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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목사의 요한계시록 읽기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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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용 그리고 아이

 

창세기 3:15은 두 세계의 투쟁이 있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기에서 <>란 최초의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고 인간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도록 유혹한 <>이다. 인간 타락 이후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과 하나님을 거부하고 인간을 위한 문화를 만들어 가는 자들과의 투쟁이 인간사의 흐름이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곧 하나님 중심의 문화(신본주의)와 인간중심의 문화(인본주의)가 충돌한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나라와 인간나라의 투쟁이라는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다.

 

해산하는 한 여자

(12: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12: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12: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이적>이라는 단어를 요한복음은 <표적>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숨겨진 의미>를 뜻한다. 이 단어의 동사형이 요한계시록 서두인 1:1에서 알게 하다로 번역되고 있다. 이 말은 숨겨진 의미를 드러내게 한다는 뜻이다. 요한계시록의 기록자인 사도 요한은 4장에서 하늘 보좌의 광경을 본다. 그리고 12-13장에서 하늘 보좌에 도전하는 광경을 본다. 그것은 해를 옷 입은 여자를 핍박하는 용의 도전이다.

 

(1) 해를 옷 입은 여자의 발 아래 달이 있다. 해는 자체가 빛을 발하지만 달은 해의 빛을 받아서 빛을 낸다. 하나님은 자체가 빛이시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믿는 자들도 예수님의 빛을 받아 세상에 빛을 비추는 세상 안에서 빛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해의 빛을 받아 타락한 세상에 빛을 발하는 한 여자가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쓰고 있고 아이를 배어 해산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2) 여자가 낳은 아들은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로 시편 2:7,9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자를 시편 2편은 하나님이 낳은 아들로 말씀하고 있다. 곧 하나님의 독생자(the begotten Son)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인간 구원을 위해 사람으로 태어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셨다.

 

(3) 예수 그리스도를 창세기 3:15은 여자의 후손으로 뱀의 후손으로부터 발꿈치는 상하겠지만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갈라디아서 4:4,5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서 여자에게 나게 하셨다는 의미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셨다는 의미다. 마리아를 강조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할 메시야(그리스도)를 태어나게 하실 것임을 약속했고 마침내 예수님은 메시야로서 이 땅에 여자의 몸을 통해 태어나셨다. 마태복음 1:1은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심을 분명히 한다. 요한계시록 12장은 예수님을 태어나게 한 여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이 열두 별이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의미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사명은 교회에게 주어진다. 12 사도로 대표되는 새 이스라엘 곧 교회다.

 

한 큰 붉은 용

(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12: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1) 하나님의 인간구원을 방해하려는 용이 등장한다. 이 용의 정체는 요한계시록 12:9에서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로 밝혀진다. <마귀>파괴자라는 의미이고 <사탄>이란 대항자라는 의미다. 용으로 나타나는 사탄 또는 마귀는 하나님께 도전하도록 인간을 꾀어서 결국은 망하도록 한다. 하나님이 창조한 최초의 인간은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거부하고 인간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라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타락하게 되고 인간 세상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버리고 인간 중심의 삶을 살아오게 된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사탄은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2) 용의 모습을 보자. 일단 <크다>. 용의 모습이 크게 보이는 모습은 각 머리에 왕관을 쓴 일곱 머리다. 완벽한 머리다. 최초의 인간을 유혹한 뱀을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서 제일 <간교>하다고 했다. 여기서 간교란 의미을 좋게 말하면 지혜로움이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비둘기처럼 순결하여야 하지만 뱀처럼 지혜로워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뿔이 열이다. 뿔은 권력의 상징이다. 그것도 열 뿔이다. 완벽한 권위의 모습으로 인간에게 나타나는 용의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에서 용의 앞에선 인간의 모습은 어떠한가? 인간이 감히 대항할 수 없이 느껴진다. 이는 마치 골리앗 앞에 선 이스라엘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한 내용처럼 가나안의 거주민들은 거인으로 비추어지고 이스라엘은 그들 앞에 메뚜기처럼 보였다. 이와 같이 인간은 사탄의 미혹에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여진다. 이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처럼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를 되풀이하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에 빗대어 용의 모습은 너무나 크게 보인다. 그러나 시편 74:14,15에서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용들을 깨뜨리셨으며 리워야단의 머리를 부수셨다고 하신다. 그래서 야고보서 4:6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시리라.”고 말씀한다. 거인인 골리앗을 대적하여 승리한 다윗처럼 말이다.

 

(3) 용의 모습은 <붉다>. 붉은 색깔은 전쟁과 분쟁의 색깔이다. 인간을 위한 듯이 유혹하지만 결국 분쟁과 다툼을 일으켜 인간 스스로 망하도록 하는 것이 마귀의 전략이다. 요한복음 8:44에서 예수님은 마귀에 대하여 처음부터 살인하는 자요 거짓을 진리처럼 속이는 자로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셨다. 디모데후서 3:13에 따르면 자신의 욕심에 이끌린 자는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함으로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여 결국 자신을 파괴하고 망하게 된다. 마귀는 철저하게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욕심에 충실하게 만든다.

 

(4) 용을 따르는 <악령>들이 등장한다. 한글성경에서 <귀신>으로 번역되었다. 헬라어로는 다이몬(daimon), 영어로는 demon이다. 동양에서 귀신이란 죽은 자들의 혼백이다. 그래서 사탄 또는 마귀의 졸개로 하늘로부터 땅으로 쫓겨난 악령들과는 전혀 다르다. 죽은 자들의 혼백인 귀신은 없다. 왜냐면 사람은 죽으면 천국 아니면 지옥에 가 있기 때문이다. 오직 악령이 있을 뿐이다.

 

(5) 사탄은 예수님의 등장을 방해해 왔다. 그러나 예수님은 태어나셨다. 사탄이나 악령들은 과거에 대해서는 잘 아나 미래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예수님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을 부추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했다. 창세기 3:15에서 예고한대로 예수님의 발꿈치만을 상하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간이 죄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냄으로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 그렇게 창세기 3:15은 성취된다.

 

광야로 도망간 여자

(12: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1)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믿음의 훈련을 받은 것에 비유하여, 예수님 승천 후 복음전파를 위해 세워진 새 이스라엘 교회를 말하고 있다. 광야는 교회의 양육을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도록 훈련받는다. 예수님도 인간구원을 위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시며 기도하셨다. 교회는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광야에서 양육 받아야 한다. 광야란 땅에 대해서는 전혀 소망을 가질 수 없는 곳이다. 오직 하늘만을 바라보고 하늘에만 소망을 둘 수밖에 없는 곳이다.

 

(2) 광야에서의 양육기간은 1,260일이다. 3년반 42개월을 날수로 말한 것이다. 요한계시록 11장에서 보면 두 증인이 복음을 전한 날수다. 날수로 표현한 것은 교회가 예수님의 초림에서 재림까지의 기간 동안 복음을 전해야 할 날수다. 교회는 광야에서 외치는 복음의 소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교회로 하여금 복음전파를 통해 교회를 양육하신다.



김성철목사의 요한계시록 읽기 35

 

하늘에서의 전쟁

 

요한계시록 12;7하늘에 전쟁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전쟁은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이 아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 결코 하나님을 대상으로 싸우지 못한다. 욥기에 따르면 사탄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본다. 단지 피조물의 왕으로 창조된 인간을 시기한 것으로 본다. 욥기에 보면 경건한 자로 하나님을 경배한 욥을 사탄이 시기하여 하나님과 욥 사이를 이간질 시키며 욥을 하나님께 참소하는 광경을 보게 된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끊어버리고자 하는 사탄의 전략이 요한계시록 12-13장에 드러난다.

 

땅으로 쫓겨난 용

[12: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1) 주기도문에 다르면 <하늘>이란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곳>이다. 거기에 하늘의 보좌가 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에게 맡겨진 땅에서도 하늘과 같이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반기를 든 존재가 용과 그의 사자들이다. 용의 존재는 최초의 인간을 유혹했던 뱀으로 사탄이라고도 하고 마귀라고도 한다. 용의 특징은 거짓으로 하나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하는 존재다. 사탄은 처음부터 거짓말 하는 자였다. “(사탄 또는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한복음 8:44)

 

(2) 하늘에서의 전쟁이 있었다. 그 전쟁은 최초의 인간을 사탄이 뱀을 이용해 유혹하던 때이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시킨 전쟁이었다. 창조세계에 심기어졌던 하나님의 뜻에 도전하는 행위였다. 사탄은 스스로 하나님과 다툴 수는 없었다. 사탄은 인간을 유혹해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도록 했다. 사탄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명령하신 단 하나의 금지 명령을 이용했다. 인간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거절하고 인간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기로 한다. 이것이 인간 타락사건이다. 인간은 사탄의 꾀임에 빠져 하나님께 도전함으로 스스로 멸망의 길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3) <사탄>이란 <도전자>란 의미고, <마귀><파괴자>란 의미다. 결국 인간은 요한복음 8:44에 말씀한대로 마귀를 아비로 둔 모양이 되어 버렸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사탄이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사탄이 자신이 원한대로 하였듯이 인간도 그리하였다. 인간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대로 아니라 인간 자신이 보기에 좋은대로 살아가는 삶을 택한 것이다. 곧 인간 욕심을 따라 인간을 살고자 한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사탄 또는 마귀가 원하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4) 여기에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수행하는 미가엘이 나선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최고의 걸작품인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어기게 한 사탄을 하늘에 둘 수 없었다. 그래서 미가엘로 하여금 사탄을 하늘에서 쫓아내게 했다. 미가엘과 용의 싸움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행하고자 하는 것과 거슬리려고 하는 것과의 전쟁이다. 그러니 사탄은 하늘에 있을 수 없었다. 하늘은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곳이다. 인간이 에덴에서 쫓겨나듯이 사탄은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난다. 땅은 여전히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상징적으로 인간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 주권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는 자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명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사탄은 지금도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주인이 아닌 인간이 주인인 세상을 이어가라고 속삭인다. 풀어서 말한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가 아니라 <인간이 보기에>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라는 것이다.

 

하늘에서의 승리

[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1) 사탄은 최초 인간의 타락으로 승리한 줄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할 계획을 세우시고 준비하시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구원을 이루셨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구원의 확실성에 대해 요한계시록은 분명히 선언한다.

(첫째) 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이다. 이에 대해 에베소서 2:8은 구원이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선언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렇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인간구원의 방식을 로마서 1:17에서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으로 선언한다.

(둘째) 이 구원의 복음은 하나님만이 가능케 하시는 능력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반응인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진다. 믿음의 본질은 <받아들임>이다. 인간이 구원을 위해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였을 뿐이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로마서 1:16)

(셋째) 이 구원은 <하나님의 나라>의 의미를 바로 알 때 이해된다.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다. 곧 하나님은 하나님나라의 주인이 되시고 왕이시다. 주인 됨의 권리(주권)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으신 대로다. 구원의 방식은 하나님나라의 왕이 정한다.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믿음으로 구원을 주시겠다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구원방식이다. 왜 인간이 하나님의 구원방식을 따지는가? 결국 인간구원은 하나님나라를 인정할 때 주어진다. 이를 더 분명하게 말하면 하나님을 <주님>으로 시인할 때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로마서 10:9)

(넷째) 이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이다. 여기에서 <권세><정당성>을 의미한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법정에서 정당성이 부여된 것이다. 이에 대해 로마서 6:10-11은 분명히 이렇게 선언한다.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주어진 구원은 인간에게 거저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인간에게 구원이 주어진다. 그러나 사탄은 인간의 행위를 들어 인간을 하늘 법정에 참소한다. 그러나 인간은 하늘에서 이길 수 없다.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으로 인간의 죄값은 하나님의 공의에 값을 치루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인간에게 거저 주어진 구원은 법적으로 정당성을 부여받은 것이다. 사탄은 더 이상 하늘 법정에서는 이길 수 없음을 알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가져온 정당성(권세)에 대해 사탄은 반박할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결국 사탄은 하늘법정에서 미가엘에 의해 끌려나올 수밖에 없었고 사탄은 분내어 땅으로 내려갔다. 그의 사자들 곧 악령들과 함께.

 

(3)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근거는 어린 양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시인하고 그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사실의 말씀을 우리에게 분명한 구원의 증거가 됨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사탄에 대한 승리한 자이다. 우리 구원의 확신은 우리의 행위에 있지 않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증거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를 위해 생명을 잃기까지 했다. 그래서 땅에서는 이 구원의 증거로 해를 당한다 하더라도 즐거워하라고 위로한다. 그 구원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분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4) 하늘법정에서 결코 이길 수 없음을 안 사탄은 땅에서 승부를 보고자 한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땅에서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죽으면 어찌 할 방도가 없다.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사탄은 더욱 인권이란 이름으로 교회와 성경을 공격해 올 것이다. 이마겟돈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교회는 세상에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대신 세상의 것들이 교회 안으로 치고 들어온다. 교회조차도 인본주의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교회에 예수님의 아니라 인간이 더 크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땅과 바다에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는 13장에 나타날 바다와 땅에서 올라 올 짐승 때문이다.



김성철목사의 요한계시록 읽기 36

 

용의 분노

 

요한계시록에서 용으로 불리우는 사탄 또는 마귀는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방해한다. 사탄은 가롯 유다와 종교지도자들을 통해 예수님을 단지 로마에 항거하는 자로서 십자가에서 죽게 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희롱과 수모를 받으며 사탄과 세상의 눈으로 보았을 때 실패한 구원자처럼 보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인류를 죄에서 해방시켜 구원사역을 완성시키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다 이루었다는 의미를 사탄은 여전히 몰랐다. 예수님은 그렇게 죽음 가운데 들어갔고 사탄은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벽하게 다시 살아나셨다. 그렇게 예수님은 죄에 대하여 죽으시고 하나님께 대하여 다시 산 자가 되었다. 그렇게 인간은 다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사탄은 패배했다.

이에 사탄은 하늘법정에서 인간을 참소함으로 인간의 구원을 무력화시키고자 했으나 하늘법정에서도 패배한다. 사탄과 악령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구원을 땅 에서 막아야 함을 깨닫게 된다. 최초의 인간 아담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켰던 사탄은 핍박과 타협 그리고 인간의 교만을 부추겨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를 방해한다.

 

여자를 핍박하다

(12: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12: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2: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12: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1) 용은 남자 곧 예수님을 낳은 여자를 박해한다. 이 여자는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를 함께 묶어 이야기 하고 있다. 이미 인간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이루어졌다. 이제 사탄은 교회를 무너지게 해야 한다. 초대교회는 처음부터 박해를 받았다. 그 시작은 유대인들로부터 시작된다.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의 죽음으로 인해 복음은 예루살렘을 넘어 사마리아와 이방인을 향하여 전파되기 시작했다. 기독교를 박해했던 바울이 예수님을 믿게 되자 빠른 속도로 복음은 이방인의 세계를 파고들었다.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받았던 교회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로마의 핍박도 주어졌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기독교인은 사자의 밥이 되기도 했고 불에 태워 죽기도 했다. 복음은 단순히 로마지역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로마를 넘어서 순교를 각오한 자들을 통해 복음은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어 갔다. 이러한 핍박은 한국의 초대교회 때도 마찬가지였다.

 

(2)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핍박이 강해질수록 복음은 더욱 더 확장되어간다는 것이다. 교회는 보존된다. 어떠한 핍박에도 교회는 살아 움직인다. 이러한 것을 구약의 출애굽 사건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출애굽의 여정을 출애굽기 19:4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인도로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 이른 것이다. 그들은 시내산에 율법과 성막제도를 받는다. 그리고 40여년을 광야에서 믿음의 양육을 받는다.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교회를 광야에서 믿음의 양육을 받는 이스라엘과 같은 모습으로 요한계시록은 그리고 있다.

 

(3) 광야란 땅에 전혀 소망을 둘 수 없는 곳이다. 오직 하늘에만 소망을 둘 수밖에 없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는 곳이 광야다. 예수님도 인간구원의 일을 감당하기 위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40일간 기도하셨다. 교회의 사명인 복음을 전하는 일은 인간으로 감당하기 힘들 일이다. 하나님만이 이 일을 감당케 하신다. 그러하기에 광야에서의 기도가 필요하다. 교회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양육을 받는다.

 

(4) 양육기간은 3년 반, 42, 1260일이다. 이는 이방인에게 성전 뜰이 짓밟히는 때요, 교회가 복음을 전해야는 시기며, 교회의 핍박이 주어지는 날들이기도 하다. 곧 예수님의 초림에서 재림까지의 교회시대를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다니엘에서 등장하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로 표현한다. 왜 성경은 3년 반을 나누어 말하고 있는가? 일단 3년 반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이다. 예수님의 초창기에 사람들의 인기를 얻는다. 그러나 예수님의 복음사역은 종교지도자들의 도전을 받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한다. 인간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길은 하나님이 감당케 해야 갈 수 있는 길이었다. 이렇게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글을 접했을 때 사람들은 일단 예수님의 공생애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는 다니엘서에 등장하고 있다느 것을 안다. 이는 헬라문화의 보급자로 자체했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사건과 연관있음을 안다.

 

(5) 예루살렘 성전을 노골적으로 모독했던 시기가 3년 반이다. 교회는 핍박을 받을 때 순결함이 드러난다. 광야의 삶이다. 핍박 가운데서도 확장되는 교회, 하나님만을 바라보도록 만든다. 광야에서 믿음의 양육을 받은 이스라엘은 마침내 가나안을 정복한다. 핍박받은 교회는 마침내 로마를 정복한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것이다. 유럽에서 핍박받던 청교도인들은 미국을 신앙의 국가로 만들었고 현재 세계 제일의 국가가 된다. 그렇게 혹독한 핍박을 견딘 한국교회는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교회를 만들어 낸다.

 

(6) 교회의 위기는 핍박 다음에 온다. 이제는 더 이상 핍박이 없다고 할 때 온다. 그것은 타협의 물결이다. 핍박 가운데서는 오히려 모두가 살아난다. 교회는 핍박 가운데서도 교회의 확장을 가져왔고 교회는 순결했다. 그러나 타협의 시대는 다르다. 노아시대는 타협의 시대였다. 세상은 물로 심판을 당했다. 그러나 이대도 노아의 가족은 홍수로부터 구원을 받았다. 한국이나 미국은 지금 타협의 시대이다. 사탄은 물을 강같이 쏟아낸다. 현재 세상의 것들이 교회로 들어온다. 세계교회협의회라는 WCC는 인간주의라는 간판을 내세워 창설되었다. 하나님의 권리보다는 인권이 더 중요한 과제가 된다. 인권이란 이름으로 미국도 동성애자들을 합법화시켰다. 성경에서 죄라고 말해도 더 중요한 것은 인권이다. 세상의 마켓팅이 교회성장이란 미명 아래 교회에 도입된지 오래 되었다. 인간이 판치는 교회, 요한계시록 11장에서 언급되었듯이 교회의 죽음이 시작되었다.

 

(7) 그러나 아직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교회가 있다. 땅이 물을 삼켜버린다. 유대인들은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사막지대는 물을 삼켜버린다. 이게 광야다. 광야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자들에게 타협의 물결은 소용이 없다. 광야가 물을 삼켜버린다. 아직 세상은 구원을 받아야 할 자들이 있고, 아직 교회는 복음을 전해야 할 때이다.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곳도 있다. 현재 복음은 이슬람교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아직은 핍박에도 인내하고 타협에서는 순결한 교회가 있다. 아직은 복음을 전해야 할 때이다.

 

남은 자들을 향한 용의 분노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교회는 핍박에도 오히려 복음은 확장되어 세상을 복음화시켜 나가고 있으며, 타협의 물결에도 순결을 지키는 자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북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의 시대였던 아합시대에 엘리야는 믿음의 사람들이 자기 외에는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도 남은 자 7천명이 있다고 위로한다.

이스라엘은 3번째 왕 솔로몬 이후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열된다. 그리고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당한다. 앗수르의 정책은 나라와 나라의 민족들을 서로 이동시켜 섞어버린 정책을 쓴다. 그렇게 북 이스라엘 백성은 순수한 이스라엘의 혈통을 잃어버린다. 이제 남 유다만 남았다.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한다. 그러나 바벨론은 정복한 민족의 혈통도 보존해주고 종교도 보존해 주는 정책을 펼쳤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순수 혈통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남은 자가 되었다. 남은 자 유대인들을 통해 성경이 약속한 메시야 곧 그리스도 예수가 오시게 된다.

타협의 물결로 교회는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본다. 언젠가는 눈에 보이는 교회의 죽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복음을 전해야 할 때이다. 교회는 여전히 살아 복음의 사명을 감당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 남아있다. 사탄은 핍박으로 인해 무너지고 타협의 물결에 삼켜져 버린 자들이 아니라 말씀을 인내함으로 지키며 순결한 신앙을 가지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들을 대상으로 싸우기 위해 바다 모래 위에 선다. 요한계시록 13장은 이를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등장한다. 사탄은 어떤 전략을 써서 인내하며 순결한 믿음을 가진 자들을 무너지게 하고자 하는가? 용의 분노!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믿음의 사람들조차 삼키고자 한다. 여기에 우리는 어떻게 우리들의 광야에서의 순결한 믿음을 지켜야 하는가? 13장을 기대해 보자.


김성철목사의 요한계시록 읽기 37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1)

 

요한계시록 4-5장에서는 하나님나라의 진지가 소개된다. 그리고 12-13장에서는 하나님의 인간구원을 막으려는 사탄의 전략이 드러난다. 12장에서 사탄은 예수님의 구원을 막지 못했고, 하늘법정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정죄하는데 실패한다.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는 사탄이 이미 주어진 구원에 대하여 어찌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 사탄은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에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하는 전략을 편다. 이러한 사탄의 전략은 창세기 4-11장에서 이미 드러났다. 그것은 핍박과 타협 그리고 인간의 교만이다.

그렇다면 창세기 4-11장에 드러난 사탄의 전략을 실행할 그 무엇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요한계시록 13장의 내용이다. 바다와 땅이 만나는 곳에서 바다에서 짐승이 올라오고 또한 땅에서 짐승이 올라온다. 바다와 땅으로 말하면서 전 세계를 의미한다. 바다와 땅에서 올라오는 그 무엇을 왜 짐승으로 말하는가? 창세기 2장에 다르면 사람 창조와 짐승 창조의 다른 점을 살펴보면 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 중에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고 교제하며 예배한다. 짐승은 흙으로 하나님이 지으매 바로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사람은 흙으로 지으시고 하나님의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시니 비로소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바다와 땅에서 올라 온 짐승은 하나님 없는 그 무엇이다.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거절하게 하고 배제시키는 그 무엇이다. 그래서 짐승이다. 그럼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은 무엇인가? 바다짐승에 의해 핍박과 타협이라는 사탄의 전략이 펼쳐지게 된다.

 

바다짐승의 모습

(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13: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1) 바다에 대해 요한계시록 17장에서 <많은 물>이라고 하고 이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이라고 설명함으로 사람이 사는 세상을 의미한다. 용이 바다짐승에게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준다. 능력이란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이며, 보좌란 다스리는 역할이고, 큰 권세란 공적으로 법적으로 주어지는 권위를 의미한다. 용 곧 사탄은 본질적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도전하게 하고 그래서 인간의 삶에서 하나님을 거절하고 배제하도록 한다. 그래서 용이 바다짐승에게 무엇을 주었다는 것은 인간이 바다짐승에게 인간을 다스리는 공적 법적 힘을 주었다는 것과 같다.

 

(2) 사람 셋이 모이면 조직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그 조직에 공적인 힘을 실어준다. 그 힘은 그 조직에 소속된 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다. 그렇게 함으로 인간 사회는 질서를 유지한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제도화된 많은 조직들이 존재한다. 이렇게 인간이 힘을 부여한 조직화된 제도 중에서 가장 강력한 제도가 국가다. 바다짐승은 인간이 공적이고 법적인 힘을 부여한 제도를 의미한다. 그중에서도 국가를 상징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나라로 세워진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지켜줄 왕을 선지자요 제사장이었던 마지막 사사 사무엘에게 요구했다. 그렇게 이스라엘도 인간 왕이 다스리는 왕정국가의 길을 걸어간다. 국가는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가 아니다. 단지 타락한 인간사회의 질서 유지를 위해 계급이 있는 불평등함을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조직인 국가를 허용한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는 가정과 교회뿐이다. 요한계시록에서만 보아도 국가라는 제도는 인간이 법적 힘을 부여한 바다짐승이다. 물론 어떤 조직이든지 그 조직이 인간을 위한 그래서 자신들을 지켜주는 조건으로 조직을 세운다. 그러나 어느 사이에 조직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조직을 위해 있게 되는 역전을 사람들은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조직을 해체시키기도 하지만, 단 하나의 거대한 조직화된 제도 국가는 해체되지 않는다. 해체되더라도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국가는 존속되고 국가는 사람들을 통제한다. 이러한 모습을 요한계시록은 죽은 것 같았는데 다시 부활한 것으로 이야기 한다.

 

(3) 인간이 공적이며 법적인 권한을 부여한 조직화된 제도로서의 바다짐승의 모습을 보자. 특히 국가라는 제도를 들여다보자. 요한계시록은 일곱 머리를 가진 짐승으로 표현한다. 7이란 수는 모든 것을 7 종류 또는 분야로 분류하여 완전하게 된 수이다. 국가는 교육과 경제 그리고 의학과 과학 등등 여러 분야를 나누어 국민을 이롭게 하기 위한 일들을 한다. 국민은 국가가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으로 인해 통제된다. 그렇게 국가는 전 분야의 머리가 된다. 일곱 머리다.

 

(4) 국가라는 바다짐승은 열 뿔을 가졌다. 10이란 철저한 그리고 완벽함의 수다. 뿔은 막강한 힘을 의미한다. 국가는 국민들에게 철저한 힘을 가진다. 특히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시기의 로마제국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국민을 통제하고 다스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민주화된 국가에서도 국민은 국가에 의해 통제된다. 뿔에 왕관이 있다. 용으로 묘사된 사탄은 머리에 왕관을 쓴 것과는 대조적이다. 사탄은 인간을 미혹하는 존재이다. 당연히 머리에 왕관을 쓴 사탄과 달리, 바다짐승은 권력 자체에 왕관을 쓴다. 머리를 써서 인간 모든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무엇보다도 권력이란 힘에 의해 국가는 존재한다.

 

(5) 요한계시록은 아주 노골적으로 국가라는 바다짐승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인간이 스스로 힘을 부여한 국가는 하나님 자체를 배제하고 거절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민주국가에서 기독교인이 대통령이 되고 수상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라는 속성 자체가 하나님을 배제시킬 수밖에 없다. 신정국가였던 이스라엘 조차도 하나님을 배제함으로 멸망을 당하게 된다. 하물며 이방의 국가는 어떠한가? 미국 자체도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졌다지만 국가라는 속성은 언제나 하나님을 모독하는 정책들을 만나게 된다. 최근의 예로 동성애를 법적으로 허용한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6) 성경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을 이야기 한다. 예수님은 빌라도와의 대화에서 인간이 다스리는 세상 국가에 대한 것은 자신의 관심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은 영적인 하나님나라의 왕이라고 선언한다. 인간 세상의 국가라는 본성 자체는 짐승과 같은 것이라고 성경은 노골적으로 묘사한다. 짐승은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국가도 그렇다고 말한다. 국가가 가지고 있는 본성은 짐승과 같다. 서양의 철학자 플라톤이 말하는 국가는 없다. 동양의 공자가 말하는 인의 정치를 펼칠 국가는 없다. 하물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국가는 처음부터 없다. 권력을 행사하는데는 표범과 같이 빠르고, 잔인하기는 곰의 발 같으며, 백성은 국가라는 권력 앞에 서 있는 것이 으르렁 되며 포효하는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사자 앞에 서있음과 같다. 이러한 짐승의 모습으로 국가를 묘사하는 장면은 다니엘에서 이미 이야기 되었다.

 

바다짐승의 부활

(13: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13: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국가는 여러 정치제체가 있다. 주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 국가의 형태가 달라진다. 왕이 다스리는 왕정, 귀족이 원로원을 만들어 다스리는 귀족정치, 그리고 지금은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민주정치 등 인류역사는 많은 정치체제의 변화를 겪었다. 나라 이름 자체가 바뀌는 일도 다반사처럼 일어났다. 한국의 역사에도 고조선, 부여, 그리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를 지나 신라와 발해의 2국시대 그리고 마침내 다시 처음으로 통일국가였던 고려 그리고 조선, 일제강점기를 지나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한 국가가 해체되고 다른 국가가 일어서는 것을 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이 있다. 어떤 정치체제의 국가가 되더라도 국가라는 본질의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에 사람들은 놀란다. 나라를 바꾸어 보았지만 여전히 국가는 그 본질에서 그 속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국가를 벗어나 살아갈 수는 없다. 국민은 국가의 영향력 아래 있으며 국가의 정책에 의해 통제된다. 개인과의 싸움은 몰라도 개인이 국가를 대상으로 싸울 수는 없다. 그래서 누구나 국가의 권력을 부러워하고 그 권한을 가지고자 한다. 국가 자체가 그렇게 경배의 대상이 된다. 때론 국가에 항의해 보는 것은 자신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의 정책을 바꾸어졌음을 원하기 때문이다. 열 뿔로서의 권력을 행사하면서 일곱 머리를 쓰면 힘있는 통치자 되고, 일곱 머리로 좋은 정책을 펼쳐도 열 뿔의 왕관을 내려놓으면 무능한 통치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국가가 가진 속성이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배제된 국가의 권력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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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철목사의 요한계시록 읽기 25 황충 심판 (1) 개발이란 명목으로 훼손되어지는 자연환경의 파괴, 몰래 강물에 버려지는 공장의 폐수들, 멈추어지지 않는 과학의 발달로 오염되는 하늘, 결국 돈을 주고 사먹게 되는 식수 그리고 산소, 피부병의 번성, 이러한...
    Date2019.08.13 Bywg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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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이응주목사의 칼럼 - 신령한 생수로 심령을 시원케

    이응주목사의 칼럼     신령한 생수로 심령을 시원케     온유월(五六月)의 시간과 날들이 몸안에 있는 수분들을 뽑아내기 바쁘다. 뽐뿌가 없어도 땀 구멍(샘)에서  계속 염분이 섞인 땀들을 쏟아내기 바쁘다.   그늘을 찾고 어름물을 마셔도 순간은 시원하지...
    Date2019.08.12 Bywg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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