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소망(12) 적극 선행을 행하자(약 4장)-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장로교회)

by wgma posted Mar 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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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소망(12) 적극 선행을 행하자(약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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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산 소망(12): “적극 선행을 행하자” (약 4장)
본문: 약 4:1-17
요절: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약 4:17)
주제: 세상과 벗하지 말고 허탄한 생각을 하지 말고 적극 선을 행하자
교독문: 127(사순절 4), 예배의 부름: 롬 6:22~23
찬송: 539장(통 483장), 436장(통 493장)
일자: 2020년 3월 22일 주일 (사순절 넷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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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어수선한 가운데서 봄은 왔습니다. 유채화, 목련꽃, 개나리, 진달래 피고 나뭇가지마다 물이 오르고 있습니다. 어제가 춘분이어서 만월(보름달, 4월 7일)이잔 첫 주일이 4월 12일로 2020년도 부활절입니다. AD 325년 니케아 교회회의에서 정한 부활절이 양력 춘분지나 음력 보름 후 첫 주일이 부활절이기 때문입니다. 고난 주간은 4월 6일부터 11일입니다.

 오늘은 야고보서 4장을 강해합니다. 지난주일 야고보서 3장을 통하여 말과 혀를 절제하여 찬양과 복과 덕을 세우는데 사용하며 천국 방언인 할렐루야, 마란아타, 호산나, 아멘, 주안에서 기뻐합시다, 쉬지 말고 기도합시다, 범사에 감사합시다, 성령님의 불을 꺼지 맙시다, 예언말씀을 무시하지 맙시다, 범사에 헤아려 선을 취합시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립시다, 서로 사랑합시다, 주님을 본받읍시다, 마음을 새롭게 합시다,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삽시다, 서로 존경합시다, 서로 도웁시다,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깁시다, 소망 중에 즐거워합시다, 손님대접을 합시다, 고난을 참읍시다, 주님 안에서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시작합시다, 예배를 회복 합시다, 용서하며 화목하게 삽시다, 화평케 하는 생활을 실천합시다. 등 믿음과 소망의 사랑의 언어를 생활화 합시다.

4장에서는 탐욕, 비방, 판단, 허탄한 생각과 자랑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맨 마지막 절이 오늘 요절말씀인데 먼저 합독합시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아멘 (약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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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러분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는가? 여러분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2 여러분들이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가지려 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여러분들이 다투고 싸우는도다. 3 여러분들이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4 간음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5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님께서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 그런즉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여러분들을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여러분들을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여러분들의 웃음을 애통으로, 여러분들의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님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높이시리라.

1~2절에 사람들 간의 싸움은 대체로 욕심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교회 안에서도 성도들 간에 일어나서는 안 되는 싸움과 다툼이 일어나는데, 그 원인도 대체로 욕심 때문입니다. ‘정욕으로 ἐκ τῶν ἡδονῶν’이라는 말은 ‘쾌락, 욕망으로부터’를 뜻합니다. 우리가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우리 지체 가운데 싸우는 정욕을 좇아 싸우게 되고 다투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정욕과 중생한 마음을 성령님의 원하시는 것과 싸우는 육체의 욕구라고 말합니다(갈 5:16-17). 이 둘이 서로 싸웁니다. 사도 베드로는 벧전 2:11에서 “혼(soul)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합니다. 여기에 ‘혼’은 중생한 혼의 변화된 지배적 성향을 가리킵니다. 중생한 성도라도 이러한 변화된 새 성향과 육신의 죄악된 본성의 욕심이 서로 싸웁니다. 그리고 이러한 죄악된 욕심이 사람들 간의 싸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 육신의 죄악된 욕심들이란 이 세상 중심적인 것들로서 육신의 정욕, 물질욕, 명예심 등입니다. 천국을 바라는 자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이런 세상의 욕심들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영적인 눈이 어두워 이 세상적 이기심과 명예심 등의 욕심을 가진다면 여전히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간에도 싸움과 다툼이 생길 것입니다.

3절에서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성도들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여 얻을 수 있으며, 이렇게 기도의 효력을 아는 자들은 항상 기도하기를 힘쓰며 영육의 부족함이 조금도 없는 삶을 살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65:2에서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 모든 육체가 주님께 나아오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주실 것이요,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마 7:7-8). 이것은 놀라운 약속이며 성도의 특권입니다. 응답받을 때까지 구해야 합니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서 수십 개의 우물을 파서 오아시스를 이룬 영웅에게 기자들이 질문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우물을 팠느냐고 하니 그는 싱긋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하기를 “물이 나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샘을 팠습니다.”고 대답했답니다.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합시다.

그러나 성도들이 악한 동기와 의도로 무엇을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응답지 않으시고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악을 품은 기도는 결코 응답받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이 세상적인 욕심을 품고 그것을 위해 구하는 것은 잘못 구하는 것이며 그는 결코 구한 것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요구는 기도 응답이 되지 않는 것이 복입니다. 내 사랑하는 어린 자식이 날이 시퍼런 칼을 달라고 하면 안 주는 것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려고 사용하려는 돈을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주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구한 것은 그 자신에게 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지혜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그에게 구하는 것들 중 우리에게 유익한 것만 주실 것이며, 해가 되는 것은 결코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4절에서 “간음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육신적으로 간음하는 것은 육신적 욕망을 따라 행하는 육체적인 죄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간음한다는 것은 우상숭배, 세상사랑, 돈사랑, 쾌락 사랑, 자식 사랑 등 하나님보다 무엇을 더 사랑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 뜻에서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골 3:5). 간음하는 자들은 세상과 벗된 것이요, 그것은 곧 하나님과 원수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과의 원수는 하나님께로부터 진노와 심판의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the lust of the flesh)과 안목의 정욕(the lust of the eyes)과 이생의 자랑(the pride of life)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하십니다(요일 2:15-17).

5절을 읽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님께서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성령님께서는 성도들 안에 거하십니다. 롬 8:9 “만일 여러분들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여러분들이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님 안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우리가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을 사랑할 때 우리를 향해 시기하십니다.

가톨릭에서는 삭제한 십계명 제2계명에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3, 4대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하십니다(출 20:4-5). 그분은 자신을 ‘질투하는 하나님’(a jealous God)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하나님처럼 혹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거나 섬기거나 의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시고 심하게 질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사랑, 명예 사랑, 돈 사랑, 쾌락 사랑, 자식 사랑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더 사랑하는지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지 시험하시기 위해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신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6절을 읽습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여기서 ‘더욱 큰 은혜’(more grace)란 세상을 미워하고 자기를 부정하고 세상 욕심을 극복하여 하나님만 사랑하도록 하는 은혜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 은혜를 받기 위해 우리 편에서도 성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선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과 세상 욕망은 벗입니다. 교만은 이 세상적인 명예심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잠 15:3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잠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잠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7~8절 읽습니다. “7 그런즉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여러분들을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여러분들을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마귀를 대적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귀를 물리칠 때 마귀는 우리를 피하여 떠나며,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가까이 하십니다. 아멘! 우리는 마귀와 죄악된 욕심들을 물리치고 성경을 더 많이 더 자주 읽고 기도하기를 힘쓰므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죄인들은 손을 깨끗이 해야 하고 하나님과 세상을 둘 다 사랑하려는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마음을 성결케 해야 합니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냐 하나님이냐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적 욕망들과 명예심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며 사랑하고 내세 천국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9~10절에서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여러분들의 웃음을 애통으로, 여러분들의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님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높이시리라.” 또 우리는 이 세상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과거의 삶을 슬퍼하고 애통해야 하며,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하시고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큰 은혜를 주셔서 이 세상 사랑과 이 세상 욕심들을 극복하게 하실 것입니다. 요셉처럼, 다윗처럼, 바울처럼 우리를 높이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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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12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성도들은 서로 비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 7:1~2).

우리가 서로 비방하지 말아야 할 이유 첫째로, 그것은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형제를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것이 율법이 가르치는 사랑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실수가 있고 흠과 부족이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상대방의 흠과 부족을 찾아 비난하기 시작한다면 끝이 없을 것이며 서로 큰 상처만 입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성숙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장점은 살려주고, 단점은 보충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사랑은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관용하는 것입니다. 잠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벧전 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둘째로, 그것은 우리가 율법의 준행자이지 판단자나 심판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율모든 사람을 최종적으로 판단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로 죄 씻음과 구원을 받은 자들로서 겸손히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지,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입장에 서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의 허물과 약점을 보기 전에 나의 단점과 부족한 점을 먼저 신경 쓰고 고치도록 합시다. 우리는 서로 비방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진리의 교훈은 하나님의 종들이 해야 할 교회적, 공적 판단과 비평의 사역을 금하는 것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구약의 대언자[선지자]들이나 신약의 사도들이 그러했듯이, 오늘날 하나님의 종이며 교회의 파수꾼된 목사들은 교회의 성결과 건덕(健德)을 위해 필요할 때 권면과 판단과 비평을 해야 합니다. 이런 사역은 교회의 권징이라고 합니다. 목회자들은 설교시에 교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고치게 해야 합니다. 오류를 책망하고 바르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을 주신 목적 중 하나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inspiration)으로 된 것으로 교훈(doctrine)과 책망(reproof)과 바르게 함(correction)과 의로 교육(instruction in righteousness)하기에 유익하다”고 합니다(딤후 3:16). 구약시대의 거짓 대언자들은 백성에게 거짓된 평강을 설교하였으나, 백성에게 진정한 평강은 없었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렘 8:11). 왜냐하면 죄를 회개함이 없이는 참된 평강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참 대언자 예레미야는 백성에게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을 선언하였습니다(렘 23장; 겔 34장). 신약시대에도 초대교회 때부터 거짓 목사들에 대한 책망과 경고들이 필요하였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여러분들을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여러분들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갈 1:6-9). 또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여러분들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여러분들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여러분들이 잘 용납하는구나,”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고후 11:4, 13-15).

롬 16:17-18은, “형제들아, 내가 여러분들을 권하노니 여러분들의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여러분들에게서 떠나라.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주의 새 계명을 지키고 상대의 부족과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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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들으라, 여러분들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利)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여러분들이 알지 못하는도다. 왜냐하면 여러분 생명이 무엇이냐? 함이라. 여러분들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여러분들이 도리어 말하기를 ‘주님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 이제도 여러분들이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13절에 ‘여러분들 중에’라는 말은 이 교훈이 일차적으로 교인들에게 주신 것이요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주신 것이 아님을 뜻합니다. 물론 교회 밖의 세상 사람들에게도 이 교훈이 필요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하나님을 알며 섬긴다는 자들인데 바르게 살지 못하므로 그들에게 이런 교훈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교인들 중에는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삶의 태도는 믿음 없는 헛된 계획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계획은 다 헛됩니다.

14절을 읽습니다. “내일 일을 여러분들이 알지 못하는도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이냐? 함이라. 여러분들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인생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 있으니까 살아 있는 것이지, 내일 무슨 일이 우리에게 생길지 아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안개’라는 원어(아트미스 ἀτμὶς)는 ‘수증기, 김, 연기’ 등의 뜻입니다. 수증기가 공중에 올라갈 때 무엇이 있는 것 같지만 잠시 후에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이 사라져 버리듯이, 인간은 살아 있을 때에는 존재하는 것 같지만, 죽으면 땅에 묻을 시체만 남습니다. 시 39:4-6 “여호와여, 저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저로 저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님께서 저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저의 일생이 주님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15-17절을 읽습니다. “15 여러분들이 도리어 말하기를 주님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 이제 여러분들이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성도는 “주님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며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주권적 손 안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의 시작과 마지막 곧 출산과 죽음은 하나님의 주권적 손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잠 3:6 “너는 범사에 그분을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합니다. 하와가 가인을 낳았을 때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창 4:1)고 말한 것은 생명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모든 육체의 영들의 하나님이여”라고 부릅니다(민 16:22). 욥은 “생물들의 혼과 인생들의 숨(호흡)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말했고(욥 12:10), 주님께서는 어리석은 농부의 비유에서 하나님께서 그 농부의 혼을 오늘밤에 도로 찾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눅 12:20). 사도 바울도 하나님을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라고 부릅니다(행 17:25).

성도는 “주의 뜻이면 우리가 이것저것을 하리라”고 말해야 합니다. 성도의 모든 활동들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잠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잠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헛된 자랑은 다 악한 것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주권자 하나님을 무시하며, 또 보장 없는 일을 자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선하게 사는 것입니다. 선인 것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죄입니다(17절). 구원의 목적은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해 열심히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딛 2:14). 이것이 인생의 바른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따라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어려운 소자를 보고 지나치면 죄입니다. 강도를 당한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도 그냥 지나가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당연히 사랑을 해야하는데도 사랑하지 않으면 죄입니다.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롬 14:2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고 세상을 너무 좋아하지 말고 욕심과 탐심으로부터 자유합시다. 이웃을 서로 비방하지 말고 허탄한 생각이나 행동을 삼갑시다. 선인 줄 알면서도 지나치지 말고 선행을 보면 반드시 행합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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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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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기도제목:

(1) 2020년에 산 소망 되시는 예수님 안에서 매일 매순간 동행하게 하소서!
(2) 영생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예수님을 닮아 믿음, 소망, 사랑의 향기를 날리게 하소서!
       3월23일(월) 찬송246장(통 221장),288장(통 204장) 삼상19장 (다윗의 도망)
       24일(화) 246장(통 221장), 288장(통 204장) 20장 (요나단의 우정)
       25일(수) 245장(통 228장), 290장(통 412장) 21장 (아히멜렉의 호의)
       26일(목) 245장(통 228장), 290장(통 412장) 22장 (놉의 제사장 살해)
       27일(금) 240장(통 231장), 291장(통 413장) 23장 (그일라 구원함)
       28일(토) 240장(통 231장), 291장(통 413장) 24장 (사울왕 살려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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