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소망(10): “행함이 있는 산 믿음” (약 2장)-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신학교)

by wgma posted Mar 0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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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소망(10): “행함이 있는 산 믿음” (약 2장)-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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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산 소망(10): “행함이 있는 산 믿음” (약 2장)

본문: 약 2:1~26

요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For as the body without the spirit is dead, so faith without works is dead also.” (약 2:26)

주제: 말씀을 실천하여 살아있는 믿음으로 매일 살아가며 주님께 영광 돌리자.

교독문: 125(사순절 2), 예배의 부름: 갈 2:20

찬송: 249장(통 249장), 216장(통 346장)

일자: 2020년 3월 8일 주일 (사순절 둘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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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야고보서 2장을 묵상합니다. 참된 믿음이란 말씀을 행하고 실천하는 생활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신칭의(以信稱義 justification by faith) 즉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말씀과 조화를 이룹니다. 바울서신에도 믿음의 행함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롬 3:31“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yea, we establish the law)”

 

고전 7:19“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the keeping of the commandments of God)”

갈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오직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faith which worketh by love)”

갈 6:15“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but a new creature).”

엡 2:10“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we should walk in them).”

엡 4:22-24“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오직 네 마음의 영으로 새롭게 되어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ye put on the new man)

 

지난 주일에 묵상한 야고보서 1장 결론은 참된 경건이란 말씀을 실천하는데 있음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약 1:19~27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첫째로, 복음 신앙은 성도에게 기본적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온유함으로 받고 우리를 온전히 자유케 하는 그 복음 진리 안에 거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복음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가 되지 말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경건은 헛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과 교훈을 읽거나 듣고 행하는 자는 복됩니다.

셋째로, 우리는 특히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성내기도 더디 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자신을 지켜 이 세상의 죄악된 풍조와 유행에 물들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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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에서는 1장에 이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임을 강조하며 살아 잇는 믿음은 말씀을 실천하는 것임을 몇 가지 예를 들어 교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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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믿음을 가진 자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다(약 2:1)

1 내 형제들아, 여러분들은 사람을 따라(with respect of persons), 영광의 주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지지 말라.

 

'영광의 주님 the Lord of glory'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증거합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영광의 주님'이라고 증거합니다(고전 2:8). 영광은 하나님의 속성이며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복음 신앙이며 구원 신앙입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7:1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빌 2: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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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람을 외모를 보고 대접하면 영광의 주님을 믿는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은 존귀하신 영광의 주님께서 낮고 비천한 사람으로 오셨다는 사실에 기초합니다. 주님께서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셨고 종이 모습으로 오신 것을 아는 사람은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평가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광의 주님께서는 낮고 비천한 인생의 모습을 취하셨기 때문입니다.

빌 2:6~8“그분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오히려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5~8을 ‘자기를 비움’의 예수님(Jesus of humility)이라 하는데 ‘자신을 비움’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케노시스(κένωσις kenosis)입니다. 이런 예수님께서 빌 2:9~11에 의하면 (1) 하나님께서 부활의 주님을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2) 우주 모든 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3) 모든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시안하게 하시고 (4)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외모로 보거나 판단을 쉽게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삼상 16:7“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시 147:10~11“여호와는 말의 힘을 즐거워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도 기뻐 아니하시고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잠 31:30“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2 왜냐하면 만일 여러분의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단장하지 못한 옷(vile raiment)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여러분들이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말하기를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기를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여러분들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judges of evil thoughts)가 되는 것이 아니냐? 하기 때문이라.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고 교훈하는 이유는 당시에 초대교회 안에 이런 잘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배당에서 교인들은 금반지를 끼고 좋은 옷을 입은 부자에게는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라고 친절히 대하지만, 단장하지 못한 옷을 입은 가난한 자에게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든지 하라고 차별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인을 경제적 척도에서 차별하거나 왕따를 시키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사람의 소유한 돈의 많고 적음이 그의 인격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비롯하여 주님의 제자들, 사도들, 구약의 대언자들이 대부분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인격자들이었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그의 내면적 덕성 즉 그의 경건과 믿음, 그의 의와 선과 진실의 덕성을 가지고 판단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이 보이는 가치 판단의 기준입니다.

종말의 비유(마 25:31~46)에서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모든 민족을 심판하실 때 목자가 마치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시겠답니다. 양들은 뭉치는 습관이 있어서 낮에 풀을 뜯을 때는 10마리 이상 뭉치지 못하도록 염소를 중간 중간에 넣어 흩어지도록 하지만, 저녁에 울타리로 인도할 때는 양은 오른쪽으로, 염소는 왼쪽으로 인도한다고 합니다. 이때 임금님이 오른편에 분류된 자들에게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시며 복 받을 자들로 칭찬하시면서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 25:35~36) 하실 때 의인들이 묻되“주님, 우리가 어느 때에 주님의 주리신 것을 보고 빵을 주었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마 25:37~39) 하니 임금님이 대답하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한 것이니라“ (마 25:40)고 하셨습니다. 왼편으로 분류된 자들은 저주를 받고 쫓김을 받아 마귀과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지옥불에 던져 졌는데, 이들은 어린 소자들을 무시하고 무관심하고 자비를 베풀지 아니했습니다(마 25:41~45). 우리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소자/어린 자/ 외로운 자/ 소외된 자/ 병든 자/ 아픈 자 속에 예수님이 계시는 줄 알고 대접을 하며, 사랑을 베풀고, 섬기고 봉사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부지중에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했는데 그들이 천사들이었습니다(히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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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할 이유들(약 2:5~13)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의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무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여러분들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8여러분들이 만일 성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하라’ 하신 최고한 법(the royal law)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9 만일 여러분들이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10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11‘간음하지 말라’ 하신 분께서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12여러분들은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13 왜냐하면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judgment without mercy)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기 때문이니라.

 

5절부터 13절까지의 내용은 우리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증거합니다. 그 이유는 네 가지로 표현되는데

첫째는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천국을 기업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보통, 부요한 사람보다는 가난한 자들이 예수님을 더 신실하게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마 19:23).

둘째는 부자들이 성도들을 멸시하고 압제하고 비방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도들을 비난하고 법정으로 끌고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은 성도들에게 그런 악을 행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자들을 우대하고 가난한 자들을 천대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셋째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이 하나님의 최고의 법(노모스 바실리코스 νόμος βασιλικὸς = nomos basilikos, the royal law]을 어기는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율법들 중에서 가장 귀한 법은 사랑의 법입니다. 그 첫째는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요(신 6:4~5), 그 둘째는 이웃을 우리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레 19:18)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우리는 이 귀한 법을 어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외모로 취하면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모든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만 거친다 해도 모두 범한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우리가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을 받을 자이기 때문입니다. '자유의 율법'은 복음을 가리킵니다(1:25). 그것은 우리에게 죄와 지옥 형벌과 율법 멍에에서 건져내어 자유를 주는 새로운 법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代贖)에 근거한 죄 씻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긍휼과 은혜로 된 것이요 우리가 값없이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 대속의 복음에 근거하여 장차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이런 큰 은혜와 긍휼을 받은 자라면, 우리가 어떻게 가난한 자를 긍휼한 마음으로 대하지 않고 멸시하고 천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자로서 장차 그 긍휼에 의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면 우리도 남을 긍휼을 여겨야 하고,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에게도 긍휼 없는 심판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우리를 지옥 형벌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소자 이웃에 대하여, 특히 가난한 자들에 대하여 긍휼의 마음, 사랑의 마음으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2.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임(약 2:14~26)

1) 실천이 없는 믿음의 예화(약 2:14~17)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여러분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말하기를,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즉 복음 신앙, 구원 신앙을 말합니다. '행함'이라는 원어(에르가 ἔργα=erga, “works”)는 '행위들'이라는 말로서 선한 행위들을 가리킵니다. 선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구원 신앙은 선한 행위로 증거되는 믿음 즉,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5:6에 말한 대로,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선한 행위란 입을 것과 먹을 것이 없는 자를 돕는 행위입니다.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이라는 말은 우리가 이웃의 몸의 필요한 것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에게 죄 사함과 영생과 내세의 천국만 전하지 말고 그에게 밥과 옷도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선행과 구제의 행위로 실천해야 합니다. 선행이 없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17절에 '이와 같이'라는 말은 '행함이 없는 믿음이 유익이 없듯이, 행함이 없는 믿음이 능히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듯이'라는 뜻입니다. 17절을 다시 번역하면 “이와 같이 또한 그 믿음이 행함을 수반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이라. 선한 행위들로 표현되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는 뜻입니다.

 

2) 실천이 없는 믿음을 마귀들도 안다(약 2:18~20)

18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너의 행위들로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마귀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무익한 사람아(O vain man),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믿음과 선한 행위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믿는 각 사람은 자신의 믿음을 선한 행위로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한 분으로 믿는 것은 바른 믿음이긴 하지만 마귀들이 가진 정도의 믿음에 불과합니다. 마귀들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할진대 그런 믿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선행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헛된 것입니다. '실천이 없는 믿음'은 위선이며 정죄하는 믿음일 뿐입니다.

 

3) 아브라함은 믿음은 실천과 순종으로 나타남(약 2:21~22)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그의 믿음이 그의 행위들과 함께 일하고 그 행위들로 그의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23이에 성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the Friend of God)이라 칭함을 받았나니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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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라는 사실을 구약 성경에서 아브라함과 여리고의 라합, 두 가지 사실로 예증합니다.

첫 번째 예는 아브라함이 그의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한 사건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실천(행함)이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100세에 얻은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서 번제물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하게 순종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음'에 대해 강조하였던 것(롬 3:22, 28, 30)처럼 실천이 있는 믿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창 15:6)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습니다.(사 41:8) 아브라함의 의롭다 하심이 그의 순종의 행위로 인해 확고해졌으며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림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로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는 말씀은 실천[행함]이 없는 믿음 곧 죽은 믿음으로는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Rahab the harlot

두번째로 여리고 기생 라합(Rahab the harlot)이 이스라엘 정탐군들을 대접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고 예를 들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라는 강조합니다. 여기서 기생이라고 번역한 것은 라합이 여리고 달 신전(moon temple)의 여자 사제이면서 주막(오늘날로 말하자면 병원, 식당, 호텔의 주인으로 당시 여리고 성의 유지였습니다. 이 주막에는 남쪽 나라 국제 상인들과 북쪽 나라 상인들이 머물면서 국제 뉴스를 잘 통하는 곳입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듣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앞으로 가나안 땅을 점령할 것이라는 신념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숨겨주고 피하게 한 것에 대해 말합니다(수 2:1~21) 이 사건에서 라합의 믿음은 위험을 무릅쓴 그의 선한 행위에서 나타납니다.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 구절은 21절과 24절에 이어 세 번째로 사용한 표현입니다.

 

4)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약 2;26)

26 왜냐하면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이라 For as the body without the spirit is dead, so faith without works is dead al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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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유는,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천/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라는 것도 17절과 20절에 이어 세 번째로 사용한 표현입니다.

약 2장 21절과 24절과 25절에서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표현한 것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사람이 행위로가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강조한 사도 바울의 교훈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율법을 행함으로 얻는 의(義)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義)를 구별하면서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과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을 구별하면서 사람이 믿음으로만 아니고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물론 야고보의 표현 자체는 바울의 복음 진리와 충돌하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으나, 그의 의도는 분명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강조했을 때 결코 죽은 믿음을 의미한 것이 아니고 산 믿음을 의미합니다. 롬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의 요점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고 선과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죽은 믿음이 아니고 구원으로 인도하는 산 믿음인지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과연 산 믿음이라면 성경 교훈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선행과 구제를 힘쓰며 실천하는 믿음을 가집시다.

 

[오늘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믿음을 도와주시사 반드시 실천하며 행함이 있게 하옵소서. 가슴과 머리로만 믿지 말고 손발의 실천이 있게 하옵소서.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 3:18)대로 살게 하시며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여 율법의 최고의 법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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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금주기도제목:

(1) 2020년에 산 소망 되시는 예수님 안에서 매일 매순간 동행하게 하소서!

(2) 영생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예수님을 닮아 믿음, 소망, 사랑의 향기를 날리게 하소서!

 

3월9일(월) 찬송 94장(통 102장), 146장(통 146장) 삼상 7장 (에벤에셀)

10일(화) 94장(통 102장), 146장(통 146장) 8장 (왕 제도 요구)

11일(수) 92장(통 97장), 144장(통 144장) 9장 (사울 기름부음)

12일(목) 92장(통 97장), 144장(통 144장) 10장 (사울 왕 임직)

13일(금) 93장(통 93장), 149장(통 147장) 11장 (암몬과 전쟁)

14일(토) 93장(통 93장), 149장(통 147장) 12장 (사무엘 고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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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겟세마네 신학교의 2020년 봄 학기가 개강되었습니다

매주 월요일(2월 10일~5월 11일) 오전 10시~오후 5시에 수업이 있습니다.

 

장소: 세민교회 (대전광역시 대덕구 우암로 396) 3층

전화: 032-832-0287, 010-9113-1127, 010-4907-7483

과목: 윤사무엘~성경해석학, 류재이~상징주의, 송인성~복음신학

유석근~종말론, 이강구~회복신학, 이종훈~창세기, 김인자~테필린

 

총장 윤사무엘 박사

학장 송인성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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