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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스도의 복음(30)

 “오직 십자가와 부활 신앙으로” (고전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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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전 1:1~31

요절: “십자가를 선포함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니라.” (고전 1:18)

주제: 십자가의 복음으로 강하게 무장하여 날마다 새 삶을 살아가자

교독문: 7번(시 13편), 예배의 부름: 히 4:14-16

찬송: 368장(통 486장), 461장(통 519장), 457장(통 510장)

일자: 2021년 7월 25일 주일 (성신강림절 후 아홉 번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교회)

 

오늘부터 고린도전서를 강해합니다. 고린도(Corinth)는 고대 그리스의 남부 지역인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서 아테네에서 약 60km 서쪽에 위치하는데, 동쪽으로 에게 바다와 서쪽으로 이오니아 바다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 도시는 매우 부요하고 화려했으며 매우 음란했습니다.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시 고린도에서 18개월 동안 머물면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전도했습니다. 유대인들의 핍박이 있었을 때 그는 회당 옆에 있었던 디도 유스도의 집에서 복음을 전했고 교회를 세웠습니다(house church). 바울은 본 서신을 썼을 때 에베소에 있었고, AD 54년 혹 55년 봄에 쓴 서신으로, 그에게 광대하고 효력있는 전도의 문이 열리고 있었습니다(고전 16:8-9).


고린도전서는 ‘교회의 문제들’에 대한 바울의 변증적 답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서신에서 다루어진 문제들은 분쟁과 파당, 음행한 교인의 포용, 권징, 성도의 법정 소송, 우상제물과 우상숭배, 여자의 머리 수건 문제, 성찬, 성령의 은사, 부활, 등입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대답으로 주어진 본 서신의 내용은 그 당시의 고린도교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후시대의 모든 교회들에게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1장에서 십자가의 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테네 아레오바고에서 전도할 때(행 17:16-34)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를 전하는 것을 누락한 것에 대해 깊이 뉘우치며 고린도에서는 십자가의 도를 확실히 전하겠다고 다짐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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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우리 형제 소스데네는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거룩히 구별되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님 되신 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1-3절. 본서의 발신자는 바울과 소스데네(Sosthenes)라고 적고 있습니다. 수신자는 고린도 교회 성도 뿐만 아니라 각처에 흩어진 모든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소스데네 Σωσθένης, "힘 안에서 안전함")는 고린도 회당의 유대교 지도자로, 행 18:12-17에 의하면 회중들에게 붙잡혀 로마 총독 갈리오의 묵인하에 폭행당했는데, 그는 유대인들의 바울로 고소를 거부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이라고 언급합니다. 그가 사도가 된 것은 자신의 뜻을 따라 된 것도 타인의 권면을 따라 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된 것임을 확신합니다. 그의 직분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이었기 때문에 권위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를 사도로 세우셨기 때문에 그는 낙심치 않고 고난 가운데서도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교회의 직분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워져야 합니다. 그것은 성경 교훈대로 세우는 것입니다. 성경은 직분자의 자격을 신앙 인격의 성숙에 둡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3:2에서 감독의 자격을 말하면서 첫째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는 자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신앙 인격의 성숙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6:3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봉사자 일곱 명을 세우려고 할 때에 사도들은 교인들에게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고 합니다. 교회의 직분자는 회중 가운데서 본이 될 만한 자들 중에서 선택되어야 합니다. 학력이나 집안, 재력, 외모나 사회적 신분, 구변(口辯) 등은 교회 직분자의 참된 자격 요건이 되지 못합니다. 교회 직분자의 참된 자격 요건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실한 마음, 바른 성경 지식, 진실하고 덕스러운 말, 불평과 원망 대신 감사, 교만 대신 겸손함, 인내, 충성 등 다른 이들에게 모범이 되고 칭찬들을 만한 인품을 구비한 자입니다. 또한 바울을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소개합니다. 사도(아포스토로스 ἀπόστολος)는 ‘보냄을 받은 자’(is sent)라는 뜻으로, 그를 택하여 보내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예루살렘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던 핍박자를 부르셔서 사도로 만드셨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냄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속죄사역을 증거하는 일, 그분의 십자가의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위해 보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직분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신앙 인격의 온전함을 사모하며 조금씩 이루어갑시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모범된 성도를 직분자로 세움으로써 본인에게도 교회에게도 유익이 있게 합시다.


2절에서 바울은 그가 문안하는 자들을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라고 말합니다. 교회(에클레시아 ἐκκλησία)는 예배당 건물을 가리키지 않고 성도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곧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과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습니다(벧전 2:9). 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대상입니다. 로마서 1:7,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진’ 자들입니다. 인간의 근본 문제는 죄 문제입니다. 죄 때문에 인간은 불행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심히 부패한 죄인들이며 어찌 할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따라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히 4:15)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와 형벌을 담당하셨습니다(요 1:29).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씻음 받게 되었습니다. 죄씻음과 거룩성의 회복이 구원입니다. 죄가 불행의 원인이요 하나님의 진노의 이유이었고 죄씻음은 영원한 행복과 평강의 원인입니다. ‘성도’ 곧 거룩한 자라는 이름은 성도에게 가장 존귀한 명칭입니다. ‘거룩하여지고 are sanctified’라는 원어(헤기아스메노이스 ἡγιασμένοις)는 완료분사로 ‘거룩하여졌고’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법적으로 이미 완전하게 거룩하여졌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숨이 끊어지기 전에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테테레스타이 τετέλεσται)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9:30).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속죄사역과 완전한 의와 거룩을 다 이루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2,000년 전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우리의 모든 죄책과 형벌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義)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다니엘 9:24, “죄악이 영속(永贖)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히브리서 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are sanctified (헤기아스메노이 ἡγιασμένοι[완료시제].” 히브리서 10: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hath perfected(테텔레이오켄, τετελείωκεν)[완료시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 구원이며, 여기에 참된 자유와 평안과 능력이 있습니다.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님 곧 그들과 우리의 주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바울은 문안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의 ‘주님’이십니다. 바울은 본 서신에서 예수님을 68회나 ‘주님 the Lord’이라고 부릅니다. ‘주’(호 퀴리오스 ὁ Κύριος)라는 말은 주인, 소유자, 주관자, 왕, 하나님 등의 여러 의미를 가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님 곧 우리의 소유자, 주관자, 왕이십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이며 매우 중요한 호칭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 대한 전적인 복종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 이 고백은 사람이 죄와 파멸로부터 구원받은 표가 됩니다.

3절에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그것 없이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죄사함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만 옵니다. 거기에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자녀 되는 특권이 있습니다. 평강(shalom, eirene)은 은혜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우리는 평강의 길을 알지 못했었습니다(롬 3:16-17).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습니다(사 48:22; 57:21). 그러나 예수님께서 참 평안을 주십니다(마 11:28; 요 14:27). 평안이라는 말속에는 마음의 평안뿐 아니라, 몸의 건강, 물질적 안정, 사회적 안정 등 전인적인 행복과 완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불안정하지만, 성도에게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평강은 온전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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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내가 너희를 대신하여 항상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5 너희가 모든 일 곧 모든 말과 모든 지식에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되었으니 6 이것은 곧 그리스도의 증언이 너희 안에서 굳게 세워진 바와 같도다. 7 이로써 너희가 어떤 선물에서도 뒤쳐지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나니 8 그분께서 또한 너희를 끝까지 견고하게 하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너희가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시리라. 9 너희를 부르사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신실하시도다.


4절에서 항상 감사하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의 바른 모습입니다(살전 5:18).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때에는 감사가 없었으나 지금은 항상 감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도가 항상 감사할 수 있는 까닭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5-6절.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과 지식의 풍족함을 주셨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케 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기독교 진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실들, 곧 그분께서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출생하신 것, 그분의 많은 기적들, 부활, 승천 등에 근거합니다. 그것은 증인들의 증언들에 의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 사실들이 오늘 우리와 긴 시대적 간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믿어지는 이유입니다. 성경은 진실한 증인들의 증언들의 책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 위에 근거합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실들을 확신하였습니다. 믿음은 확신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7절. 고린도 교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렸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모든 성도에게 항상 있어야 할 요소들입니다. 믿음은 과거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믿는 것이며, 사랑은 현재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실천하는 것이며, 소망은 미래의 영광의 세계를 사모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성도의 소망의 첫 번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그 후에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을 것이며, 마지막으로 영원한 천국과 지옥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도의 삶의 원동력이요 위로입니다.

8절.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분의 재림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실 것입니다. 빌 1:6에서도,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말했고,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을 우리의 믿음의 주[시작자]요 또 온전케 하시는 분[완성자]라고 하였습니다(히 12:2).

9절.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분께서 한번 우리를 불러 예수 믿어 구원받게 하셨다면, 끝까지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주를 대항하며 죄 가운데 살았을 때 그분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하셨다면, 그분은 우리가 지금 부족과 연약이 많을지라도 끝까지 우리를 붙드시고 지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은혜 안에서 신실해야 합니다. 우리도 변덕스런 심성을 버리고 꾸준히 그 분만을 따르며 그분의 품성만을 본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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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형제들아, 이제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다 같은 것을 말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생각과 같은 판단 안에서 완전히 함께 결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안에 속한 자들을 통해 너희에 관한 일 곧 너희 가운데 다툼이 있음을 내가 밝히 알게 되었노라. 12 이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너희가 각각 이르기를,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께 속하였다, 하는도다. 13 그리스도께서 나뉘셨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 혹은 너희가 바울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느냐? 14 내가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의 아무에게도 침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15 이것은 아무도 내가 내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의 집안사람들에게 침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내가 침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지 아니하시고 복음을 선포하라고 보내셨거니와 이 일을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효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절. ‘형제들’이라는 말은 주님의 제자들에 대한 겸손한 호칭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내 형제들’이라고 부르십니다(마 28:10; 요 20:17). 겸손은 성도의 큰 덕입니다. 직분이 중할수록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는 주님 안에서 다 형제입니다. 직분자가 된 자도 형제들 위에 자신을 높이지 말고 항상 겸손히 처신해야 합니다. 겸손한 자에게 직분이 주어지며 그가 그 직분을 감당하려면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는 말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뜻과 명령과 권위로’라는 뜻입니다. 골 3:17은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고 합니다. 사도는 명령하지 않고 권면합니다. 그에게는 명령할 권위가 있었으나, 그는 조용히 권면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본받을 만한 겸손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피차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면합시다. 사도바울은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권면합니다. 말은 생각과 마음의 표현입니다. 생각과 마음이 다르면 말도 달라집니다. 그러나 생각과 마음이 합하면 말도 같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교회가 분열이 없이 같은 생각과 같은 판단으로 온전히 합하는 것입니다.


11-12절. 고린도 교회 안에 분파가 있음을 듣고 있습니다.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아직 교회가 분열되지는 않았을지라도 교인들 안에는 이미 단합된 마음이 없었고 교인들끼리 분파를 조성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답지 않습니다.


13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그리스도는 한 분이시며 나뉘실 수 없는데, 그분의 몸된 교회에 어떻게 분파가 합당하겠는가? 그 교회를 개척한 바울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바울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이름으로가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겸손히 서로 사랑하고 복종하며 일치단합을 보여야 합니다. 분쟁과 분열은 수치스런 죄악입니다.

14-17절.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그리스보와 가이오에게, 그리고 스데바나 가족에게 외에는 세례[침례]를 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세례[침례]는 주님께서 친히 명하신 의식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주라”고 명하셨습니다(마 28:19). 그러므로 믿는 자는 세례를 받아야 하며 세례를 받지 않는 것은 주님의 명령을 어기는 죄가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그곳에 보내신 것은 세례[침례]를 주게 하시기 위함이 아니고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세례[침례]는 중요하지만 구원에 본질적이지는 않습니다. 즉 세례[침례]받으면 반드시 구원받는다든지 세례[침례]받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에 본질적인 것은 복음 신앙입니다. 사람은 복음에 대한 지식과 신앙을 통해 구원을 얻습니다. 복음을 깨닫고 믿는 자는 구원을 얻고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 않는 자는 구원을 얻지 못하고 멸망을 당합니다(막 16:16; 요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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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십자가를 선포함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니라. 19 기록된바, 내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무너뜨리고 분별 있는 자들의 명철을 쓸모없게 만들리라, 하였으니 20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서기관이 어디 있느냐?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복음 선포의 어리석은 것으로 믿는 자들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추구하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노니 그분은 유대인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요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24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들에게나 그리스인들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이시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들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들보다 강하니라.


18절. ‘도(道)’라는 원어(로고스 ῾Ο λόγος)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십자가와 부활의 도(道)’ 즉 ‘십자가와 부활의 말씀’입니다. 기독교 복음의 중심적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시고 다시 사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은 두 가지 상이한 반응을 가져옵니다. 하나는 멸망하는 자들로 그들에게는 복음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다른 한 부류는 구원얻는 자들입니다. 그들에게는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복음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절망하며 구주 예수님의 대속(代贖)의 소식을 듣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 복음을 믿고 구원얻는 자들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멸망합니다.

19-21절.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傳道)(케뤼그마 κηρύγματος)[혹은 설교]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전도 혹은 설교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이란 전도의 내용 뿐만 아니라, 또한 전도라는 방식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전도와 설교의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신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미련하게 보이며 또 말로 전하는 그 방법도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22-23절. 기독교는 기적과 표적을 구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religion)란 인간이 만든 제도(human institution)를 말합니다. 로마 황제가 아침 조회를 할 때 지키는 법을 religio(자, 尺 rule)라고 합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복음이며 계시로 신본주의입니다. 유대인들은 기적과 표적을 구하는 종교입니다. 오늘날 기도원들을 비롯하여 많은 교회들이 신비주의적입니다. 기적주의를 표방하는 교단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풍조입니다. 기독교는 기적주의, 은사주의, 신비주의의 요소는 있으나 이것만 추구하면 안됩니다. 또한 기독교는 또 지혜를 구하는 종교, 즉 철학적 종교도 아닙니다. 옛날 헬라인들은 지혜를 사랑하고 추구하였습니다. ‘철학’(philosophy)이라는 말은 ‘지혜를 사랑함’이라는 뜻입니다. 철학은 인간의 이성적 사고와 경험을 중시합니다. 철학은 그 성격상 인간중심적이고 인본주의적입니다. 교회에서 인문학을 강의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복음을 선포하야 하고 십자가와 부활만 강조해야 합니다. 철학적 신학이 교회에 침투하면 세속화 됩니다.

24-25절.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선택하시고 때가 되어 부르신 자들을 말합니다. 이것을 ‘효력 있는 부르심’(effectual calling)이라고 말합니다. 단순히 ‘믿으라’는 초청이 아니고 ‘믿게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중생(重生) 즉 거듭남입니다. 우리는 말세지말인 오늘날 인본주의적인 자유주의 신학이나 은사주의, 신비주의를 경계하고 성경적 기독교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적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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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신 것을 너희가 보거니와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고 강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고귀한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자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강한 것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있는 것들을 쓸모없게 하려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시고 참으로 없는 것들을 택하셨나니 29 이것은 어떤 육체도 자신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사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성별과 구속이 되셨으니 31 이것은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님을 자랑할지니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26절. 고린도교회에는 육체를 따라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 몸의 건강이나 정치적 권세나 물질적 힘이 있는 자, 가문이나 사회적 신분이 있는 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더러 조금은 그런 자가 있었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은 고린도교회만의 현상이 아니고 역사상 모든 교회들의 일반적 현상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들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27-28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자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강한 것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며 하나님께서 있는 것들을 쓸모없게 하려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시고 참으로 없는 것들을 택하셨나니”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 ‘세상의 약한 것들,’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 요즘으로 말하면 장애우들, 환우들, 가난한 자들, 노약자들을 돌보시고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대다수의 교인들은 그런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머리가 좋고 말 잘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좋은 학교 출신도 아니며 집안 훌륭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자들을 택하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자들을 택하여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천한 자들과 멸시받는 자들과 없는 자들을 택하여 있는 자들을 폐하려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지식과 삶을 통해서 그런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지식의 근본입니다. 그들은 역경 속에서도 낙심치 않고 소망과 용기를 가집니다. 그들에게는 평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보호하시고 도우시고 공급하십니다. 그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롬 8:28).

29-30절.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시고 그들을 통해 세상적으로 지혜롭고 건강하고 존귀하고 권세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까닭은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지 맙시다. 오직 예수님만 자랑합시다. 자신의 총명함이나 자신의 구변이나 출신 학교나 학벌을 자랑하지 말고, 자신의 미모나 건강이나 가문을 자랑하지 말고, 자기 부모나 남편이나 자식을 자랑하지 말고, 자신의 기술이나 직업이나 실력을 자랑하지 말고, 자신의 업적이나 성공이나 재산을 자랑하지 맙시다. 오직 예수님 자랑, 우리 교회 자랑, 우리 목사님 자랑, 우리 성도 자랑, 천국을 자랑합시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 하나님의 자녀된 것, 의인된 것, 성도된 것, 천국시민된 것, 영생을 얻은 것, 이것들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자랑할 것밖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자랑하면 교회의 모든 당파과 분열은 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복음을 주셔서 구원받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 예수님 보다 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 자랑하게 하시며 교회가 주안에서 하나되게 하옵소서. 십자가와 부활만 자랑하며 전하며 가르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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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1) 수양의 달에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주옵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예수님을 닮는 믿음, 소망, 사랑의 가정이 되게 하소서!

7월26일(월) 찬송302장(통408장), 304장(통404장) 잠 13장(지혜로운 아들은)

27일(화) 302장(통408장), 304장(통404장) 잠 14장(지혜로운 여인은)

28일(수) 310장(통 410장), 314장(통 511장) 잠 15장(지혜로운 자는)

29일(목) 310장(통 410장), 314장(통 511장) 잠 16장(경영권은 하나님께)

30일(금) 315장(통 512장), 3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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