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샘(35): "하늘의 예배와 새 노래” (계 14장) 윤사무엘 목사 (올리벳 교회)

by wgma posted Aug 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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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 샘(35)

"하늘의 예배와 새 노래” (계 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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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계 14:1-20
제목: 생명 샘(35): "하늘의 예배와 새 노래” (계 14장)

본문: 계 14:1-20

요절: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 사 만 사 천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 14:3)

주제: 구원받은 자의 천상예배와 새 노래 주제처럼 영원한 복음을 믿어 구원받자

교독문: 67번(잠 3장), 예배의 부름: 골 3:15-17

찬송: 518장(통 252장), 417장(통 476장)

일자: 2019년 9월 1일 주일 (성령강림절 후 열두 번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올리벳 교회)

 

요한 계시록 14장은 계 11:15에서 시작된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분 이후 사탄의 최후 발악을 12-13장에서 보여주며, 이 장에서는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순교한 144,000성도들의 천상예배 모습(계 14:1-5), 세 천사들의 환상(계 14:6-13), 그리고 두 가지 추수 비유(계 14:14-20)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14장은 일곱째 천사의 나팔 재앙의 계속으로 큰 용과 두 짐승들의 핍박 속에서도(12-13장) 구속받은 성도들이 승리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구원받은 성도들 (계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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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원받은 144,000성도들(계 14:1-3)

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the mount Sion)에 섰고, 그와 함께 14만 4천이 섰는데, 그들의 이마에 그분의 아버지의 이름[개역, 개역개정에는 “어린양의 이름”은 개혁자들의 성경에는 없음]을 쓴 것이 있도다. 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thunder)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수금(harps) 타는 자들의 그 수금을 연주하는 것 같더라. 3 그들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救贖)함을 얻은 14만 4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사도 요한은 어린양이 시온산에 서신 것을 봅니다.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시온산은 하늘에 있는 시온산(mount Sion)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천국을 말하며, 예루살렘의 별칭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은 성전산에 있고 동쪽에는 감람산(mount of olives = olivet)이 있고 예루살렘 성전의 남쪽에는 시온산이 있습니다. 성경을 살펴보겠습니다. 히브리어로 음독(音讀 transliteration)하면 Zion이고, 헬라어로 음독하면 Sion이 됩니다.

시 2: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Zion)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시 132:13 “여호와께서 시온(Zion)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14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시 133:3 “헐몬(Hermon)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the mountains of Zion)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 149:2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자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시온(Zion)의 백성은 저희의 왕으로 인하여 즐거워할지어다.”

사 49:14 “오직 시온(Zion)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하였거니와”

욜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mount Zion)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미 4:7 “그 저는 자로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로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산(mount Zion)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치리하리라 하셨나니”

롬 9:33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Sion)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히브리서 12: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mount Sion)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또 사도 요한은 어린양과 함께 14만 4천명의 유대인 성도들이 서 있는 것을 봅니다. 이 14만 4천명의 성도들은 앞서 살핀 계시록 7장에 증거된 대로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들로 어린양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 성경에는 ‘어린양의 이름’도 씌여 있다고 했는데 개혁자들의 성경(안디옥 사본)에는 없습니다. 그들은 땅에서 구속(救贖)함을 받은 이스라엘의 12지파 출신의 유대인 성도들을 말하는데(계 7:4), 이방인의 숫자는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구원을 받습니다(계 7:9). 그 이마에는 성부 하나님의 이름이 씌여졌는데 그것은 소속과 소유권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로 144,000 숫자는 12X12=144의 상징적 숫자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와 교회가 144,000일지, 144만명일지, 1440만명일지, 1억 4400만 일는지 하나님께서만 아십니다.

 

본문 2절에 보니 사도 요한은 또 하늘에서 나는 큰 소리를 듣습니다. 그것은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천둥(뇌성)도 같았으며 수금(현악기)을 연주하는 자들의 현악기 연주하는 소리와 같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14만 4천명의 성도들이 부르는 찬양의 소리입니다. 참된 성도들은 지상교회와 천상 교회에서 찬송을 부릅니다.

 

3절에 보니 사도 요한은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는 것을 봅니다. 그 노래는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14만 4천명의 성도들밖에는 배울 수 있는 자가 없는 새 노래입니다. 이 새 노래는 구원의 노래, 복음의 노래, 하나님 사랑의 노래, 감사와 찬양입니다. 어린양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과 천군천사들만이 새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속죄신앙을 가진 자들만 새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계 5:9에서 읽은 대로 네 생물들과 이십 사 장로들이 새 노래를 부릅니다. “새 노래를 노래하기를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시 33:1-2 “너희 의인들아, 어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2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시 33:3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공교히 연주할찌어다.”

시 40: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시 96:1-2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2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 이름을 송축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파 할 지어다”

시 98:1-3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시어,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 2 여호와께서 그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 의를 열방의 목전에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3 그가 이스라엘 집에 향하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의 모든 끝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시 144:9-10 “하나님이여, 제가 주님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줄 비파로 주님을 찬양하리이다. 10 주님은 왕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자시오, 종 다윗을 그 해치는 칼에서 구하시는 자시니이다.”

시 149:1-2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지어다. 2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자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시온의 자민은 저희의 왕으로 인하여 즐거워 할지어다.”

사 42:10 “항해하는 자와 바다 가운데 만물과 섬들과 그 거민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좋아하며 불렀던 노래들, 민요든지 유행가든지, 세속노래들은 다 옛 노래들입니다. 성도들은 그런 세속노래, 옛 노래들이 헛되다는 것과 그것들 중 어떤 것들은 불경건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더 이상 그런 노래를 좋아하지 않으며 또 부르기를 원치 않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새 노래를 부릅니다.

 

(2) 144,000 성도들의 특징(계 14:4-5)

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니 왜냐하면 그들은 처녀들(virgins)이라. 그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인데 사람 가운데서 구속(救贖, redeemed)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the firstfruits)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구속(救贖)받은 성도들의 특징은 첫째로, 순결한 자들입니다. 원문을 다시 번역하면, “이들은 여자들로 더불어 더럽혀지지 아니했으니 왜냐하면 그들이 처녀임이라.” 여자들은 세상을 가리킵니다. 참 성도들은 구원받은 후 다시 죄악 되고 멸망할 세상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들이 과거에 술 마시고 방탕하고 간음했을지라도, 이제 그들은 다시 그런 세상 생활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제 세상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들이 이 세상을 사랑했다면, 그들은 자신의 몸을 더럽힌 여자와 같았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뱀이 그 간사한 거짓말로 하와(Eve)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 권면합니다(고후 11:2-3). 또 그는 고린도 교인들이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용납한 것을 지적하며 책망하고 바르게 믿음 생활하기를 권면하였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자라면, 우리는 모든 잘못된 사상과 교리, 모든 잘못된 행위와 풍조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믿고 섬기며 경배하며 또 오직 성경에 밝히 계시된 하나님의 온전한 뜻만 믿고 그를 따르며 섬겨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구속받은 성도들은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성도들은 사람이나 세상을 따라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회개한 우리는 오직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만 따르며, 그분의 말씀과 명령이 성경에 있으므로 성경말씀만 믿고 순종하며, 목사님의 선포하시는 성경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순종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바른 태도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그의 말씀만 따라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그분의 명령이 보이는 대로, 그가 어디로 가시든지 그를 따라가는 것이 순종의 삶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라가는 것은 항상 기쁘고 즐겁고 평안한 길만이 아닙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길에는 때때로 수고와 고난과 핍박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경의 교훈대로 즐거이, 자원함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기억합시다(요 21:18-1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하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셋째로, 구속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첫 열매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 모든 피조 세계의 회복을 계획하셨고, 택하신 사람들을 먼저 구원하십니다. 그들은 첫 열매들입니다. 고전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성도들의 구원이 충만하게 성취되면, 온 세상 만물이 회복되며 새로워질 것입니다. 계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넷째로, 구속받은 성도들은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입니다. 구속받은 성도들은 거짓말하지 않는 자로 증거됩니다. 거짓은 사탄의 죄악(요 8:44)이며 사탄의 종들의 특징이고, 진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들의 특징입니다.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지옥 불에 던지울 것입니다(계 21:8, 27; 22:15). 죽더라도 거짓말하지 맙시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삽시다. 또 구속받은 성도는 흠 없는 자(without fault)로 증거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흠 없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살전 5:23).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것은 우리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엡 1: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로 깨끗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셔서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엡 5:26-27). 사도 바울은 우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에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 빛들로 나타나야 한다고 교훈했고(빌 2:15),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자라면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벧후 3:14).

 

1절부터 5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하늘의 시온산에 어린양과 함께 서 있으며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한 십사만 사천 명의 성도들은 신앙의 순결성을 지켰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시는 대로 따라간 자들이며 거짓 없이, 진실하게 살고 흠이 없는 자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참으로 구원받은 자들이라면 땅에서 구속받은 십사만 사천 명의 성도들(숫자는 제한된 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가운데 구원받은 자의 상징적 수임)의 모습을 본받읍시다. 우리는 신앙의 순결성을 지키며 성결하게 삽시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과 말씀의 순수성을 지킵시다. 또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진실하게, 흠 없이 살아갑시다. 그리고 항상 새 노래, 즉 구원의 노래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시다.

 

 

2) 세 천사들의 외침(계 1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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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궁한 복음을 전하는 천사(계 14:6-7)

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하늘에 날아가는데, 땅에 사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무궁한 복음(the everlasting gospel)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 왜나하면 그분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기초들을 만드신 분을 예배하라” 하더라.

 

사도 요한은 온 세계에 전할 무궁한 복음을 가지고 공중에 날아가는 한 천사를 봅니다. 개혁자들의 성경에서는 ‘영원한(eternal)’ 대신 ‘무궁한(ever-lasting)’ 복음이란 단어를 씁니다. 영원(aionas)이란 헬라철학 개념은 인간의 시간을 무한대로 연장하는 개념이라면, 히브리어의 올람(‘Olam)은 하나님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은 질적으로 다른 ’무궁‘하신 분이십니다(전 5:2, 사 55:8-9). 요 3:15-16에 보면 주님께서 니고데모와 대화하실 때 요 3: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his only begotten Son)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무궁한 생명 (everlasting life)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십니다. 다함없는 뜻인 ‘무궁’(ever-lasting, ever-flowing, ever-living, 중단이 없이 지속적으로 계속) 번역이 히브리어 올람에 더 가까운 번역입니다. 한 천사가 세상에 전할 무궁한 복음을 전합니다. 일곱 번째 나팔 재앙시 전도가 불가능할 때 천사가 전도하며 ‘무궁한 복음’을 전합니다. 최초의 복음도 천사가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소식을 천사가 베들레헴 들녘에서 양떼를 치던 목자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천사가 말하기를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Fear not: for, behold, I bring you good tidings of great joy, which shall be to all people.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세주가 탄생했으니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니라 For unto you is born this day in the city of David a Saviour, which is Christ the Lord.’” (눅 2:10-11)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뜻을 계시하시기 위해 천사들을 사용하십니다(계 1:1; 8:2; 10:1; 16:1).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신속히 수행함을 상징합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복음은 ‘무궁한 복음’입니다. 그것은 어느 한 시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복음입니다. 그 효력은 영원합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영원한 천국과 영생을 주는 복음입니다. 그것은 특히 마지막 심판 전에 온 세계에 증거 되어야 할 복음입니다.

 

그 천사는 큰 음성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이 되었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며 천지와 바다와 샘들의 기초들을 만드신 분께 예배하라고 외칩니다. 예배의 유일한 대상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매우 근본적인 진리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경외하는 것)은 지혜와 지식의 시작입니다(잠 1:7; 9:10).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고전 10:31). 하늘의 예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은 매사 모든 섭리를 하시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분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야 합니다. 이것이 근본적인 진리입니다.

 

(2) 둘째 천사의 바벨론 멸망 선언(계 14: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바벨론이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도다. 왜냐하면 모든 나라를 그녀의 음행(her fornification)으로 인하여 진노(the wrath)의 포도주로 마시게 하던 자로다” 하더라.

 

사도 요한은 다른 한 천사 곧 두 번째 천사의 외침을 듣습니다. 그 외침은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내용입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라고 두 번 반복한 것은 그 무너짐의 확실함을 강조합니다. 큰 성 바벨론은 마지막 날에 확실히 무너질 것입니다. 이 바벨론은 계 17:5-18에서는 땅의 임금들과 음행하는 큰 음녀요 그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고 말했고, 계 19:3-10에서는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해 부요함을 얻었던 크고 견고한 성이라고 말했고, 계 16:19에서는 일곱째 대접 재앙에서 큰 지진으로 인해 세 갈래로 무너질 큰 성이라고 말합니다. 이 바벨론 성은 완전히 무너질 것입니다.

 

이 큰 성 바벨론에 대해서는 성경 주석가들의 해석이 다양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 바벨론이 로마 제국을 가리킨다고 보고(헹스텐버그), 어떤 이들은 이 바벨론이 이 세상을 가리킨다고 보며(헨드릭슨, 박윤선), 또 어떤 이들은 이 바벨론이 로마 카톨릭교회를 가리킨다고 보고(매튜 풀, 벵겔, 알포드, 반즈), 어떤 이들은 이 바벨론이 미래의 배교한 교회를 가리킨다고 봅니다(포셋, 렌스키, 비더울프, 김응조). 이 마지막 두 견해 중 하나가 적절해 보입니다. 장차 배교할 기독교회는 가톨릭과 연합하여 한 교회를 이룰 것이라고 봅니다. 교회통합주의, 에큐메니칼, 짐승을 탄 음녀(계 17:3)인 이 바벨론은 세속화된 배교한 교회를 가리키며 그것은 아마 장차 가톨릭이나 프리메이슨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큰 성 바벨론은 모든 나라를 그녀의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먹일 것입니다. 여기의 ‘음행’은 육적인 의미와 영적인 의미를 둘 다 가질 것입니다. 배교한 교회는 음행의 풍조를 퍼뜨리는 일에 앞장 설 것입니다. 또 그 교회는 사이비이단들을 포용하고 이방 종교들을 포용하는 신학적 포용주의와 종교적 다원주의의 교회가 될 것이고, 또 물질적인 부요와 육신적인 향락을 조장하는 세속화된 교회가 될 것입니다.

 

16세기 가톨릭은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심히 부패하였습니다. 그것은 큰 성 바벨론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유럽의 교회개혁자들은 가톨릭 교황청이야말로 성경에 예언된 그 바벨론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요한 번연의 천로역정에서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간주했습니다. 오늘날 21세기 온 세계의 배교한 교회들은 또 다시 가톨릭과 연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나타날 세계적인 배교한 교회들의 중심에 또다시 로마의 교황이 서게 되리라고 봅니다. 배교한 교회는 마침내 망하고 말 것입니다.

 

(3) 셋째 천사의 심판선언(계 14:9-11)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들 뒤를 따라 큰 소리로 말하기를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형상을 예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그의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indignation)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tormented) 11 그 고난(torment)의 연기가 무궁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형상을 예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사도 요한은 또 다른 천사 곧 세 번째 천사의 외침을 듣습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형상을 예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배교한 교회의 교인들 곧 신앙의 변절자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신앙의 정조를 지켜야 합니다. 허위와 비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고 비진리와 타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버린 자는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잔을 받을 것이며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곧 지옥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고통의 형벌입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밤낮 쉼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4) 성도들은 인내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 믿음을 지킴(계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님의 믿음(the faith of Jesus)을 지키는 자니라.

 

미래의 사실들이 이러할 것이기 때문에 성도들에게는 오직 인내가 필요하며 끝까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지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의(義)이며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죄입니다. 예수님의 믿음이란 구원에 대한 계획과 뜻을 말합니다. 롬 3:3에 보니 “그런데 어떤 이들이 믿지 아니하면 어찌 하리요? 그들의 불신이 하나님의 믿음(the faith of God=예수님)을 효력없게 만들겠느냐?” 딤후 3:15에 보니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through faith which is in Christ Jesus)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도는 은혜로 구원받은 자이지만, 의로운 행위로 그 구원을 증거해야 합니다. 행위는 구원의 조건은 아니나 구원의 증거가 됩니다. 사람이 의로운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의로운 행위 없이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죄 가운데 살 수 없습니다. 죄 가운데 사는 자는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구원받은 자는 모든 죄를 미워하고 모든 죄와 싸우며 모든 죄를 떠날 것입니다.

 

계 14:6-12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우리 성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통해 선포된 무궁한 복음, 곧 속죄의 복음, 이신칭의(以信稱義)의 복음을 믿고 확신합시다. 우리는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며 예배하며 하나님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의지하고 순종합시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을 구별하는 잣대가 됩니다.

 

둘째로, 우리는 적그리스도의 나라와 배교한 교회들이 결국 망하게 될 것을 압시다. 우리는 장차 멸망할 세상과 구별된 생활을 해야 하고 또 성경적 교훈의 터 위에 세워지고 그 교훈만을 전하고 가르치고 그 교훈 안에서 양육되는 바른 교회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배교한 교회들의 연합운동을 배격하고 그것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합니다. 동성애를 절대 반대하며, 우상숭배를 금지하고, 세속의 물결을 철저하게 차단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끝까지 인내로써 바른 믿음을 지키고 또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킵시다. 바른 믿음이란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가리킵니다. 보수신앙은 그 믿음을 순수하게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또 우리는 돈과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며 음란한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거룩하고 정직하고 선하고 진실한 삶을 끝까지 실천해야 합니다.

 

 

3) 주님 안에서 죽는 자가 복이 됨(계 14: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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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님 안에서 죽는 자(계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나에게 소리가 나서 말씀하시기를 “기록하라.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 왜냐하면 그들은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며 그들의 행한 일들이 그들을 따르리라” 하시더라.

 

‘이제부터’(henceforth)라는 말은 ‘복음 신앙을 가진 이후부터’라는 뜻입니다. 복음 신앙은 곧 구원이 되므로 복음을 믿고 죽는 자는 확실히 천국에 들어갈 것이므로 복되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이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죽음에 대해 언급하시는 것은 대 환난(The Great Tribulation) 시대에 순교자들이 많을 것을 암시합니다(계 6: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 친구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주님 안에서’ 죽는다는 것은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주님과의 영적 연합 속에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님 밖에서, 복음 신앙 없이 죽는다는 것은 큰 불행입니다. 모든 믿지 않는 죄인들에게 죄의 값인 죽음 곧 단순히 육신의 죽음뿐 아니라, 지옥 형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눅 16:19-31). 그러나 주님 안에서 죽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본문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말하는데, 첫째는 그가 그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고와 고생이 많습니다.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시 90:10). 주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마 11:28). 세상은 수고로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죽은 자에게는 참 안식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4:3, 10-11,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그 안식의 땅이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은 평안이 넘친 세계입니다.

 

주 안에서 죽는 것이 복된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이 세상에서 행한 선행들에 대해 보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행이란 천국에 들어갈 만한 가치도 없는 누추하고 얼룩지고 보잘것없는 것이며 그 자체도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귀히 보시고 상 주실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8-10,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2) 흰 구름 위의 인자가  낫으로 알곡을 추수함(계 14:14-16)

 

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가졌더라.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말하기를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세요.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나이다” 하니 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사도 요한은 흰 구름 위에서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날카로운 낫을 들고 땅의 곡식을 거두는 인자(人子) 같은 이를 봅니다. 요한이 본 그 사람은 구름 타고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분께서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곡식을 베는 것은 성도들의 구원의 때 곧 그들이 천국에 들어갈 때가 된 것을 말합니다. 심판의 때는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때입니다. 가을에 곡식이 다 익으면 추수하여 창고에 들이듯이, 마지막 심판 때에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천국으로 들이십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성도의 가장 큰 소망이요 기쁨의 이유입니다.

 

(3) 날카로운 낫을 가진 천사가 땅의 포도송이 거두어 심판받게 함(계 14:17-20)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날카로운 낫를 가졌더라. 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날카로운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소리로 불러 말하기를, “네 날카로운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1천 6백 스타디온에 퍼졌더라.

 

[설교문 전문을 보시려면 저의 홈페이지 www.samuelyun.com<span style="font-family:함초롬바탕;color:r

How to Get to Mars. Very Cool! 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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