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생명 샘(46): "진리와 사랑 안에서 행하자”
(요한이서 강해)
본문: 요이 1:1~13
요절: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요이 1:6)
주제: 진리와 사랑 안에서 살며, 사이비이단은 철저히 경계하여 인사도 영접도 하지 말자
교독문: 106(감사절 2), 예배의 부름: 엡 5:19~21
찬송: 587장(통 306장), 588장(통 307장)
일자: 2019년 11월 17일 주일 (성령강림절 후 스무 세 번째 주일, 추수감사절)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장로교회) www.samuelyun.com
오늘은 추수감사주일로 성수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만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 그 토지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취하여 광주리에 담고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당시 제사장에게 가지고 가서 말하기를 “제가 오늘날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고하나이다. 제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리라고 우리 조상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한 것이 추수감사절의 시작입니다. 이에제사장은 그들의 손에서 그 맏물 광주리를 받아서 하나님 여호와의 단 앞에 놓을 것이며그들은 또한 하나님 여호와 앞에 다음과 같이 고백 했습니다: “제 조상은 나그네로 또 돌아다니는 아람 사람으로서 소수의 사람을 거느리고 이집트에 내려가서 거기에서 나그네로 살다가 마침내 거기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더니,이집트 사람이 저희를 학대하며 저희를 괴롭게 하며 저희에게 중역을 시키므로저희가 저의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저희들의 음성을 들으시고 저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마음 아파하셔서,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저희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시고이곳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습니다. 여호와여 이제 제가 주님께서 제게 주신 토지소산의 맏물을 가져 왔습니다.” 하면서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감사예배를 드리면서여호와께서 그들과 그들 집에 주신 모든 복을 인하여 그들은 레위인과 그들 가운데 나그네 생활을 하던 사람들과 함께 즐거워하였습니다(신 26:1~11).
유대인들이 즐겨 읽는 지혜서 미드라쉬(Midrash, 성경주석서)에 나오는 격언인데 유대인들이 나치 치하에서 학살을 당하는 상황 속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았다는 말 한마디가 바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This, too, shall pass away...”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 다윗 왕이 반지가 하나 갖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반지 세공사를 불러 말하기를
“나를 위한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되 내가 승리를 거두고 너무 기쁠 때에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절망에 빠지고 시련에 처했을 때엔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넣어라”
그는 대답하기를 “네 알겠습니다. 폐하!” 세공사는 명령대로 가장 멋진 반지를 만들었습니다.
반지를 만든 후 어떤 글귀를 넣을지 계속 생각했지만 좀처럼 왕께서 부탁한 두 가지 의미를 지닌 글귀가 떠오르지 않아 다윗의 아들 지혜의 왕 솔로몬을 찾아가 부탁을 해 보았습니다.
“왕자시여, 폐하께서 기쁠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절망에 빠졌을 때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부탁합니다.” 했더니 솔로몬은 잠시 생각한 후에
“이것 또한 자나가리라! This, too, shall pass away...
그래서 세공사가 최선을 다해 만든 반지에다 이를 새겨서 왕에게 바쳤다고 합니다.
다윗왕은 크게 만족하여 이 반지를 끼며 국정을 지혜롭게 하였답니다.
전 3:1~8에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①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②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③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④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⑥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⑦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⑧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⑨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⑩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⑪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으며 ⑫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⑬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⑭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그리고 전 3:11에“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세계를 그들의 마음속에 주셨느니라(also he hath set the world in their heart). 그래서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만드신 일을 측량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느니라” 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지금 잘 나간다고 우쭐합니까?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지금 너무 괴롭고 슬퍼서 하루도 살기 힘든가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아름답고 예쁜 젊음이 영원할 것 같은가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잘되던 사람도 어려움이 생기기 마련이고, 지금 너무 힘들고 어려워도 반드시 자기가 꿈꾸는 그날은 언젠가 올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입니다”(롬 8:28 And we know that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to them that love God, to them who are th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범사에 감사하며 찬양하며 살면 주님께서 알아서 해 주실 것입니다. 슬기롭게 사시고 주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나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추수감사주일을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공동서신 중 요한이서(The Second Epistle of John)를 강해합니다.
요한이서는 사도 바울이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보낸 서신으로 사이비이단을 철저하게 경계하고 오직 진리와 사랑 안에서 행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서신의 수신자는 어떤 교회의 여성도와 자녀를 가리키는 것 같은데 더 이상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습니다. 본 서신의 저자는 사도 요한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150-215년경),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264년경 사망), 및 키프리안(258년 사망)은 본 서신을 사도 요한의 서신으로 인용하였습니다. 본 서신의 AD 85-90년경으로 짐작합니다.
요한이서의 주제는 ‘진리와 사랑 안에서 행함’입니다. 4~5절에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하며 본 서신은 우리가 그리스도에 관한 바른 교리를 저버린 이단에 대해 경계해야 할 것을 밝히 교훈합니다(7-11절).
1) 수신자에게 문안(요이 1:1~2)
1 장로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 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2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를 인함이로다.
요한 2서와 3서에서 사도 요한은 자신을 ‘장로’라고 표현합니다. ‘장로’라는 말은 나이든 교회 지도자를 가리키는 말로서 사도라는 말보다 더 친근감이 있는 표현입니다. 당시 교회 지도자라는 칭호입니다. 본 서신은 사도 요한의 노년에 쓴 것 같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그의 서신에서 자신을 ‘장로’라고 부릅니다(벧전 5:1).
본 서신의 수신자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택하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택하심을 입은 부녀’는 교회를 가리키는 것보다 문자 그대로 ‘한 여성도’를 가리키는 말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4절에 ‘너의’라는 단수 인칭대명사와 5절의 ‘부녀여’라는 단수 호격 명사와 13절의 ‘네’와 ‘네게’라는 단수 인칭대명사들은 한 교회를 가리키는 말로서는 부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여성도와 그의 자녀들은 하나의 작은 교회의 구성원이며 한 교회를 형성했을지도 모릅니다.
본문에는 ‘진리’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1절의 ‘참으로’라는 원어(엔 알레쎄이아 ejn aletheia)도 ‘진리 안에서’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자신을 진리 안에 있는 자로 표현하며 다른 성도들을 ‘진리를 아는 자들’로 표현합니다. 그는 또 이 진리가 우리 안에 거하며 영원히 그러하다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요 14:6에서 자신을 진리라고 말씀하셨고(I am the truth = ἐγώ εἰμι ἡ ἀλήθεια), 요 17:17에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thy word is truth = ὁ λόγος ὁ σὸς ἀλήθειά ἐστι.”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바울은 엡 1:13에서 성도들을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것을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자들’로 표현합니다. 진리의 내용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요 그를 믿으면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얻는다는 약속입니다.
성도는 진리를 아는 자들이며 이 진리가 그들 속에 있는 자들입니다. 이 진리는 그들 속에 영원히 있습니다. 이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실 것이며 그의 진리도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아는 것이 구원이며 영생입니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And this is life eternal, that they might know thee the only true God, and Jesus Christ, whom thou hast sent.”
성도는 이 진리 안에서, 이 진리 때문에 서로 사랑하게 된 자들입니다. 사도 요한은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을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또 그는 “나 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이니라”고 말하며, 그 까닭은 “우리 안에 거하며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진리가 우리를 사랑의 줄로 묶습니다. 진리가 우리를 한 가족과 같은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하십니다. 교회는 세상의 이익 집단과 다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정입니다. 비록 우리가 서로 다른 집에 살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대가족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누구든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형제요 자매입니다(마 12:50). 성도들의 사랑의 교제에 교회의 교회다운 점이 있습니다.
2) 축복과 기원 (요이 1:3)
은혜와 긍휼과 평화가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진리 안에 살아가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은혜(grace χάρις)와 긍휼(mercy ἔλεος)과 평강(peace εἰρήνη)을 기원합니다. ‘진리’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 진리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그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그 진리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in truth and love ἐν ἀληθείᾳ καὶ ἀγάπῃ)’라는 말은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 및 우리의 사랑 실천을 다 가리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와 긍휼로 구원을 얻었고 그 은혜와 긍휼로 힘을 얻고 성화를 이루어갑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안에서 이 세상에서 참 평안을 누립니다. 그 평안은 마음의 평안뿐 아니라, 몸의 건강과 물질적 여유, 그리고 환경적 평안까지 포함합니다. 은혜는 신약 성경적 인사, 평화는 구약 성경적 인사, 긍휼(사랑)은 교회적 인사로 은혜와 평강과 더불어 삼위일체적 축복입니다(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성령님의 평강).
첫째로, 우리는 우리가 받은 진리, 우리가 믿은 진리를 가장 귀히 여기며 확신하고 사랑하고 널리 전파합시다. 그 진리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사역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요지입니다. 성경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와 동일하게 진리를 전달받고 그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다른 이들을 사랑합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할 이유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진리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고 하나님의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살 것입니다. 천국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참된 사랑으로 영원히 서로 사랑하며 살 곳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자들은 이 세상에서도 서로 미워하지 말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늘 풍성히 받기를 사모하며 받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은 구원과 성화의 근거이며, 하나님의 평안은 인생이 이 세상에서 누릴 매우 귀한 복입니다.
1)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를 보니 기쁨(요이 1:4)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본 서신은 한 개인적 가정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시대, 모든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교훈입니다. 그 여성도의 자녀들 중에는 진리대로 행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의 모든 자녀들이 다 잘 믿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너의 자녀 중에’라는 말은 그 자녀들 중에 일부가 잘 믿었음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부모가 잘 믿는다고 자녀들이 잘 믿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진리에 행한다는 말은 진리 안에서, 진리대로 산다는 말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 안에서 행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이란 성경의 모든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신 십계명대로, 성경말씀대로 사는 것을 뜻합니다.
요한은 그 여성도의 자녀들 중 어떤 이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마음의 태도이지만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만 머물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보여 지도록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지 안 행하는지를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는 그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보고 심히 기뻐합니다. 죄인들의 삶 속에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보는 것은 하나님의 지극히 큰 기쁨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의 심히 큰 기쁨입니다.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이 주 예수님을 믿는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큰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의 서신들에서 성도들을 자신의 기쁨과 자랑이라고 합니다(빌 4:1; 살전 2:19-20). 더욱이, 그들이 하나님께 받은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을 보는 것은 목사와 성도들의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파된 말씀을 거역하는 것을 보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큰 슬픔이 되지만(빌 3:18), 그것을 받아 그대로 사는 것을 보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입니다.
2) 서로 사랑하라(요이 1:5)
부녀여(lady),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사도 요한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강조합니다(요 13:34~35). 이 새 계명은 요한 공동체의 주제이며 사도 요한이 가장 역점을 둔 실천사항이었습니다. 서로 사랑하자는 강조는 우리에게 언제나 필요하고 유익합니다. 본 서신에 나타난 대로, 그 여성도가 처한 형편은 이단들의 미혹이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이단과 오류가 교회 안팎에 많이 들어와 있을 때 성도들은 사랑이 식어지기 쉽습니다. 주님께서도 재림 직전의 징조들을 말씀하시면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하십니다(마 24:12).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성경 진리를 굳게 붙들고 보수하며 이단과 오류를 배격하는 일 뿐만 아니라, 또 주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 간에는 서로 사랑하는 일이 더욱 필요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성도에게 새삼스런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믿기 시작할 때부터 배운 기본적인 삶입니다. 참 교회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들이 거룩함으로 서로 사랑하는 모임입니다.
3) 하나님의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 사랑임(요이 1:6)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사도 요한은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삶의 필수적인 두 요소를 강조합니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는 형제 사랑을 하나님의 계명들을 따라 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계명을 거슬러 행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은 십계명을 범하거나 성경말씀을 무시하고 부정하고 거역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할 때부터 들은 바와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행하라”는 말은 “사랑으로 행하라, 서로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계명을 순종하는 것과 서로 사랑하는 것,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과 서로 사랑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 아니고 결국 하나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것이 적그리스도(요이 1:7)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미혹하는 자는 ‘속이는 자’라는 뜻으로 이단자를 가리킵니다. 이단은 마귀의 활동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거나 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는 것입니다(갈 1:8-9; 딤후 2:17-18). 벌써 사도 시대에 많은 이단자들이 교회 안팎에 나타났습니다. 사도는 이제 그들의 정체에 대해 언급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셨음을 부인하는 자들이 이단입니다. 그것은 요일 4:2-3에서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부정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십니다(요 1:14). 말씀이라고 불리신 그는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이십니다(요 1:1). 본래 신적 인격 즉 하나님이셨던 그가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두 인격이 아니시고 한 분이십니다. 신성과 인성, 신적 본질과 인적 본질이 결합되셨으나 두 분이 아니고 한 분이신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21문답에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유일한 구속자(救贖者)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그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시지만 사람이 되셨고 그래서 두 구별된 본질들에 있어서 하나님과 사람이시며 한 분이셨고 영원히 계속 그러하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입니다.
5) 온전한 상을 얻게 하라(요이 1:8~9)
8 너희는 삼가 우리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않고 온전한 상을 얻게 하라
9 이탈하여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8절의 ‘온전한 상’은 전도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상을 뜻합니다. 고전 3:5-8,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사도 요한은 편지를 받는 그 여성도와 그의 자녀들이 이단에 미혹되지 않고 믿음을 지킴으로 자신의 전도 사역이 헛되지 않고 마지막 날에 주께 상을 얻는 일이 되게 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9절에 이단은 그리스도의 바른 교훈 안에 거하지 않는 자입니다. 이단은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하는 자입니다(요일 2:22-23; 4:1-3). 그는 하나님 아버지를 모신 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바른 교리 안에 거하는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신 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하는 이단을 분별하고 그리스도의 바른 교리 안에 거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주이시기 때문에 그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그를 거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님께 대한 바른 신앙고백을 가질 때, 우리는 그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을 둘 다 영접하고 섬기는 자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6) 이단과는 인사도 하지 말라(요이 1:10~11)
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11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
‘이 교훈 this doctrine’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교리입니다. ‘이 교훈을 가지지 않은 자’는 이단을 가리킵니다. 이단은 사탄에게 속한 자이기 때문에 참 교회는 그를 용납하지 말고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아야 합니다. 롬 16:17-18에 보면, 사도 바울도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를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고 말했고, 디도서 3:10에서는,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현실에 적용해보자. 기독교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거대한 이단은 교황을 우두머리로 한 가톨릭의 사상과 조직체입니다. 또한 오늘 시대에 가장 심각한 이단은 기독교계 전체를 부패시킨 자유주의 신학, 곧 성경의 근본교리들을 부정하는 현대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자들을 용납하는 포용주의적 교회들은 잘못입니다. 또 자유주의 신학과 가톨릭을 배격하지 않는 교회연합운동(WCC 등)은 잘못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들과 성도들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을 배격해야 하고 그들을 용납하는 포용주의적 교회들을 책망해야 하며 그런 자들과의 교제를 금해야 합니다.
12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면대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우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13 택하심을 입은 네 자매의 자녀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아멘”
요한은 수신자와 만나 할 내용이 많다고 합니다.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직접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대 대화하기를 원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기쁨이 충만케 되기를 원합니다. 사도와 교회의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택하심을 입은 성도의 자녀도 함께 수신자에게 문안을 전합니다. 그리고 아멘으로 서신을 맺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진리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은 성경말씀대로,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말씀을 힘써 읽고 배우며 그대로 실천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은 특히 서로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께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는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자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이단을 분별하고 배격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도의 교제와 사랑을 힘써 실천해야 하지만, 오류와 악에 대해서는 단호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단 사설들이 난무하는 말세에 성경적 신앙을 보수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바른 교리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역사적 기독교 신앙, 옛 신앙을 파악하고 그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 신앙을 이탈하는 것이 사탄의 미혹입니다. 또 우리는 이단자들을 용납하지 말고 그들과 교제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을 집에 들이거나 그들에게 인사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악한 일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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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1장을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금주기도제목:
(1) 감사의 계절에 샘솟는 말씀으로 매일 24시간을 주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2) 영생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예수님을 닮아 믿음, 소망, 사랑이 풍성하게 하소서!
11월18일(월) 찬송 591장(통 310장), 494장(통 188장) 신24장 (이혼과 재혼)
19일(화) 찬송 591장(통 310장), 494장(통 188장) 25장 (죽은 형제에 대한 의무)
20일(수) 찬송 592장(통 311장), 495장(통 271장) 26장 (토지 소산)
21일(목) 찬송 592장(통 311장), 495장(통 271장) 27장 (에발산에서 선포한 저주)
22일(금) 찬송 593장(통 312장), 496장(통 260장) 28장 (순종과 불순종)
23일(토) 찬송 593장(통 312장), 496장(통 260장) 29장 (모압 언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