는 책을 파악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베스트셀러 중 하나가 바로 '컬러링 북'이다. 이 책은 촘촘하고 섬세하게 엮인 단순한 무늬의 일러스트로 가득하다. 소재도 동식물이나 건물 등 다양하다. 이런 소재의 밑그림만 따서 그 빈 공간에 다양한 색으로 채우는 색칠 놀이 책이다.

처음 컬러링 북을 들춰보고는 '겨우 이만한 책이 사람들의 무한한 관심 대상이라니' 좀 싱거웠다. 싱겁다는 건 내 생각일 뿐이다. 취미 서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 눈에 띄기 쉬운 곳에 당당히 진열돼 있다. 한 온라인 쇼핑 사이트에서는 새해를 맞아 취미생활을 갖고 싶은 남성들 사이에서 컬러링 북 구매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어린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 그것도 성인 남자가 갈수록 많이 찾고 있다니 흥미로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색칠 놀이가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잠깐의 짬만 내면 큰 비용 들이지 않고 근사한 작품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작업에 몰입하면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미술 치료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손으로 꼼꼼하게 칠해가는 과정이 존재감을 찾는 데 도움되고 마음 치료제가 된다고 한다. 마음 치료를 위해 컬러링 북의 인기가 점점 오른다고 생각하니 마냥 좋은 일만도 아닌 듯하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삶을 쥐고 흔드는 스트레스와 씨름한다. 스트레스는 여기저기 상처를 내고 그로 인해 마음에 뻥 뚫린 빈 곳을 만든다. 마치 마음에 난 빈 곳을 예쁜 색으로 메우려는 무의식이 작용해 사람들은 색칠 놀이에 더욱 흥미를 갖게 되고 빠져드는지도 모르겠다. 여러 가지 색을 칠하면서 비어 버린 마음을 메우고, 그로 인해서 위안을 얻기 바라면서….

그렇다면 상처로 텅 비어 버린 마음을 무슨 색으로 칠할 수 있을까? 각각의 색에는 그 색만이 표현해내는 나름의 뜻이 담겨 있다. 순수하면서도 정직한 색인 흰색이 좋을까 싶지만 때로는 너무 무기력하게 보일 수 있다. 정열적인 빨강으로 넘치는 에너지를 줄 수 있지만, 자칫 공포와 위협감을 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신뢰를 주기도 하고 이성적이기도 한 파랑을 칠해볼까? 이건 또 자칫 우울감을 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뭔가 신비롭고 낭만적인 보라색을 선택한다면 그 뒤에 감춰진 쓸쓸한 고독의 느낌이 함께 떠오르는 걸 대비해야 한다. 고독이 싫다면 봄의 생동감을 가진 기쁨의 색, 노랑을 칠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노랑은 비겁함이라든지 신경질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각각의 색은 결코 좋은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어떤 관점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를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양한 색이 한데 모이면 나름대로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조화를 이루는 색의 다양한 의미들로 마음을 다스리는 여유를 생각해본다. 언젠가 SNS에서 여러 색으로 꽉 채워진 완성된 컬러링 북을 본 적이 있다. 가지각색으로 빈 공간을 메웠는데 그냥 봐도 전문적인 미술 감각을 고려해서 채운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제각각인 여러 색의 어울림으로 인해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저마다 색이 가진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는 어울림을 본 것이다. 우울하고 신경질적이거나 무기력한 마음이라면 기쁨을 주고 에너지가 넘치는 색으로 보완하면 된다. 때로는 지나치게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흘러가고 있다면 냉철하고 이성적인 색으로 나를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여러 색을 조합하면서 마음의 상처에 의미 있는 힐링(healing)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올해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그 짧은 시간에도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았다. 앞으로 어떤 스트레스가 닥쳐올지도 대충 알고 있다. 스트레스를 받는 만큼 내 마음에 빈 곳도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남은 12월까지 건강한 마음으로 살기를 작정해본다. 오늘도 스트레스로 비어 버린 마음을 또 하나의 색으로 칠하면서 말이다. 하나씩 빈 곳을 메우다 보면 내일은 조금 더 건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으리라. 더 나아가 마음이 뻥 뚫린 모든 사람이 올해는 좀 더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함께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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