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소망(9): “참된 경건은 말씀을 행함으로”
(약 1장)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신학교)
요절: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약 1:26~27)
주제: 항상 말씀을 실천하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며 세속에 물들지 말자
교독문: 99(나라사랑 1), 예배의 부름: 시 24:3~6
찬송: 563장(통 411장), 9장(통 53장)
일자: 2020년 3월 1일 주일 (삼일절 회상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신학교)
중국, 한국, 이탈리아, 이탈리아 등 코로나 19[Coronavirus] 전염병이 온 인류를 불안과 공포와 절망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고통당하며 확진 판명을 받고 전염에 대해 불안하고 있습니다. 거리와 직장과 시장이 한산하고 모임이나 행사가 취소되고 연기되어 전 국가가 고통가운데 있습니다. 교회 예배나 모임도 제한을 받아 인터넷으로 영상 예배로 가는 추세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기도하고 주님께로 돌아와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합시다. 주님만이 백신(vaccine)이시며, 치료의 하나님(출 15:26)이십니다. 회개하고 자숙하고 반성하며 남을 탓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서로 사랑하며 책임을 나눠지고 도와주며 손에 손을 잡고 이 어려움을 이겨냅시다.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며 바른 방향을 잡고 금식기도하며 말씀으로 무장할 때입니다. 묵상할 말씀을 나눕니다.
출 15:26 [마라에서]“‘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민 16:46-48“이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향로를 취하고 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두어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으므로 염병이 시작되었음이니라. 아론이 모세의 명을 좇아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달려간즉 백성 중에 염병이 시작되었는지라 이에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
시 91:2-3, 6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pestilence)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막 9:28-29“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이르시되 기도와 금식[다수 사본에는 금식이 있음]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모두 말씀으로 무장하여 영적 저항력을 키우며 소금물 가글, 손 씻기, 충분한 수면과 휴식, 마스크 착용, 온전한 금식기도, 주변 청소를 실시해 봅시다.
오늘은 101주년을 맞이하는 삼일절 회상 주일로 지킵니다. 1910년 일본이 대한제국의 국방과 외교의 권리를 강탈하더니 점차 우리나라의 주권을 빼앗고 역사를 왜곡시키고 식민지화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십 년째 되던 해인 기미년 1919년 2월 8일에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선언의 영향으로 만주 지린에서 발표되었던 무오 독립선언에 영향을 받아 상해에서 활동하던 김규식과 와세다대에서 유학하던 이광수가 베이징에서 만나 의논하고, 이광수가 초안해서 만든 선언서 였습니다. 이들은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은 자주민임을 선언"하였고,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며 민족의 궐기를 촉구했습니다. 이렇게 2월 한 달 내내 조선인 학생들의 독립운동이 일어났는데 이 사건은 3월 1일 서울에서 이루어진 3·1 독립선언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1910년 일본이 대한제국의 주권을 찬탈한 것을 5년간 대부분 국민들이 모르고 있다가 민비 살해에 이어 고종 황제도 독살 당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고종의 장례식(인산일)인 1919년 3월 1일에 오전에 종로 태화관(서울시 종로구 인사동)에 모여 민족 대표 33명이 독립선언서(육당 최남선 초안 작성)에 서명했습니다. 직접 서명을 하지 아니했으나 이날의 행사를 위해 준비한 이들을 합쳐 보통 민족 대표 48인입니다. 이날 오후 2시에 태화관에서 300미터 떨어진 원래 약속 장소였던 탑골공원에 모여든 천 여 명의 대학생들 앞에 경신학교 출신 정재용이 팔각정에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습니다.
“오등은 玆(자)에 我朝鮮(아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此(차)로써 世界萬邦(세계만방)에 告(고)하야 人類平等(인류평등)의 大義(대의)를 克明(극명)하며 此(차)로써 子孫萬代(자손만대)에 誥(고)하야 民族自存(민족자존)의 正權(정권)을 永有(영유)케 하노라...
아아 新天地(신천지)가 眼前(안전)에 展開(전개)되도다. 威力(위력)의 時代(시대)가 去(거)하고 道義(도의)의 時代(시대)가 來(래)하도다.
(현대역)
우리는 오늘 우리 조선이 독립국이며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이를 세계만방에 알려 인류 평등의 큰 진리를 환하게 밝히며, 이를 자손만대에 알려 민족의 자립과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하려는 것이니라...
아!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도다. 무력의 시대가 가고 도덕의 시대가 오고 있노라....” 독립선언서에서 우리 대한제국 조선은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며, 일본이 식민주의를 버리고 동북아시아를 자유, 평등, 평화의 새로운 공동체를 이룰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야고보서를 공부합니다. 지금까지 매 주일마다 공동서신(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을 역순으로 강해했는데 이제 야고보서만 남았습니다.
야고보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로 알려집니다. 저작 연대는 야고보가 예루살렘 회의(AD 49년경)와 순교 당하기 전에(AD 63년 이전) 쓰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본 서신의 수신자는 동방에 흩어져 살았던(디아스포라) 유대인들입니다(약 1:1).
야고보서의 주제는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장에 나오는 이행득의(以行得義 justification by practice), 즉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고 믿음만으로는 아니라는 말씀은, 바울의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밝히 증거된 이신칭의(以信稱義 justification by faith), 즉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복음과 충돌하는 것같이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적 행위의 의(義)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 redemption)을 믿는 믿음의 의를 구별하는 관점에서 이신칭의를 말한 것이고,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과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을 구별하는 관점에서 이행득의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야고보는 믿음을 기초한 행함을 강조하고, 바울은 행함을 수반하는 믿음을 강조하고 있을 뿐입니다(갈 5:6; 살전 1:3; 롬 6장).
야고보서 1장에서 참된 경건은 시험을 참고 말씀으로 온유하며 정직하고 정결하며 환난 중에 있는 이웃을 돌보아주고 세속에 물들지 말라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2 내 형제들아, 여러분들이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여러분의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여러분들이 알기 때문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여러분들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 즉 시리아와 소아시아 등에 흩어져 살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서신을 보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BC 588년)이후 세계에 흩어져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흩어진 유대인들(“잃어버린 양들”)에게 복음을 먼저 전해 졌습니다(마 10:5-6, 15:24, 눅 15:4-6, 행 3:26, 롬 1:16). 2절에서 말하는 ‘형제’라는 말은 본 서신에 19번이나 사용된 단어로 초대교회에서 성도들 상호간에 사용된 매우 친근한 명칭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라는 말은 성도에게 닥쳐오는 시험이 다양함을 보입니다. 영적으로 시험을 받습니다. 박해, 핍박, 순교, 등. 어떤 때는 육체적 질병이 있고, 또 어떤 때는 실직이나 부도, 파산, 경기침체 등의 물질적 손실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가족들의 질병과 사고와 죽음이 있고, 어떤 때는 친구의 비방과 배신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가정의 파탄이나 국가의 경제 공황이나 전쟁이나 전염병(온역, 염병)이 있습니다. 성도는 이런 다양한 시험을 당할 때에 그것을 불평하지 말고 그것을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그 이유는,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면 온전하고 구비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인격자가 되기 때문입니다(롬 5:3-4). 신앙 인격은 시험과 시련을 통해 단련되고 성숙케 됩니다. 온전한 인격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가 이 세상에서 힘써야 할 성화의 목표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여러분들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신실하시어(faithful), 여러분들이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여러분들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고 하십니다.
야고보서 3장13-18절에 의하면 지혜는 두 종류로 나뉘어 집니다. 땅의 지혜는 시기, 다툼, 혼란, 악한 것으로 자랑해서도 안 되며 추구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지혜는 위로부터 온 것으로 성결하고 화평하며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합니다. 성도가 시험을 잘 참고 잘 대처하려면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 하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이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을 현실에 잘 적용하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이런 지혜를 구합시다. 주님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 7:7).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기대 이상으로 주심] 꾸짖지 아니하시는 분이시기에 이런 지혜를 구하는 이들에게 반드시 주십니다.
6-8절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때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함을 가르칩니다. 지혜를 구하면서 의심하는 자는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고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불안정한 자(unstable)’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때 의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기 때문입니다. 100%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할 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였듯이(왕상 3:10), 우리가 지혜를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내용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십니다(요일 5:14).
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0 부요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 해가 뜨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요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사회적 신분이 낮거나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성도들은 존귀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복된 천국의 시민이 된 것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흔히 성도에게 닥치는 큰 시험거리는 물질 문제이지만, 성도들은 세상 것들이 헛되다는 것과 주 예수님 안에서 얻은 구원과 복이 지극히 크고 가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으로 만족하며 즐거워하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사회적 신분이 있거나 물질적 유여함이 있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의 부요함의 헛됨을 인정하고 낮은 형제들과 교제하게 된 것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이전에 가치 있게 여겼던 세상의 것들이 풀같이 시들고 아름다운 꽃같이 없어지는 것임을 깨달았고 거기에 더 이상 큰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성도의 가치는 오직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천국 기업이요 영원히 죽지 않는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입니다.
야고보서 1장에서 ‘시험’이라는 말(페이라스모스 peirasmos)(2절, 12-14절)은 ‘시련’이라는 원어(도키미온 dokimion)(3절)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환난과 고난의 시험을 잘 참으면 온전한 인격자가 되므로 복됩니다(3-4절).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이라는 원어(도키모스 dokimos)는 ‘시험을 받은’이라는 의미입니다. 성도들의 시험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시험입니다. 그것을 잘 통과하는 자들은 그들에게 참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음이 증명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이란 영생을 가리킵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말합니다(요일 5:4).
13-14절에서 시험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시험을 받을 때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고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는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친히 누구를 시험하지도 않으십니다. 시험의 원인은 각 사람의 욕심입니다. 각 사람은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될 때 시험에 떨어집니다. 예를 들어, 남에게서 비난을 받는 것이 시험이 되는 것은 자존심이나 명예심 때문이며, 물질적 파산이 시험이 되는 것은 물질에 대한 애착 때문이며, 몸의 질병이 시험이 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애착 때문입니다. 자식에 대한 애착이 많으면 자식 때문에 시험을 받게 됩니다. 사람의 욕심에 따라 시험을 받습니다. 만일 이런 애착이나 욕심이 없다면, 그것들이 시험거리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15-16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사망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에 대한 욕심에서 죄가 생깁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 쾌락에 대한 욕심, 명예에 대한 욕심, 가문에 대한 욕심, 명예에 대한 욕심, 더 가지려는 욕심 등이 살인과 간음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의 죄를 낳습니다. 또 그 죄가 자라면 사망을 낳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죽음은 심판, 지옥 형벌을 포함합니다. 또 본문은 사람의 시험이 욕심에서 나는 것이므로 ‘속지 말라’고 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시험받는 것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17절에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천지만물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천지만물에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고 땅을 정복하고 생물들을 다스리게 하셨으므로 사람이 땅을 정복하고 생물들을 다스리는데 쓰이는 지혜와 능력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들입니다. 사람이 발전시킨 음악과 미술, 그리고 문학과 과학 등도 다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선물들입니다. 이것들은 다 위로부터 즉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왔습니다. 성경에서 ‘빛’은, 무지와 죄와 불행과 구별되는 지식과 의와 행복을 가리킨다. 이런 점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변함이 없으시며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십니다. 18절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하십니다. 성도들은 피조물 중 최고의 피조물이 되게 하시려고 자기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신 자들입니다. ‘첫 열매’란 중생(重生)의 구원을 가리킵니다. 롬 8:23,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救贖)을 기다리느니라.” 세상에서 영광스럽고 완전하고 충만한 추수는 아직 미래에 있습니다.
19-20절에 우리는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해야 합니다. 잠언은 입술을 제어하는 자가 지혜가 있고 말을 아끼는 자가 지식이 있다고 합니다(잠 10:19; 17:27). 또 우리는 성내기도 더디 해야 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지혜이라”고 교훈합니다(잠 12:16; 14:17, 29; 15:18; 16:32; 19:11 등). 21절에서 우리는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려야, 즉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특징은 죄를 버리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 우리는 구원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22-24절에서 우리는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참 믿음이 행함을 동반합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는 실상 믿지 않는 자이니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행하는 자는 그의 행함으로 자신의 구원을 증거 합니다. 말씀은 거울과 같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거울로 자신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듣기만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들은 후에 회개하며 고칠 것은 회개하며 고치고, 행할 것은 행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25절에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은 복음을 가리킵니다. 구약의 율법은 불완전한 법이었으나 복음은 완전한 법입니다. 26절에서 야고보는 경건과 행위의 관계를 강조합니다. 자신이 경건하고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않아서 조심스런 말을 하지 않고 선한 말, 덕스러운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며 그의 경건은 헛것입니다. 그가 참으로 경건하고 믿음이 있는 자라면, 그는 자신의 언어생활부터 고쳐야 합니다. 진실한 말, 선한 말, 덕스러운 말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결론은 27절에 있습니다. 참된 경건은 말씀을 실천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참된 경건이 어떤 행위로 나타나야 하는데 두 가지를 예로 드는데, 하나는 고아와 과부에 대해 사랑으로 관심을 가지고 그 환난 중에 돌아보는 구제와 봉사의 일이며, 다른 하나는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온전한 말씀의 실천입니다. 경건한 믿음을 굳게 합시다.
[오늘의 기도]
주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행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뜻을 실천하여 참된 경건을 이루게 하옵소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여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게 하옵소서. 폐렴 전염병으로 위험한 모든 지역에 주님의 보혈로 정결케 하여 주셔서 회복되고 치유받게 하옵소서. 삼일정신을 기억하며 조국을 위해 늘 기도하고 참된 복음의 통일이 한반도에 일어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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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3월2일(월) 찬송 273장(통 331장), 70장(통 79장) 삼상 1장 (한나의 기도)
3일(화) 273장(통 331장), 70장(통 79장) 2장 (사무엘 출생)
4일(수) 274장(통 332장), 67장(통 31장) 3장 (사무엘 섬김)
5일(목) 274장(통 332장), 67장(통 31장) 4장 (언약궤 사건)
6일(금) 272장(통 330장), 64장(통 13장) 5장 (블레셋 염병<span lang="EN-US" style="letter-s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