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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산 소망(36): “자족하는 생활” (딤전 6장)

본문: 디모데전서 6:1-21

요절: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딤전 6:11-12)

주제: 자족함으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자. 영생을 취하고 선행을 이루자.

교독문: 5번(시편 8편), 예배의 부름: 롬 12:1-2

찬송: 198장(통 284장), 200장(통 235장)

일자: 2020년 9월 6일 주일 (성령강림절 후 열네 번째 주일), 성찬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장로교회)


9월 첫째주일입니다. 이달은 “말씀의 달”로 지킵니다.

다음 달 10월은 “개혁의 달”로 오직 말씀으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우리의 신앙을 개혁하자는

 내용을 준비합니다. 또 오늘은 매월 첫 주일에 행하는 성찬식을 거행하며 주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고

은혜를 받겠습니다.


오늘은 지난 주일에 이어 디모데 전서 6장을 강해합니다. 자족하는 신앙을 가르쳐 주며 특히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영생을 취하자고 권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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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2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1절 사람은 자기 위치와 사명을 지켜야 합니다. 종은 종으로서의 자기 위치를 지켜야 합니다. 종의 위치는 ‘자기 주인에게 범사에 마땅히 공경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공경한다 honor’는 말은 주인을 돕고 그에게 순종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주인은 주인으로서 종(하인)들을 공의로 다스리고 그들을 사랑하며 배려해야 합니다. 믿는 성도가 된 종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더욱 주인들에게 잘해야 합니다. 만일 그가 잘못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비난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주인을 존경하고 그를 도우며 그의 지시에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직장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데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존경하며 그의 지시를 즐거움으로 순종하는 것이 옳습니다. 상사는 부하직원을 잘 돌보며 모든 것을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2절에 믿는 성도인 종은 자기 주인이 믿는 성도일 경우 그를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욱 잘 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신우회로 함께 활동하는 사이면 더욱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신의와 예의를 지키며 믿는 자로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상사는 부하 직원을 공의로 다스리며 배려를 가지고 사랑해야 합니다. 시 133: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Behold, how good and how pleasant it is for brethren to dwell together in 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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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너는 그런 자들로부터 떠나라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이는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분명히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기 때문이라.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그러나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이는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가 되기에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3절에서 ‘바른 말’과 ‘다른 교훈’을 대조시킵니다. ‘바른’이라는 원어(휘기아이논 ὑγιαίνον hygiainon)는   ‘건전한 wholesome, sound’이라는 뜻입니다. 바른 말은 건전하고 유익한 말입니다. 정통적인 교리를 말합니다. ‘경건에 관한 교훈’(유세베이안 디다스칼리아 εὐσέβειαν διδασκαλία eusebeian didaskalia)은 ‘경건에 일치하는 교훈’ ‘경건에 따른 교훈 the doctrine which is according to godliness’이라는 뜻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으로 경건에 이르게 하는 말씀인데 우리의 사상은 바르고 경건한 교훈에 일치해야 합니다.


4-5절에서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에 생각을 두지 않는 자는 교만하며 무지하고 싸움을 일으킵니다. 그는 변론하고 언쟁하고 투기하고 분쟁하고 비방하고 다투기 좋아합니다. 그는 생각과 마음이 부패하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입니다. 논쟁과 싸움은 사람의 욕심에서 발생합니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은 다툼과 싸움을 일으킵니다. 야고보 장로도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라고 합니다(약 4:1-2). 5절 끝에 “너는 그런 자들로부터 떠나라 from such withdraw thyself.”고 마치고 있는데 현대역에서는 이를 삭제하고 있습니다. 교제의 문제는 중요합니다. 악은 누룩처럼 번집니다. 악을 용인하며 악한 자들과 자꾸 교제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악에 물들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른 교훈을 저버리고 불경건하고 교만하고 땅의 것을 탐하는 자들과 교제치 않는 것이 좋습니다. 멀리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들과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들과 멀리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악한 자들은 우리의 전도의 대상이지 교제의 대상이 아닙니다.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시 73:27-28)


6-8절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이는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분명히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기 때문이라.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자족(自足 contentment)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의 처지와 형편에 감사하며 만족하는 것을 말합니다. 스스로 만족하는 여유는 경건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이것은 주권적 섭리자이시며 선하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정상적인 마음가짐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다면, 경건은 큰 유익이 됩니다. 바울은 이미 딛전 4:8에서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증거 합니다. 경건을 물질적 이익의 재료로 삼는 것은 악하고 헛된 일이지만, 자족하는 참 경건은 큰 유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성도에게 이 세상에서 의식주의 필요를 공급하시고 영생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감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이유는 그가 출생 시 빈손으로 이 세상에 왔고 별세 시 역시 분명히 빈손으로 이 세상을 떠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덤에 묻힐 때에 세상에서 모았던 재물을 가져갈 수 없습니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것이 세상의 삶이며 백년 후에 영원한 세계가 있기 때문에 더 가지고 덜 가진 것이 큰 문제가 아닙니다.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면 이 세상에서 삶이 있는 것으로 만족하며,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만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면 자족할 수 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therewith to be content)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 4:11-12) 더 가진 자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적고 덜 가진 자나 가난한 자가 믿음에 부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생활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탐심을 품지 말고 기본적인 의식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합니다.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 백성을 먹이시고 입히실 것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족하며 살아야 합니다. 경건과 자족이 그리스도인의 생활 원리입니다.


9절 “그러나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경건하고 자족하는 삶과 대조적으로, 이 세상에는 부자가 되려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부하려는 마음 즉 무엇을 더 가지려는 마음이 탐심인데, 이런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며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부하려는 욕망이 사람들로 하여금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10절 “이는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가 되기에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부유하려 하는 자들이 파멸케 되는 이유는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탐심과 돈 사랑이 모든 악의 근원입니다.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사망을 낳는다”고 말합니다. 오늘날에도 사회의 크고 작은 죄악들이 돈 때문에 일어납니다. 돈은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욕심을 내어 돈이 우상이 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돈 때문에 거짓말하게 되고 미워하게 되고 심지어 살인 혹 자살도 하게 됩니다. 공직자 부정부패도, 청소년 윤락행위도, 어린 소녀의 유괴와 살해사건도 다 돈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돈은 인격과도 관계가 됩니다. 사람의 신용도 돈 관계를 거래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성도가 돈을 사랑하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찌르게 됩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이기 때문에 참된 믿음과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십니다(마 6:24). 예수님 당시에 돈을 섬기며 우상으로 삼는 배금주의(mammonism)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배금주의, 물욕주의, 한탕주의가 세상에 있습니다. 항상 우리 성도들은 있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자족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잠 30:8-9에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면 의식주 문제와 돈 문제도 해결 받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 6:33-34)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결코 부유하려 하거나 돈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유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며 파멸에 이릅니다.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이며 우리로 참된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돈을 함께 사랑하려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Gehazi)가 나병에서 치유함을 받은 나아만 장군에게 물욕을 보이다가 전도의 기회를 놓친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나안 정복의 첫 성인 여리고의 전리품을 아간이 훔쳤다가 온 집안이 아골 골짜기로 멸망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가룟 유다처럼      은 30냥에 마음이 빼앗겨 주님을 배반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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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11-12절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하나님의 사람 thou, a man of God, ὦ ἄνθρωπε Θεοῦ’은 구약시대의 대언자들처럼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별하여 주님 곁에 두시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고 주님의 일에 쓰시는 자입니다(신 33:1; 왕상 17:24; 왕하 4:7, 9, 25). 모든 성도는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만드셨고 그분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십니다(엡 2:10; 벧전 2:9).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사람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 디모데에게 네 가지의 명령어로 권면합니다.


첫째로, “이것들을 피하라 flee these things”고 말한다. ‘이것들’이란 경건함과 자족함 대신에 돈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는 이런 마음가짐을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믿음의 성장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라 follow after righteousness, godliness, faith, love, patience, meekness.”고 권면합니다. ① 성도는 모든 죄를 버리고 범사에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의(righteousness)는 하나님의 뜻대로 바른 길, 바른 삶, 바른 방향을 말합니다. 보혜사 성령님께서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도다.” (시 23:3).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요 16:10) 성도가 추구해야 할 덕목은 ② 경건(godliness, piety)으로 금생과 내생에 약속 있는 거룩함을 이루어야 합니다. ③ 믿음(faith)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를 두려워하며 그를 섬기고 그에게만 순종해야 하며 또 하나님과 성경에 증거된 그의 모든 진리들을 믿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④ 사랑(love ἀγάπη)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은 믿음의 뿌리에서 나온 꽃이요 열매입니다. 또한 참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며 온유한 것입니다(고전 13:4). ⑤ 인내(patience)입니다. 끝까지 참는 자가 구원을 얻습니다(마 24:13). 사랑의 주요 속성이 참는 것입니다(오래 참고, 모든 것을 참는다. 모든 것을 견디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4) ⑥ 온유(meekness, πρᾳότητα)를 좇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성품이 온유입니다(마 11:29). 온유와 순종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내 뜻대로 멋대로 행동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면 야생마가 준마로 변합니다. 양은 온순한 동물이어서 하나님께 번제로 바칩니다. 사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 하였도다” 경건하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평생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아야 합니다.


셋째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Fight the good fight of faith.”고 권면합니다. 이 세상은 영적인 전쟁터와 같고, 성도의 신앙생활은 영적인 전쟁과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성과 세상의 악한 풍조와 사탄의 시험과 더불어 싸워야 합니다. 무엇보다, 불신앙은 가장 큰 원수입니다. 싸움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며 그 길에는 고난과 고독과 눈물과 때로는 순교의 피 흘림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워야 합니다.


넷째로, “영생을 취하라 lay hold on eternal life”고 권면합니다. 영생(τῆ αἰωνη ζωῆ)은 신앙생활의 목표이며 구원의 완성입니다. 롬 6:22-23,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나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우리는 영생을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영생의 소망은 복음 진리의 핵심입니다(요 3:16; 딛 1:1-3). 우리 모두는 믿음을 잘 지켜 약속된 영생을 취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3-14절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who quickeneth all things’께서는 모든 생명체들과 생명 자체의 근원이십니다. 그분은 만물에게 생명을 주셨고 죽은 자들도 다시 살리십니다. 그분 안에는 생명이 있고 그ㅂㄴ 안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또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하게 증거 하셨습니다. 바울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자신을 밝히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엄숙히 명합니다. 디모데뿐 아니라, 우리 모두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without spot, unrebukeable’ 온전하게 위의 네 가지 명령들을 지켜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취해야 합니다.


15-16절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하나님의 시간표에서 마지막 대사건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Second Coming)입니다. 성경에서 그분의 재림은 그분의 오심 혹은 그분의 나타나심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때 역사의 완성이 있고 죽은 자들의 부활과 의인과 악인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구원은 영광스런 구원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것이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입니다. 본 절에서 하나님에 대해 증거 하는데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십니다. ‘능하신 자’라는 원어(뒤나스테스 δυνάστης dynastes)는 ‘주권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에 유일하신 주권자이십니다. 그분은 지혜와 능력이 무한하신 주권자이십니다. 그분은 실로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십니다. 둘째로, 오직 하나님께만 죽지 아니함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다 죽는 존재 혹은 죽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죽지 아니함이 있습니다. 그분은 생명의 근원이시고 생명 자체이십니다. 그분은 누구에 의하여 생명을 얻으신 분이 아니시고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여호와라는 그분의 이름은 그가 스스로 계심을 나타내는 명칭입니다. 우주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분은 살아계시고 영원히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이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십니다. 그것이 그의 거룩이며 그의 영광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거하는 인생들과 질적으로 다르십니다. 그분은 이 피조세계를 초월하여 저 높이 빛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빛은 그분의 완전성을 나타냅니다. 이 세상은 유한적(有限的)이고 불완전하지만, 그분은 무한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빛은 또한 그분의 도덕성을 나타낼 것입니다. 그분은 도덕적으로도 무한히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선하시며 진실하신 하나님, 곧 도덕적으로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초월하시고 완전하신 영광 앞으로 인생들은 아무도 감히 가까이 나아가지 못합니다. 넷째로, 하나님께서는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영이십니다(요 4:24). 이 세상에서 물질들은 대체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공기나 전기나 전파같이 볼 수 없는 것도 있기는 합니다. 영은 우리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은 전기나 전파같이 비인격적인 것이 아닙니다. 영은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인격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인 영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무한하시고 완전한 영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인생들에게 참된 복이요 영원한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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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살아계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20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21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17-18절에서 부자들에게 몇 가지 교훈을 줍니다. 첫째로, 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이 재물이 많으면 마음이 높아지기 쉽습니다. 신 8:12-14 “네가 먹어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가난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유익이 있고 부요는 사람을 교만케 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요를 구하지 말고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합니다. ‘정함이 없는’이라는 원어 (아델로테스 ἀδηλότης adelotes)는 ‘불확실함’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재물은 불확실합니다. 잠 23:5는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합니다. 재물은 일순간 수포로 없어질 수 있으며, 재물 때문에 불행이 속히 찾아오기도 하여 참으로 불확실합니다. 셋째로, 오직 소망을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누리게 하십니다. ‘모든 것’은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포함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시며 우리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시 23:1). 땅의 모든 것은 일시적이며 다 시들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에게만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넷째로,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선행은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이며(엡 2:10; 딛 2:14) 구원받은 모든 성도에게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선한 일은 전도와 구제의 일입니다. 성도들은 이런 일에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잠 21:26은 의인은 아끼지 않고 구제한다고 말합니다. ‘동정하는’이라는 말(코이노니코스 κοινωνικός koinonikos)는 ‘후한, 관대한’이라는 뜻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인들의 모습처럼, 성도는 선한 일에 부요하고 서로 나누며 어려운 사람을 향해 관대해야 합니다.


19절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성도의 선한 행실은 장래의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을 실행하는 자는 그 기초를 반석 위에 세운 자와 같아서 홍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마 7:24-25). 반면에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약 2:17, 26). 믿음이 선행을 동반하면 확실한 미래가 보장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과 영생을 얻지만, 선행을 통해 그 사실이 확실해지는 것입니다(벧후 1:10-11).


20절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한 것은 그의 서신들 속에 기록된 교훈들인데,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 성경책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바른 신앙이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그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옳은 길입니다. 우리는 이 패역한 세대에 보수 신앙을 가진 자들이 되어야 한다. 교회 안에도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이 있는데 그것은 참된 지식이 아닙니다. 참 지식은 하나님과 그를 뜻을 알고 하나님의 아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모든 죄를 멀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지주의나 니골라당 같은 거짓된 지식은 망령되고 헛된 말과 변론을 일으킵니다. 우리는 그러한 말과 변론을 피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신앙과 생활을 유익케 하는 바른 지식, 곧 성경적 교훈을 붙잡아야 합니다. 디모데에게 진리를 사수할 것을 부탁합니다.


21절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교회 안에는 잘못된 지식 곧 이단사설을 좇는 자들이 있고 가라지와 쭉정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탄의 존재와 활동을 생각하면, 그런 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니고 사탄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참된 믿음에서 이탈된 자들입니다. 그리고 “아멘”으로 서신이 마치고 있습니다. 전통사본에 그렇게 되어 있는데 현대역을 따르는 번역에서는 이를 삭제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참된 경건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현실에서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갑시다. 우리는 하나님과 돈을 함께 사랑하려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깁시다. 우리는 오직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아 성도다운 인격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마귀의 시험과 대적이 많은 이 세상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워 반드시 이기는 자가 됩시다. 그리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고 후한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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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금주기도제목:

(1) 영생의 말씀을 주시는 예수님 안에서 매일 매순간 동행하게 하소서!

(2) 영생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예수님을 닮는 믿음, 소망, 사랑의 가정이 되게 하소서!

9월7일(월) 찬송 507장(통 273장), 311장(통 185장) 대하26장 (웃시야 왕)

8일(화) 507장(통 273장), 311장(통 185장) 27장 (요담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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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 신학교 2020년 학위수여식 및 감사예배

일시: 2020년 9월 7일 월 12시(정오), 10시부터 수업 청강 환영합니다.

장소: 대전 세민교회 본당
(대전광역시 대덕구 우암로 396 혹은 비래동 52-1번지)

* 겟세마네 사역을 위한 후원을 기다립니다.

교육선교(세계 25개국) 2. 신학교 사역 3. 설교 사역(문서, 서적,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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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겟세마네 신학교의 가을학기 추가 등록 안내

2020년 가을학기가 지난 월요일(8월 23일) 개강되었습니다. 신, 편입생 추가 모집을 하오니

 9월 11일(금)까지 지원바랍니다.

(신학사, 교역학 석사, 상담학석사, 목회학 박사, 상담학 박사, 신학박사 등)

특전:
1) 본교 졸업자는 학사협정으로 미국 신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2) 교역자 석사(M.Div) 졸업자는 목사 안수, 선교사 파송 받을 수 있다.

3) 1년 3학기 공부를 할 수 있다(계절 학기)

4) 장학금 신청할 수 있다(부부, 작은 교회 목회자, 목회자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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