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소망(5):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벧전 5장)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장로교회)

by wgma posted Jan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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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소망(5):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벧전 5장)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장로교회)
사람들에게+본이+되는+사람에게+영광을+면류관을+주신다는+말씀입니다+베드로전서+5장+4절+말씀+…양+무리의+본이+되라+그리하면….jpg



제목: 산 소망(5):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벧전 5장)
본문: 벧전 5:1~14
요절: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벧전 5:2~3)
주제: 산 소망의 목회자들은 양 무리의 본이 되어 즐거운 뜻으로 목양하자
교독문: 83(빌 4장), 예배의 부름: 롬 12:9-13
찬송: 452장(통 505장), 455장(통 507장)
일자: 2020년 2월 2일 주일 (주현절 다섯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장로교회)
 
새해 들어 2월 첫째 주일입니다. 지난 주일 설날 잘 지내셨지요?
오늘은 베드로전서 5장을 묵상합니다. 1장에서 산 소망되시는 예수님, 2장에서 보배롭고 산돌이신 예수님, 3장에서는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 4장에서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성도들에 대해 묵상했는데 오늘은 벧전 5장을 통해 산 소망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양 무리의 본이 되는 신앙생활에 대해 묵상하겠습니다. 신앙생활의 목표는 예수님을 닮는 삶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자신과 같은 직분을 담당하는 가르치는 장로들(the teaching elders) 즉 목회자들에게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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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러분들 중 장로들에게 권면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로라. 2 여러분들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the flock of God)를 치되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준비된 마음으로, 열심으로 하며, 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젊은이들) 서로를 순복하라. 겸손으로 옷을 입으라.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 하라. 때가 되면 여러분들을 높이시리라.
 
1절에 ‘장로(長老)들’은 일반 성도들 가운데서 감독자로 선택되어 세움 받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베드로에 의하면 장로는 교회를 다스리기 위해 세움을 입은 목회자들과 기타 모든 자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장로라고 높여 부른 것은 그들이 모두 나이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주로 나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나이가 많이 든 사람들은 사려가 깊고 권위와 경험이 보다 풍부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나이가 들었다고 다 지혜롭지 못하고 오히려 디모데와 같이 젊은 사람이 적절할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도 택함을 받으면 장로라고 불렀습니다. 구약성경에는 100개 이상의 장로(자켄)라는 말이 나오는데 특히 오경에 46회 나옵니다. 히브리어 자켄(zaken)은 나이가 많고 수염이 있는 지도자를 말합니다. 가돌(gadol)이란 단어는 형(elder)이란 뜻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학식이 많고,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연로하고, 품위와 덕망이 있는 사람으로서 가정이나 사회, 공동사회에서 존경 받는 지도자급에 있는 사람들을 장로라고 불렀으며(창 24:2, 창 50:7, 출 출 3:16-18, 4:29, 12:21, 24:9, 신 29:10, 31:28, 수 8:13, 23, 24:1, 렘 29:1, 겔 14:1, 20:3), 장로 10명이 모이면 재판을 할 수 있습니다(룻 4:2). 바벨론 포로 생활부터 유대인들은 성전이 없으니 회당을 세웠는데 성인식(바-미쯔바)을 가진 유대인 남자 10명이 있으면 회당예배를 드릴 수 있고, 이중 세 명의 장로가 세워지면 독립적인 회당으로 인정 받았답니다. 유대인 회당에서 장로들이 그 백성들을 가르쳤는데, 율법, 공동체에서 배워야 할 규범들, 지켜야 할 의식들을 가르쳤습니다. 백성들의 대표로서 시정, 정치하는 데에는 참여하였으며 백성들의 존경받았으며, 장로들은 조그만 마을에도 다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에만 회당이 580여개가 있었다고 하는데 회당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있어서 공동체의 세포와 같은 존재로 신앙 중심 센터였는데 랍비와 회당장과 더불어 장로는 회당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들은 회중들의 친구, 봉사자, 동역자, 교훈자, 충고자 이면서도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의 장로는 헬라어로 프레스부테로스(Presbyteros, Πρεσβυτέρος)라 하는데 60회 정도 나옵니다(행 11:27, 14:23, 15:2, 15:6, 16:4, 20:17). 보다 더 나이 많이 먹은 연장자, 손윗사람(elder), 공직에 있는 자들, 영광 받는 자들의 의미들을 가지고 있는데, 교회의 지도자로, 오늘날처럼 교회 정치제도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배하고 다스린다는 통치의 개념이 아니라, 섬김과 봉사의 본을 보이는 지도자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not to be ministered unto, but to minister)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a ransom)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 5:8-9)
그래서 초대 교회는 장로를 선출할 때 매우 신중했습니다. 딤전 3:1-7, 딛 1:5-9, 2:1, 벧전 5:1-4에서 교회 지도자의 덕목에 대해서 무려 16가지를 이야기 하고 있는데 정직하고 신실하고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며 권징을 할 수 있는 지도자여야 합니다. 한 성도의 영과 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권면하는 지도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여행시 교회를 세우고 장로들을 세웠습니다. 사도들의 수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각 성에 사도적 직무를 장로들을 그 교회의 감독으로 세웠습니다. 감독이 장로요 장로가 감독으로 불리고 있기도 합니다.엄밀하게 말하면 모든 장로들이 감독은 아닙니다. 감독은 사도처럼 말씀을 전하는 일을 전무했던 사람이었고, 장로들 가운데 감독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디모데와 디도는 사도의 역할을 했고, 장로와는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목사의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감독, 장로, 집사의 세 개 직분은 교회의 상황에서 사도들이 세운 것입니다. 사도들의 제자들을 속사도라 불렀습니다. 그들은 장로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닌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제자들 가운데도 장로가 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사도이면서 장로 즉 목회자였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함께 장로 된 자(συμπρεσβύτερος)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μάρτυς τῶν τοῦ Χριστοῦ παθημάτων)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τῆς μελλούσης ἀποκαλύπτεσθαι δόξης κοινωνός)라고 증거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갈릴리 해변에서 베드로에게 주님을 사랑한다고 한다면 “내 어린 양을 먹이라 βόσκε τὰ ἀρνία μου=Feed my lamb. 내 양을 목양하라 ποίμαινε τὰ πρόβατά μου=Feed my sheep. 내 양을 먹이라βόσκε τὰ πρόβατά μου=Feed my sheep.”고 하셨습니다(요 21:15, 16, 17). 또 사도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들이었고, 다 그분의 부활의 증인이기도 하였고(행 1:21, 22; 2:32; 3:15; 5:30-32 등), 또 그분의 재림 때에 영광의 부활에 참여할 자들이었습니다. 진실한 모든 성도들은 다 주님의 재림 때에 그분의 영광에 참여할 자들입니다.

2-3절에서 장로는 목사(a teaching elder)와 장로(a ruling elder)를 다 포함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장로는, 장로교 헌법에 표현한 대로, 설교와 치리의 일을 맡은 목사와 치리의 일만을 맡은 장로를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고 말했습니다(딤전 5:17). 그러므로 장로의 직무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는 일입니다. 모든 성도들을 살피고 돌봐주며 기도하고 권면하며 치유하는 일입니다. 장로들은 두렵고 떨림으로 성실하게 그 직무를 다해야 합니다. 양 무리를 치는 일 즉 목양(牧羊) 혹은 목회는 성도들의 영적인 상태를 돌아보는 일입니다. 그것은 담임목사에게만 맡겨진 일이 아니고 모든 봉사하는 직분자들에게도 맡겨진 일입니다.
목회자나 장로들은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칠 때 다음 세 가지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로, 목양을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해야 합니다. ‘부득이함으로’는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라는 뜻인데, 하나님께서는 무슨 선한 일이라도 억지로, 마지못해, 의무감 때문에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선한 일들 중에 가장 귀한 일인 이 목양의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목회자들은 이 직무를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둘째는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즐거운 뜻으로 해야 합니다. 목회자들과 장로들은 교회의 일을 함에 있어서 사사로운 이익을 구해서는 안 됩니다. 봉사는 항상 순수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즐거운 뜻으로’라는 말은 ‘준비된 마음으로, 열심으로’라는 뜻입니다. 봉사의 직분을 바르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동기와 준비된 마음과 열심이 필요합니다.
셋째는 맡겨진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교인들의 대표자가 되고 인도하는 위치에 있을 때 다른 이들에 대해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권위 의식을 가지고 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점에 대해,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교훈하십니다(마 20:25-27). 봉사자들은 주장하는 자세를 갖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4절에서 목자장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분의 재림의 날에 충성된 종들에게 영광의 상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상주시는 분이십니다(히 11:6). 주님께서 마지막 날 복음의 일꾼들과 교회 장로들에게 주실 영광은 시들지 않는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목회자들과 장로들은 주님께서 주신 직분을 수행하는 일에 있어서 힘들고 어려운 점들이 많을지라도 낙심치 말고 하나님만 바라고 충성해야 합니다.
 
5절에는 젊은이들에 대해 세 가지 권면을 합니다.
첫째로, 젊은이들은 장로들에게 순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성도들이 받아야 할 교훈입니다. 히 13:17, “여러분들을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여러분들 영혼을 위하여 깨어있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특히 젊은이들은 대체로 아직 인생의 고난들을 많이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순종하지 않을 경향이 있습니다. 고난의 환경은 대체로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양약(良藥)인데 많은 고난을 겪지 못했기에 젊은이들은 자기 생각을 접고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는 법을 배움으로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둘째로, 젊은이들은 서로에게 순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엡 5:21에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복종하라”고 교훈합니다. 또 빌 2:3에서는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교훈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교회의 구성원이 된 우리 모두는 서로를 존중하면서 서로에게 복종하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셋째로, 젊은이들은 겸손으로 옷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주권자이시기에 그분께서 세우면 세워질 것이고 그분께서 파하면 파해질 것입니다. 그분께서 높이면 높아질 것이고 그분께서 낮추면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삼상 2:6-7,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정하신 때에 우리를 높이 들어 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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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러분들의 염려를 다 주님께 맡겨버리라. 왜냐하면 그분께서 여러분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라. 8. 근신하라. 깨어라. 여러분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여러분은 믿음을 굳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왜냐하면 세상에 있는 여러분의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알기 때문이라.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들을 부르사 자신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분께서 잠깐 고난을 받은 여러분들을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11 권세와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그분께 있을지어다. 아멘. 12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에게 간단히 써서 권면하노니 여러분들이 그 안에 굳게 선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라. 13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여러분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14 여러분들은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여러분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멘.
 
7절에서 사람이 세상을 사는 데 염려거리가 아주 없을 수는 없을 것인데 성도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인생에게는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 염려거리가 항상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주님이 되시며 친히 우리를 돌보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사화복의 주관하십니다. 그분께서 자기 백성을 결코 버려두지 않으시며 날마다 돌보십니다. 시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염려를 다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8절에 마귀 혹은 사탄은 실제로 존재하는 영으로 마귀의 성격은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교회와 성도들을 대적합니다. 그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대적합니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불신앙에 떨어지고 낙심하고 좌절하며 서로 미워하게 만들기를 원합니다. 마귀(사탄)는 악하여 우는 사자같이 성도들을 삼키고 죽이며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그는 성도들에게 고난을 줌으로써 그들을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거짓말의 명수입니다. 입만 벌리면 중상모략하고 거짓의 거짓을 말합니다. 진리의 길을 막거나 방해합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왜냐하면 그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기 때문이라.” (요 8:44)
마귀(사탄)는 어떤 때는 질병으로, 또 어떤 때는 가난으로, 실패로, 절망으로, 분열로, 또 다른 때는 가정적, 사회적 환난으로 성도들을 시험합니다. 초대교회는 성도들이 많은 핍박과 고난을 받았던 시대이었습니다. 마귀는 매우 활동적이어서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공격할 대상을 찾습니다.
9절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은, 예를 들면, 우리가 게으르거나 욕심을 품거나 세상이나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고 근신하고 깨어서 믿음을 굳게 하고 도리어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약 4:7-8,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려면, 부지런히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며, 성경 읽기와 기도 등 경건의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은 마귀를 물리치는 검(sword)입니다. 주님께서도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을 때 기록된 성경말씀으로써 물리치셨습니다(마 4:4, 7, 10).

10절에서 성도들은 세상에서 마귀의 시험과 고난을 당하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은혜가 풍성하시고 충만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소개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화내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사대까지 보응하리라.” (출 34:6-7)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부르셨고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광스런 천국이며 거기에서의 영생 복락입니다.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찬송 287장(통 205장)에 “영생 복락”이 나오는데 이를 줄이면 “영락”입니다.
 
영원한 천국에 비교해 볼 때, 성도들이 현실에서 당하는 고난은 ‘잠깐 고난’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아무리 길어도 100년을 넘지 못합니다. 그러나 실상 100년 중 고난의 기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국과 영생은 영원하고 영광스럽습니다. 고후 4:16-18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연약하여 마침내 썩으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가벼운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계획하시고 뜻하신 바를 남김없이, 실패 없이 다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의 중심에는 우리의 구원이 있습니다. 구원의 계획을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대속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성령님을 보내셔서 활동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친히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굳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터를 견고케 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치 말고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성실합시다.

12절에 나오는 실루아노는 바울의 협력전도자이었던 실라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행 15:22; 고후 1:19; 살전 1:1; 살후 1:1). 원문에는 ‘신실한’이라는 말이 ‘너희에게’을 수식합니다. 실루아노는 베드로전서가 보내졌던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 등의 성도들에게(벧전 1:1) 신실한 형제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또 그는 지금 베드로를 위해 이 서신을 대필(代筆)하고 있습니다. 실루아노가 실라라면, 그는 바울의 협력자인 동시에 또한 베드로의 협력자가 되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는 바울이 전한 복음과 베드로가 전한 복음이 동일한 복음이라는 것을 잘 증거하는 인물이 된 셈입니다.
베드로는 또 자신이 증거하고 권면한 내용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편지를 보내고 있는 성도들이 이미 하나님의 은혜 안에 굳게 서 있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확신 가운데서도 그는 또 그 은혜의 말씀으로 그들을 권면하고 격려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아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또 듣고 또 음미하고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13절에 나오는 ‘바벨론에 있는 교회’는 문자 그대로 오늘날 이락인 바벨론에 있는 교회를 가리키는 것도 있지만 계 17-18장에서 바벨론은 로마의 은어로 사용한 것으로 보아 로마에 있는 교회를 말한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또 마가에 대한 언급도 12절에서 실로아노에 대한 언급과 같이 초대교회의 같은 신앙과 사랑의 교제를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마가는 바울에게도 협력자이었습니다. 그는 베드로가 ‘나의 아들’이라고 부를 만큼 믿음으로 신실하고 정직한 주님의 종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벧전 5:1-6의 양 무리의 본이 되는 교훈의 원론에 벧전 5:7-14에서 그 실례가 되는 예를 적용하며 구체적인 교훈을 받습니다. 우리도 실루아노처럼, 마가처럼, 초대교회 목회자들과, 장로들, 봉사자들처럼, 양 무리의 본이 되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적극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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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2월3일(월) 찬송 288장(통 204장), 412장(통 469장) 삿 2장 (배교, 우상숭배)
4일(화) 288장(통 204장), 412장(통 469장) 3장 (사사 옷니엘)
5일(수) 15장(통 55장), 304장(통 404장) 4장 (사사 드보라)
6일(목) 15장(통 55장), 304장(통 404장) 5장 (드보라 승전)
7일(금) 302장(통 408장), 287장 (통 205장) 6장 (사사 기드온)
8일(토) 302장(통 408장), 287장 (통 205장) 7장 (미디안을 이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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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겟세마네 신학교 2020년 봄 학기 개강
일시: 2월 10일(월) 10시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장소: 세민교회 (대전광역시 대덕구 우암로 396) 3층
전화: 032-832-0287, 010-9113-1127, 010-4907-7483
 
윤사무엘~성경해석학, 류재이~상징주의, 송인성~복음신학
유석근~종말론, 이종훈~창세기, 김인자~테필린, 서금순~기독교상담학
2020년 1월 30일까지 등록해 주시기 바랍니다.
농협. 302 0280 1002 11
 
총장 윤사무엘 박사
학장 송인성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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