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함과 진실함으로 형제 사랑하자”2019년 12월 22일주일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장로교회)

by wgma posted Dec 1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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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함과 진실함으로 형제 사랑하자”
2019년 12월 22일 주일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장로교회)
주일영상설교



제목: 생명 샘(50): "행함과 진실함으로 형제 사랑하자” (요한일서 3장)
본문: 요일 3:1-24
요절: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 3:18)
주제: 형제 사랑은 생명의 증거이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서로 사랑하자
교독문: 117(구주강림 3), 예배의 부름: 빌 4:1~4
찬송: 101장(통 106장), 104장(통 104장)
일자: 2019년 12월 15일 주일 (대강절 셋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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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강절/대림절(Advent) 셋째 주일로 기쁨(Joy)의 촛불(분홍색)을 켜며 예수님 오심을 기쁨으로 기다리며 이 기쁜 소식을 이웃과 나눕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찬 115장). 가브리엘 천사가 베들레헴에서 밤새 양떼를 치던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알릴 때 큰 기쁨의 좋은 소식(good tidings of great joy)을 알렸습니다(눅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동방박사들이 헤롯 궁전에서 나와 베들레헴으로 가려고 할 때 그들을 여기 까지 인도한 큰 별을 보고 크게 기뻐하였습니다(마 2:10 그들이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they rejoiced with exceeding great joy.) 예수님은 기쁨의 원천이 되십니다. 찬송 95장(통 82장)
1절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뿐일세.
2절 나의 사모하는 선한 목자는 어느 꽃다운 동산에 양의 무리와 늘 함께
가셔서 기쁨을 함께 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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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 주일에 이어 요한일서 3장을 강해합니다. 요한일서 주제는 T (Truth 진리) = L (Light 빛) + L (Love 사랑) + L (Life 생명)입니다. 3장의 주 내용은 진실된 형제 사랑은 생명에 들어간 증거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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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을 읽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러 주시는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분을 알지 못함이니라.”
우리는 전에 죄인이요 사망 아래 있던 사람이었고 마귀에게 속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극한 사랑으로 사랑하심으로써 구원을 받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큰 복이며 큰 특권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의 이 복과 이 특권을 알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얻은 의도, 영생도, 하나님의 자녀 됨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알았더라면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복, 곧 성도들이 받아 누리고 있는 구원의 복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실 때, 우리가 그분과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분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하나님의 아들들의 장래 영광의 모습은 아직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나타내심이 될 때 즉 그분께서 다시 오실 때 나타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분과 같이 영광스런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의 모습을 보듯이, 우리도 그와 같을 것입니다. 빌립보서 3:20-21,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분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분께서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분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3절 “주님을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분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성도들은 주님의 재림과 그때 이루어질 영광스런 몸의 구속(救贖)과 변화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서 8:23-25,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救贖)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사도 요한은 성도가 이런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직설법이 더 무게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깨끗게 하지 않는 자는 이런 소망이 없는 자라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런 자녀들이라면 죄를 짓지 말고 깨끗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자는 천국 백성답게 살고, 의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는 의인답게 죄와 상관없이 삽니다.

4-5절에 “4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왜냐하면 죄는 법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이라.5그분께서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여러분이 아나니 그분께는 죄가 없느니라”
죄는 바른 길에서 탈선, 바른 궤도에서 벗어남인데, 불법, 곧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반대하고 거부하고 어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없이 하시기 위해서이었습니다. 성육신(成肉身)하신 목적은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분에게는 죄가 없으십니다. 그분은 자기 죄 때문에가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의 죄를 없이 하기 위해 오셔서 대속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을진대, 우리는 더 이상 범죄치 말아야 합니다.

6절 “그분 안에 거하는 자마다 계속 범죄하지(하마르타네이 hamartanei) 아니하나니 계속 범죄하는 자마다 그분을 보지도 못하였고 그분을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주 안에 거한다면 우리는 범죄치 않아야 합니다. 원문에 ‘범죄한다’는 말은 다 현재시제입니다. 그것은 계속적 행위를 의미합니다. 구원받은 자는 계속 범죄하고 죄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누가 죄 가운데 머물러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요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일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법적이고 이론적일 뿐만 아니라, 또한 실제적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실제로 행동과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1절부터 6절까지는 우리가 범죄치 말아야 한다고 교훈합니다. 우리가 범죄치 말아야 할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장차 영광스런 주의 형상을 본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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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절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8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성도는 누구에게든지 미혹받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안팎에는 성도를 속이고 잘못 인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잘못된 교훈을 하고 잘못된 행동의 본을 보입니다. 그들은 죄를 짓는 자들이며 죄 짓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의를 행하는 자는 의롭지만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합니다. 죄를 짓는 자가 ‘마귀에게 속한다’는 원어(에크 투 디아볼루 에스틴 ek tou diabolou estiv)는 ‘마귀에게서 난 자이다’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죄를 짓는 자의 근원을 나타내며,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한 자요 인간을 범죄케 한 자입니다.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마귀가 인간을 속여 범죄케 함으로 죽게 만들었으니 그것이 살인인 것입니다.
8절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서 난 자이며 마귀에게 속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성육신(成肉身)을 가리킵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아들, 신성을 가지셨던 그분께서 육신으로 즉 사람의 본질을 취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입니다. 창세기 3:15, “내가 너[뱀=마귀]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9절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하나님께로서 났다는 말씀은 중생(重生) 곧 거듭남을 말합니다. 그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며(요 3:3, 5) 그 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 곧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요 1:12-13).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 곧 중생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죄를 짓지 않는다’는 원어(하마르티안 우 포이에이 hamartian ou poiei)는 현재진행형의 의미를 가집니다. 즉 중생한 자는 ‘계속 죄를 짓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는 죄 가운데 거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중생한 성도는 죄 안 짓는 생활을 합니다. 중생한 자라도 간혹 혹은 자주 넘어지고 실패하는 것은 경험하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탄식어린 고백을 합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 하였다(롬 7:21-25). 중생한 자 속에는 이런 갈등이 있지만, 그는 계속 죄를 짓는 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중생한 자가 죄를 짓지 아니하는 이유를 말하기를,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씨’는 새 생명의 원리를 가리킵니다. 중생한 영속에는 이 생명의 원리가 심기었습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중생한 영은 그 지배적 성향에 거룩한 변화를 얻었습니다. 전에는 무지와 부도덕이 그를 지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지식과 도덕성이 그를 지배합니다.
 
10절“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이러므로’라는 원어(엔 투토 en touto)는 ‘이 점에서’라는 뜻인데, ‘이 점’이란 성도가 죄를 짓느냐, 안 짓느냐 하는 것인데 계속적으로 죄 가운데 사느냐 아니면 즉시 회개하고 죄를 버리고 의를 행하려고 결심하고 노력하느냐 하는 이 점에서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의 차이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의를 행치 않거나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이와 같이, 요한일서에서 사도 요한이 강조하는 바는 중생한 성도가 실제로 죄를 짓지 않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1절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12절“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우리가 가인같이 형제를 미워하고 죽이는 악을 행치 말고 서로 사랑해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요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것을 잘 증거하는 표가 됩니다. 의인과 악인은 그 행위로 드러납니다. 우리가 구원받았고 중생한 자일진대 우리는 범죄치 말아야 하고 의를 행하고 서로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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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형제들아 세상이 여러분들을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세상이 성도들을 미워할 때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말하는데 왜냐하면 미움은 사망의 표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죄와 사망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백성된 성도들을 미워하고 또 때때로 서로를 미워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구원받은 우리가 서로 미워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니고 세상에 속한 자들일 것이며,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얻은 자들이 아니고 사망에 거하는 자들일 것입니다.
 
14절“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아는 바라.”
그러나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받은 우리는 서로 사랑합니다. 사랑은 생명의 표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압니다. 형제 사랑은 영생의 구원을 얻은 표입니다. 그러나 형제 사랑이 없는 자는 아직도 사망에 거하는 자일 것입니다. 그 이유는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요 살인하는 자는 영생이 그 속에 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곧 살인입니다. 물론 살인은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행위인데, 예를 들어, 자살 폭탄 테러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행위는 극악한 살인 행위입니다. 혁명이나 폭력 시위가 정당화 될 수 없듯이, 테러도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비폭력적 시위는 정당한 의사 표현 방식이며 사회 개선을 위해 유익하지만, 무질서한 폭력적 방법은 사회의 개량보다는 악화를 가져오기 쉽습니다. 또 정당한 이유 없이 이웃나라를 침략하는 전쟁도 역시 극악한 살인 행위이며 결코 정당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테러와 부당한 침략에 대한 연합적 응징과 보복은 정당화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쟁보다 더 큰 현대적 살인 행위는 자살, 낙태 혹은 인공유산입니다.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거나, 낙태는 태아 살해의 행위입니다. 물론 이런 행위들이 다 살인에 해당하지만, 이런 것들뿐 아니라 가정이나 교회에서 형제를 미워한다면, 그것도 똑같이 살인에 해당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이미 살인한 것입니다(마 5:22). 그러므로 우리는 미워한 죄가 있으면 그것을 다 회개하고 버리고 서로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6절“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형제 사랑의 목표는 주님의 본을 따라 형제를 위하여 우리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즉 참된 사랑은 자기 목숨까지 버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요 15:13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신 확증이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가장 큰 사랑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큰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도 주님을 위하여, 형제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17절“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가난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는가?”
재물을 가지고 궁핍한 형제를 돕는 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은 자라면 우리는 참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목숨까지 형제를 위해 버리기를 원한다면 재물로 궁핍한 형제를 구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목숨은 물질보다 더 귀중합니다. 그러므로 희생적으로 사랑하기로 결심한 우리라면 우리는 물질로 구제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18절“나의 어린 자녀들아(my little children),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사랑은 진실과 실행이 있어야지 말로만 하고 혀로만 하면 거짓 사랑입니다. 약 2:15-17,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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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3:19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님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20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함이라.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분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23그분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24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께서는 그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19절“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님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이로써’라는 말은 앞에서 말한 대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인데, 우리가 형제를 사랑할 때 우리가 진리에 속한 자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진리를 행함에 대하여(1:6), 진리가 우리 속에 있음에 대하여(1:8; 2:4), 진리를 앎에 대하여(2:21) 라고 진리에 대해 가르쳐 왔습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 진리를 가리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1:13). 우리는 서로 사랑할 때 우리가 진리에 속한 자임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 형제 사랑은 진리에 속한 증거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세상에 속한 자, 사망 아래 있는 자, 사탄에게 속한 자의 표이지만,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구원받은 무리인 교회에 속한 자, 영원한 생명 안에 있는 자, 하나님께 속한 자의 표입니다.
요한은 또 우리가 형제를 사랑할 때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할 것이라고 증거합니다. ‘굳세게 하다’는 원어(페이도 peido)는 ‘확신케 하다, 평안케 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하여 또 우리 자신의 구원에 관하여 확신케 하고 그 진리와 그 구원 안에서 평안함을 누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람은 죄를 지을 때 두려움을 가집니다. 첫 사람 아담은 범죄한 후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동산 나무에 숨었습니다(창 3:10).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습니다(사 48:22; 57:21). 그러나 우리가 진리를 행하면 우리는 두려움 대신에 확신과 평안과 담대함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20절“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함이라.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분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확신과 평안과 담대함을 얻는 이유는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으면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확신과 평안과 담대함을 얻을 수 없지만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 담력을 얻었습니다. 히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러나 우리는 범죄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담력을 가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때 실제적으로 더욱 담력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언은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고 말합니다(잠 28:1).
 
순종의 또 하나의 결과로서 기도의 응답에 대해 증거합니다. 우리가 기도와 간구에 대해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원하고 기대한다면 먼저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교훈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계명을 순종할 때 그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더욱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뜻을 거슬러 범죄하면서 그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23절“그분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우리가 따라야 할 하나님의 계명을 두 마디로 요약되는데 첫째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이요, 둘째는 그분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요 13:34-35, 롬 13:10).
 
24절“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께서는 그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때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께서도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주님과의 영적 연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가서는 신랑과 신부의 연합과 일체를 신랑이 신부에게 속하고 신부가 신랑에게 속한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아 2:16,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우리는 중생할 때 주님과 영적으로 한 몸이 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되고 주 안에 거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정말 중생했고 구원받은 자라면, 우리는 죄를 짓지 말고 의와 선을 행하고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여 형제 사랑을 실천할 때 몇 가지 복된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을 증거합니다. 첫째로, 그때 우리는 주 안에 거하는 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그때 우리는 마음에 담대함과 평안을 얻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한 바의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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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2019-11-08 202931.png


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금주기도제목:
(1) 강림의 계절에 샘솟는 말씀으로 매일 24시간을 주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2) 영생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예수님을 닮아 믿음, 소망, 사랑이 풍성하게 하소서!
12월9일(월) 찬송 440장(통 497장), 115장(통 115장) 눅 1 (세례 요한 출생)
10일(화) 440장(통 497장), 115장(통 115장) 눅 2 (예수님 출생)
11일(수) 438장(통 495장), 114장(통 114장) 막 1 (갈릴리 선교)
12일(목) 438장(통 495장), 114장(통 114장) 막 2 (지상 선교활동)
13일(금) 401장(통 457장), 118장(통 118장) 막 3 (바알세불 축출)
14일(토) 401장(통 457장), 118장(통 118장) 막 4 (천국 비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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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 세계선교회 사역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1) 카자흐스탄 알마티 장로회 신학대학 사역(2019년 12월 9~14일)
2) 미국 뉴욕, 뉴저지 목회자 세미나 (2019년 12월 23~30일)
귀한 세계교육선교를 위해 후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음에 감동이 오시는 분은 십시일반 
참여 부탁드립니다. 농협 302-0280-1002-11 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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