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소망(2):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님” (벧전 2장)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장로교회)

by wgma posted Jan 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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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산 소망(2):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님” (벧전 2장)
본문: 벧전 2:1~25
요절: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 2:5)
주제: 새해에는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님처럼 거룩한 제사장이 되자.
교독문: 122(주현절 2), 예배의 부름: 시 36:5-6
찬송: 85장(통 85장), 95장(통 82장)
일자: 2020년 1월 12일 주일 (주현절 둘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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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들어 두 번째 주일을 맞이합니다. 새해에 결심한 사항들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나요? 해가 바뀌어도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면 시간을 헛되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월을 아끼며 살아갑니다(엡 5:15). 세월을 아끼라는 영어 “redeem the time”이란 “시간을 구원한다/사용한다”로 이해할 수 있는데 때가 악하기 때문에 우리는 매 시간을 거룩한 시간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평범한 시간(크로노스 chronos)을 경건한 시간(카이로스 kairos)으로 사용하라는 말입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 이란 말이 있듯이 무엇인가 결심한 것이 삼일 정도만 지킨다면 속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아예 삼일마다 결심을 새롭게 하든지 하여 올해 세운 계획들을 연말까지 꼭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베드로 전서 2장을 묵상하겠습니다. 베드로 전서 1장에서는 산 소망되시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2장에서는 보배로운 산돌(a living stone)이신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특권과 의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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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1절에서 모든 악독, 모든 궤휼, 모든 비방하는 말 의 표현은 ‘온갖 종류의’라는 뜻입니다. ‘악독’은 악한 생각과 뜻을 말하며, ‘궤휼’은 거짓과 속임을 말하며 가리킨다. ‘외식’은 겉으로 선하게 보이나 마음속에는 악독한 것이요, ‘시기’는 다른 사람의 잘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를 괜히 깎아내리고 미워하는 것이며. ‘비방’은 다른 사람에 대해 정당하지 않고 악하게 비난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들이 이런 것들을 다 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옛사람의 성질이며 마귀적 본성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도 이러한 죄성들을 다 버려야 합니다. 앞으로 살피겠지만 벧후 1:4-7에 보면 구원받은 성도들은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고 하나님의 성품(the divine nature)에 참여해야 합니다(벧후 1:4-7). 믿음(faith)의 기초에 굳게 서서, 덕(virtue)을 쌓고, 덕 위에 지식(knowledge 하나님을 아는 지혜)을, 지식 위에 절제(tremperance)를, 절제 위에 인내(patience)를, 인내 위에 경건(godliness)을, 경건 위에 형제 우애(brotherly kindness)를 형제 우애에 사랑(charity)를 공급하여야 합니다.
 
2절에서 구원받은 성도는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성실한 말씀의 우유를 사모(desire the sincere milk of the word, 헬라어. 토로기콘 아돌론 갈라 tologikon adolon gala)해야 합니다. 갓난아이들은 엄마의 젖 맛을 알기 때문에 배가 고플 때 엄마의 우유를 간절히 찾습니다. 아기들은 아프거나 몸이 안 좋으면 젖을 잘 안 먹으려 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정상적이면 엄마의 젖을 사모합니다. 아기들은 이렇게 해야 건강하게 잘 자라게 됩니다. 이와 같이,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워하고 배고파하며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유에 비유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한 말씀’이라고 말한 것은 이단사설들, 인본주의적 생각들이나 말들,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고 흥미만을 위주한 예화나 이야기들 등과 구별시킨 말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순수하고 성실한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자라야 합니다. 개역 성경이나 개역 개정 성경에서는 2절 하반절에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로 번역되는데 전통사본인 개혁자들의 성경(비잔틴 사본) 헬라어 원문에는 “히나 엔 아우토 아우제세테” ἵνα ἐν αὐτῷ αὐξηθῆτε= that ye may grow thereby 즉 “그것으로 자라게 하기 위함이라”로 되어 있습니다. 말씀으로 양육과 성장을 말합니다. 소수사본인 알렉산드리아 사본 네슬판(한국 대부분 신학교에서 여전히 사용)에서 “에이스 소테리안 εἰς σωτηρίαν=unto salvation, 즉 구원에로”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에는 세 단계가 있는데 소명(召命), 중생(重生), 회심(悔心), 믿음과 칭의(稱義)는 과거적 단계로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났고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이미 구원을 얻었습니다(엡 2:8-9).
견인(堅忍), 영화(榮化)는 미래적 단계로 그것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루어질 일입니다(벧전 1:5). 우리는 소망으로 구원을 얻은 자들입니다(롬 8:24, 30). 예수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은 다 장차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양자(養子), 성화(聖化)는 구원의 현재적 단계입니다. 이것은 법적으로 이미 얻은 의(義)를 실제로 우리의 인격과 삶에서 나타내는 것입니다. 빌 2:12에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미 받은 구원, 장차 영화롭게 완성될 구원을 현실 가운데서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즉 온전한 경건 생활과 도덕 생활을 하여 구원받은 성도 답게 살고, 의와 선과 진실을 다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적 구원인 성화(聖化)입니다. 구원파에서는 과거적 구원만 가르치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은 전인적인 구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할 이유는 전인적으로 자라기 위해서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야 한다고 말합니다(엡 4:13-16). 히브리서는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장성한 자를 구별합니다(히 5:13-14).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말합니다(딤후 3:16-17).
3절에서 “너희가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합니다. ‘주님의 인자하심’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긍휼과 은혜와 인자로 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인자하심을 통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면 우리는 실제적으로도 의로운 자, 죄와는 상관 없는 자, 도덕적으로 온전한 자가 되기를 힘써야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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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절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a living stone)이신 예수님에게 나아와 5 여러분들도 산돌(lively stones)같이 영적인 집(a spiritual house)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영적 희생제물(spiritual sacrifices)을 드릴 거룩한 제사장(an holy priesthood)이 될지니라.”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보지 못하고 버렸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신 예수님은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으셔서 모퉁이 돌이 되셨습니다(시 118:22).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사랑하시고 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보배로운 산돌이 되셨습니다. ‘산 돌’이란 그분께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시고 그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님께 나아와 산돌같이 영적인 집(오이코스 프뉴마티코스 oikos pneumatiko)인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교회는 돌들로 지은 건물에 비유된다. ‘영적인’ 집이라는 말은 교회가 단순히 물질적 건물이나 육체적 집합체가 아니고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집, 곧 성령의 성전입니다. 고전 3:16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십니다. 엡 2:21-22, “그분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님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여러분도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또한 우리는 이 영적인 집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영적 희생제물을 드릴 거룩한 제사장들(히에라튜마 hierateuma= priests)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다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들입니다. 영적인 희생제물이란 우리의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삶과 헌신과 봉사의 삶을 말합니다. 우리는 모든 악독과 속임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을 버리고 경건하고 거룩하고 의로운 생활을 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6-8절에 “6 성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여러분들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는 가장 귀한 보배이십니다. 주 예수님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버린 돌, 부딪히는 돌, 거치는 반석’이 되셨습니다. 구원에 있어서 믿음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9-10절 “9 오직 여러분들은 택하신 족속(a chosen generation)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a royal priesthood)이요 거룩한 나라(an holy nation)요 그의 독특한 백성(a peculiar people)이니, 이는 여러분들을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분의 기이한 빛(his marvellous light)에 들어가게 하신 분의 찬양을 나타내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들이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the people of God)이요 전에는 은총(mercy)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은총을 얻은 자니라.”
 
이 구절은 구원받은 성도의 자기 정체성(identity)를 보여주는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된 자는 그분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독특한 백성으로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특권들을 몇 가지로 증거한다. 첫째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 되었습니다. 선택받은 증거는 우리의 진실한 믿음과 회개와 순종입니다. 둘째로, 성도들은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왕 같은’이라는 원어(바실레이오스 basileios)는 ‘높은 특권을 가진’이라는 뜻입니다. 성도에게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그를 섬기는 특권이 있습니다(히 10:19). 셋째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입니다. 세상 나라들은 부정과 불법으로 가득하며 음란하고 부도덕한 나라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진리와 사랑과 평강의 나라입니다. 넷째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독특한 백성입니다. 우리는 특별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핏 값으로 사신 바 된 귀한 보배들입니다. 또 하나님의 것은 아무도 그 손에서 빼앗을 수 없이 안전한 보호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이런 귀한 특권을 동반한 구원을 주신 목적은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분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찬양을 나타나게 하려 하심”입니다. ‘기이한 빛’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식과 의와 행복을 말합니다. 호세야가 하나님과 회복된 후 그의 자녀들에게 하신 말씀대로(호 2:23, 롬 11:6-7, 11:30, 고전 7:25, 딤전 1:13, 히 4:16) “여러분들이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은총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은총을 얻은 자니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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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순례자 같은 여러분들을 권면하노니 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여러분들이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여러분들을 악행하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여러분의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인생은 나그네요 천성을 향하여 가는 순례자입니다. 죽을 때 하나님 앞에서 선악간에 판단을 받아 천국 혹은 지옥에 들어갈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내세를 준비합니다. 내세의 준비는 우리가 죄 가운데 정신없이 살지 않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입니다. 중생한 사람의 새 성향을 거스르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며 사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음란과 방탕 등 육신의 욕망들을 제어하고 죄 짓지 말고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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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님 때문에(디아톤퀴리온 dia ton kyrion)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15 곧 이는 너희가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이니라. 16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이 세상에서 성도들의 선한 삶은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순종하는 데서, 예를 들어, 왕과 그의 보낸 관리들에게 순종하는 데서 나타납니다. 13절 본문은 “주님 때문에” 순복하라고 권면하는데, 왕이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때에 그들을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롬 13:1-2, 4, 6,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에도 보면 먼저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통치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부모에게 효도를 하되 “주님 안에서 in the Lord” 순종하라(엡 6:1)고 가르칩니다. 부모가 효도를 받으려면 먼저 주님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평소 성수주일, 십일조생활, 경건생활을 잘하는 부모님의 말씀과 교훈을 순종해야 5계명을 지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일날 교회에 가지 말고 학원에 가라, 세상 일을 하라, 소풍 가자하는 부모 말을 거역하는 일이 불효가 아니고 오히려 잘 하는 일입니다. 가장 큰 효도는 잘못된 부모님이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나라의 지도자나 왕이 하나님의 뜻대로 통치를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주권대로 통치하면 순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지도자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역하고 다른 길로 행하게 한다면 꾸짖고 회개하게 하여 바르게 통치하게 해야 합니다. 목회자들이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현대의 대언자 사명을 망각하는 직무 유기의 죄를 범하여 주님으로부터 반드시 책망을 듣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대언자들은 정치인들을 바르게 지도해야 합니다.
 
16-17절에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죄와 율법에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롬 8:1). 그러나 우리는 그 귀한 자유를 악을 변명하고 정당화시키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해야 합니다. 갈 5:13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권면합니다. 성도들의 선한 삶은 인간관계에서 나타납니다. ‘뭇사람을 공경하라’는 말씀은 ‘모든 사람을 존중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들을 존중해야 할 이유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자이기 때문이며, 또한 주님께서 피흘려 사신 자들이 누구인지 우리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 보잘것없어 보이는 자라 할지라도, 만일 주님께서 그를 위해 피흘려 돌아가셨다면, 우리는 그를 존중해야 합니다. 또 베드로는 형제들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왕을 공경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통치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도자가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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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종들아, 온전히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향한 양심 때문에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여러분들이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여러분들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분은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분의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분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여러분들이 전에는 양과 같이 길 잃은 양들과 같았으나 이제는 여러분 혼들의 목자(the Shepherd)와 감독(the Bishop) 되신 분에게 돌아왔느니라.”
 
18절에 ‘종들’이라는 원어(오이케타이 oiketai)는 ‘집안의 종들’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구원받은 종들에게도 선한 삶을 교훈합니다. 그것은 주인들에게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종들은 주인들을 온전히 두려워함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또 종들은 선하고 관용하는 주인에게만 순종할 것이 아니고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순종해야 한다. 종이 어떤 잘못이 있어서 주인에게 매를 맞으면 칭찬받을 것이 없지만, 그가 선하게 행하는데도 애매히 고난을 받고 그 고난과 슬픔을 잘 참으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양심 때문에’라는 말은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선한 생각 때문에’라는 뜻입니다. 종이 애매히 당하는 고난을 잘 참는 것은 미덕(美德)입니다.
21절 이하에 성도들은 이런 고난을 당하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이런 고난을 받으심으로 우리에게 본이 되셨고 우리로 하여금 그의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셨습니다. 선을 행하면서 고난을 당하는 삶이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가야 할 길입니다. 당시 로마 정권으로부터 박해가 심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고난을 당하는 것이 결국 아름다운 결과와 열매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보십시오. 구주 예수님게서는 죄가 없으셨고 그 입에 거짓이 없으셨으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욕을 받으시되 욕하지 않으셨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않으셨고 오직 공의의 심판자 하나님 아버지께 부탁하셨습니다. 그는 마침내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대속(代贖)의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가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게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는 영원히 고칠 수 없는 죄의 병에서 나음을 입었습니다. 예수님은 선을 행하면서 고난을 당하는 삶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길 잃은 양들과 같았었습니다. 우리는 목자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멀리 떠나 방황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인생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찾아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와 감독이 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 되셨습니다. 이스라엘과 중동에 가보면 모퉁이 돌 위에 집 기둥과 벽이 지어지기에 이 산돌이 집의 중심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의 모퉁이 돌이요 기둥이 되시는 산돌이십니다. 이 산돌이 내 인생의 중심에 있습니다. 이 거룩한 반석위에 교회가 세워지고 우리의 신앙고백을 합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이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마 16:16, 18). 이 신령한 반석 되시는 산돌에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수가 흘러 넘칩니다(고전 10:1-4).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꿈에서 본 이상은 광채가 득심하고 심히 두려운 한 신상입니다. 그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며 종아리는 철이요 발은 철과 진흙이 섞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손으로 뜨이지 아니한 한 돌이 그 신상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아 부서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 같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꿈에서 신상은 하나님을 대적해 온 역대의 왕들을 의미하며 마지막에 등장하는 발은 인류의 종말에 등장할 최후의 대적자 적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 발을 쳐서 무너지게 한 돌이 있습니다. 이 돌은 집의 모퉁이 돌이시며 반석이시며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한 최종적인 심판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태산을 이룬 돌은 천년왕국을 이룰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님 중심으로 선택하신 백성,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분의 독특한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계에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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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금주기도제목:
(1) 새해에 산 소망 되시는 예수님 안에서 매일 매순간 동행하게 하소서!
(2) 영생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예수님을 닮아 믿음, 소망, 사랑이 풍성하게 하소서!
1월13일(월) 찬송 347장(통 382장), 380장(통 424장) 수 8장 (아이성 전투)
14일(화) 347장(통 382장), 380장(통 424장) 9장 (기브온과 계약)
15일(수) 438장(통 495장), 370장(통 455장) 10장 (태양이 멈춤)
16일(목) 438장(통 495장), 370장(통 455장) 11장 (북 가나안 정복)
17일(금) 428장(통 488장), 60장 (통 67장) 12장 (약속의 땅 정복)
18일(토) 428장(통 488장), 6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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