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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목사의 요한계시록 읽기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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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건(6) - 말세 예측서(2)

마태복음 24장에서 열거된 말세의 징조는 요한계시록 6장에 등장하는 인 사건에서 전개되는 말세에 세상에서 일어날 예측과 똑같은 순서로 배열되고 있다. (1)미혹 (2)분쟁 또는 전쟁 (3)기근 - 경제적 불평등 (4)지진 - 예측할 수 없는 죽음 (5)교회의 환난의 순서로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 24에서 이러한 말세의 징조는 일어나되 세상 끝은 아니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는 예수님의 초림에서 재림까지 이어지는 세상 끝 날들 곧 말세들의 징조라는 것이다. 그리고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온 세상에 전파되었을 때 끝이 온다고 말씀하고 있다. 세상 끝 날들의 끝(말세지말) 즉 종말이다. 요한계시록은 이 세상 끝 날(종말)6번째 인 사건으로 그리고 있다.

 

다섯 번째 인 : 교회의 순교

[6: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교회는 어떤 형태이든지 세상으로부터 순교를 당하게 되어 있다. 순교가 없는 시대란 없다. 마태복음 24:19에서는 교회가 당하는 환난과 미움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순교란 복음을 증거하다가 당하는 모든 환난과 미움받음을 의미한다. 물론 핍박의 시기에는 죽음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타협의 시기에는 세상으로부터 당하는 미움으로 나타난다. 이에 대해 마태복음 5:11은 이렇게 설명한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미움의 형태가 악한 말과 함께 한다. 그러나 교회가 순교를 당할 때 교회는 기뻐하라고 위로한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태복음 5:12)

 

마태복음은 교회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순교를 당할 것이라고 하고, 요한계시록은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 순교를 당할 것임을 선포한다. 이에 교회는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언제까지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환난과 미움을 받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에 그 수가 차기까지라는 답을 듣는다. 에 대하여 요한계시록은 ‘144,000이라고 밝히고 있다. 당연히 문자적 144,000명은 아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7장에서 듣게 될 것이다. 그 수가 차기까지는 잠시 동안이 될 것이다. 이 잠시 동안을 베드로후서 3:8에서는 하루가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참으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고통보다 하나님의 기다림의 고통이 더 큼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오래 참음의 기다림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기쁨이 되느니라.”(누가복음 15:10)

 

요한계시록은 순교하는 교회에 대하여 확신과 사명을 주고 있다. 흰 두루마기()을 주셨다는 말은 구원의 확신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다가 죽은 자들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14:13은 이렇게 위로하고 있다.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이렇게 요한계시록은 말세에 일어날 사건을 말하면서 교회의 보존(7), 교회의 사명(10-11)에 대하여 이야기 하며 주님이 교회와 항상 함께 하고 있음을 주지시키고 있다.

 

여섯 번째 인 : 진노의 큰 날

[6: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13]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14]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15]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16]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여섯 번째 인 사건은 세상 끝 날 곧 종말의 사건이다. 이는 요한계시록 19장에서는 백마 심판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7번째 대접사건의 재앙으로 설명되고 있다. 바로 이 날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이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요한계시록 1:7)

 

이 날은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날이라고 선언한다. 심지어 시자의 진노가 아닌 어린 양의 진노라고 표현한다. 어린 양의 모습은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모습이다. 하나님이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다. 그런데 마침내 진노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말은 더 이상 용서할 때가 지났음을 의미한다. 노아의 홍수 때에 방주의 문을 닫힘을 말한다. 구원의 문이 닫힌 것이다. 더 이상 기회는 없다. 그래서 전도서 12:1-3에서 이렇게 경고한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물론 전도서에서 말하는 것은 개인의 종말 개인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큰 그림으로 말하면 우주의 종말 예수님의 재림 때 믿지 않는 세상에 대한 심판에 대한 것이다. 청년의 때란 살아 있을 때를 말한다. 구원의 문이 닫히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죽음의 날과 예수님의 재림 세상 끝 날의 그림이 똑같이 그려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날은 두려움을 묘사하는 글을 보라. 지진과 어둠 그리고 피. 무엇이 연상되는가? 하늘의 별이 떨어지는 광경을 그려보라. 이는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재앙의 그림이다. 그런데 별들의 떨어짐을 아직 익지 않은 열매가 떨어지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예수님의 재림은 인간이 예상할 수 있는 시기에 오시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재림은 도적같이 오실 것을 말씀하고 있다. 끝 날의 심판은 예고도 없이 다가온다. 그리고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이에 대해 베드로후서 3:10은 이렇게 말씀한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새 하늘과 새 땅이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요한계시록 21:1)

7 종류의 사람들이 두려워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에서 자신들을 숨기려 한다. 이를 요한계시록 18장 바벨론 심판에서는 두 종류로만 나누어 이야기 한다. 그것은 권력과 돈이다. 이것은 인간의 능력에 관한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능력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인간의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죽음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 인간의 미련함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끝 날은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비웃는다. 아무리 피하려고 하여도 불 가운데서 모든 것이 드러나듯이 끝 날의 심판은 반드시 온다.

 

일곱 번째 인 : 모든 사건을 포함하다

 

8장에서 일곱 번째 인이 떼어진다. 그리고 7 나팔 사건이 일어난다. 인간의 욕심에 대한 경고다. 그리고 7번째 나팔이 불 때 7 대접 사건이 전개된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는 야고보서 1:15의 말씀대로 인간의 욕심은 그 끝을 본다. 인간의 욕심은 최대 미혹의 사건을 불러들이고(아마겟돈 전쟁) 그리고 종말을 맞는다. 인간의 욕망을 맡겼던 것으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음녀(17) 그리고 권력과 돈의 바벨론이 결국 무너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18). 무엇보다도 하나님나라에 대항하는 인간나라의 모습이 그려지고 666의 전략과 돈의 함수 관계를 보게 되는 것은 믿는 자들의 복이다. 왜냐면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기 때문이다. 단 알면서도 666표를 받게 되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또한 경악하게 된다. 1000년 왕국의 이야기가 나오고 마침내 마지막 백보좌 심판을 통해 천국과 지옥이 갈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전개된다. 일곱 번째 인의 이야기다.



김성철목사의 요한계시록 읽기 23

교회와의 언약

요한계시록은 구도를 보면 심판의 사건 전개 후에는 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인사건 후에 등장하는 교회의 보존, 나팔사건 후에 등장하는 교회의 사명 등, 심판과 교회가 교차되어 요한계시록은 전개된다. 그렇다면 인사건 후에 등장하는 교회 이야기는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세기 1-11장에 기록된 인류의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인 사건은 창세기 3장에서 선포된 타락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 심판과 닮아 있다. 그리고 666 사건은 바벨탑 사건의 재발이다. 그리고 노아 홍수 후에 자연을 대표하여 노아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인사건 후에 등장하는 교회 이야기와 닮아 있다. 땅에서 벌어지는 하나님의 심판으로서의 말세의 징조 가운데 보존되는 교회 이야기다. 그런데 이는 노아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과 닮아 있다고 해서 교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할 수 있다.

 

보존되는 교회

[7: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2]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4]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노아 홍수 후에도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이보시기에 악할 것이란 판정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는 세상을 물로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이것이 노아와 맺은 하나님 언약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보존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베드로후서 3:6-9은 이렇게 밝힌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요한계시록 7장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자연의 세계 곧 세상은 보존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5번째 인사건은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수가 차기까지 교회는 환난이나 순교를 계속 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7장에서 그 수를 밝히는데 144,000명이다. 하나님은 144,000명이 차기까지 세상을 본존하실 것이다. 이 수가 차면 마침내 예수님은 재림하실 것이고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애통함이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은 구원받을 때요 또한 교회는 전도의 사명을 감당할 때이다.

 

144,000

[7:5]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6]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8]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9]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요한계시록은 구원받은 성도의 총수를 144,000명이라고 한다. 이 수는 12x12x1000의 수다. 127,10과 더불어 완전 수로 불린다. 10이란 수는 철저한 또는 완벽함이란 의미를 가지는데, 기간으로 말하면 10은 한정된 기간의 수라면 1000은 무한대의 기간을 말한다. 7이란 수는 영어의 집합 명사와 같은 의미로 모든 것을 7으로 분류하여 모든 분야를 총칭하는 수가 된다. 예를 들면 7교회에서 에베소서, 서머나 등 모든 교회를 7로 분류하여 표시하는 것으로 에베소와 같은 교회, 서머나와 같은 교회 그런 의미를 가진다. 12란 수는 영어의 대표단수에 해당하는 의미를 가지는데 전체를 대표해서 하나를 내세우는 것과 같다. 이스라엘은 12지파로 이루어졌는데 각 지파에서 한 명씩 대표로 세워 그 대표가 그 지파의 전체를 나타내는 것과 같다. 거기에다가 12+12라고 하면 존재의 수를 말하고 12x12하면 총칭의 수가 된다. 여기에다가 무한대의 수 1000를 곱했으니 이는 구원받은 총 성도를 말한다. 요한계시록 7:9에서 인침을 받은 144,000명을 흰 옷을 입은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하였다. 곧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총수다.

따라서 문자적으로 144,000명만이 구원받을 수라고 속이는 자들을 경계하여야 한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숫자나 사건 등을 다른 성경에서 해석해 주지 않으면 바로 그 문맥에서 해석해 주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144,000명에 관한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의 총수가 144,000명이다. 물론 우리는 구원받은 총수는 알지 못한다. 하나님만이 아는 구원받은 자의 총수가 차면 예수님은 재림하시고 세상은 마지막 날들(말세들)의 마지막 날(종말)이 될 것이다.

 

흰 옷 입은 자들

[7: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1) 흰 옷을 입은 자들에 대하여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된 자들이라고 밝힌다. 이사야 1:18에 보면 이런 하나님의 초대가 있다.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변론하자는 말은 한번 따져 보자는 의미다. 무엇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다.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주홍 같고 진홍 같이 붉은 죄가 희게 된다는 것인가?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자 나뭇잎으로 자신들의 수치를 가리는 장면을 읽는다. 나뭇잎 옷은 자신의 수치를 영원히 가리지 못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에게 나뭇잎 옷 때신에 가죽 옷을 입혀주셔서 인간의 수치가 영원히 가려지도록 하셨다. 여기에서 가죽이란 벗긴다의 의미를 가지고 입히다의 의미가 있다. 가죽옷이란 벗겨서 입히다는 의미다. 인간의 죄 대신에 짐승이 죽어 자신의 가죽을 인간을 위해 벗겨진 것이다. 바로 이 사건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일어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인간의 죄를 씻어준 것이다. 이를 믿는 자에게 진홍 같은 붉은 죄라도 희게 된 것이다. 붉은 죄의 옷이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희게 씻기어 진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자이다.

 

(2) 그런데 이들을 요한계시록 7:14에서 큰 환난에서 나온 자라고 하였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불경기가 오면 다 같이 힘이 든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당하는 환난을 일반 환난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을 믿기에 당하는 것을 큰 환난이라고 한다. 예수님 때문에 환난을 당하거나 또는 손해나 희생을 치루는 자를 넓은 의미에서 예수님 이름으로 순교하는 자이다. 순교란 의미는 원래 있는 사실대로 증언하는 자인데, 이러한 증언으로 인해 환난이나 죽음을 당했기에 증언자란 의미가 순교자란 의미와 동일시되었다. 디모데후서 3장에서는 마지막 때 곧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예수님을 바로 믿는 자는 어려운 일을 당할 것을 예측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생명 있는 관계가 너무나 좋아서 세상에서의 불이익이라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가 참 믿음의 소유자가 아니겠는가?

 

(3) 이들은 또한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는 자들이다. 곧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는 자들이다. 성경에서 가장 큰 복은 바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다. 이것이 생명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다시는 목마르거나 주리지 않는다. 당연히 영적 풍요함이다. 이를 시편23편에서는 하나님이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김성철목사의 요한계시록 읽기 24

욕심에 대한 경고

말세에 대한 징조가 1-4번째 인에서 예측된다. 미혹과 분쟁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과 예측할 수 없는 죽음의 증가, 5번째 인에서는 성도들에 닫히는 환난이 예고된다. 그리고 6번째 인은 말세지말 곧 종말의 상황이 묘사된다. 이제 7번째 인이 열린다. 7번째 인은 이후 주어지는 심판을 포함하고 있다. 그 심판의 첫 번째가 7나팔 사건이다.

 

고요함이 흐르다

[8:1]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니 [2]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3]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5]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과 성막제도를 주셨다. 성막은 성막 뜰과 성소로 구분되고, 성소는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된다. 지성소는 언약궤가 있는 장소로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주시는 장소다. 지성소와 성소는 휘장으로 구분되고 있다. 성소에는 진설단(떡단)과 등대 그리고 향단이 있다. 향단은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짓고 있는 휘장 앞에 있다. 이 향단은 성도가 드리는 기도를 상징한다.

5번째 인사건에서 보면 순교당한 성도들의 기도가 있다. 기도의 내용은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기도다. 요한계시록 7장에서 예수님을 믿기에 당하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흰 옷입은 무수한 성도들(144,000)을 본다. 성도들의 기도는 변하지 않고 보좌 앞으로 올라간다. 그래서 금 향로이다. 곧 하나님의 기억하신 바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장 성도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자. 모든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기억된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 심판에 대한 기록이다. 로마서 12:19에 보면 하나님의 원수갚음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교회에게 주어진 사명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아무리 세상이 성도나 교회에게 악하게 한다 하더래도 교회나 성도는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한다. 로마서 12:21에서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명한다. 성도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세상으로 오는 무모함이나 억지 그리고 내어줌을 당한다. 성도가 세상에서 당하는 큰 환난이다. 그래서 이러한 억울함에 대해 성도가 하소연할 곳은 하나님밖에 없다. 이러한 하소연이 5번째 인사건에 나온다. 그리고 이러한 성도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원수갚음이 7번째 인이 열리면서 이어지는 하나님 심판의 내용이다. 천사가 성도의 기도(향로)를 가지고 불을 담아 세상에 쏟아낸다. 불은 태우는 것이고 결국 모든 것이 드러난다. 그리고 나팔사건이 일어난다.

나팔사건이 일어나기 전 곧 7번째 인을 떼자 하늘에는 반 시간쯤 고요함이 있다. 이는 전쟁 전의 고요함과 같은 것이다. 긴장이 고조된다. 하나님의 뜻이 인간들을 통해 땅에 드러나야 했다. 그러나 인간은 오히려 땅의 것들을 얻으려고 하나님을 이용하고 이웃을 이용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교회와 성도에게 악을 행한다. 하늘로부터의 경고가 주어진다. 이러한 경고는 하나님의 진노를 땅에 쏟아붓기 전에 주어지는 것이다. 정적이 흐른다. 그것은 두려움이다. 전도서 12:1-2은 이렇게 경고한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고요함, 두려움과 불안이 몰려온다. 그래서 지혜자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 야고보서 1:15의 말씀이다. 욕심이란 내가 보기 좋은 대로 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팔사건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의 이야기다.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는 내용은 대접사건에서 일어난다.

야고보서 1:14은 우리가 미혹 또는 유혹을 당하는 것은 욕심 때문이라고 이야기 한다. 욕심이 유혹을 불러온다. 최초의 인간이 사탄의 유혹을 받은 것은 먼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세기 3:6) 욕심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정당화시키기 시작한다. 어떠하든지 정당성을 찾으면 자신의 욕심을 따라 행하게 된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경고했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이 결코 죽지 않는다는 사탄의 유혹은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정당성을 자신의 논리로 인정하게 되자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남편 아담도 먹게 함으로 자신이 본 대로 행한 것이 정당하였노라고 스스로 안위한다.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 인간이 진리의 지식에 결코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욕심 때문이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자신도 모르게 남을 속이는 자가 되고 지옥으로 사람들을 끌고 가는 악한 자가 된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를 거절하고 사람이 보기에좋도록 따라가는 세상의 모습이다. 결국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은 어떠하든지 상관하지 않는 결과를 낳고 심지어 자신의 그 피해를 보게 된다. 하나님이 명하신 이웃 사랑에 대한 말씀을 어긴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결국 하나님께 범죄하는 결과를 낳는다.

 

인간의 욕심으로 파괴되는 자연

 

천사가 나팔을 분다. 나팔은 전쟁이 시작된다는 신호이다. 이것은 적군에게 있어서는 경고다. 첫 번째부터 4번째까지의 경고 나팔은 공통점을 가진다. 그것은 땅에 관한 것이다. 물론 하늘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결국 지구라는 땅의 영역에 관한 것이다.

땅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뜻대로 다스리라고 인간에게 하나님이 명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거부하고 오히려 인간이 땅의 주인이 되기로 했다. 이것이 창세기 3장의 타락 사건이다. 인간은 하늘을 바라보기 보다는 땅의 것을 바라보았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다 하나님께 속했다. 그러나 인간은 땅을 소유하고자 했다. 인간에게 소유개념이 들어오자 분쟁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소유는 인간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함이다. 인간의 타락 사건은 하나님이라는 울타리를 차버린 사건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신의 울타리었던 하나님을 대신할 울타리를 땅을 소유함으로 이루려고 한다. 그렇게 땅은 인간들의 손에 의해 파괴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간은 스스로가 파괴한 자연으로부터 보복을 당할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에서 네 번째까지의 나팔사건이다.

 

첫 번째는 땅이다. 두 번째는 바다에서 일어난다. 세 번째는 강이고 네 번째는 하늘이다. 요한계시록 8장에 기록된 각 부분은 자세히 해석할 필요는 없다. 인간들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자연파괴다. 땅에서 바다에서 강에서 하늘에서 말이다. 물론 자연은 인간의 삶을 위해 제공되어진다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리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자연개발이 어느 특정한 자에게만 이익이 되고 이웃에게는 해가 된다면 멈추어야 한다. 그러나 욕심은 항상 자신에게만 향한다. 물론 개발이라는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자연은 특정인들을 위하여 파괴되어왔다. 당연히 모든 인간에게 이익이 되고 자연개발을 통해 오히려 자연이 지켜진다면 그리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염폐수를 강으로 흘러 보내면서 강은 더 이상 식수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제는 물을 돈을 주고 사먹어야 한다. 이 지면에서는 여러 가지 피해를 열거하지는 않겠다.

 

경고가 주어진다. 1/3이 죽게 된다. 3이란 견고하게 설 수 있게 만드는 수다. 그런데 셋 중에 한 축이 무너진다. 그러면 물건은 지탱할 수가 없다. 그래서 1/3은 경고의 수다. 자연파괴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욕심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다. 인간이 욕심으로 파괴한 자연은 있는 그대로 인간에게 돌려준다. 하나님은 인간을 항상 용서하고 인간은 때론 용서하지만 자연은 결코 용서를 모른다. 심는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이러한 인간들의 특정 부류의 욕심으로 인한 자연파괴로 인해 1/3이 죽듯이 하나님은 나팔사건을 통해 인간의 욕심을 경고하고 있다. 욕심은 그 대가를 치루게 될 것이라는 경고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경코 회개치 않는다는 경고도 곁들이면서 나팔사건은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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