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5월 기도편지-이상진, 이애란 선교사 올림
사랑하는 여러분께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이 떠들썩하고 불안한 가운데, 주 안에서 평안하신지요?
르완다의 이상진, 이애란 선교사입니다.
60평생 살면서 이렇게 국제 상황이 저희 삶과 밀접하게 영향을 주는 것은 처음인 듯싶습니다.
미국과 한국, 그리고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어울러 모든 것이 톱니바퀴 물리듯 잘 돌아가야만 저희도 르완다 현지로 돌아갈 날이 올 것 같습니다.
1. 르완다에서의 마지막 4일
3월 14일(토)
여느 때 처럼 한달에 한번 아가페 한인교회에서 열리는 르완다 주재 한인선교사 정례기도 모임에 참석저 중 인터넷에 첫 르완다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의사 선교사님 부부와 학교를 운영하는 선교사님들(거의 교회와 학교를 운영합니다)의 현지상황을 구체적으로 접하였습니다. 저희 역시 수도인 키갈리에 거주하지만 변두리 빈민가에 있다 보니 마스크 쓰는 사람 하나 없었고, 캠퍼스 내에서 사역에만 열중 하다보니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중국이나 유럽 등 남의 나라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선교사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무래도 시국이 뭔가 위험한 듯해 중국 백화점에 들러 유치원에 필요한 물품들과 방학준비물을 구입하러 가보니 완전히 세상이 변해 있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 중국 마트의 많은 직원들이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람들은 카트에 산더미 같이 휴지와 마스크와 새니타이저 등을 구입하는 중이었습니다. 우리도 부랴부랴 카트에 물건들을 살수 있는 만큼 카드를 긁어가며 샀습니다
아무래도 더 필요할 것 같아 다시 가 보니 매대에 이미 물건이 거의 다 동이 나 있었습니다. 차에 가득 물건을 싣고 돌아오니 캠퍼스에서는 다량의 비상식량을 구입하고 있었습니다.
정부에서는 우리 같은 기관에 손 소독제 등을 구비하고 있는지 갑자기 감독을 나온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어떤 학교들은 손 씻는 이동식 수도꼭지가 달린 통들을 정부로부터 의무적으로 비치하라는 통보를 받았으나 비싼 값에 구입하려 해도 물건이 없어 살 수 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날 밤 선교사들과 전도사들이 모여서 주일 예배에는 50명 이하만 모이라는 정부의 통보에 긴급 회의를 했습니다. 현지인 교회는 평소에 500명 이상이 모이므로 외부 교인들이 들어오지는 못하고 캠퍼스 내의 학생과 직원 80여명을 두팀으로 나누어 예배를 드리기로 의논을 했습니다
3월15일(주일)
밤새 들어온 정부의 지침은 예배 등 사람이 모이는 것 자체를 금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두팀으로 나누어 진행하기로 했던 신학생예배도 철회하고 결국 우리 한국인 선교사 네 명이 집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한편, 이상진 선교사는 그동안 연구하던 살균소독제 HOCL을 아프리카 식으로 만드는데 성공을 했습니다.
약 50ppm의 강력한 소독제를 소금물과 전기분해로 만드는 키트를 완성해서 소독제를 밤새 만들었습니다. 돈이 있어도 살수 없는 실정이 단 한순간에 왔기 때문에 소독제는 너무 그곳에서 절실한 물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어찌나 감사한지요.
주일 오후가 되니 학교문을 닫으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르완다는 작은 나라이지만 정부가 꽤 강력한 힘을 발휘해서인지 모든 일이 신속히 진행됩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우리는 갑자기 학교문을 닫았고 주일 밤 모든 신학생들에게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설명하고 차비가 없는 학생들은 차비를 주고 집에 돌아갈 형편이 안되는 20여명은 함께 남기로 했습니다.
학교와 교회, 유치원의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지에 확진자가 한명에서 세명, 여섯명, 이렇게 늘어나고 있었고 우리 이웃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 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왔다고 했습니다. 불과 2,3일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저희 부부는 학교문을 갑작스레 닫는 모습을 보니 당황했습니다. 왜냐하면 곧 방학을 할 예정이었고 방학을 하자 마자 미국에 있는 딸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비행기표를 구입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유럽은 생겐조약 국가들이 서로 국경을 닫고 미국도 유럽사람들에게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모든 일이 급작스럽게 진행되자 이러다가 딸 결혼식 참석도 못하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었는데, 주변 선교사님들이 기왕 갈거면 빨리 표를 바꾸고 떠나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급히 비행기 편을 찾아보니 다행히 화요일 밤 비행기가 있기에 먼저 표를 취소하고 새 항공권을 구입했습니다.
3월 16일(월)
새벽에 일어나 아무도 없는 유치원 채플(이곳이 매일 새벽기도가 열리는 장소입니다)에 남편과 둘이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집회를 국가에서 금하고 있기 때문에 기숙사에 학생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모일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일어서서 예배당안을 돌며 기도하는데 새벽빛이 밝아지고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 르완다 선교지에서의 많은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습니다. 내려다 보이는 잔디밭에서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뛰어놀고 구르고 공 놀이하고 종이비행기를 날리던 모습이며, 나를 늘 쫒아 다니던 둥둥이와 그레이스, 그리고 이미 남의 집으로 가버렸던 아기 강아지들이 놀던 모습, 선생님들이 부지런히 아이들 가르치던 소리, 아이들의 합창소리, 떠드는 소리, 우는 소리, 빵을 주면 너무 좋아서 맛있게 먹던 모습들……다 어디로 간 것일까? 이것이 꿈은 아닐까? 그래서 주님 앞에서 울었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길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의 무력함을 다시금 느끼며,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까….우리들은 제때 돌아올 수나 있을까? 그런 두려운 생각도 스며들었습니다.
아침에 선생님들과 연락해서 교무실에 모여 앞으로의 일들을 부탁하고 모든 것을 인계하기 위해 정리했습니다.
토요일에 사온 많은 물건들을 선생님들에게 보여주고 정리하고, 모든 서류들, 재정문제, 그리고 관리 문제를 본부 선교사님에게 인계하고 우리가 5월말에 돌아오면, 그리고 그 전에 학교가 열리면 선생님들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도록 4, 5, 6 월 계획도 구체적으로 다 세워 놓았습니다.
한편 집에서는 집을 비울 것이므로 냉장고를 정리해서 우리집을 돌보아주는 집사님과 르완다어를 가르쳐주는 세드릭 학생과 선생님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습니다. 냉장고 청소도 마치고 그러나 냉동고는 한국 식재로들이 있으므로 그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큰 가방에는 돌아올 때 맘껏 물건을 가져올 이민가방을 각 하나씩 넣고 우리 짐 은 옷가지 몇 개와 노트북 컴퓨터 등, 최소한의 물건만 챙겼습니다.
3월 17일(화)
하루 종일 집안 정리, 서류정리, 선생님들에게 알려줄 일들로 복잡했습니다. 당분간 내가 없어도 그동안 내가 하던 일들을 세심하게 알려주고 사용법과 계획들을 전수해 주었습니다. 선생님들 월급 지급에 관한 서류들도 그곳 교수님에게 남은 재정도 인계 했습니다
이날 저녁9시, 비가 억수 같이 오는데 미리 예약해 놓은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떠났습니다. 비가 와도 너무 와서 어두운데 앞이 안보였습니다. 공항에는 이미 온 사람들로 줄이 서있는데, 공항이 작기 때문에 3시간을 서서 기다리다가 무사히 비행을 시작했습니다.
중간에 거쳤던 이스탄불 공항에는 생각보다는 사람이 꽤 있었습니다. 그러나 밤 늦게 도착한 아틀란타 공항은 세계에서 제일 북적이는 공항임에도 우리 비행기 외에는 아무 비행기도 착륙하지 않아서 한산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2.
미국상황
미국에 도착해서 인터넷이 연결되자 마자 접한 소식은 르완다가 국경을 폐쇄했고 미국은 자국민을 해외로 못 나가게 한다는 뉴스였습니다. 거의 슬라이딩해서 빠져나온 느낌이었습니다.
2주간의 자가격리 중에 선포된 모든 미국사람들의 “stay at home” 명령이 있었고, 매시간 뉴스는 전세계의 코로나 뉴스와 더불어 미국이 가장 위험한 나라로 변해가고 있었고 아프리카에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미국에 들어온지 거의 한달 반이 되었지만 여전히 미국도 위험한 상황이고 식품 구입 외에는 모두다 문을 닫고 재택근무를 하므로 아무 곳에도 갈수 없고 오로지 집에서만 지내고 있습니다.
아틀란타 조지아는 지난주부터 시민들의 “stay at home” 명령을 풀고 있지만 아직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어서 아주 위험한 상황입니다. 비싼 비행기표를 들여서 들어왔건만 딸아이 결혼식은 늦가을로 미루게 되었고 교회도 못 가보고 친지들도 못 만나고 집안에 갇혀서 지내니 참 한심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동안 아이들도 만나고 함께 집에서 오손도손 밥도 먹고 선교지 이야기도 나누고, 온라인 예배라도 함께 모여서 드리니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성경통독을 같이 하는 성도들과 마스크를 만들어 병원에 보내주는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열심히 집에서 재봉틀을 돌려 만들고 있습니다. 병원 뿐 아니라 피난민들 사는 곳에도 마스크를 보내주었다고 하니 그 와중에도 서로도와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아는 교회 목사님들이나 성도들을 마트 앞에서 잠깐 만나 이상진 선교사가 매일 제작하는 HOCL소독제도 나누어 드리니 너무들 좋아하고 이 시즌도 사랑을 흘려보내는 시간으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3. 한국행
그래도 혹시나 하고 5월이면 모든 것이 좀 풀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르완다는 9월까지도 학교와 교회를 열지 못한다는 편지를 받고 마음을 내려놓고 르완다행 귀국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결국 한국행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신분상 미국에는 90일 밖에 체류가 안되고 르완다는 아직도 항공편이 없고 유럽도 열려야 하고….
지난번 한국 방문때에는 무료 선교관의 혜택을 받았는데, 지금 많은 선교사들이 오도가도 못하는 형편들 때문에 선교관도 만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계시는 충남 서산에 집 가까운 곳에 오피스텔을 구해서 당분간 자가격리도 하고 지내야 할 것 같습니다. 항공기 편도 많이 축소되고 평소보다 비용도 두배 정도 들고 해서 두 곳을 경유해서 가는 비행기로 30여 시간이 걸리는 표를 비싼 값에 구입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그래도 모든 것을 인도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4. 현재 르완다 소식
현재 르완다는 아직 국경은 폐쇄되어 있고 항공기는 화물만 이송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차량을 운행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심지어는 개인이 이동을 해도 허가를 받아야 할 정도로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었는데 역시 경제 회복을 위해 소수의 비즈니스는 다시 재개한다고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는 200여명인데, 발표에는 사망자는 없고 완치자는 있다고 하는데, 사실 아프리카 실정이 진단키트도 없고 검사자가 많지 않은 실정이고 의료진의 수준도 낮은 것을 생각하면 그 발표 기준이 모호하긴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불결하고 열악한 환경, 그리고 많은 국민이 굶고 있는 영양실조 상황에서 국가가 강력하게 모든 것을 통제하기 때문에 감사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루 벌어 하루 살거나 일하려고 해도 일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당장 먹는 것이 귀해지고 물가가 올랐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길어지면 폭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6월에는 메뚜기떼가 온다고 하니 이것 역시 재앙에 재앙이 겹치는 꼴입니다.
지난 부활절에는 정부의 허락 하에 현지인들에게 옥수수 가루를 나누어 주었는데, 교문 밖에서 상당한 소동이 있었다고 합니다. 먹을 것이 부족한 때에 먹을 것을 나누어 주겠다고 하니 서로 다투어 받아가려고 아우성을 친 것이죠. 평소에도 먹을 수만 있다면 1000명이 모이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니 어떻게 되었는지는 눈에 선합니다.
학교와 교회는 문을 못 열어도 현지인 직원들과 이웃에게 먹을 것과 필수품들을 공급하는 일을 계속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스크 없이는 바깥 출입을 할 수 없는데, 이곳 빈민촌의 사람들에게는 마스크를 구입할 수도, 구입할 돈도 없습니다. 그래서 현지인 전도사님을 중심으로 봉제공장에 의뢰해서 마스크를 제작하여 나누어 주고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현지인으로서는 까꿀레 전도사님 가정만 캠퍼스 안에 살고 있었는데, 저희 가정도 해외로 나왔고 함께 동역하는 선교사님도 케냐에 갔다가 발이 묶여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에 여자 교수님만 남아 있어서 모든 일을 감당하고 있기에 현지인 존 전도사님 가정이 캠퍼스 내 관사로 이사를 들어왔다고 합니다.
다행인 것은 아직 우리 교인들이나 직원, 학생가운데는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캠퍼스 안은 안전하고 아직까지는 먹을 것이 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5. 기도 제목
1. 아프리카에 코로나가 확산되고 있는데 열악한 환경가운데에도 주님이 지켜 주셔서 속히 정점을 찍고 회복될 수 있도록, 르완다 현지 학교와 교회도 속히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선교지에 남아있는 선교사님들과 사역들에 어려운 일이 닥치지 않고 코로나 감염에서도 막아 주시고, 재정적으로도 넉넉히 공급될 수 있도록. 선교지의 성도들, 학생들, 어린이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안전하게 보호되길.
2. 이달 16일에 딸 자영이와 사위 영주가 집에서 언약식을 갖습니다. 정식 결혼식은 11월로 미루었습니다. 어려운 상황가운데에서도 주님에게만 붙잡힌 아름다운 가정이 될 수 있도록
3. 이상진 선교사와 저는 5월 24일에 한국으로 가서 한동안 머물게 됩니다. 가족들 가까운 곳에 안전한 처소가 잘 마련되고 그곳에 머무는 동안 주님이 예비하신 일들(특별히 가족 구원)을 해 나갈 수 있도록, 르완다 선교지로 속히 돌아갈 여건이 될 수 있기를
4. 르완다에서 저희보다 먼저 사역하시다가 폐암으로 인해 미국으로 철수하고 4년째 투병 중이신 조영자 선교사님과 조대원선교사님(아틀란타 실로암 교회 파송)을 위해 : 지금 말기증상으로 조영자 사모님은 심한 pain과 복수 등으로 고통받고 계십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지만 말기 암의 고통을 덜어 주시고 모든 상황가운데 감사하며 주님께서 예비하신 마지막 길을 평안가운데 걸어갈 수 있도록, 간병하는 장로님도 낙심치 않고 주님에게 힘 얻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미국에 와서 2개월 남짓 머물면서도 만나 뵙지도 못한 그리운 교회와 성도님들, 친구들….안타깝지만 또 만날 날을 기약하며,
한국의 가족들과 성도님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설레는 마음입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다시 반가운 얼굴로 찾아 뵙겠습니다.
2020년 5월 5일 아틀란타에서 이상진, 이애란 선교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