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소망(37): “복음과 고난” (딤후 1장)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장로교회)2020년 9월 13일 주일

by wgma posted Sep 10,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주석 2020-09-10 200352.jpg



제목: 산 소망(37): “복음과 고난” (딤후 1장)

본문: 디모데후서 1:1-18

요절: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1:8)

주제: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하늘의 상급을 바라며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자.

교독문: 6번(시편 10편), 예배의 부름: 시 119:105-107

찬송: 341장(통 367장), 461장(통 519장)

일자: 2020년 9월 13일 주일 (성령강림절 후 열 다섯 번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장로교회)

 

디모데전서, 후서의 주제는 목회의 교훈입니다. 이 서신에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또 후시대의 모든 목사들에게 앞으로 고통당하는 시대가 올 것이니 고난을 각오하며 진리를 보수하고 전도자의 직무를 다하는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라고 유언으로 교훈합니다. 디모데전서는 AD 65년경에 바울이 빌립보에 머물 때 쓴 서신이고, 그로부터 2년 후인 AD 67년 가을에 로마 옥에 다시 투옥되어 최후로 소아시아에 있는 디모데에서 디모데 후서를 보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주위에는 동료들이 거의 없고(딤후 4:10-11; 골 4:10, 14와 비교) 그는 사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딤후 4:6; 빌 1:25와 비교). 그래서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유언과도 같은 서신입니다. 그는 로마 감옥에 2차 투옥된 후 로마 황제 네로가 죽기 전 즉 주후 68년 6월 이전에 사형 받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디모데후서 1장은 진리를 수호하라고 권면하면서 복음을 위해서는 고난을 감수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석 2020-09-10 200944.jpg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때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1-2절에서 바울은 자기의 뜻이나 주위 사람들의 뜻으로 말미암아서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되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원하시는 자들을 일꾼으로 부르시고 세우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계실 때도 주님의 원하시는 자들을 불러 사도로 삼으셨습니다(막 3:13-1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이라는 말은 복음의 중심 내용을 말하는데 복음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무궁한 생명의 약속입니다(요 3: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분을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무궁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soever believeth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이것은 영적인 의미입니다. 바울은 독신으로 살았고 디모데에게는 육신적 부모가 있었으나(고전 7:7; 행 16:1), 디모데는 영적으로 바울에게 ‘사랑하는 아들’과 같습니다. 사도는 영적 아들에게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기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긍휼로 구원을 받았고 또 날마다 성화의 과정을 걷습니다. 또 이 구원의 은혜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마음의 참 평안과 몸의 건강, 또 물질적 안정과 환경적 평안까지 주십니다.

3-5절에서 사도는 밤낮 기도하는 중에 항상 디모데를 생각하였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청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진실한 눈물을 생각하며 그를 보기를 간절히 원했고(에피포손 ἐπιποθῶν epipothon, greatly desiring to see thee) 그를 봄으로 기쁨이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디모데의 눈물은 그의 거짓 없는 믿음을 증거 합니다. 그는 진실한 믿음의 목회자입니다. 그의 눈물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며 자신의 부족을 뉘우치는 눈물이며 영혼들을 위한 구령(救靈)의 눈물입니다. 디모데의 진실한 믿음은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을 통해 형성되었습니다. 그의 외조모 로이스(Lois)와 그의 어머니 유니게(유니스 Eunice) 속에 그런 진실한 믿음이 있었고 그 동일한 믿음이 아들 디모데에게도 있습니다. 외조모와 모친은 유대인으로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1절에 보면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인이어서 태어나면서 할례를 받지 못했습니다. 경건한 자녀는 경건한 어머니에게서 나옵니다.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은 중요합니다. 불경건하고 음란한 세대에 경건하고 거룩한 어머니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디모데는 헬라문화 속에서 성장하고 자랐지만 그의 가치관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도무지 손색없을 정도로 순결했습니다. 이방인들의 다양한 문화적 영향력이 생활 깊숙이 침투하며 생활습관을 바꾸던 상황에서도 그는 하나님이 분부하신 보혈의 능력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신앙을 전수받아 디모데는 어릴 적부터 성경을 제대로 배웠습니다. 이스라엘의 어머니들은 매우 용감하고 지혜롭게 교육합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 궁정에서 자라나고 있는 자신의 아들을 유모로서 교육했습니다. 들키는 날에는 돌이킬 수 없을 시련이 기다렸겠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자신의 아들 모세를 간절히 교육했습니다. 헬라문화 속에서 헬라인 아버지를 둔 디모데의 입장은 모세와 비슷합니다. 로이스와 유니게는 디모데를 향한 철저한 교육으로 마침내 사도 바울의 가장 가까운 조수요 동역자로서 하나님의 복음사역을 수행해 나가는 청지기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Capture-44.png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라.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을 위해 함께 고난을 받으라. 9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분은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6-8절에 사도들의 안수는 특별한 은사를 동반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안수했을 때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내려오셨습니다(행 8:17). 바울이 디모데에게 안수했을 때도 하나님의 은사가 디모데에게 주어졌습니다. 디모데는 그 은사를 다시 주어져 열정을 가지고 사역해야 했습니다. 그 은사는 복음의 일꾼으로서 필요한 사명감과 열심과 충성심 등을 동반한 은사이었을 것입니다. 디모데가 자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여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두려워하는 심령을 주지 않으셨고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심령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교회의 직분자들은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두려워하지 말고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심령으로 열심히 일해야 할 것입니다. 디모데는 하나님께로부터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심령을 받았기 때문에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와 또 주님을 위하여 옥에 갇힌 바울을 부끄러워 말고 복음을 위하여 그와 함께 고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도우시며 특히 고난 중에서 그러하심을 보입니다. 디모데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모두도 주님의 복음과 주님을 위한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을 위해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은 악하고 죄악으로 가득차서 복음을 전하면 고난을 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8:38). 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대언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마 5:11-12). 성경 역사상 믿음의 선진들은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히 11:36-37). 고난은 반드시 끝이 있고 잘 인내하는 자에게 상급이 있습니다.

9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 구절은 복음이 주는 구원의 근거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부르신 거룩한 부르심은 사람들의 의로운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근거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 전의 선택과 예정에 근거한 것입니다.

10절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분은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이 구원의 은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나타났고, 그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부활로 확증되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복음의 중요한 내용이며,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분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과 그의 대속 사역과 영원한 생명을 확증하였습니다.

11절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이방인들의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은 사도들의 설교를 통하여 열매를 맺었습니다. 바울은 그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 복음을 위해 ‘반포자와 사도와 이방인의 교사 a teacher of the Gentiles’로 세우심을 입은 것을 확신합니다. 개역과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교사 앞에 ‘이방인의’ 단어를 삭제하고 있는데 전통사본대로 번역함이 옳습니다. 특히 그는 이방인들의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습니다. 바울이 쓴 14권의 서신을 통하여 복음을 이방인에게 널리 전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바르게 파악하기 위해 바울 서신, 특히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와 히브리서를 자세히 연구해야 합니다. 시대가 정신적으로, 신앙 사상적으로 혼란할수록 우리는 사도들의 교훈인 바울서신을 자세히 연구해야 합니다.

 주석 2020-09-10 202055.jpg


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13 너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15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16 원하건대 주님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17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18 원하건대 주님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님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12절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이로 말미암아 For the which cause’는 11절에서 말한 대로 ‘복음을 위해 전파자와 사도와 이방인의 교사로 세우심을 입은 일 때문에’라는 말입니다. 바울이 옥에 갇혀 당하는 고난은 복음 전도자로서 받는 고난이었습니다. 그가 전도자가 아니었다면 그런 고난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고난의 길입니다. 사탄의 적극적인 방해와 핍박이 늘 기다립니다. 사탄은 영혼 구원의 일을 가장 미워하며 한 사람이라도 지옥에 데리고 가려합니다. 악한 자들도 자신들의 악함이 드러나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복음이 세상의 악을 정죄하기 때문에, 악한 세상은 복음 전파를 가장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전도자에게 고난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들은 그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복음의 사명을 맡기신 분을 알고 그가 자기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지키실 수 있음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의지하는 분이란 모든 성도들이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또 바울이 의탁한 것이란 자기의 영혼과 생명 그리고 그가 사명으로 받아 힘쓰는 복음 사역과 그가 세운 교회들입니다. ‘그 날까지’란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혹은 하나님의 심판 때까지를 가리킵니다. 바울이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이유는 한마디로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시니 모든 일, 즉 바울이 현재 당하고 있는 부당한 고난까지도 보시고 아시고 공의로 판단하시고 보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이 풍성하시므로 결코 자기 백성과 사랑하는 종들을 버리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또한 전능하시므로 그분의 참된 종들을 도우시며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염려할 것이 없고 오직 그분의 명령을 지키고 그 외의 모든 일은 그분에게 맡기고 그분의 섭리와 처분을 기다리면 됩니다.

13-14절 “너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내게 들은 바 바른 말들의 본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지키라’는 원어(엑세 ἔχε exe)는 ‘가지고 있으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라는 말은 ‘그리스도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써’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사랑함으로써 바른 말씀들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바른 말들을 지켜야 그것들을 바르게 잘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도 바른 말씀들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또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은 복음 전파의 일입니다. 전도의 직무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그에게 주신 전도자의 직무를 디모데는 끝까지 지키고 완수해야 했습니다. 그 직무의 수행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집니다. 성령님 곧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며 이것은 성도의 놀라운 특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와 화목하시며 우리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약속의 성취입니다(요 14:16-17).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거듭나서 하시며 우리 속에 들어와 내주하십니다(엡 1:13; 고전 12:13). 롬 8:9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속에서 거룩한 정신과 거룩한 마음을 주십니다. 그분은 ‘위로자, 격려자, 보혜사’이십니다(요 14:16).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께서 주신 직무를 행하게 하십니다(겔 36:27). 디모데의 복음 전도의 직무도 디모데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잘 수행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에게 맡겨진 아름다운 일, 즉 그분의 전도자의 직무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완수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15절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Phygellus)와 허모게네(Hermogenes)도 있느니라.” ‘모든 사람’에서 ‘모든’이라는 말은 때때로 대략적 혹은 얼마간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아시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반대하였고 그를 버렸고 디모데는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바울을 버린 대표적 인물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습니다. 그들에 대해 설명이 없어 우리는 알 수 없어도 디모데는 잘 알고 있는 알려진 인물들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전도 사역은 이와 같이 평탄치 않았습니다. 그가 곳곳에 복음을 전했을 때, 그의 말을 믿지 않고 그를 반대하는 자들도 많았습니다. 한두 사람이 바울을 버려도 인간적으로 괴로웠을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했을 때 바울의 괴로움은 매우 컸을 것입니다. 요 6:66-68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이런 어려움을 당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님,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사람들이 바울을 버린 것은 그의 입장이 강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부드러운 말을 좋아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죄성이 만드는 성향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믿고 온전히 따르기보다 적당하게 하기를 좋아합니다. 또 그들은 악한 자들과 정면으로 싸우기보다 적절히 타협하고 절충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의와 불의, 진리와 비진리, 빛과 어두움 사이에는 타협과 절충이 있을 수 없고 오직 양자택일만이 있을 뿐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를 대항하고 진노케 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우리를 지지하든지 반대하든지 간에, 주님의 참된 종들은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바른 생각을 하고 바른 말을 하고 바른 행동을 해야 합니다.

16-18절 “원하건대 주님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원하건대 주님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님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바울에게는 고난만 있은 것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위로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네시보로(Onesiphorus)의 집을 통해 위로를 받습니다. 오네시보로와 그의 가족들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보내신 선물이었습니다. 우선, 그는 바울을 자주 유쾌하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난 중에 자주 피곤하고 지쳤을 것이나 그때마다 오네시보로의 방문은 바울을 기쁘게 하였고 그를 격려하였습니다. 또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참으로 믿음이 있는 성도였습니다. 세상 친구들은 사람이 부유하고 평안할 때는 많으나 그가 가난하고 어려울 때는 그를 떠나갑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이기적이고 진정한 친구는 적습니다. 바울에게도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옥에 갇히게 되고 사형을 받을 가능성이 많아졌을 때 소수의 친구들만 그의 곁에 있게 되었으나 오네시보로는 바울에게 끝까지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오네시보로는 에베소에서도 바울을 많이 섬겼습니다. 디모데는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18절의 ‘얼마큼’이라는 원어(호사 ὅσα hosa)는 ‘얼마나 많이’라는 뜻입니다. 오네시보로는 아마 에베소에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동안, 오네시보로는 여러 일들에서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바울을 도왔고 섬겼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주님의 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님의 이름으로 소자(小子) 한 사람을 영접하는 것이 곧 그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말세에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당하는 어떠한 고난도 두려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그분의 바른 말씀을 보수하고 악한 자들과 타협하지 말고 하나님의 바른 말씀만 전하는 교회와 성도가 됩시다. 또 우리는 부겔로와 허모게네같이 참된 교회를 버리는 자가 되지 말고 교회와 예배를 지키는 자가 되고, 코로나 재앙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예배를 중단하지 맙시다. 오네시보로 같이 주님의 종들과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자가 되어 천국의 상급을 다 받으시기 바랍니다.

 KakaoTalk_20200526_205350563.jpg


----------------------------------

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읽고 요절 및 중심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금주기도제목:

(1) 영생의 말씀을 주시는 예수님 안에서 매일 매순간 동행하게 하소서!

(2) 영생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예수님을 닮는 믿음, 소망, 사랑의 가정이 되게 하소서!

 

9월14일(월) 찬송 515장(통 256장), 202장(통 241장) 대하32장(히스기야 죽음)

15일(화) 515장(통 256장), 202장(통 241장) 33장 (므낫세 왕)

16일(수) 518장(통 252장), 205장(통 236장) 34장 (요시야왕 개혁)

17일(목) 518장(통 252장), 205장(통 236장) 35장 (유월절 준수)

18일(금) 520장(통 257장), 212장(통 347장) 36장 (여호아하스 왕)

19일(토) 520장(통 257장), 212장(통 347장) 에스라1장 (고레스 왕)

----------------------------------

*겟세마네 신학교 2020년 전기 학위수여식 및 감사예배

일시: 2020년 9월 14일 월 12시(정오), 10시부터 수업 청강 환영합니다.

장소: 대전 세민교회 본당

(대전광역시 대덕구 우암로 396 혹은 비래동 52-1번지)

수업진행: 1교시(10:00-10:50) 상징주의(류재이)

2교시(11:00-11:50) 이단사이비학(윤사무엘) 특강: 김홍석(이슬람)

학위수여식(12:00-12:30)

점심시간(12:30-13:30)

3교시(13:30-14:00) 복음신학(송인성)

4교시(14:10-14:40) 종말론(유석근)

5교시(14:50-15:20) 구약개론(이종훈)

6교시(15:30-16:00) 성경적 여성관(김인자)

 

* 겟세마네 사역을 위한 후원을 기다립니다.

교육선교(세계 25개국) 2. 신학교 사역 3. 설교 사역(문서, 서적, 동영상)

 

후원방법:

1) 정기적으로 기도해 주십시오. 기도후원

2) 재정 후원(일시적, 정기적)을 부탁합니다. 액수는 자유롭게.

후원계좌. 농협 302-0280-1002-11 (Yun Samuel)

하나 263-890778-58307 (Yun Samuel)

우체국 107 367 0205 8032 (윤삼열)

3) 바이블 아카데미 저서 구입

 

*겟세마네 신학교 특전:

1) 본교 졸업자는 학사협정으로 미국 신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2) 교역자 석사(M.Div) 졸업자는 목사 안수, 선교사 파송 받을 수 있다.

3) 1년 3학기 공부를 할 수 있다(계절 학기)

4) 장학금 신청할 수 있다(부부, 작은 교회 목회자, 목회자 가족)


08fc7655bd032d0f78f921e45a9763e8.png





Articles

4 5 6 7 8 9 10 11 12 13
T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