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사무엘 목사(겟세마네 교회)
2022년 1월 9일 주일
“이스라엘의 구원” (롬9장)
The Salvation of Israel
제목: 하나님께 더 가까이(2): “이스라엘의 구원” (롬9장)
The Salvation of Israel
본문: 로마서 9:1~33
요절: “육신에 따른 내 형제들,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내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받기를 바랐노라.” (롬 9:3)
주제: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사도 바울의 간절한 기도에 동참하자
교독문: 122(주현절 2), 예배의 부름: 약 4:8
찬송: 433장(통 490장), 521장(통 253장), 518장(통 252장)
일자: 2022년 1월 9일 주일 (주현절 세번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대한예수교 장로회 겟세마네 교회)
올해 우리교회와 겟세마네 신학교 표어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로 정합니다.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개혁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는 신 칼빈주의 신학자이면서 네덜란드 수상을 지낸 분으로 자유대학교를 설립하신 분입니다. 최근 정성구총장님께서 카이퍼에 대한 저술을 발간하셨습니다. 카이퍼의 신앙의 좌우명(motto)이 시편 73:28 “그러나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내게 좋으니, 내가 주 하나님을 신뢰하여 주의 모든 역사를 전파하리이다 But it is good for me to draw near to God: I have put my trust in the Lord GOD, that I may declare all thy works.”이라고 합니다. 찬송가 338장(통 364장)에서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저희 외조부 김상진 영수님(안동 중앙교회)은 이 찬송을 밤낮으로 부르셨습니다. Moffett 선교사님에게 복음을 듣고 전도함을 받아 평생 믿음으로 사신 분으로 100세 넘게 사셨습니다. 약 5:8에 보면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라. 그리하면 그 분께서도 너희에게 가까이 다가가시리라 Draw nigh to God, and he will draw nigh to you.”고 하십니다. 우리교회 새벽기도회 주제가라고 할 수 있는 찬송 433장(통 490장)에서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주께로 날마다 더 가까이 저 하늘나라 나 올라가 구주의 품안에 늘 안기어 영생의 복받기 원합니다” 매일 매순간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새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로마서 9장을 강해합니다. 로마서 9장부터 11장까지는 하나님의 예정에 대해 증거합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구원 문제를 다루면서 이 진리를 말합니다. 9장은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선택에 근거한다는 것과 이 선택은 사람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적 긍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노니, 나의 양심이 성령님 안에서 나를 증거함이라. (2) 내 마음에는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슬픔이 있노라. (3) 육신에 따른 내 형제들,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내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받기를 바랐노라.
1-3절.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기적적으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난후 대언자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바울 형제에게 안수기도하라고 하실 때 바울은 이방인과 왕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복음을 전할 자임을 소개하셨습니다(행 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a chosen vessel unto me, to bear my name before the Gentiles, and kings, and the children of Israel”) 그래서 바울은 어느 곳에 가든지 먼저 이스라엘 사람들을 만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회당을 찾기도 하고, 빌립보에서는 회당을 찾지 못하여 유대인들이 기도처로 모이는 냇가에 가서 루디아를 만나 전도했던 것입니다. 로마서를 쓸 당시 바울은 3차 전도여행 중이었습니다. 로마에서 고린도로 추방되어 온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도 유대인이었는데 이들은 로마로 돌아가지 않고 바울의 동역자들이 되어 함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로마서를 읽는 성도들 중에는 유대인들이 많았던 것으로 예측하고 이스라엘 성도들 그의 형제들을 향해 크게 근심하며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립니다. 그것은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불붙는 사랑의 심령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의 구원을 소원한다고 고백합니다. 모든 동물의 세계도 그러하겠지만,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한 부모에게서 난 형제자매들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는 일과, 친척들이나 한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과 동포들에 대해서도 다른 민족이나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자들보다 더 친근함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 그만큼 가족들이나 친척들이나 동족들에 대해 일차적 의무가 있고 그 의무 중에 첫째는 그들을 구원하는 의무입니다. 우리가 우리 가족부터 구원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남을 구원할 수 있겠으며, 우리 민족부터 구원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다른 민족을 구원할 수 있겠는가요? 로마서 9-11장은 이스라엘 구원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포럼을 인도하시는 김진섭박사님(전 백석대 신학대 부총장)께서 ‘알리야’ 운동을 전개하시는데 로마서의 중심 내용은 9-11장이며, 이를 설명하기 위해 복음을 통한 칭의(믿음으로 의롭게 됨), 성화(성령님을 통화 거룩성 회복)를 1-8장에서 설명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알리야( עֲלִיָּה Aliyah)란 유대인 디아스포라(diaspora 전세계로 흩어져 거주함)들이 유대인의 땅인 에레츠 이스라엘(Erets Israel)로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즉 ‘알리야’(עליה)는 세계 각지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상승’(올라감)을 뜻합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유월절(Passover)과 대속죄일(Yom Kippur)를 지킨 후 헤어질 때 "다음 해에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갑시다 Let’s go up to Jerusalem next year"라는 말로 기도를 마칩니다. 유대교의 종교법인 할라카(Halakha)에서 613가지 율계명과 더불어 알리야를 명예로운 행위으로 여깁니다. 중세시대에 유명한 랍비이자 철학자였던 아브라함 마이모니데스(Abraham Maimonides, 1186-1237)의 글에서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현대 알리아 운동은 유대계 오스트리아의 기자인 테오도어 헤르츨(Theodor Herzl, 1860~1904)입니다. 나폴레옹은 1799년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들을 위한 나라를 건국하자는 제안을 했고,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미국의 대통령 우드로 윌슨과 존 아담스는 시온주의를 지지했습니다. 헤르츨은 시온주의(Zionism,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한 민족주의 운동)를 반대를 했으나, 1894년 프랑스에 일어난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적극 시온주의에 앞장섰습니다. 프랑스군 유대인 포병대위인 드레퓌스(Alfred Dreyfus)가 독일 측에 기밀문서를 넘긴 혐의로 1894년 12월 군사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했습니다. 헤르츨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고토인 이스라엘로 돌아가자는 운동 즉 알리야 운동의 기수가 되었습니다. 19세기에는 오스만 제국이 팔레스타인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살고 있던 50만 명 중 유대인들은 2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러시아 제국에서 포그롬(pogrom, 1881년과 1921년에 제정 러시아에서 일어난 유대인에 대한 조직적인 탄압과 학살)이 일어났으며 동유럽에서 유대인 학살과 박해가 이어지자 유대계 러시아인들 소수가 이스라엘로 귀화하면서 첫 알리야가 시작되었습니다. 일부는 서유럽과 미국으로 대거 이주하였습니다. 1948년 5월 14일 유대인 국가인 이스라엘을 건국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직도 알리야 운동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이스라엘 포럼(대표: 김진섭 박사)과 이스라엘을 위한 기도 단체에서 알리야 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온누리 교회에 이어 송도 주사랑교회, 김포영광교회, 브니엘교회, 필라델피아 큰믿음제일교회, 구기동 영광교회, 겟세마네 교회, I Team에서도 이스라엘을 위한 기도회 및 알리야 물결 후원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4) 그들은 이스라엘인들이라. 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주심과 하나님을 섬김과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그들의 조상이며 육신으로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분은 만물 위에 계셔서 영원히 송축받으실 하나님이시라. 아멘. (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헛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이스라엘에서 난 사람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며 (7) 또 아브라함의 씨라 하여 다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 "오직 이삭에게서 난 자만이 너의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 이는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만이 씨로 여김을 받는다는 것이라. (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이때쯤에 내가 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신 것이라. (10) 그뿐 아니라 리브가도 한 사람, 곧 우리 조상 이삭에 의하여 잉태하였는데 (11) (아직 자식들이 나지도 아니하였고 또한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도 아니하였을 때에, 택하심을 따른 하나님의 목적이 행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부르심에 있게 하시려고) (12)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형이 아우를 섬기리라."고 하셨으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노라." 함과 같으니라.
4-5절. “그들은 이스라엘인들이라. 그들에게는 양자(養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주심과 하나님을 섬김과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조상이며 육신으로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민족들과 달리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었고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영광의 표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언약(covenant)들을 맺으셨고 그들에게 율법과 성전 예배의 의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했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그들의 조상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도 육신적으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나셨습니다. 바울은 이처럼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언급한 후, 그분의 신성(神性)도 증거합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셔서 영원히 송축받으실 하나님이시라. 아멘“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 평범한 동족(同族)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온갖 특권을 누렸던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그들의 구원을 위해 더욱 불붙는 심령을 가집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입었던 민족인데 지금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분의 보내신 메시야 예수님을 죽이고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미워하고 핍박하고 죽이고 있기에 더 그러한 것입니다.
6-9절. 이스라엘의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택을 입은 자들이 참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의 진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으로 선택된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그 자손으로 여기심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아브라함의 여종 하갈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과 그 자손들이나(창 16:1-16), 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죽은 후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에게서 난 여섯 명의 아들들과 그 자손들은(창 25:1-6) 아브라함의 언약의 복을 받은 자손으로 간주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이어서 내려온 언약의 자손들, 그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된 자들만 언약의 복을 받은 자손으로 간주되었습니다.
10-13절.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분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택의 진리는 특히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쌍둥이 아들들, 에서와 야곱을 낳았을 때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두 아들들이 아직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에게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말씀하셨고(창 25:23), 후에 대언자 말라기를 통해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말 1:3). 이로써 하나님의 백성은 육신의 혈통을 따라 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어떤 선이나 악을 행한 행위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의 선택으로 되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사람의 구원은 사람의 의로운 행위나 선한 행위로 말미암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의로운 행위나 선한 행위는 그 자체로도 흠과 점이 있는 부족한 행위입니다.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사 64:6, “대저 우리는 다 부정(不淨)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義)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사람이 없습니다(롬 3:20). 사람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즉 그의 긍휼과 은혜의 선택으로 말미암습니다. 딤후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4) 그렇다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5)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비를 베풀 자에게 자비를 베풀고 내가 가엾게 여길 자를 가엾게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러므로 원하는 자에 의해서도 아니요, 달리는 자에 의해서도 아니며, 오직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에 의해서니라. (17) 성경이 파라오에게 말하기를 "이 목적을 위하여 내가 너를 세웠으니, 이는 내가 너에게 나의 능력을 보이고 또 내 이름이 온 땅에 선포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자비를 베푸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또 원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14-16절. 하나님의 선택이 주권적이라는 사실에 어떤 잘못이 없습니다.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자이시므로 구원하실 자를 임의로 선택하신다는 사실은 결코 부당하거나 불의한 일이 아닙니다. 주권적 선택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에서도 확증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고 말씀하십니다(출 33:19). 구원은 사람의 소원이나 노력으로가 아니고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 2:8)
17-18절.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출 9:16)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도 하시고 강퍅케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그분에게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분은 구원하고자 하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사람의 구원은 사람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19) 그러면 네가 내게 "어찌하여 그분께서 여전히 잘못을 찾고 계시며, 누가 그분의 뜻을 거역하였느냐?"라고 말하리라.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하나님께 대꾸하느냐? 지음을 받은 것이 지으신 분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고 말할 수 있겠느냐? (21) 토기장이가 같은 흙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겠느냐? (22) 하나님께서 그분의 진노를 나타내시고 또 그분의 능력을 알게 하시려고 멸하기에 합당한 진노의 그릇들을 심히 오래 참음으로 인내하시며 (23) 영광에 이르도록 예비된 자비의 그릇들에 대해서 그분의 영광의 풍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으니 (24) 그분께서 우리까지도 부르셨으되 유대인들 중에서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중에서도 부르신 것이 아니냐? (25) 호세아의 글에서도 말씀하신 바와 같이 "내가 내 백성이 아닌 자들을 나의 백성이라, 사랑하지 않은 자들을 사랑하는 자라고 부르리라. (26) '너희는 나의 백성이 아니라.'고 그들에게 말한 그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불리리라."고 하셨느니라. (27) 또한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부르짖기를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라. (28) 그가 그 일을 완수하시고 의 가운데서 속히 이루시리니, 이는 주님께서 땅 위에서 그 일을 속히 행하실 것임이라." 하였느니라. (29) 또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와 같이 "만일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한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다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또 고모라와 같이 되었으리라." 함이니라.
19-24절. 그러면 이런 질문이 가능합니다. ‘어찌하여 그분께서 여전히 잘못을 찾고 계시며, 누가 그분의 뜻을 거역하였느냐?’ 이에 대해 사도는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하나님께 대꾸하느냐? 지음을 받은 것이 지으신 분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고 반문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대해 도전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분이시요 사람은 그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대해 인간이 불평할 수 없습니다. 토기장이가 같은 흙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진노를 나타내시고 또 그분의 능력을 알게 하시려고 멸하기에 합당한 진노의 그릇들을 심히 오래 참음으로 인내하십니다. 영광에 이르도록 예비된 자비의 그릇들에 대해서 그분의 영광의 풍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으니 그분께서 우리까지도 부르셨으되 유대인들 중에서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중에서도 부르신 것이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이런 토기장처럼 하나님께서 사람의 구원에 대해 결정권을 가질 수 있음을 천명합니다. 실상, 악인들의 멸망은 그 자신의 죄와 직접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을 심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악인들은 스스로 악을 행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악인들을 오래 참으시고 관용하셨습니다. 또 구원받는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로 받은 것뿐입니다. 인간의 죄악된 본성으로 말한다면, 우리나 그들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긍휼로 우리에게 회개와 믿음을 주셨습니다.
25-29절. 호세아 글을 인용하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로암미)를 내 백성(암미)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로루하마)를 사랑한 자(루하마)라 부르리라.” (호 2:1)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호 2:23)고 하십니다.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기를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주님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이는 그분께서 그 일을 이루시고 의로 그것을 제한하실 것임이라. 이는 주님께서 제한된 일을 땅 위에 행하실 것임이니라 하셨느니라.’(사 10:20-23)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이나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오직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또한 이사야 13:19를 인용하면서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긍휼로 남겨진 자(remnant= 스알 shear)들이 있었듯이, 오늘날도 하나님의 은혜로 남겨진 자들이 있으며 오직 그들만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들이 선택된 자들이며 구원은 오직 그들에게만 주어집니다. 이사야의 아들 이름이 스알야숩(Shear Jashup)으로 남은자가 돌아온다(The remnant shall return)는 뜻으로 끝까지 남은 자들이 회복 즉 구원을 얻겠다는 상징적인 이름입니다(사 7:3, 8:18, 10:20). 우리도 이 세대의 남은자가 되어 구원을 받읍시다(마 24:13).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하던 이방인들이 의에 이르렀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라. (31) 그러나 의의 법을 따르던 이스라엘은 의의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느냐? 이는 그들이 믿음으로 의를 구하지 아니하고 율법의 행위로 구하였기 때문이라. 그들이 그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에 넘어진 것이라. (33) 기록된 바와 같이 "보라, 내가 시온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두노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30-33절.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 원인은 그들이 믿음으로써가 아니고 행위로써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행위로써 하나님 앞에 구원받을 수 수 없습니다. 율법 행위로는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며 멸망할 자입니다.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을 믿음으로써만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신칭의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에게나 모든 사람들에게 꼭같이 적용됩니다. 33절에 "보라, 내가 시온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두노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십니다. 사람이 행위로써가 아니고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것은 구약 이사야 8:14(참고. 시 118:22)에서도 암시된 바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온에 두실 부딪히는 돌(stumblingstone)과 거치는 반석(rock of offence)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율법 행위를 의지하는 자는 그 돌에 걸려 넘어질 것이나, 그분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걸려 넘어지다’의 헬라어는 ‘스켄달리온 scandalion’에서 스캔들(scandle)이란 단어가 나왔습니다. 오직 믿음을 가진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디딤돌(stepping stone)으로 만들어 구원의 문으로 골인할 수 있습니다.
롬 9장의 교훈을 요약하면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 받음을 거절하고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 하다가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죄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런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둘째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긍휼의 선택으로 말미암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십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가족들과 친척들과 동족으로부터 구주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바울은 동족의 구원을 위해 불붙는 마음이 있어 심지어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형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합시다.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고 이스라엘이 우리보다 먼저 하나님을 알고 말씀도 먼저 받았지만 초림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태반의 유대인들은 그들 민족만 구원할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말세지말에 이스라엘의 구원이 가까웠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복음을 깨닫고 예수님을 메시야(Yeshua ham-Masiach 예슈아 함-마시아흐)로 영접하여 우리와 같이 구원받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스라엘 선교를 위해 찬송가 521장(통 253장)를 부릅시다.
1) 구원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참 좁으며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길은 참 험하니
우리 몸에 지워있는 그 더러운 죄짐을
하나없이 벗어놓고 힘써서 들어갑시다
<후렴> 구원으로 인도하는 그 좁은 문 들어가
영생으로 인도하는 그 생명 길 갑시다
2) 이 세상의 많은 사람 큰 문으로 들어가
넓은 길로 갈지라도 멸망으로 끝나니
세상 헛된 부귀 영화 모두 내어버리고
주의 말씀 순종하여 그 생명길로 갑시다
3) 구원의 문 열렸으니 주의 공로 힘입어
주저말고 들어가서 생명길로 갑시다
구원의 문 닫힌 후엔 들어가고 싶으나
한 번 닫힌 구원의 문 또 열려지지 않으리
[오늘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올해 한해 동안 날마다 주님께 더 가까이 가기를 원합니다. 귀하신 주님, 저를 붙잡아 주사 주님께로 더 가까이 인도하시고 성화의 길을 성실하게 걷게 하옵소서. 간악한 마귀가 유혹해도 주님께로 더 가까이 가게 하옵소서. 오늘 로마서 9장에서 주시는 하나님 말씀을 받으며 더욱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며 복음의 역수출이 되어 이스라엘이 복음의 원래 장소임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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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1) 신년의 달에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주옵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하나님께 더 가까이 하는 믿음, 소망, 사랑의 가정이 되게 하소서!
1월10일(월) 찬 521장(통 253장), 433장(통 490) 렘 39장(예루살렘 함락)
11일(화) 찬 521장(통 253장), 433장(통 490) 렘 40장(총독 그다랴 살해)
12일(수) 찬 518장(통 252장), 428장(통 488) 렘 41장(그다랴 측근들 살해)
13일(목) 찬 518장(통 252장), 428장(통 488) 렘 42장(예레미야의 기도)
14일(금) 찬 516장(통 265장), 421장(통 210) 렘 43장(이집트로 이주계획)
15일(토) 찬 516장(통 265장), 421장(통 210) 렘 44장(재이집트 유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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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 신학교 겨울방학 중(2021년 12월 1일~2022년 2월 13일)
◉겨울특강: 2022년 1월 10일 오전 10시~11일 오후4시 (1박2일)
과목: 성경 사본학, 킹제임스 성경 통독, 종말신학 (동문회, GDM과)
◉장소: 수원향기로운나무 교회(이태환목사 시무), 본당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398번길 11,
[전철: 1호선 성균관대역 4번 출구, 택시로 기본 요금이면 교회 도착함]
◉연락처: 010-9113-1127, 010-4907-7483. 010-7307-3589
◉편입학구비서류: 입학원서(본교소정), 고교졸업 이후 모든 학교 졸업증명 및 성적증명(영문), 신앙간증문, 여권 사진페이지 사본, 명함판 사진2매, 입학전형료 10만원, 학비(학기당 학사 100만, 석사 120만, 박사과정 150만), 졸업장을 미국학교 원할 때 학사비 별도.
◉2022년 봄학기 (재학생 등록은 1월 1일 ~ 2월 10일까지, 이후 과태료 있음)
등록금: 학사과정 100만원, 석사과정 120만원, 박사과정 150만원
[농협 302 0280 1002 11 YunSamuel]
개강: 2022년 2월 14일(월) 오전 10시~오후 5시
종강: 2022년 5월 16일(월), 종강 채플
◉2022년 봄학기 신입.편입생 모집
(신학사, 교역학석사, 상담학석사, 목회학 박사, 상담학 박사, 신학박사 등)
특전: 1) 본교 졸업자는 학사협정으로 미국 신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2) 교역자 석사(M.Div) 졸업자는 목사 안수, 선교사 파송 받을 수 있다.
3) 1년 3학기 공부를 할 수 있다(계절 학기)
4) 장학금 신청할 수 있다(부부, 작은 교회 목회자, 목회자 가족)
입학전형료: 10만원, 편입학 학사비: 30만원
학기: 학사 8학기, 석사: M.Div 6학기, Th.M. 4학기, MCC 혹 MCE 4학기, 박사: D.Min. D.C.C. , D.C.E. 5학기, D.Miss 6학기, Th.D. 7학기, Ph.D. (Th.D. 후 2학기) <계절 학기를 1년에 한 차례 개설할 수 있다>
입학문의: 010-9113-1127, 010-4907-7483,