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는 세 가지 질문(1)
※※첫째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의 진정한 고향 즉 본향은 어디인가? 라는 질문이다. 지구촌에 고향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모두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나그네 삶을 살고 있다. 고향이 있으면서도 가지 못하는 사람을 실향민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가슴에도 고향은 있다.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생물은 본능적으로 이렇게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전도자는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 3:11)고 했다.
귀소 본능(歸所本能)이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렇게 고향을 향한 향수(鄕愁)는 나이가 많아질수록 더 그리워하고 마음에 고향에 대한 생각이 뜨거워진다는 것이다. 짐승들중에 코끼리는 자신이 태어난 곳을 본능적으로 안다고 한다. 넓고 넓은 태평양 바다 물에서 헤엄치면서 돌아다니가도 4년동안 살고 있던 연어도 산란기가 되면 자기가 태어난 고향인 밀물이 흐르는 개울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의 강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찾아서 돌아오는데 참으로 신기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제비도 죽을 때는 제자리로 돌아오고 심지어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을 향해 운다고 한다. 공중에 나는 새나, 들에서 뛰어다니는 짐승들이나 바다에서 살던 물고기도 죽을 때는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찾아가 죽는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짐승들은 죽을 때 자기가 태어난 곳을 향해 머리를 두고 죽는다는 말을 옛 선인들이 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이처럼 고향을 생각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누가 가르처 주지 않아도 그 마음은 갈수록 깊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의 본향은 어디인가? 그곳은 하늘나라 인 것을 알아야 한다. 때가 되면 우리 모두는 하늘나라로 돌아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빌 3:20)고 했다. 사도 요한은 “내 아버지 입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4)
둘째, 나는 이 땅에서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는가?(2)※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살까?라는 질문을 깊이 생각하다가 소설을 한 권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설의 내용에 주인공은 땅을 많이 차지하기를 소망하는 사람이었다. 즉 땅에 대해서 생각하며 살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 신이 그에게 나타나서 말하기를 ”네가 오늘 마음껏 걸어 다녀라 네가 걸어 다니는 곳을 다 너에게 주겠다. 다만 해가 지기 전에 네가 돌아와야 한다. 해지기 전에 돌아오지 않으면 오늘 너의 수고는 무효가 될 것이다.“ 그 사람은 땅을 차지한다는 생각에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히 쉬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종일토록 걸어다니다가 시간이 되어 돌아보니 ”아이구“ 내가 욕심을 부렸구나! 해지기 전에 돌아오라고 했는데, 이렇게 가다가는 안되겠다.” 고 생각하면서 뛰기를 시작했다.
숨을 헐떡거리며 죽을힘을 다해 도착했을 때 너무 숨이 차서 심장이 터져 죽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가 차지한 땅은 그의 육신이 묻힐 고작 반 평 땅 밖에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이 소설을 통해 톨스토이는 결국 사람이 사는 이유가 땅을 얻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세상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세상의 명예를 위해서 인생이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교훈을 남겼던 것이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셨다.
셋째, 나는 죽으면
※※어디로 갈 것인가(死後)?(3)※※
많은 사람들이 죽음 저 건너편의 세계에 대해서 별로 관심없이 살다가 막상 그 시간을 맞이하면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고 담대하게 평안하게 마지막을 맞이하는 사람들로 갈라지게 된다.
과연 “인생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은 영원한 철학의 문제인 것이다. 여기에 대한 대답을 이 땅에서 해줄 수 있는 현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셨다. 잠언 27:6절에 ”본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 세상만을 얻기 위해 분주한 사람‘을 가리켜 말씀하고 있는데 그런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다는 말이라고 생각해 본다. 얼마나 슬프고 처량한 인생임을 깨닫게 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해 본다.
그래서 나그네라는 생각을 잊어버리지 말자. 앞서 살던 믿음의 조상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받으심을 부끄러워 하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 11:13-16)고 기록하고 있다.
이제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부끄럽지 않게 살다가 주님의 부르심에 담대히 응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