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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장로교회 담임]

그리스도의 복음(6)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 (엡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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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스도의 복음(6):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 (엡2장)

본문: 에베소서 2:1-22

요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주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려주신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교독문: 3번(시 4편), 예배의 부름: 롬 1:16

찬송: 550장(통 248장), 407장(통 465장), 208장(통 246장)

일자: 2021년 2월 6일 주일 (주현절 다섯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장로교회 담임]

 

2월 첫째 주일을 맞이합니다.

이번 달을 “경건의 달”로 지킵니다. 다음주일에는 설날(구정) 연휴나 예배를 드립니다. 오늘 저녁 6시 반[한국 시간은 2월 7일 월 내일 아침 8시 반]에 레이먼드 제임스 스타디움(Tampa, FL)에서 미국 스포츠 최대의 경기인 미식축구 챔피언을 결정짓는 55회 슈퍼볼(Super Bowl LV)이 열리는 날입니다(Super Sunday).

캔사사시티 치프스(Kansas City Chiefs, 쿼터백Tom Brady)와 탐파베이 버커시어스(Tampa Bay Buccaneers, 쿼터백Patrick Mahomes)가 격돌합니다.

 

오늘은 에베소서 2장을 강해합니다. 구원과 교회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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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의 크신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1절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성도의 과거의 상태는 한마디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상태입니다. 여기에 ‘허물과 죄’란, 아담의 첫 범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소위 ‘원죄’(原罪)와, 또 이 원죄의 죄악성 때문에 각 사람이 실제로 짓는 ‘자범죄’(自犯罪)를 다 포함하는 말입니다. 죄의 값은 죽음입니다(롬 6:23). 죽음이 죄의 형벌로서 사람들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은 첫 사람 아담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처음 명령에 포함된 경고에서 이미 언급되어 있습니다(창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구원받기 전의 모든 사람들은, 비록 육신적으로는 아직 죽지 않았을지라도, 영적으로는 다 죽은 자입니다. 영적인 죽음이란, 사람의 영과 혼이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분리되어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린 것을 말합니다. 그 상태는 한마디로 무지와 부도덕의 상태입니다.

2절 구원받기 전에 성도들은 허물과 죄 가운데 살고 있었고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습니다. 이 세상은 죄악된 세상이며, 세상의 삶의 방식은 곧 죄악의 삶입니다. 또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사탄입니다. 그는 이 세상을 주관하는 자입니다. 성경은 그를 ‘이 세상 임금’(요 12:31), ‘이 세상 신’(고후 4:4) 등으로 표현합니다. 요한일서 5:20은 온 세상은 악한 자[사탄]안에 처해 있다고 증거 합니다. 사탄은 지금 불순종하는 아들들 가운데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고후 4:3-4에서 바울은,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라고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 믿음과 순종을 주시지만, 사탄은 사람들 속에 불신앙과 불순종을 일으키며 세상에 죄악이 많은 분위기를 만듭니다.

3절 ‘그 가운데서’라는 말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라는 말입니다. 에베소 교인들만 과거에 그러했던 것이 아니고, 바울의 일행도 그러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과거에 그러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과거에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육체’라는 원어(사르크스 sarx)는 ‘죄성을 가진 몸’입니다. 죄악으로 가득찬 욕심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은 돈에 대한 욕심, 이성에 대한 욕심, 세상 권세와 명예에 대한 욕심 등입니다. 이것들은 다 세상적이요, 마귀적입니다. 구원받기 전의 우리는 이 세상의 다른 죄인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입니다. 요 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합니다.

4절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던 우리에게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이 왔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원인과 이유는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습니다. 다른 원인과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 속에는 어떤 원인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입니다. 많은 사람이 다 영적으로 죽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 무능합니다. 성경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말하였고(렘 17:9), 또 “구스인(에티오피아 사람)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고 합니다(렘 13:23). 사도 바울은 롬 3:10-12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고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代贖)의 죽음으로 확증되었습니다.

5절 구원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에게 영적 생명, 곧 새 생명을 주신 사건입니다. 이것을 중생(重生, 다시 남,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요 3:5).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자들을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이루신 대속 사역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새 생명이 되는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부활은 먼저는 죽었던 영혼의 살아남 곧 중생(重生)이고, 그 다음에는 장차 주님의 재림 때에 몸의 영화로운 부활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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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8 이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으며,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임이니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10 우리는 그분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6절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택자들을 대신하여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분과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셨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5-6절).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일으키신 것은 중생(重生)의 새 생명을 주시고 미래의 부활을 확증하신 것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신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누리게 하시고 하늘의 기업을 상속받게 하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승천과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심은 우리의 구원과 그 특권에 대한 상징이요 성취요 확증입니다.

7절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들을 구원하심은 하나님의 지극히 풍성하신 은혜를 나타내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피 흘리신 죽음은 순전히 죄인들을 대신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대리적 속죄물이 아니고서는 우리의 죄가 제거될 수 없습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 9:22)

8절은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에 기인합니다. 구원의 원인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뿐입니다. 딤후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구원의 수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전 인격적 신뢰입니다. 그것은 지식과 찬동과 의지를 다 포함합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요(요 1:12)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오는 것입니다(요 6:35, 37). 롬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참된 믿음은 구원의 수단이요 구원에 필수적이지만, 그것은 인간의 어떤 공로적 행위가 아닙니다. 믿음은 분명히 율법 순종의 행위와 대조되는 어떤 것입니다(롬 4:5). 그래서 믿음은 마치 빈손과 같다고 자주 비유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받기 위해선 빈손이 필요하지만, 빈손은 자랑할 만한 어떤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 회개하는 상한 심령과 진실한 믿음은 구원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회개와 믿음이 공로가 될 만한 무엇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긍휼을 얻는 정상적이고 정당한 수단이며, 불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악이며 멸망에 이르는 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구원을 얻었다’는 원어(세소스메노이sesosmenoi, 완료 수동태 분사)는 믿는 성도가 이미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법적인 구원을 가리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그것은 더럽고 결함 있는 인격이 거룩하고 완전한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미래적 표현은(롬 5:9-10) 성도가 마지막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 곧 영광(glorification)을 의미합니다. 또 ‘구원을 이룬다.’는 현재적 표현은(빌 2:12) 성도가 받은 구원에 합당하게 사는 것, 곧 성화(聖化 sanctification)를 의미합니다.

9절 ‘이것’이라는 원어(투토 touto)는 ‘구원받은 사실’을 말합니다. 구원은 우리 속에서 나오지 않았고 나올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구원으로 인하여 교만하거나 자랑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도의 미래의 영광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핏 값으로 사신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얻게 되는 것입니다(롬 3:24; 8:30).

10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선한 일들을 위하여’입니다. 딛 2:14에서도 말하기를,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합니다. 선한 일이란 경건하고 선한 삶이며, 영혼 구원의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은 이단 구원파 처럼 한번 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구원은 오늘도 이뤄가는 것이며 구원의 열매를 미래에 반드시 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종말처럼 살면서 최선을 다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바룩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 45세 별세, 네덜란드계 유대인 사상가)는 말하기를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Even if the world ends tomorrow I will plant an apple tree." 즉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이에 굴복하거나 포기하지 말자. 위기(crisis)를 하나의 주어진 기회(opportunity)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무시하며, 꿈과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교회개혁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63세)가 처음 사용한 말입니다. 루터가 어릴 때 쓴 일기장에 이 내용의 이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독일의 아이제나흐(Eisenach)라는 시골마을에 이 글귀가 새겨진 루터의 기념비가 한 그루의 사과나무 그늘 아래 세워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루터의 이 말을 좋아했답니다. 그는 모든 사물은 원인과 결과라는 필연적인 관계로 되어 있다는 주장을 합니다.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결코 이에 굴복하지 않고 나의 삶을 꿋꿋이 살아가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표시한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절대적인 전력의 열세 속에 있던 병사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위하여 生卽死 死卽生(생즉사 사즉생) 즉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패배할 수 있으니 아예 죽음이라는 생각을 부정하거나 무시하고 최선을 다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21세기 최대의 위기사태를 맞이하고 있으나 우리는 이에 굴복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이러한 위험은 언제든지 닥쳐올 수 있는 하나의 자연현상이라 생각해야 하며, 따라서 이를 무시하고, 언제가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코로나 이후(post corona)시대는 코로나와 더불어 사는(with corona) 지혜가 필요합니다. 올해 우리교회 표어인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 1:16)대로 복음은 오늘 구원을 주시며, 내일도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우리의 믿음의 경주는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절대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하더라도 오늘 정원에 사과나무를 심는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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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外人)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4 이는 그분께서 우리의 화평이심이니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15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그분의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그분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님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1-12절 “그러므로 생각하라”는 말씀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살았고 구원을 받았으므로, 과거의 신분과 상태가 어떠하였으며 거기로부터 어떻게 현재의 신분과 상태로 구원을 받았는지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과거에 구원받기 전에 어떤 신분과 상태에 있었는지 일곱 가지로 표현합니다.

첫째로, 그들은 ‘육체로 이방인 Gentiles in the flesh’이었습니다. ‘육체로 이방인’이라는 말은 다음에 열거된 모든 점들을 다 포함합니다. ‘이방인’이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의 지식과 소망과 생명이 없는 모든 영적 어두움과 절망과 죽음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다 이방인이었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전에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Circumcision in the flesh made by hands;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었습니다. 할례당은 ‘할례받은 자들’이라는 뜻이고, 무할례당은 ‘할례받지 못한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의 표이며, 무할례는 하나님의 언약과 상관없음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과거에 다 무할례자이었습니다.

셋째로, 그들은 그때에 ‘그리스도 밖에 without Christ’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시대에 모든 사람에게 유일한 구주이십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었습니다. ‘밖에’라는 원어(코리스 coris)는 ‘상관없이’라는 뜻입니다. 이방인들은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상태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세주를 알지 못하였고 그분의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넷째로, 그들은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들 aliens from the commonwealth of Israel’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이요 그분의 언약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를 사랑하셨고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그 나라 밖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과 규례 밖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과 영생의 복과 상관이 없는 자들, 곧 하나님의 복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그러하였다.

다섯째로, 그들은 과거에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 외인(外人) strangers from the covenants of promise’이었습니다. ‘약속의 언약들’이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등에게 약속하셨던 복을 말합니다. 그 핵심적 내용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창 17:7-8; 렘 30:22; 31:33; 겔 11:20; 14:11; 36:28). 할례는 그 하나님의 약속의 증표입니다. 할례 없는 이방인들에게는 그런 복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며 영생과 평강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이와 같이 하나님의 언약들에 대해 외인이었다.

여섯째로, 그들은 구원받기 전에 ‘세상에서 소망이 없었던 자들 having no hope’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늙음과 쇠잔함, 질병들과 죽음 등 인생의 허무함을 극복할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소망이 있다. 벧전 1:3-4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는 산 소망’을 가지고 있다고 증거 합니다.

일곱째로, 그들은 전에 ‘하나님도 없는 자 without God in the world’이었습니다. 그들은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헛된 우상들을 신인 줄 알고 섬겼습니다. 그들은 그 헛된 우상들을 의지하고 바랐던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참 지식의 시작이지만, 이전의 그들은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영적 무지와 흑암 속에 살던 자들이었습니다.

13절 ‘이제’는 구원받은 이후를 가리킵니다. ‘전에 멀리 있었다.’는 말은 구원받기 전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생명과 평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후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의 중보 사역을 통하여,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흘리신 피로 이루신 대속(代贖)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과 가까워졌고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얻었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관계가 되었고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과 평강을 받아 누리는 자가 되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14절 예수님은 평화입니다. 이방인이었던 우리들이 하나님과 이스라엘과 가까워진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화평이셔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는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무셨습니다. 이렇게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된 것이 신약교회입니다. 이 교회가 참 이스라엘입니다.

15-16절 이방인은 우상 숭배적이고 부도덕하므로, 과거에 유대인은 이방인에 대해 정죄의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적대 관계는 율법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구약의 의식법들, 예를 들어, 성막이나 제사나 절기 그리고 깨끗함(淨), 더러움(不淨)의 음식 등에 대한 법들은 다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별시키는 법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의식법들은 다 성취되었고 그 법들은 복음 아래서 폐지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 이 둘로 자신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은 적대 관계가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케 된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은 원수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은 물론이고, 유대인들도 이방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화목케 하신 것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과 사람들을 화목케 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십자가에 희생하심으로써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 시키셨습니다(롬 5:10).

17-18절 ‘먼데 있는 너희’는 이방인들을 가리키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은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막론하고 모두들에게 평안의 복음, 화목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은 이제 다 함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 성령님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들은 한 성령님을 받고 한 성령님 안에서 그분의 위로와 격려와 권면을 받습니다. 이제 우리는 대제사장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직접 하나님 아버지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히 4:1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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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대언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21 그분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님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19절은 신약교회의 구성원을 보입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은 유대인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 곧 동료 시민이며 하나님의 권속 곧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믿는 자들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한 가족입니다. 신약교회는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 민족들을 다 포함하는 세계적인 교회입니다. 그것은 모든 민족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시고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시고 성령님께서 인 치신 자들로 구성됩니다.

20절 신약교회의 기초는 사도들과 대언자들입니다. 사도들과 대언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해설한 자들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사도들과 대언자들이 증거한 분이시며 이들은 예수님의 증인들입니다. 주님을 그리스도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드님이라는 신앙고백(마 16:16) 위에 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마 16:18). 그분께서 닦아 둔 교회의 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11절).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유일한 기초이시며 친히 모퉁이 돌(the head stone of the corner, 시 118:22)이 되십니다. 이스라엘 건축 구조에 벽과 기둥이 모퉁이 돌위에 있기 때문에 이 돌을 빼면 집이 무너집니다. 교회의 모퉁이 돌은 예수님이시니 주님을 주인에서 배제하면 교회가 무너져 버립니다. 이번 코로나 재앙 가운데 우리는 이를 철저하게 체험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성도들의 머리이시며 또한 성도들의 모퉁이 돌이시라는 것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21-22절 신약교회의 목표를 말하는데, 그 목표는 하나님의 거하실 성전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건물마다’라는 말은 단수명사로서 여러 건물들을 가리키지 않고, ‘하나의 건물 전체’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입니다(엡 4:4). 신약시대에 구원받은 성도들이 곧 교회이며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신약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 성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성전이 되어 간다.’는 표현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첫째는 전도요, 둘째는 개인의 성화입니다.

 

찬송 600장(통 242장)은 “에베소서 주제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교회의 참된 터는 우리 주 예수라 그 귀한 말씀 위에 이 교회 세웠네.

주 예수 강림하사 피 흘려 샀으니 땅위의 모든 교회 주님의 신부라

2) 온 세계 모든 교회 한 몸을 이루어 한 주님 섬기면서 한 믿음 가지네.

한 이름 찬송하고 한 성경 읽으며 다 같은 소망 품고 늘 은혜 받도다.

3) 땅위의 모든 교회 주안에 있어서 하늘의 성도들과 한 몸을 이루네.

오주여 복을 주사 저 성도들같이 우리도 주와 함께 늘 살게 하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참된 터요 모퉁이 돌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 가정에도 내 삶에도 모퉁이 돌이 되기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 가운데 든든히 서가는 주님의 머리와 몸임을 늘 기억하며 교회를 사랑합시다. 다윗처럼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가 우리의 기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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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묵상, 찬송, 합심기도, 주기도문]

(1)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매일 매순간 동행하게 하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예수님을 닮는 믿음, 소망, 사랑의 가정이 되게 하소서!

2월8일(월) 찬송 246장(통 221장), 385장(통 435장) 시31편 (저를 인도하소서)

9일(화) 246장(통 221장), 385장(통 435장) 32편 (복 있는 사람)

10일(수) 249장(통 249장), 386장(통 439장) 33편 (정직한 자들아)

11일(목) 249장(통 249장), 386장(통 439장) 34편 (여호와를 송축)

12일(금) 250장(통 182장), 388장(통 441장) 35편 (주의 의를 말함)

13일(토) 250장(통 182장), 388장(통 441장)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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