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주의 신앙칼럼 -만남의 복을 누리는 지혜-어찌하여 우느냐 2020-08-30

by wgma posted Aug 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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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주의 신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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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남의 복을 누리는 지혜

세상에 사는 동안 누군가를 만나 인생길을 동행하면서 가고 있다. 처음 만난 사람은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이다. 그리고 이웃과 사회에서 학교 친구들과 직장친구들을 만나면서 인생의 삶의 현장을 넓혀가고 있다.

그리고 부모를 떠나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기 위해 배우자를 만나서 한 평생 동거동락하면서 생의 즐거움과 보람을 더 찐하게 만남의 뜻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부모도 배우자도 형제자매도 잘 만나야하지만 더 중요한 만남이 있어야만 참 인생답게 복되게 살아가면서 영원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진정한 친구를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세상적인면에서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에 대해서 표현하기를, 예쁜 여자를 만나면 삼년(三年)이

행복하고, 착한 여자를 만나면 삼십년(三十年)이 행복하고, 지혜知慧)로운 여자를 만나면 삼대(三代)가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다른 만남에 대한 행복은 잘 생긴 남자를 만나면 결혼식 세 시간 동안의 행복이 보장되고, 돈 많은 남자를 만나면 통장 세 개의 행복이 보장되고, 가슴이 따뜻한 남자를 만나면 평생(平生) 의 행복이 보장   된다는 말이 있다.


이제 나는 누구를 만나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가? 나의 생명과 영혼에 대해서 죄와 인생의 모든 문제의 책임을 지시고 십자가를 통해서 해결해주시고 영원의 세계까지 약속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행복은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수 없는 놀라운 복중에 복이요 행복의 큰 비결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짧은 인생 길에서 만남의 복을 누렸다고 자랑만 하지 말고 내 영혼의 문제까지 해결해주신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행복자가 되었으면하는 마음이 간절해 진다.


나에게 매일 만남의 대상인 사람들과 친구중에 누가 내 생명을 보장해주고 책임지고 저 영원의 세계까지 책임져주실분이 있는가.


그분은 나를 만나서 친구로 나를 맞이해 주셨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 15:13-14)


나에게 만남의 복이 되어주신 영원한 친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목숨까지 희생하시면서

 나의 인생길에 동반자가 되어 영생의 복을 주신것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지혜자가 되자.

또한 그 은혜와 복을 기억하면서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리면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의  소원이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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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주목사의 신앙칼럼

  ※※어찌하여 우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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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서 태어난 생명이 마지막에는 가족들과 여러 사람들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이 한 인생의 출생과 죽음의 주인공이 된다.

어머니의 배속에 있을때 빛이 없어서 열달 동안 어두움에 갇혀 있다가 세상 빛을 보는 순간 눈은 떳으나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어두운 죄악에서 방황하면서 슬픔의 눈물을 흘리다가 새로운 은혜의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 순간 눈물로 감격해 하는 자들의 간증을 듣기도 한다.


무덤에 계시던 예수님은 몇 차례 예언하신대로 부활하셨지만 예언하신 주님의 말씀을 마리아는 기억하지 못하고 어두운 빈 무덤을 찾아왔다.   


빈무덤에는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다 쏟으시고 죽으신 것만 생각하고 부활하신다는 말씀은 기억하지 못하고 울고만 있던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라고 했다.

부활하신 예수를 무덤에서 찾는 어리석은 모습을 본 천사가 왜 우느냐라고 한것같이 오늘날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당에 와서 눈물을 흘리며 우는 사람들이 왜 우는가? 


예수를 찾는 울음보다는 자기의 잘못된 삶을 회개 하면서 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수가 보이지 않아서 울던 마리아와 같이 마음에 예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교회당에 모여서 주여라고 부르지만 내 마음에 계신 예수님이 아니고 저 멀리 천상에 계시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울면서 부르짓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 이라고 생각하는가? 


천사가 마리아에게 왜 우느냐?라고 할때 뒤에 서신 예수님을 보면서도 예수신 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친히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라고 해도 깨닫지 못하고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당신이 시체를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알려주면 내가 가져가겠다고 했다. 


분명히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자기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계심을 믿지 못하고 울면서 예수를 부르면서 찾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의 믿음이 바른 것인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새를 주셨으니'(요 1:12)라고 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전 6:19)고 사도 바울은 편지를 썻다.


예수남과 하나님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전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마음 성전에 계신 예수님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면 바른 신앙인의 모습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도 내가 울고 있다면 무슨 이유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가?


세상에서 바쁘게 살다가 마음에 계시던 예수를 잃어 버리고 자기 혼자 열심히 동분서주 하다가 교회당이나 기도원이나 골방에서 가슴을 치며 운다면 성령님이 탄식한다(롬 8:26) 어찌하여 우느냐

울면서 태어난 생명이 마지막에는 가족들과 여러 사람들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이 한 인생의 출생과 죽음의 주인공이 된다.

어머니의 배속에 있을때 빛이 없어서 열달 동안 어두움에 갇혀있다가 세상 빛을 보는 순간 눈은 떳으나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어두운 죄악에서 방황하면서 슬픔의 눈물을 흘리다가 새로운 은혜의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 순간 눈물로 감격해 하는 자들의 간증을 듣기도 한다.

무덤에 계시던 예수님은 몇 차례 예언하신대로 부활하셨지만 예언하신 주님의 말씀을 마리아는 기억하지 못하고 어두운 빈 무덤을 찾아왔다.   


빈무덤에는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다 쏟으시고 죽으신 것만 생각하고 부활하신다는 말씀은 기억하지 못하고 울고만 있던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라고 했다.


부활하신 예수를 무덤에서 찾는 어리석은 모습을 본 천사가 왜 우느냐라고 한것같이 오늘날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당에 와서 눈물을 흘리며 우는 사람들이 왜 우는가? 


예수를 찾는 울음보다는 자기의 잘못된 삶을 회개 하면서 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수가 보이지 않아서 울던 마리아와 같이 마음에 예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교회당에 모여서 주여라고 부르지만 내 마음에 계신 예수님이 아니고 저 멀리 천상에 계시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울면서 부르짓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 이라고 생각하는가? 


천사가 마리아에게 왜 우느냐?라고 할때 뒤에 서신 예수님을 보면서도 예수신 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친히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라고 해도 깨닫지 못하고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당신이 시체를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알려주면 내가 가져가겠다고 했다. 

분명히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자기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계심을 믿지 못하고 울면서 예수를 부르면서 찾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의 믿음이 바른 것인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새를 주셨으니'(요 1:12)라고 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전 6:19)고 사도 바울은 편지를 썻다.


예수남과 하나님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전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마음 성전에 계신 예수님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면 바른 신앙인의 모습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도 내가 울고 있다면 무슨 이유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가?

세상에서 바쁘게 살다가 마음에 계시던 예수를 잃어 버리고 자기 혼자 열심히 동분서주 하다가 교회당이나 기도원이나 골방에서 가슴을 치며 운다면 성령님이 탄식한다(롬 8:26)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마리아와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자기 생각에 노예가 되어 있다면 이제라도 내 마음에 계신 주님을 섭섭하게 하는 잘못된 신앙을 새로 점검하고 보오링해서 주님께 모든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아멘 할렐루야 !!!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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