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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가는 영웅들, 기억하겠습니다

21개국 한국전쟁 참전용사 1000여명 사진으로 기록 현효제 작가

입력 : 2019-06-21 18:30/수정 : 2019-06-23 17:19


현효제 작가가 ‘참전용사들 눈 속에 보이는 자부심이 내가 이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라는 글과 함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들.

69년 전 작은 한반도 낯선 땅,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군화 끈을 조였던 젊은 청년들이 있었다. 21개국 참전용사들이다. 이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젊음을 바쳤다. 이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전 세계를 누비며 사진으로 기록하는 이가 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지난 6일 만난 현효제(41·광림교회) 작가는 2013년부터 지금까지 국군 5000여명, 6·25 참전용사 1000여명을 촬영해 왔다.

포털사이트에서 영상이 노출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민일보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기록이 모여 역사가 되고 역사는 곧 국가의 자부심이 됩니다. 더 늦기 전에 생존해 계신 6·25 참전용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더 많은 분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사명입니다.”

현 작가는 2003년 군 제대 후 한양대학교 사학과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종합예술대학에 입학해 컴퓨터그래픽을 배우던 중 사진에 빠져 전공을 바꿨다.

졸업 후 한국에 온 그는 ‘군인 사진찍는 사진작가’가 됐다. “가족들과 같이 보낸 시간이 없어서 가족사진을 다 모아도 앨범 하나를 못 채운다”는 한 군인 원사의 사연이 계기가 됐다. 3년 동안 전국 부대를 돌아다니며 군인과 군인가족, 군복 등을 촬영했다. 

2016년 ‘나는 군인이다’를 주제로 사진전도 열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미국 참전용사를 만났다. 현 작가는 “6·25전쟁에 참여한 3년이라는 시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순간이었다고 고백한 그 참전용사의 말에 큰 도전을 받았다”고 했다. 

현 작가는 조명과 스튜디오 장비 등 50㎏ 넘는 장비를 짊어지고 다닌다. 해외를 오가는 항공권과 모든 비용을 사비와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아끼는 장비를 팔고 빚도 늘었지만 이 일에 돈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느낀다. 

“사진작가로 쉽게 돈 많이 버는 길을 택할 수도 있었겠죠. 하나님이 이런 저를 좁고 험한 길로 인도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힘들고 지칠 때마다 돕는 자들을 통해 이 일을 계속 감당하게 하십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마 7:7)란 말씀으로 큰 위로를 받아요.” 

한번은 영국 참전용사를 만나러 가던 길이었다. 항공료를 아끼기 위해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를 거쳐 이동하던 중 가방을 도둑맞았다. 

“장비를 다시 살 비용은 없고 그때 정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어요. 가방을 찾았는데 장비를 제외한 다른 것만 가져갔더라고요. 하나님이 이 일에 나를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한국전쟁에 참전해 한쪽 팔과 다리를 잃은 윌리엄 웨버 대령 모습. 현 작가 제공

작업실 벽면에 걸려 있는 많은 노병들의 사진 중 윌리엄 웨버 대령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6·25전쟁 당시 웨버 대령은 북한군 수류탄에 오른쪽 팔과 무릎 아래를 잃었어요. 원망할 법도 한데 자신들이 더 잘 싸웠다면 한국이 분단되지 않았을 거라며 오히려 미안해했어요. 군인으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잘한 게 있다면 젊었을 때 한국을 위해 싸운 것이라고 말해요. 우리가 예수님 사랑에 빚진 자들인 것처럼 참전용사를 만날 때마다 늘 빚진 마음입니다.” 

액자 밑에는 후원자의 이름과 함께 ‘당신 덕분에 내가 살아있습니다. 당신은 영웅입니다’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모든 사진은 흑백으로 촬영됐다. 


“색은 시간과 장소와 사람에 따라 다른 감정을 보여줍니다. 제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군인들의 명예와 진정성입니다. 이런 가치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하지 않죠. 그래서 색을 빼고 흑백을 통해 사람에게만 집중하도록 했습니다.”

촬영한 사진은 액자에 담아 포장한 뒤 직접 가져다준다. 참전용사들은 자신을 기억해주고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큰 명예로 여긴다. 

현 작가의 이 같은 열정에 미국 참전용사협회는 2017년부터 공식 촬영 허가권을 승인했다. 당시 참전용사협회 짐 피셔 사무총장은 “70여년 전 젊었던 우리가 태평양을 건너 대한민국으로 갔듯이 한국의 젊은이들이 직접 미국에 찾아와 우리를 기억하고 기록해줘서 너무도 뿌듯하다. 이렇게 사진으로 기록되니 내가 영웅이 된 듯하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의 한 참전용사 가족 사진. 현 작가 제공

참전용사를 찾아다니면서 가장 힘든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영국 참전용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액자를 드리려고 찾아갔는데 도착 이틀 전에 돌아가셨더라고요. 부인이 액자를 받고 눈물을 흘리셨죠. 참전용사들은 평균 80~90세입니다. 한 해에 300~400명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요. 촬영 후 액자를 전달해드릴 때까지 그분들이 건강하게 계실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현 작가는 다음세대를 위한 한국교회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요즘 아이들에게 6·25전쟁에 관해 물었더니 아이돌 그룹 이름이냐고 되묻더라”며 “교회에서 다음세대 아이들에게 그들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왜, 어떻게 했는지 역사교육을 가르치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 작가는 지난 9일부터 미국을 방문해 참전용사들의 모습을 렌즈에 담고 있다. 최종 목표는 정전 70주년인 2023년까지 참전용사들을 계속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올 때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기억하고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영상= 유튜브 채널 projectsoldier Rami 제공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84296&code=23111111&sid1=chr&fbclid=IwAR1d69tJ8RFFtLJTIxt9pOpsStfsFoaB9DW0-F4fHYu7rWQCjfa3XTmcm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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